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는 이 시를 무리긴의 장례식 날 지었다.
슬라바 무리긴이 마치 민족의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교생이 그의 장례식에 왔다.
교감과 고학년 학생 두 명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금한 돈으로 구입한 화환을 무덤 위에 놓았고, 화환의 붉은색 리본에 금색으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증인이면서,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미하는 순식간에 일어난 그 사고로 힘들어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스케이트화, 전차가 갑자기 정차하면서 내는 날카로운 쇳소리,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얼굴을 찌푸린 채 찻길을 내달리던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못된 사내아이 대신 전차 바퀴 아래 흩어져 있던 잔해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연민은 미하의 머리, 심장 그리고 그의 몸 전체보다 더 컸고, 이것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떠나서 모든 사람을 향한 연민이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쉽게 부서질 수 있고 연약한 존재이며, 그들 모두 아무런 이유 없이 쇠와 부딪히면 순식간에 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고 피가 흐르고 어지러운 잔해만 남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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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를 가진 자, 보병대를 가진 자,
함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검은 대지에서
사랑하는 이가 가장 아름다워.
눈이 있는 자는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리니
오래전 헬레네는 미남들에게 한눈을 팔았지만
도대체 누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사악한 트로이의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사랑하던 모든 것을 잊었다네.
자식과 어미도 잊고
사랑에 눈이 멀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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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빅토르는 소설 속에 서 새롭고 귀중한 사상들, 작가 특유의 감수성과 어휘 외에 약점도 발견했지 만, 이 약점마저 마음에 들었다.
소설이 지닌 허점 덕분에 생각도 많아졌다.
계획대로 움직이기를 좋아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어리석음과 자기애를 드러내는 행동을 하는 라라가 빅토르 율리예비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가 죽는 장면에서, 죽어가는 지바고를 실은 전차와 천천히 지나가는 마드무아젤 플뢰리의 길이 엇갈린다.
두 사람 모두 자유를 향해 가지만, 한 명은 산 자들의 땅을 버리고 다른 한 명은 노예로 살던 땅을 버린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빅토르 율리예비치는 작가가 수많은 우연과 뜻밖의 만남을 무질서하게 연결 한 이유를 깨달았다.
빅토르 율리예비치는 이 소설은 "러시아 고전 문학에 대한 위대한 추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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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는 어떤 예비 프로그램이 있어서 가끔 차단된 기계장치에 전원이 들어오면 변화가 일어나고 활기를 얻는 등의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게 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기적적인 치유의 순간 인체에 일어나는 바로 그런 현상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성자들은 생화학을 모르고, 종양으로 인체가 파괴되는 과정에 대해 정통한 생화학자들은 요한 크론 시타츠키 혹은 성 마트로나가 인체의 어떤 비밀스러운 단추를 눌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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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올가는 타마라에게 전날 꾼 꿈 얘기를 했는데, 널따란 카펫 같은 목초지에 커다란 초록 천막이 서 있고, 그 안에 들어가려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올가도 꼭 들어가야 해서 줄의 맨 끝에 서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불쑥 신비주의적 직감에 사로잡힌 타마라는 경계 태세로 몸이 얼었다.
“천막?”
"응, 서커스 천막 같은 거였는데 굉장히 컸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 죄다 아는 얼굴인 거야.
어렸을 때 이후로 못 본 피오네르 캠프의 여자아이들, 학교 선생님,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사람들과 우리 교수님도…. 다 같이 모여 시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토니나 나우모브나는?"
“당연히 계셨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도 있었고 미하도 보였는데 옆에는 처음 보는 아이들이 같이 있었어. 사냐도 봤고, 갈랴도 어떤 사람이랑 같이 있었는데 누군지 모르겠더라고"
"그러니까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같이 있었다고?”
"응, 물론이지. 그리고 어떤 개 한 마리가 내 발밑에서 뛰어다니면서 날 보며 웃는 것 같았어.
