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wJifBhs4Wow
2023년 2월 19일(주일) 예산수정교회 주일설교 전도서 3:1~15 '현재는 하나님의 선물' 새찬송가430장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이몽용목사
오늘은 전도서 3:1~15절 말씀을 중심으로 '현재는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전도자는 범사와 천하만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시고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고 변함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1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한과 때는 우리가 정할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범사와 천하만사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듯이, 우리의 삶도 정해진 기한이 있습니다. 2~8절에 여러 가지 ‘때’가 등장하는 데요 2절~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기한과 때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결정되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가 아주 귀한 말을 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세 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어린아이’요, 둘째는 ‘장미꽃’이며, 셋째는 ‘어머니 마음’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끝까지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보세요. ‘어머니 마음’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린이’는 성장하여 늙고 ‘장미꽃’은 아름답게 활짝 핀 후에 시들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오늘 말씀과 관련이 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지금’, 이구요. 둘째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셋째가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단순 명쾌하고도 소중한 지혜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때’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미래지향적이서 그 때를 생각할 때 너무 막막하고 멀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말처럼, 현재가 중요합니다. 오늘이 중요하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지금 나의 삶에서 내가 겪고 있는 사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려면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현재는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입니다(1~8절).
모든 사람의 생각은 모든 사람의 삶의 결론입니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느끼고 경험하면서 깨달은 체험적 지혜의 역사적 산물입니다. 사람이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은 이유는 생각은 그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의 뿌리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삶의 현장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번에 설교했던 것처럼 [때문에]의 생각이 지배적입니까? [덕분에]의 생각이 지배적입니까? 현재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살아온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현재가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면서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적인 생각, 힘든 사건들을 통해 여러분 안에 있는 가라지를 주님께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정하신 삶의 기한과 때를 알 수 없게 하신 그 현재라는 때를 지나면서 우리는 세월을 아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내가 좋아하는 때와 싫어하는 때를 반복해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하는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고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현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메멘토모리(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가 되려면 카르페디엠(현재를 잡아라, 오늘을 즐겨라) 그러니까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요. 현재라는 때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거부하는 것이 자꾸 현실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 주신 사명을 회피하지 않습니까?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회피하고,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지 않습니까? 회피는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좋은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를 믿음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증거해야 로마에 가서도 증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유한한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자 세월을 아끼되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때를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에 사명 감당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요즈음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신 현재라고 하는 때에 사명감당하기 위해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현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경외하는 때입니다(9~11절).
신앙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동행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트할레크’의 기본적인 의미는 ‘산책하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성’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비록 인간이 신앙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는 엄격히 구별되는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친밀성 속의 구별, 그것이 ‘경외’가 지닌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종을 알 수 없게 하셨습니다.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더하거나 덜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한계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하나님 경외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11절)을 심어 주셨습니다. ‘영원’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올람’은 무한하여 셀 수 없는 영속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원은 유한한 인간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영원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속성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영역인 ‘영원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허락하셨을 뿐입니다. 개역개정성경는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영원을 그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셨다’라고 기록합니다. ‘주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탄’은 ‘허락하다’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에 대한 관심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에 갇히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현재를 소망 중에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땅만 바라보며 비관하지 말고 하늘을 보면서 살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만일 인간이 현재라고 하는 때에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지 못하게 되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자의 한탄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전도서의 결론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전 12:13).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생은 현재를 살아가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말씀을 의지하여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기와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때와 시기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이라고 하는 날을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자세를 갖고 살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나는 요즘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나는 요즈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늘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3. 현재는 구원과 거룩을 이루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12~15절).
