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나던 날
"박 선생~!"
"우리 이사를 가게 됐어"
그녀가 내게 말했다.
"네 ~"?
"언제 어디로요~?"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짧은 기간의 만남이었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의 속 깊은 얘기도
허물없이 나눌 정도로
아주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보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내가
그녀와 헤어지기 싫은 것이 더 큰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왜 갑자기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크게 놀랄 일은 못되었다.
그러나 서운한 건 사실이었다.
얘기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 일이 있기 약 3년 전
난 두 분 오빠들과 함께 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미군부대에서 보조 일과 함께 신문배달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시던 큰오빠와 고등학교를 갖 졸업한 작은오빠~
공교롭게 두 분 오빠 모두가 몇 개월 차이로
비슷한 시기에 군대 입영 통지서가 날아왔다.
본가가 있는 곳으로 통지서가 날아왔기
때문에 오빠들께서는 본가 쪽으로
가셨다가 한동안 머문 후에 입대를 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에 혼자 남게 된 내가 문제였다.
그 당시 어른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우리 아버지께서도 여자 특히 어린 딸을 (사실 어리지도 않지만 어른들 생각)
혼자 객지에 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 혼자 남아 있는다는 것은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설득하고 안심시켜 드려도 막무가내~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본가로 와야 된다는 것이었다.
난 버틸 대로 최대한 버텨 보았지만 부녀지간의 인연을 끊어 버리겠다는
완강한 아버지의 엄포에 그만 두 손 두발 다 들고 나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결국 항복하고야 말았다.
그 조건이라는것은
오빠들 제대할 때까지만 본가에 눌러 있기로...
그렇게 아버지랑 약속하고 나서 귀향길에 올랐지만 앞길이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리저리 궁리하던 끝에 마침 그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수출품 비단에 자수를 놓는
가공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앗~싸!
좋을씨고 바로 이거다,
나는 바로 등록을 했고 5~6개월을 그야 말로 남들보다 열심히 배웠다.
아니나 다를까 눈썰미가 약간
남달랐던 나는 노력 끝에 사장과 총 책임자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인정을 받고나서
그분들의 지원을 받아 고향 가까운 읍내에
학원을 차리기로 계획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 지역 읍 면장 지서장 심지어 아무 관련도 없는 우체국장까지~
관공서는 물론
모든 지역 유지들까지의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이었다.
그렇게 해서 염려 했던 내 귀향 생활은 기대했던것 보다
활기차게 시작 되었다.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학원생을 모집했다.
당시에는 젊은 농촌 여성들이 농사일 이외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외부와의 활동은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다수의 학원생들을 모집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소 획기적인 발상에 어찌보면 무모할수도 있는
낮선 시도였고 성공적 보장도 없었기에 망설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확실한 나의 미래를 나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므로 무엇인가에
도전해 보아야만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농촌의 젊은 여성들에게서 억눌린 삶을 보았고
男과 女 (아들과 딸) 이라는 차별적 대우속에서
자신을 은폐시켜야 했던
서러운 삶의 여정을 목격하며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
처음엔 약 150 명 정도로 시작했으나 농촌 어른들의
여자애들은
밖으로 내돌리면 안 된다 는 편견 때문에 몇 개월 후에는
그 수가 100여명으로 줄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여성들만의 공간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그 남아있는 100여명 학원생 중에 앞서 말한
그 아주머니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여러 부분에서 나와 생각이 일치했고
공감하는 분야도 많아서 서로 얘기가 통했고
우리는 짧은 만남에도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사이가 됐다.
여고를 졸업하고 집에서 어머니의 살림을 돕고 있다가
출가하게 된 결혼 5년차로
공무원인 남편과 4살짜리 아들 하나를 데리고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녀는 얼굴도 너무 예뻤고 세련된 현대 여성 이었다.
굳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아도 될 만한 형편이었음에도
무엇인가 생활에 보탬이 될까 해서 또는 자신의 존재감 이며
자아실현의 소박한 꿈 등 의 연유로 인해
내 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 열심히 배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학원 강의가 끝나갈 때쯤
어두운 얼굴빛의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과 함께
박선생 한테 부탁이 하나 있다고 하면서~~~
나는 말을 해 보라고 했고 그녀는 고민을 털어 놓았다.