개한테 목줄이 연결돼 있고, 어떤 여자아이가 그 목줄을 잡고 있더라고.
마리나라는 여자애인데 굉장히 사랑스러웠어.
개 이름은 뭐였더라.......게라! 개 이름은 게라였어! 이들 말고도 사람이 많았어…….
그리고 갑자기 저 멀리 입구 바로 앞에서 일리야가 보이는데 줄 맨 앞에서 나한테 손을 흔들면서 말하는 거야. '올가! 이리로 와! 오라고! 내가 네 자리 맡아놨어!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그에게 갔고, 그러자 모두들 술렁이기 시작했는데, 내가 새치기를 했기 때문이었어.
그러자 엄마는 나한테 왜 순서를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어.
그런데 이때 턱수염을 기르고 체구가 크고 잘생긴 할아버지가 나타났어.
나는 이분이 우리 할아버지인 나움 할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았지.
그분이 한 손을 들어 사람들 위로 흔들자, 사람들이 내게 길을 내줘서, 그 덕분에 천막 쪽으로 달려갈 수 있었어.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천막은 초록색이 아니라 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어.
가보니 일리야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혈색이 굉장히 좋아 보이고, 건강하고 젊어 보였는데, 나를 자기 옆에 세우고는 한쪽 어깨에 한 손을 얹더라고.
그런데 이때 옥사나가 나타나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데 그는 그녀를 못 본 척하는 거야.
천막 입구엔 제대로 된 문은 없고 웬 커튼 같은 두꺼운 천이 늘어져 있었는데, 이 커튼이 젖혀지더니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겠더라고.
무슨 냄새도 나고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했어."
"궁전."
타마라가 입술만 움직여서 속삭였다.
“브린치크, 무슨 말이야! 궁전은 무슨! 젠장맞을,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올가, 너 설마 욕한 거야?"
타마라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마. 네 말대로 궁전이라고 치지 뭐.
어차피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니까. 아무튼 우린 그곳에 함께 들어 갔어.”
"거기에 뭐가 있었는데?" 타마라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때 잠에서 깼어. 이거 좋은 꿈이지. 그렇지?
올가는 일리야가 죽고 40일째 되던 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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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연하지. 얘야, 다만 엄마한테 서운해하지는 말았으면 해.
끔찍한 시기였어. 끔찍한 정도가 아니었어.
모두 고아나 다름없을 때였으니까. 지금이야 살 만하지만 말이야……"
어머니 등 뒤에 서 있던 코스타는, 그날 하루 종일 힘들어도 잘 버티던 어머니가 갑자기 기운을 잃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영문을 알지 못했다.
올가는 어머니 방으로 돌아가서 망각의 심연으로부터 떠오른 사진들을 다시 책상 위에 펼쳐놨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말라비틀어진 껍데기로 변했으며, 수많은 결벽증적인 습관과 기계적으로 내뱉던 무수한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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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믿을 수가 없어, 믿기지가 않는다니까! 슈라, 여기 식탁 밑에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한 권 있었는데 말이야.
그걸 노리고 온 게 분명해. 어떤 개새끼가 밀고한 게 분명하다고.
그런데 그게 어디 간 거지? 여기에 두꺼운 종이 뭉치가 있었는데 말이야!
정말이야, 나 안 미쳤어!"
사람을 이유 없이 정신병원에 집어넣지는 않을 테니, 슈라는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마샤는 온종일 부츠 걱정, 한밤중에 있었던 가택수색 걱정으로 지쳤지만, 홀로 간직한 행복감에 젖어 벌써 단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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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워서 오디세이아를 읽었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이 귀를 밀랍으로 막은 덕분에 세이렌의 목소리를 향해 바닷속에 뛰어들지 않고 무사히 세이렌의 섬을 지나는 동안, 밧줄로 돛대에 묶인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랫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매듭을 풀려고 몸부림치는 대목을 읽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이 소리를 듣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바위가 많은 바닷가에는 섬에 도달한 여행가들의 말라비틀어진 살가죽과 수분기가 모두 사라진 뼈가 흩어져 있었다.
