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5060 카페에 앉아
카페에 앉았다. 그대가 아름다운 5060 카페에 가끔 놀러 오면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할까 말까 하면서 망설이다가 돌아가는 여인은 뒷모습마저 예쁘다. 다혈질의 사내라면 당장 그 여인이 앉은 자리에 다가가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고 싶겠지만, 내향성의 성격이라 바라만 보았다. 부부가 되려면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야 하겠으나 친구로 함께하고 싶다면 체질과 관계없이 눈높이가 같으면 좋은 친구가 되겠지요.
카페 안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라 성격도 체격도 아주 다양하다. 벼락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다가와도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천사처럼 반겨주는 여인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들이 남기 댓글은 허리 굽혀 인사하거나 악수하면서 손을 흔드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모나고 각이 선 사내라도 입안에서 솜사탕이 녹듯이 사르르 흘러내릴 정도로 부드럽게 답글 남겨주니 참으로 아름다운 꽃 중의 꽃으로 보인다.
엄살궂은 사내든 괴팍한 여인이든 흔적은 아름답게 보인다. 보이지 않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솜처럼 부드럽고 사탕처럼 달콤하다. 취미가 다 달라 자주 들락거리는 방에 앉으면 온종일 그들의 수다에 빠져든다. 음악 방에서 신청하는 곡을 들으면서 그들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어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주문했는지 의아하다. 나들이할 땐 항시 다니던 방에만 찾아가는 행동이 습관처럼 각인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방은 문학 방이다. 산문을 공부하려고 문학 방에 둘러앉아 오가는 문인들의 흔적을 천천히 들려다 본다. 문학 방에도 장르별로 다르므로 각자 취미에 또는 기호에 맞는 방에서 시간을 녹인다. 원로 하신 문우들이 창작한 흔적을 놓고 가면 우선 보따리의 이름을 먼저 본다. 이름이 이상하거나 색다르면 찾아가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고 은이라는 시인은 한 줄로 쓴 시지만, 산을 좋아하는 내 머리에 흔적을 남겼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흔히 지나치더라도 마음이 바쁘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사건들이 내 곁에서도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국에서도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가 외국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문학 방에 올렸는데 또 다른 친구가 같은 길을 걸었다고 흔적을 보고 알았다며 오랜만에 음성으로 주고받았다. 이처럼 내가 문학 방에 앉아 이야기보따리는 풀지 않아도 댓글로 흔적 남겨 고마움을 전했다.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군가가 반갑다고 이름에 클릭하여 인사를 나누고 싶어 불렀는데 내가 보는 컴퓨터에서 무엇이 깔리지 않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아가는 그 사람은 누군지는 몰라도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누가 대화창 띄웠는지? 알 수 있었더라면 당장 메일이라도 날렸을 것인데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하였다. 내가 그런 경우가 있었을 때는 상대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 엄청스럽게 섭섭했는데 내가 그 꼴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운명이라 할까 아니면 내 삶의 흐름이라고 할까 의아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철도에 깔린 레일 위로 달려가는 전동차처럼 세월에 끌려가지만, 앞날을 모르고 살아간다. 다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더라도 젊은 사람이 발목을 삐꺽하여 힘줄이 늘어나는 불상사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아주 다양하다.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수레 끌면서 폐지를 주어 모으는 고령자도 있다. 이런 풍경은 도시와 시골의 차이다.
내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라면서 지게를 너무나 많이 사용했다. 무리한 노동에 키 크지 않았다고 부모에게 원망했지만, 사실은 유전적인 인자가 외탁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처럼 내가 이 카페에 왔어도 외탁했는지 전문가답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아가려는 희미한 생각은 자신감이 사라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게 좋지 못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이런저런 핑계로 살아가는 불청객이 되었다.
삶이란 참으로 희귀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이렇다. 동갑내기 친구가 공장장으로 있다가 그만두고 집에서 여유롭게 생활했다. 군에서 장교로 예편하여 중대장을 오래 했으며 취미생활도 다양하여 항시 즐겁게 살아가는 친구였다. 마을에서는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자자했고 취미생활 하는 곳에서는 모두가 부러워했다. 중대장의 연금은 일반 기업 사장보다 많다. 세 식구가 살다가 자녀는 떠나고 부부가 즐겁게 살다가 오전에 등산하고 집으로 왔다. 오찬을 마치고 친구 부인이 설거지하는 순간 17층 베란다에서 날았다. 자살이라기보다는 숙명이라고 느껴진다.
나이가 일흔에 가까우면 죽음의 문이 열렸는지 또 다른 친구도 세상을 떠났다. 이 친구와 함께 등산하고 아파트 입구에서 목욕간다며 헤어졌다. 이튿날 친구의 부인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무슨 일인지 깜짝 놀라 들여다보았다. 성모병원 영안실이라는 문자에 놀라 호주머니 전화기로 친구 부인을 불렀다. 어젯밤에 목욕탕 온탕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했다고 한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편안한 생활로 이어져야 하는데 할 말을 잊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다양하듯이 죽음을 찾아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생자필멸이라는 말처럼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지요. 그러하듯 카페에서 만난 사람은 회자정리란 말처럼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믿어집니다. 만나면 즐거워하고 반갑게 맞아주면서 좋은 이미지를 남기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으리라 믿어집니다. 나이도 묻지 말고 생김새도 보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대화하면서 마음의 친구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카페에 들어오면 대기실에는 수많은 객이 모였다. 각자의 취미에 맞게 가는 방에 들어가 시간을 녹인다. 재미나는 화젯거리가 있으면 한순간이라고 하지만, 별로 보는 이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루함을 느껴 다른 카페로 떠난다. 우리 말엔 이런 말이 있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반겨주라는 불가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라 믿어진다. 이곳 카페에서 간다고 영원히 가겠는지 오늘은 가지만, 내일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이곳에도 친구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카페로 오가는 나들이객들은 생활도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기다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서로 행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라고 다를 바 하나도 없다. 취미가 문학이라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오면 그날의 일진이 좋다고 생각하고 알밤을 줍는 느낌으로 일어나간다. 다양한 카페에 내 모습을 보았을지 몰라도 문학인들이 들락거리는 방은 빠지지 않고 흔적을 남겨놓는다. 카페에 들러서 손 내미는 쪽지가 있으면 아주 기분 좋은 날이라 믿어진다. 모두 카페 대기실에서 별명을 보았으나 모른 채 들락거리는 지명이가 흔적 남기고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