중략~~~
그러고 나서 자신이 당분간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있을 것이니
혹시 남편이 찾아와 자신의 행방을 물으면 박선생은 모른다고 해주고
돌아가는 상황을 편지로 알려 달라고 했다.
(그 시절엔 통신수단이 그것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 했던 그녀의 남편이 내게 찾아왔다.
아이 엄마가 안 보이는데 혹시 박선생은 행방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눈치를 살폈는데 당황 하고
걱정하는 빛이 역력 했다.
내가 넌지시 그의 의중을 떠보며 물었다.
아이 엄마가 집을 나간 모양인데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느냐? 고
그는 이런 일이 처음 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재빠르게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네요."
그랬더니 그분이 고개를 숙이면서
자신이 잘못한 게 있긴 하다고 했다.
나는 애 엄마한테 연락이오면 알려주겠다고 말한 후
그에게 집에 가서 계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후 그녀에게 속달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왔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다.
그즈음 그녀의 남편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
미혼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1년이 다 되도록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알게 되어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나도 덩달아 화가 났다.
이렇게 예쁜 아내에 귀여운 아들까지 있는 가장이 외도를 하다니....
그러나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가정은 소중한 것이기에
특히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부모는 끝까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지론이었던지라 어떻게든
그들의 현 상황에서 내가 중재적 역할을 맡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의 비밀스런 문제를 얘기했고 무언가 모름지기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않은가 말이다~
다음날
그녀는 학원에 오지않았다.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드리기
힘들었을것이며 그것을 알게 됨으로 인해 느꼈던
남편에 대한 배신감은 그동안 지켜왔던
자신의 삶에대한 가치관이 송두리째 뿌리 뽑힘과 동시에
모든것을 포기하고 싶었으리라.
나는 학원을 마치는 대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남편은 퇴근전이었다.
우리는 잠시 얘기를 나누고 난후
단도직입 적으로 그녀에게 남편과의 작별 편지를 쓰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그녀가 하는 말이 자신은 편지를 써본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써야할지 문장력도
전혀 없다는 거였다.
난감한 일이 아닐수없었다.
생각 끝에 나는 결혼 생활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가 한번 초안을 잡아 써볼 테니
읽어보고 맘에 들면 그 초안으로 00엄마가
옮겨 적어서 책상위에 올려놓고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오빠들 군대 생활 이후부터 편지를 주고받았던
경험과 또는 펜팔을 조금 해보았던 그런
경험들이 어느 정도 있었으므로 제법 편지를 쓸 줄 알았고
문장력도 그런대로 구성 할 정도는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직 미혼인 내가 애 엄마의 입장이 되어
더구나 외도를 하고 있는
남자의 아내 입장에서 설득력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문장력을 갖출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어찌 됐건 숙제는 내게 주어졌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눈물이 나올정도는 아니어도
어느정도의 감동은 줘야만
보람과 결실이 있을 테니 한자 한자 상황에 맞는
문구와 문장을 맞추느라 심혈을 기울였다.
드디어 편지지 다섯 장 분량의 글 완성~!
읽어보고 또 읽고 수정하고 한 다음 그렇게 하룻 밤 동안
아이 엄마아닌 아이 엄마로 또는 아내가 아닌데도 사랑스런
한 남편의 아내가 된 나는 본의 아니게도 구구절절 애끓는
심정을 백지위에 채워나갔다.
그리고
밤새 써 놓은 초안을 다음날 퇴근해서 그들 부부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남편을 출근 시키고 난후
그것을 읽어보고 깜짝놀란 그녀는 내게서 넘겨받은
초안을 자신의 필체로 그대로 옮긴 다음
남편의 책상머리에 올려놓고 오후시간
남편이 퇴근 하기전 나에게 왔다.
아이는 일부러 집에 남겨 둔 채~~~
그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남편이 출근을 미룬채
아이를 안고 내게로 찾아와서 애 엄마의 행방을 물어 본다.
"친정에 간다고 하던데요"
라고 내가 툭명 스럽게
대답을 해 주었더니 나더러 부탁을 했다
할 애기가 있으니 수고스럽지만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아내한테 좀
전해 달라는 거였다.
나는 한마디로 거절 했다.
당사자가 직접 가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애 엄마를 데려 오라는 뜻 이었다.
