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책읽기 / 허창옥
버킷리스트 세 번째 항목이 밤새워 책읽기다. 책읽기는 늘 해오던 일이니 새삼 리스트 운운할 일은 아니다. 구태여 그리 말하는 건 뭔가 좀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밤새워’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를 책읽기에 빠져서 보냈다. 세계명작들, 위대한 작가들, 그 무궁무진함과 숭고함을 가늠하기엔 어림도 없는 나이였지만 줄거리에 취하고 주인공에 매료되었다. 앙드레지드,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서머셋 모옴, 브론테 자매, 그 이름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청춘은 충분히 빛났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이 탐독과 남독이라는 독서행태를 낳았다는 생각을 내내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 다시 읽기를 하자. 생각해보면 두 번 혹은 세 번 다시 읽은 작품도 꽤 많다. 그리워서 꺼내 읽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느라 찾아 읽고, 문체와 문장을 배우고 싶어서 맘 다잡고 다시 읽었었다. 그러나 늘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못 알아듣고 못 본 채 놓쳐버린 게 많았으리란 생각도 했다.
찬찬히,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읽는 것이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고 있다. 일과 일 사이에 읽기는 이어졌지만 문장은 자주 끊어져서 해독을 어렵게 했고, 때로는 흥미를 잃게 했다. 파우스트가 그랬고 율리시즈, 팡세가 그랬다. 그런 점들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오래 읽기와 깊이 읽기가 부족했다. 오래 읽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실했다. 달빛 젖은 지창(紙窓)이 있는 작은 방에서 밤을 하얗게 밝히며 글줄을 읽어 내리고 싶지만 그건 정말 물색없는 소리다. 휴양림을 생각했다. 숲,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가슴이 뛰었다. 하룻밤으론 안 되겠다. 3박 4일 휴가! 못 낼 게 뭐냐고? 정말이지 내게는 몹시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가 되었든 오로지 책만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헤밍웨이, 카잔차키스, 카프카, 까뮈, 스탕달, 찰스 램, 박완서, 작가들이 순서도 없이 마구 떠올랐다. 안나카레리나, 25시, 닥터지바고, 양철북, 제인 에어, 태백산맥, 토지, 제목들이 넘치도록 생각났다.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서가를 살폈다. ‘문예사조 그리고 세계의 작가들’(김병걸 지음)이 눈에 들어왔다. 주~욱 훑어보았다. ‘단테에서 밀란 쿤테라까지’, 순간 이러다간 또 겉핥기가 되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의 책 100권’, 이 얼마나 매혹적인 목록을 만들고 보니 거의가 서재에 있는 책들이었다. 이 방에 있는 책들은 내가 특별히 좋아해서 즐겨 읽은 후에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말이 불경스럽다)이니 당연한 게다. 나를 키우고 살찌운 책들, 나는 또 한 번 크고 높고 깊은 인격들을 만나게 될 터였다.
방해받지 않고 오래 읽기가 소원이었다. 여름휴가를 쓰기로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장미의 이름, 양철북, 폭풍의 언덕들을 뽑아놓고(여름에 읽기 좋은 책들이다) 제발 방해하지 날라고 가족들에게 거듭 말했다. 폭풍의 언덕을 열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그 징그럽도록 슬픈 애증을 읽으며 더위를 싹 잊었다.
책을 들고 단 하루를 보내면서도 일상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먹어야 했고, 자잘한 가사를 감당해야 했고, 무엇보다 잠도 자야 했다. 밤새워 책읽기는 이미 내 몸 밖의 일이었던 게다. 이튿날은 눈이 많이 피로했지만 그런대로 즐거웠다. 사흘째 낮에 나는 양철북을 덮었다. 넘치는 익살과 기막힌 풍자, 독특한 문체가 주는 재미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두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앉아서 읽고, 누워서 읽고, 엎드려서 읽고, 그러니까 밤낮 뒹굴고 싶었는데……….
마음이 하고자 하는 일을 몸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새소리 물소리 들리는 숲속에서 오직 책만 읽으며 보낼 행운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여름의 밤새워 책읽기는 그렇듯 시작해 본 것에 만족해야했다.
깊이 읽기가 남았다. 몇 줄이면 어떤가. 마음으로 읽으면 된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부터 일 년 동안 태백산맥, 토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작품들을 읽었다. 다시 읽은 책들을 스무 살 때(그때는 수첩에 깨알같이 적었었다)처럼 대학노트에 작품명, 작가, 주인공, 개요를 기록하였다. 읽기는 계속될 것이고 대체 뭣에 쓸 건지 모를 필기도 그 궤적을 따라 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 영혼은 환호하고 헛헛한 내면은 배부르려니, 책이 내게 지성과 감성의 성찬을 차려주는 까닭이다.
내 눈이 아직은 밝아서 고맙고, 모르긴 하지만 시간도 꽤 남아있는 것 같아서 푸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