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여심 … 루이뷔통·샤넬 아성에 랑방·지방시 등 거센 도전

[조관호(流河)]

흔들리는 여심 … 루이뷔통·샤넬 아성에 랑방·지방시 등 거센 도전

E2면| 기사입력 2010-11-26 00:14 | 최종수정 2010-11-26 02:10

 

[중앙일보 임미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에비뉴엘은 최근 외벽 광고를 교체했다. 샤넬·롤렉스 같은 대표 명품 브랜드 대신 영국 브랜드 멀버리를 내세웠다. 2006년 한국 시장에 처음 선보인 브랜드가 명품관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부상한 것이다. 이 브랜드는 올해 초 세련된 디자인의 '알렉사백'을 출시하며 매출이 급증했다. 에비뉴엘에서 1~10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0% 늘었다. 명품 시장이 춘추 전국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소위 5대 명품(루이뷔통·구찌·샤넬·에르메스·프라다)이 쥐락펴락하던 시장에서 다른 명품 브랜드들이 약진하며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최근 2, 3년 사이 잡화 비중을 확 늘린 랑방·지방시·입생로랑·발렌시아가 등이 그 중심에 있다. 이들 브랜드가 잘나가는 이유를 살펴 봤다.

지방시·랑방·발렌시아가 등 최근 인기를 모으는 명품 브랜드들은 공통점이 있다. 1980년대에 잘나가던 명품 브랜드였고, 한국에 라이선스로 들어와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는 곤경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파트너와 손잡고 유럽 제품을 직수입하면서 부활하고 있다. 최근 3, 4년 사이 제품의 중심 축을 의류에서 가방으로 옮긴 것도 비슷하다. 지방시와 발렌시아가 등은 전체 매출에서 20% 안팎이던 가방 비중을 최근 30~40%로 늘렸다.

　이들 브랜드의 매출 성장세는 뚜렷하다. 올 들어 10월까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브랜드별로 적게는 30%, 많게는 120%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백화점 관계자는 “루이뷔통·샤넬·에르메스 등 전통 명품 브랜드의 올해 매출이 10% 안팎 증가하는 데 그친 것과 대비된다”며 “기존 명품 브랜드는 포화 상태에 이른 반면 다른 명품 브랜드는 시장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유럽 제품을 직수입하고, 가방에 주력하는 이들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백화점 명품팀 이희승 과장은 “의류는 매일 입을 수 없는 데다 1, 2년만 지나도 유행이 바뀌기 때문에 웬만큼 여유 있는 소비자가 아니면 구입을 망설이게 된다”며 “최근 인기를 모으는 명품 브랜드들은 의류보다 가방 중심으로 제품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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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소비자들이 다양한 브랜드에 눈뜨기 시작한 것도 이들 브랜드가 인기를 모으는 이유다. 이른바 '브랜드 리터러시(Brand Literacy, 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이해)'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는 “기존엔 샤넬과 루이뷔통 같은 빅 브랜드만 명품이라고 생각하던 소비자들이 점점 다른 브랜드의 특성과 장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브랜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명품 브랜드에 식상함을 느끼는 소비자도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명품 핸드백이 많이 보급돼 소비자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지방시 핸드백을 구매한 직장인 박모(30)씨는 “샤넬·루이뷔통은 워낙 많이 들고 다녀 더 이상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며 “남들에게 덜 알려진 브랜드를 찾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명품 브랜드에 비해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점도 인기의 비결이다. 샤넬·구찌 등의 가방 가격대가 보통 300만~400만원 선인 것과 비교해 다른 명품 브랜드의 주력 가방제품은 200만원대다. 신세계백화점 이정욱 과장은 “이들 브랜드의 주 고객층인 20, 30대 젊은 여성들은 가격대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내 연예인들이 5대 명품 외에 다른 브랜드 제품을 든 모습이 잇따라 포착된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특히 올봄 고소영이 맨 지방시의 판도라백, 공효진이 드라마에서 선보인 끌로에의 파라티백은 매장에서 품절 사태를 빚었다. 현대백화점 류제철 바이어는 “명품 가방 시장은 셀레브리티(유명인) 효과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라며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잡지에 나오면 해당 상품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는다”고 설명했다.

　명품 춘추전국 시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1, 2년 사이 발망·발렉스트라·니나리찌 등의 브랜드가 새로운 파트너와 손잡으면서 고객들의 선택의 폭도 더욱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국내에 처음 소개됐던 미국 명품 브랜드 토리버치는 올해 현대백화점에만 5개의 매장을 열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주요 백화점들도 이들 브랜드 매장을 확대·리뉴얼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본점의 명품 가방 편집매장 '핸드백 컬렉션'을 세 배가량 늘려 재개장했다. 현대백화점은 조만간 지방시 매장을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류제철 바이어는 “흔치 않은 브랜드, 독특한 디자인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는 것이 뚜렷하다”며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명품(Luxury Goods)=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라는 뜻. 보통 장인이 정성 들여 만든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말한다. 백화점들은 주로 유럽산 수입 고가 가방과 의류 브랜드를 명품으로 구분해 매출을 따로 집계한다. 샤넬·에르메스 등은 명품에 공통으로 포함되지만, 일부 브랜드는 백화점에 따라 포함 여부가 제각각이다. 그래프의 5대 백화점 수입명품 매출은 각 백화점의 명품 분류기준에 따라 취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