내 생각대로 그는 출근도 하지않고 아이를 데리고
처갓집으로향했고 저녁때쯤 아내를 데려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날 책상위에 놓여있던 장문으로 써내려간
아내의 애절한 편지가
한참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그들의 비정상적인
애정 행각에 찬물을 끼얹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뭔가 심각성을 깨닫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심에 따라 아내에게 진심어린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혼의 위기에 놓여 있었던
한 가정이 다시 정상으로 회복 되었다.
며칠이 지난 후...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던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기로 했고 비정상적 관계를 맺었던 같은 직장
여자와의 관계도 깨끗하게
정리하기로 아내와 굳게 약속했다는것이다.
더구나 다행스러웠던 것은 남편의 대학 동기가
마련해준
지금의 공무원 생활못지않은 좋은직장을 소개받아
서울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철없이 행동했던
잠깐 동안의 실수가 한 가정을 파괴하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벌어질뻔 한 것이다.
이사하기 전날 밤~~~
내게 잠깐 들렀던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의 남편이 편지를 읽고 나서
난 당신이 그렇게 절절하게 글을 써서 사람을 울리고
감동을 주리라고는 미처 상상을 못했고
정말 자신이 나쁜 사람이었고 잘못 했노라고 ...
앞으로는 다시 당신의 눈에서 눈물 흘리지
않게 하겠노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곳을 떠나
서울로 가자고 했단다.
그곳에 가서 더욱 성실한 직장인으로서
착한 남편 멋진 아빠가 되겠노라고~~~
***
그 말을 내게 건네면서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어쩌면 그 눈물의 의미엔 고마웠다는 작은 내 성의에 대한 뜻도
조금은 포함 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는 그녀의 마지막 인사말이 ~
평생 잊혀지지 않을것 이라던 그녀의 마지막 말이
지금까지도 여운으로 남아있다.
나는 비록 절친 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했지만
내 작은 몇 줄 의 편지로 인해
위태로웠던 그들의 가정을 행복했던 지난 시절로
되돌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혀 지지 않는 흐뭇한 보람과
함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들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서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묻어나는 젊은 날에 꿈꾸고 가꾸었던
지난날의 삶의 여정들을 추억하고 있을까...?
당시에 나보다 세살정도 위였던
그녀는 친구 같은 언니였는데.....!!
지금
그녀도 또 나도 세월의 덧없음을 탄식하며
나이 듦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우리서로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우여곡절의 삶을 되돌아보며
서녘하늘 저 먼 바다 끝에 걸려있는 태양의
남아있는 한조각과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저물어가는인생의 오후에 대한 허무를 읊조리고
있는 것은 아닐 런지...
친구 같은 언니...!!
언니 같은 친구...!!
그녀가 많이 보고 싶다.
다시 한 번 그들의 행복을 빈 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끝)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편지의 위력이 컸습니다.
더위가 계속되는 힘든 시기에
노고가
많으실줄 압니다.
무엇보다 청춘의 마음으로 삶의
연륜을 켜켜히 쌓아가시는
석촌 선배님의 건강도 함께쌓여 지시기를 염원드리며~
후배들에게 크나큰 이정표를
제시하고 계시다는것을
잊지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흔적남겨주심에 무한감사를
드립니다.
위기에 가정을 구하신 님에게 칭찬을 한다면 이상할까요
요즘 세상은 옛날과 달른듯
남이 잘되는것을 배 아파 하는걸
봤습니다 나만에 편견일까
친구갖은 언니도 가끔은 옛날 생각을 하고 살지나 않을까요
잘보고 갑니다
마야1님의 흔적 남겨주신 글 에
제가 그냥 우쭐 해질려고합니다. ㅎㅎ
큰 역할은 못되더라도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어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난날을 반추해보면서
소박한 행복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작은 미소 정도는 나눌수있는 삶이 되었기를 바랬던거같습니다.
마야1 님의 생각처럼 옛날생각을
할것같기는 합니다.
어쩌면 중차대한 삶의 전환점이 되었으니까요.
둘러봐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요.
왜 아니겠어요
한 장의 편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감동적인 스토리는
새여울친이니까 가능했겠지요!
그 것을 계기로
새로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그 친구는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편지를 대필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
학실합니다! ㅎ
ㅎㅎ
친정 소방에서 못뵈었던
모렌도 칭구님
여기에서 뵈오니 반가움
몇배 더 큽니다.