유혹하는 겹겹의 목소리에 걸려들어 피를 빨아 먹는 세이렌들에게 잡혀서 피를 빨아 먹힌 것이었
다.
“할머니, 할머니는 세이렌이 나오는 이 대목이 남성을 이긴 여성의 권력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안나 알렉산드로브나는 그 말을 듣고 양손으로 작은 접시를 쥔 채로 멈춰섰다.
"솔직히 나는 이 장면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단다.
하지만 네 말이 전적으로 옳아. 세이렌은 남자를 이겼을 뿐만 아니라 여자도 이겼지.
사실상 인간을 이긴 거야. 끔찍하리만치 저속하지만, 사랑과 허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구나."
"절대 피할 수 없는 걸까요?"
안나 알렉산드로브나는 웃기 시작했다.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잘 안 되더라고. 실은 그렇게 되기를 원 하지도 않았어.
다들 언젠가는 그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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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다녀오면 타마라는 겐나지와 함께 차를 마시곤 했다.
그 언젠가 일리야가 말한 대로 말이다.
겐나지는 지금도 여전히 쥐새끼였다.
하지만 타마라는 이에 대해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겐나지는 심근경색을 앓다가 뇌졸증을 겪었고 그 뒤에는 몸의 절반만 살아남아 몸의 건강한 부분이 아픈 부분을 끌고 다녔다.
갈랴가 불쌍했다.
하지만 이제 타마라는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저 자신의 허물을 보게 하시고, 제 형제들을 심판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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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보게! 우리가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알겠나?"
빅토르 율리예비치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의 왼쪽 이 두 개가 빠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일리야는 그에게 무엇을 묻고 싶었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가?
특별히 할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앉아서 같이 술을 마시고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랑이 그리웠을 뿐이다.
둘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그러자 기분이 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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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건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은 스탈린 하나밖에 없다는 거야.
하지만 그가 스탈린을 미워한 이유는 그의 혈통 때문도 아니고 공포 정치 때문도 아니고 자신의 신념이 모욕당했기 때문이야.
그의 의견에 따르면 배신이라는 것이 여러 단계에 결쳐서 일어났는데, 스탈린이 레닌을 배신했지만 레닌도 스탈린에게 배신당하기 전에 이미 마르크스의 사상을 왜곡했고, 마르크스도 헤겔 철학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는 거야.
삶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법칙에 입각하여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공통분모로 평준화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모든 것을 고쳐야 하며, 스탈린이 사회주의 이념에 반대하는 범죄자라는 것을 까발려야 한다는 거야.
그들은 거대한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데, '국가와 혁명’에 있는 인용구 하나 때문에 불 속에 뛰어들 수도 있는 사람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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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 아래쪽이 다 젖었어요! 봐요, 올가! 물이 어디까지 찼나 보세요!
소파도 베개도 이불도 전부 다 젖었어요! 다행이지 뭐예요! 불이 났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아니, 침수가 더 나아요! 올가, 같이 이거 전부 다 버려요! 젠장 맞을 이것들을 다 버려버리자고요! KGB 요원들이 안 가져간 거 전부 다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독일어로 된 것도요! 카를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아이는 선반으로 달려들어 젖은 책들과 하나도 젖지 않은 책들을 아래로던졌고, 그러자 책들은 철퍼덕거리면서 악취 나는 얕은 물 위로 떨어졌다.
그림 조각, 벽지 조각, 꽃병 등도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은회색 바다 위로 바람이 먹구름을 모으며, 구름과 바다 사이를 바다제비 한 마리가 검은 번개처럼 우아하게 비상하네!