인생의 허무함을 전도서 초반부터 일관적으로 강조하던 전도자가 이제는 조금 관점을 바꾸어서 인생을 살아가는 최선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12,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아멘. 인생을 살아가는 최선의 자세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짧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루 하루를 기쁘고 즐겁게 살면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지 인생을 즐기는 쾌락주의로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수 황정자씨가 1962년 발표한 노래인데, 제목은 잘 몰라도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언뜻 가사 내용만 보면 탱자탱자 놀기나 하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노래가 발표된 시기가 1962년도인 것에서 보듯 저 노랫말에 투영된 시대는 전쟁이 막 끝난 1950년대말에서 1960년대초이라, 한창 전쟁후 복구니 재건이니 하던 시대이라 마음대로 놀고 싶어도 놀 수 없었던 시대의 애환이 담겨있는 가사인듯합니다. 오늘 전도자가 제시한 최선의 삶의 자세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의미가 아니라 매 순간 순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후회없이 열심히 살되, 과도한 욕심과 탐욕으로 죄를 범하거나 불평과 근심과 고통으로 선물로 주신 현재의 축복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현재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지독한 구두쇠인 ‘자린고비’에 대한 예화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독한 구두쇠인지라 식사 때는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놓은 후 ‘밥 한 술에 굴비 한번 쳐다보기’라는 괴이한 식사법을 애용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심지어 아들이 굴비를 두번 쳐다보자 굴비가 짜지도 않느냐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큰 아들이 굴비를 두 번 쳐다보자 작은 아들이 아버지 자린고비에게 '형이 굴비를 두 번 쳐다 봤어요'라고 고자질하자 자린고비가 '놔둬라, 오늘 형 생일이잖니'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기독교 국제구호기관 '월드비전' 홈페이지에는 크리스천이 왜 남들에게 관대해야 하고 선을 행하며 베푸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성경구절들이 올라왔습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또, 그렇게 할 때 베푸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에 대한 성경구절들도 소개했습니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시 11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25) 현재는 구원과 거룩을 이루어가지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하기 싫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현재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의 구원과 거룩을 이루어가시는 것에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최선의 인생입니다. 비록 현재 나의 삶에 억울하고 조롱당하는 고난의 때조차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때임을 고백하며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지금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나 문제가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이나 문제 조차도 내 안의 가라지를 보고 회개하라고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이라는 한 형제님의 큐티인 간증입니다. 저는 오직 저의 노력과 능력으로 성공을 이루고 물질의 풍요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았고,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내 능력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때, 저는 50대의 나이에 지병이 왔고, 완치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의사의 그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감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힘과 노력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저의 모든 것이 꺾이는 순간이었고, 살아온 날의 허무와 허탄함이 한 없이 밀려왔습니다(2절). 그러던 중 아내의 강권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성경을 알아갔고,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공동체에서 처음 들은 말씀이 ‘일어나 건축하자’였는데, 그 날은 설교말씀처럼 제 인생에 새로운 건축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이 후 저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널브러진 내 인생을 건축해보자’는 마음으로 양육을 받으며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그러자 차츰 병세가 호전되고 살 소망도 생겼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내와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지 못하는 것이 아타까워 재차 아내에게 함께 하기를 권했는데, 아내는 ‘아직 때가 아니다. 때가 되면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제 속에서 ‘노력도 하지 않는데 무슨 때가 오느냐’며 원망이 불일 듯 일어났고, 이후 낙심하여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저에게 한 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떠났던 공동체로 아내와 함께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과 때를 찾지 않고, 제가 정한 시간과 계획만 고집하다가 인생을 낭비했는데, 주님이 건져주셨습니다. 이제는 제 생각과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며, 교회 소그룹 지체들을 섬기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해서 더 할수도, 덜 할 수도 없음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14절) 적용) 아내와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릴때마다 함께 드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겠습니다. 내 안에 불평이 올라올 때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오늘 말씀을 되새기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 중에 ‘주님의 시간에’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를 보면 (1절)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 하루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2절) 기다려 그 때를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 주님의 시간에는 ‘In my time’이 아니고 ‘In his time’ 입니다. 그 주님의 시간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주님의 시간은 우리로 아름답게 변하게 하려는 뜻이 있고, 그 뜻을 이루는 시간은 바로 현재라고 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현재라고 하는 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를 말씀의 기초 위에 주님과 동행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사람과 모든 문제들이 내가 보기에 좋던지 그렇지 못하던지 간에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나의 구원과 거룩을 이루어가는 시간들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때가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시려는 아름다운 때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또한 기쁨의 때를 지나는 지체는 슬픔을 당한 지체를 위로하고, 믿음 안에 바로 세워진 지체는 넘어진 지체를 일으켜줌으로 나에게 주어진 현재라고 하는 때와 기한을 하나님 주신 사명을 이루어드리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함께 결단하고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연약하고 유한한 인생인 저희들의 삶에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들의 아버지로 모시고 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유한한 인생인 저희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때와 때에 따른 뜻과 계획을 분별하도록 은혜를 주시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늘이라고 하는 현재의 때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고난의 때도 슬픔의 때도 잘 견디고 인내하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