건강하시지요 ~?
맞습니다.
당시로 보았을때는 직장을
포기할정도로 파격적 이었으니
중대한 전환점이었지요
그녀만의 비밀은 당연히
지켜져야만 하는 ~
그녀 만의 소중한 자존심
바로 그것이지요
그분들이 지금도 행복하게
무병 장수하게
살고 계신지 보고싶네요.
친구님 흔적 남겨주어 너무
감사합니다.
큰마력을 지닌 그편지의내용이 궁굼하네요
아마도 그분들은 지금도 어디에서 곱게잘살고있어리라
확신합니다 고은글 잘보았읍니다
들러주신 아침햇살 친구님 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큰 마력은 아니겠지만
나름으로
그분의 아내입장에서 신중을 기해
심사숙고 정성껏
남편에게 설득력 있는 글을
써서 최선을다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지금생각해보면요.
가정을 지키는것은 부부의
공동책임이자 의무니까요
2세의 앞날을위해서도
당연한것이구요.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역시 칼 보다 큰 펜 입니다.
자연이다 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 기억속에
한번도 뵙지 못했던 님이신데도
흔적 남겨주시고 이렇게
짧고도 명료한 글로
핵심을 짚어 내신 그 순발력에
감탄을 금할수 없네요.
다시한번 진심담아
감사말씀전해 드리고
항상 건강과 행복이 두루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춘원 이광수와 연애하던 허영숙 그녀는 산부인과 의사였지요 전공은 빠삭해도 연애 편지쓸 감성은 꼴찌 그래서 동문수학하던 일엽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타고난 문재이던 일엽이 쓴 청산유수같은 사랑의 편지
편지를 읽은 춘원이 허영숙에게
누가 써 준거냐 의사인 당신은 절대 이런 문장 지을 수 없다 하니 그녀가 실토했답니다 일엽이라고
타고난 문재는 그 재능으로 빛을 발합니다 살면서 요긴하게 쓰여지기도 하면서요 좋은 일에 재능을 쓰신 새여울님 잘읽었습니다.
운선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올라오는 수많은 글마다
평가 하시느라
너무 힘드신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격려말씀 한번 드리지
못하고 말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항상 운선님의 글에 배울점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도
하루 온종일 삶 의 현장을 벗어나지못해
공감을 함께 나누지
못함도 무척 아쉬운점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할수없는
특권이라 생각하시고
건강 잘 챙기시고 즐겁게
지내셨으면 하는바램으로
격려 말씀드립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잘 읽고 갑니다.
편지의 힘은 대단했고
사후의 행동도 현명한것 같습니다.
부부도 살면서 항시 노력하면서 살아야 할것 같습니다.
쌓이면 풀고,쌓이면 풀고 ᆢ
我執없이
에구머니나~~~
소방의 운영 위원님이자.젊은청년의 표상~
만우 후배님~
어떻게 이곳까지 둘러봐주실
시간이 되셨네요
무한 감사드립니다
후배님~~~!!!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오랜시간 함께 하다보면 우여곡절이 있는
삶도 함께 동반 될테지요~
많은 노력과 양보도 필요하다는
저의 개인적 생각이 그 부부에게
어필 되었던것 같습니다.
이해 충돌이 있게 될때는
꼭 자신들의 성찰이 우선되어야
하지않을까 하는 저의 생각을
담아보았던겁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소중한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감사 드려요 .
매사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머물기를
바랍니다.
만우 후배님~~~^*^
젊은 시절에
필력이 좋았나 봅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곳에서
친구를 위해,
편지를 대필한 새여울님,
글의 위력이 대단함을 알겠네요.
자주 on line 방에서
즐기시기를 권해 봅니다.
수고하셨네요.
격려의 진심이 담겨진
콩꽃 님의 다정한 댓글에
무한 감사를드리면서
힘을얻습니다.
필력이 좋았다기 보다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친구의 입장이 되어 한번
깊이있게 생각을 해보았지요.
그것을 글 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장본인대신 표현해보았다고
하면 될것같습니다.
솔찍히 주제나 내용면에서
훌륭하신분들 글이 많아서
망설임도 있었으나
5060아름다운 문학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값지고 유익한 문학행사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이 행사가 꺼지지 않는 불멸의
이벤트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시한번 콩꽃님의 격려 말씀에
감사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