날개로 파도를 건드리는가 하면, 화살처럼 먹구름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소리 지르고 먹구름은 우렁차게 울어대는 새소리를 들으며 희열을 느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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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침 속에 폭풍우를 향한 열망이 있으니, 먹구름은 이 외침 속에서 노여움과 열정의 불길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듣는다.
폭풍우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길!
올가, 아줌마는 아무것도 몰라! 난 신동이라고요! 나는 여기 있는 거 다 읽었어요!
플라톤의 국가도 읽었어요! 열네 살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었어요!
헤겔의 책은 안 읽었지만, 공산당선언은 읽었다고요!
마르크스라면 이제 치가 떨려요! 침수! 우리 집이 침수됐다고요!
드디어 우리 집이 물에 잠겼어요! 전부 다 버리고 수리를 할 거예요!
혼자서! 여기 있는 거 다 씻어내고 하얗게 만들 거예요!
전부 다 눈부시게 하얗게 만들 거예요!"
올가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흠뻑 젖은 책을 꺼내 쓰레기장에 가져가서 버렸다.
파란색 표지에 레닌이 그려진 책도, 빨간색 표지에 스탈린이 그려진 책도, 역사적 유물론도 변증법적 유물론도 정치 경제학도 전부.
“빈대랑 같이! 우리 집에도 빈대가 있긴 해요! 그래도 페테르고프보다는 적어요.... 그래도 많긴 하죠!" 마리나가 소리 질렀다.
순간 올가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버지와 아들’ 아니던가!
마리나의 부모는 결국 석방될 것이었다.
발렌틴은 2년 뒤, 지나는 1년 뒤에 풀려날 거고, 그런 후에 두 사람 모두 3년간 유배를 갈거고, 그들이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 때쯤 집은 깨끗하고 새하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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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석방되고 나서 파리로 갔어!
자기 사람은 배신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이야.
범법 행위를 저질러 형을 받았고 그다음에는 석방되었어.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옥에 있느냐고!
질 나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존경받을 가치가 없어!
네가 더 깊이 빠지지 못하도록 한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해.
어쩌면 지금쯤 네가 그렇게 감싸고 도는 파블로가 어딘가에 앉아서 우리가 그를 어떻게 환대했는지, 누가 뭐라고 말했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적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규칙대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규칙이라서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그는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규칙에 목숨을 건 거야.
불쌍한 녀석, 시골에서 채소나 카펫이나 팔면 좋을 사람인데 이런 곳에 앉혀놓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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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는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플라스틱 포크로 케이크 조각을 차례대로 먹어 없앴다.
일리야의 머리카락은 고인이 된 아버지와 똑같아서 어두운 갈색 곱슬머리였는데 벌써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얼굴에도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긴 했지만 조금 왜곡돼 있었다.
코스탸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듯이 과거 일이 기억났다.
여덟 살이었던 자신과 일리야와 엄마 셋이서 발다이 호수나 일멘 호수, 아니 어쩌면 플레세예보 호수 근처에 앉아서 모닥불 옆에서 일몰을 감상했는데, 계부는 길고 더러운 손가락으로 구운 감자에 묻은 재를 떨어내고 있었다.
호수 위로는 석양이 뿜어내는 분홍색과 빨간색, 노란색 빛이 일렁거리고 엄마는 윤기 나는 빨간 머리를 나풀대며 소리 내어 웃고 계부도 웃고 행복감에 젖은 코스탸도 웃으면서 그들을 영원히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불쌍한 일리야! 불쌍한 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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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기 옆에 앉은 사람을 쳐다보면서 사색이 되었다.
승무원이 다가왔다. 승무원은 노인의 한쪽 손을 잡고는 맥박을 찾았다.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옆자리 여자는 통로에 서서 큰 소리로 흐느꼈다.
"아아, 아아, 아아아......"
그때 일리야는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드윈 야코블레비치 빈베르크의 이민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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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천재적이고 무서운 책 1984를 이미 읽었는데도 그랬다.
