2024. 6. 2. 주일예배설교
골로새서 1장 15~18절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아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창세기 1장과 2장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살게 되는 생명체들을 만드셨는데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있어라.”하고 말씀을 하시면 그것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만드실 때는 다르셨습니다. 말씀이 아닌 손으로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호흡까지 불어넣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렇게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손수 만드신 인간을 보시면서 “너무 좋다! 너무 좋아!”를 연발하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이 하나만으로도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사랑을 마치 전유물(專有物)로 여겨 세상을 자기 멋대로 휘저었습니다. 심지어는 이 큰 사랑을 주신 하나님조차 배신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만물을 잘 다스리라고 큰 권한과 임무를 맡기셨더니, 그것으로 하나님도 다스리겠다는 월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사랑의 배신자인 것입니다.
이는 청지기가 주인이라고 큰소리치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등극시키고는 만물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책임은 염두에 없고 권한만으로 만물을 휘저은 결과는 너무도 자명합니다. 자연은 훼손됐고, 참다못한 자연은 역공을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기후 위기가 온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에 버금가는 대재난이 예측되는 형편입니다.
과연 우리는, 특히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암울한 기후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그리고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신앙적일까요? 혹시 망연자실 이대로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과하도록 받는 청지기라는 사실입니다.
15~17절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우리를 포함해 모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만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님의 휘하(麾下)에 있는 청지기일뿐입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가 마치 주인인양 만물에 대해 행패를 부리는 일은 창세기 2장 27절 바로 다음 절인 28절을 오독(誤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신 사실에서 발견됩니다.
여기서 “정복하라”는 구절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에 대해 강압적인 지배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대리자인 청지기로서 다른 피조물을 돌보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물의 주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청지기가 주인 노릇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대리자인 청지기 인간은 이 소명을 어떤 태도로 이해하고 수행해야 할까요?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부-성자-성령’으로 이해되시는 것이지, 위계적이거나 계급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삼위일체는 결코 주종(主從)의 질서가 아닌 관계의 연합이실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리자인 우리 청지기들은 모든 피조물, 즉 모든 인간과 모든 자연을 관계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개방해야 합니다. 독점하고 종속시키는 행위를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너/이웃/세상/자연과의 관계는 하나님 앞에 사는 공생관계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과 정보는 너와 내가 살기 위해 개방하는 공유관계여야 합니다. 독점과 종속은 하나님의 관계성이 아닙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소망-사랑’이라는 자기초월적 개방성을 이해하라고 하십니다. 자기초월적이란, 자기가 중심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결코 자기중심이 아니라 자기를 초월한 개방적 관계의 연합이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는 믿음-소망-사랑’이라는 자기초월적 개방성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의 자기초월적 개방성입니다. ‘하나님’, ‘세상(이웃)’, 그리고 ‘미래’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초월적 개방성은 ‘믿음’입니다. 이것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웃)과의 관계에서 자기초월적 개방성은 ‘사랑’입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의 자기사랑에서 이웃중심의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레비나스의 말처럼 타자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과 이웃이 없이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랑, 존재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미래와의 관계에서 자기초월적 개방성은 ‘소망’입니다. 이것은 미래인 내일의 주인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지구의 멸망도 하나님의 시간이시니 그것 또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지만,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믿음과 소망이 아닌 사랑에서입니다. 세상(이웃)과의 관계인 사랑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청지기의 첫 번째 태도여야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청지기는 이것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의 운명입니다.
■ 그렇다면 만물의 청지기인 우리는 이웃인 만물(피조물)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머니처럼, 연인처럼, 친구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처럼 양육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연인처럼 공감하고 결합해야 합니다. 친구처럼 친밀한 상호적 사귐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의 보다 구체적인 태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태도와 방주 안의 노아의 태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실 현재의 만물(피조물)은 강도 만난 이웃입니다. 이에 청지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태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쓰러진 만물을 치료해야 합니다. 다 나을 때까지 필요한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비용의 지출로 경제적 불편이 찾아온다면, 그 불편을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사실상 만물의 강도는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불편함이 곧 회개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만물을 괴롭혔던 힘을 하나님께 고스란히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용돈 받듯,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만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는 노아의 방주에서 배우는 태도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사는 동안 갖고 있었던 힘은, 오직 하나님이 행하시는 힘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힘뿐이었습니다. 방주에 함께 사는 동물들을 보살피고, 함께 살아가는 힘뿐이었습니다. 모두가 동료였습니다.
본래 모든 힘은 하나님에 의해 제어되는 힘일 뿐, 그 누구에게도 힘이 없습니다. 힘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기후 위기를 맞은 우리에게 필요한 이해입니다. 과학과 기술로 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은 교만이고 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만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겸손은 창조에 내포된 거룩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피조세계를 돌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겸손에 기후 위기 시대의 답이 있습니다.
■ 18절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렇습니다. 만물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님이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바라기는, 더 이상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비전교회가 생태적 시각을 가진 ‘생태공동체’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생태적 메시지를 살아내는 ‘생명청지기’로 거듭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