1984는 모든 것을 낯설게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다니엘의 이야기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쓰인 것이며, 모든 것이 가까운 이들과 연관된 것이었다.
이 점이 '모스크바가 말한다’가 더 무서운 이유였다.
모든 사람이 특정한 하루 동안 아무나 죽여도 좋다는 권한을 칙령에 의해서 부여받는 것과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아무 때나 누구든 죽여도 좋다는 권한을 국가로부터 부여받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한 번에 죽이는 게 아니라 정직한 사람을 밀고자로 몰고 미치게 해서 한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내용을 담은 ‘속죄’가 아무래도 가장 무서운 책인 것 같았다.
가장 끔찍한 것은 누구에게도 무엇도 증명할 수 없으며 변명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의견도 알아듣기 쉽게 잘 말하고 잘생긴 빅토르 볼스키는 자신이 비방당했으며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것을 믿지 않는 친구들 때문에 미쳐버린다.
그는 아마 정신병원 병실에서 푸시킨의 시를 떠올렸으리라.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그보다는 보따리와 지팡이가 낫습니다.
아니, 차라리 고생과 허기가 낫습니다.
(. . .)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무서운 일이라
이로 인해 갇히라니….’
(푸시킨의 시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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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정은 근본적인 본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철학자들(전설적인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를 제외한다면 피아마 가이덴코가 등장하기 전까지 철학자 중 여성은 없었다)은 모두 인간의 가치 중 우정을 가장 우위에 있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현대와는 맞지 않는 명언을 많이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도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정의를 내렸다.
그는 '우정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므로, 우정의 성격과 목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자연법칙이나, 실증적 존재 너머까지 아우르는 초월적 선에 기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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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는 수년간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 하는 이토록 훌륭한 이념이 무슨 이유로 이토록 비뚤어진 상태로 실현되는지 알고 싶었다.
결국 드러난 것은 엄청난 거짓과 냉소,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함, 그리고 사람들이 조종당해 인간의 본성을 잃고 어두운 구름처럼 나라 전체를 덮고 있는 공포에 사로잡혀 존엄성을 상실하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이 구름은 스탈린주의인 셈이었지만 미하는 스탈린주의라는 것은 전 세계를 덮는, 시대를 초월한
정치적 폭정이라는 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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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도소로 이송되기 전날 미하는 아내와 만났다.
여자아이를 임신하면 못생겨진다는 항간에 떠도는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더 못생겨졌다.
물론 미하가 보기에 그녀는 천사처럼 아름다웠지만 그는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습관이자 더 강해진 타고난 죄책감에 현재의 상황이 더해져 그럴 수 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한 말이라고는 고작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일에 있어서 죄를 짓고 있다"는 도스토옙스키식의 어리석은 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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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알렉산드로브나는 줄 서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는 반평생을 빵이나 우 유, 감자, 비누, 배급표, 편지를 받으려고 줄을 섰고, 줄을 서 있는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녀는 줄을 서 있는 동안 속으로 시를 외웠다.
그녀는 소련 정부 때문에 줄을 설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기억력이 좋아졌노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그녀는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사람들이 자신을 보려고 이렇게 긴 줄을 설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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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쉽고 확실한 출구란 말인가?
왜 전에는 미처 이런 생각을 못 했던가?
서른네 살이 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미하는 이해 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서른세 살에 타인의 죄를 대신해서 자기 목숨을 자발적으로 내어주면서 그가 진정한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는 걸 의미한다.
한편 이기주의는 청소년기의 특징이다. 아니, 아니, 더는 청소년으로 남아 있고 싶지 않아 .....
그는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그런 다음 깨끗한 셔츠를 입었다.
그러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틀은 낡았고 유리는 더러웠지만 창턱은 깨끗했다.
그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는데, 비가 와서 어스름이 깔려 있고 희미한 불빛이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았지만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미하는 지저분한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발을 벗고 창문턱으로 뛰어 올라서는 겨우 중심을 잡고 섰다.
그러고는 "이마고, 이마고!”(주) 하고 중얼거린 뒤 가볍게 아래로 떨어졌다.
(주 : 이마고는 '성충'이라는 뜻이다.)
날개는? 딱딱한 껍질의 틈 사이로 비행에 쓰일 두 팔의 축축한 끝이 뻗어 나와 있다.
날개는 천천히 헤엄치듯 빠져나와 곧게 펴지고 공기 중에서 살짝 건조되며 첫 번째 날갯짓을 할 준비를 한다.
잠자리의 날개처럼 복잡한 망으로 이뤄진 날개이거나, 나비의 날개처럼 정교한 잎맥 무늬가 있는 얇고 단단 한 막이거나, 접을 수 없는 날개이거나, 혹은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접혀 들어가는 새로운 날개일지도 모른다….....
날개 달린 생명체가 키틴으로 이뤄진 껍질, 즉 텅 빈 허물을 땅에 남기며 날아가고, 새로운 공기는 그의 새로운 폐를 가득 채우며, 새로운 음악이 완전해진 청각기관에 소리를 전한다.
책상 위에는 안경과 그의 마지막 시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언젠가 밝은 태양 아래 미래의 내 신조 비추리니.
나 역시 사람이라네, 나는 너희들을 배신하지 않았다네 단연코.
친구들아, 나를 위해 기도해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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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오래전에 도시에 포함된 시골이었고 거리 이름은 포드보이스키인지 보이콥스카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거리의 한쪽으로는 커다란 구덩이에서 5층짜리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지만 아직 2층도 채 올라가지 않았다.
홀수동 쪽에서 굴착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집들이 너무 낡아서 굴착기의 삽으로 한 번만 내리쳐도 쉽게 부서졌다.
19번 건물만 아직 멀쩡했다.
17번 건물을 굴착기 운전자와 그의 파트너가 부수고 있었다.
건축물 폐기물을 실은 트럭은 막 떠나고 없었다.
봉투에 명시된 발신자 주소인 7번 건물은 이미 철거되고 없었다.
코스타는 집 맞은편에 있는, 벤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았다.
건물 경관을 망치지 않고 공사에 방해되지 않도록 나무를 잘라내면서 생긴 그루터기였다.
'한발 늦었군. 굴착기 기사가 어제나 그저께 땅을 팠을 거고 그 과정에서 딸려 올라온 증조할아버지의 뼈는 폐기물 트럭 짐칸에 실려 지금쯤 도시의 쓰레기장에나 있을 거야.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이제는 영원히 찾을 수 없겠지.
나는 절대 이번 일에 대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왜 진즉에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신을 화장해서 유해를 일리야의 무덤에 뿌려달라고 했지만 이 역시 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일리야가 어디에 묻혔는지, 묘가 뮌헨의 어디에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으니까.
그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일리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었으리라…….
이제 증조 할아버지의 뼈는 쓰레기장에 있다….러시아 역사가 다 무슨 소용이랑.
그래, 우리는 이렇게밖에 안 되는 사람들인걸…’
뒤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그는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익숙지 않은 슬픔으로 마음이 지쳐 있던 그는 개 짖는 소리가 오히려 반가워서 뒤를 돌아봤다.
여린 풀 위에 꽤 자라 성견에 가까운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 마리는 굉장히 큰 뼈를 물고 있었고 두 번째 개는 땅속에서 빼낸 뼈로 다른 개의 어깨를 찌르고 있었다.
뼈에 붙은 살은 이미 다 먹고 없어서 녀석들에게 그것은 먹잇감이 아니라 놀잇감이었다.
그는 그루터기에 앉아서 수치스럽고 화가 나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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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는 모스크바에서 지내는 5개월 동안 북부 지역 사람 특유의 밝은 눈동자와 밀짚 같은 금발 머리를 가진 '알라'라는 예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 데 그들은 이어질 운명이 아니었다.
알라가 그를 밀고하면서 그들은 결혼하지 못했고 그녀는 이 일을 평생 후회했다.
물론 그녀는 기숙사에서 내쫓고 공개적으로 창녀라는 소문을 내고 인생을 망쳐버리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밀고한 것이었다.
소련 정부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런 유의 협박은 무시하기 힘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추방은 나보코프의 전망보다는 훨씬 나은 처벌이 되었다.
'나를 골짜기로, 사망의 골짜기로 내모는구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시 '총살'의 일부.)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을 떠난 지 사흘이 되었을 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러시아로부터 떠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동안 페타는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러시아에 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들여보내지 않았고, 러시아를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은 내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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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냐는 평상시처럼 사흘 동안 않는다.
데비는 그동안 올가의 집에 머무르는 데 첫날은 통곡을 하고, 둘째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올가와 의미 없는 수다를 떤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일리야가 그녀를 셰레메티예보 공항까지 바래다 준다.
고열에 시달리는 사냐는 할머니가 쓰던 소파에 누워서 행복감에 젖어 있다.
'결혼'이라는 제목의 익살극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미국 대사관에 신청서를 내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8개월 후에 알렉산드르 스테클로프는 뉴욕에 도착했다.
페탸 장드가 케네디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데비는 이 무렵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사냐와는 1년 반 후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데비의 진짜 신랑이 생겼을 때 만났는데, 그 역시 러시아인이 었고 이번에는 진짜 혼인신고를 위해서 사냐와의 이혼이 필요했다.
데비는 약속대로라면 위장 결혼의 대가로 5천 달러를 받아야 했지만 돈을 받지 않았다.
모피 코트도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모피 코트는 받게 되었는데 피에르가 팰로앨토에 있는 모피 코트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그녀가 두 번째로 결혼할 때 선물로 주었다.
그 무렵 데비는 뉴욕으로 이사했고, 그곳은 이 따금 모피 코트를 입고 다녀도 될 정도로 겨울에 기온이 떨어질 때가 있었다.
사냐 또한 뉴욕에 살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곳의 음악학교에서 음악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엔데 구트(Ende g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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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천재란 시나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에 그치지 않고 강이나 호수에 떠다니는 쇄빙선 같아서 시대를 앞서가서 벽을 부수고 얼음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서 그의 뒤에 오는 온갖 크고 작은 배와 보트가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야.
천재 뒤에는 가장 영리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따르고, 그들 뒤에는 군중이 따라와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발견은 상식이 돼.
우리 같은 - 그러니까 너 말고 나 같은 사람 말이야
평범한 사람들은 천재들의 노력과 시간의 흐름 덕분에 점점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지.
그들은 시간을 앞서가는 사람들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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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움직이지 않고 여러 개의 층으로 나뉘지…
겹겹으로 이뤄진 양파처럼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 종국에 가면… 그래서 인용으로 가는 경향이 생기는 거지.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 같아.
왜냐하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것이 존재하고, 그런 세계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거든. 베토벤의 세계, 단테의 세계, 앨프레드 대왕의 세계, 스탈린이 속한 세계 등….... 비밀은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만해. 멈추라고, 인용 하나만 더 할게, 이거 기억나?"
리자가 그의 말을 끊고는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이 비밀은 비-비-비-비-비-비-비-비
나는 더 정확히 말할 자격이 없다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시 '영광'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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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리자의 옷깃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택시가 멈춰 섰다.
그리고 거기에서 술에 취한 덩치 큰 사람이 내렸다.
사냐가 택시 기사에게 한 손을 흔들고는 리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키스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그의 관자 놀이부터 턱까지 쓰다듬었다.
멀리서 보면 연인들이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널 먼저 바래다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 난 근처에 사는걸. 걸어서 가면 돼."
“안녕”
“안녕."
1996년 1월 28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날 밤에 시인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