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에서 보호하는 천사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수호천사를 정하여 주시어 그를 지키며 돕게 하신다. 다음은 수호천사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이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 91[90],11).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창세 48,16).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본기도
하느님,
놀라우신 섭리로 천사들을 보내시어 저희를 지켜 주시니
저희가 사는 동안 천사들의 보호를 받다가
마침내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제1독서
<나의 천사가 앞장설 것이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23,20-2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2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
23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
복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5.10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수호천사가 있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보통 수호천사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추석에 박스를 나르다 눈 주위를 조금 다쳤습니다. 수호천사가 있었다면 다치지 않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실 수호천사가 있어서 보호받는 것보다 보호받지 못한다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수호천사를 믿을 수 있을까요?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믿거나 안 믿거나 우리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게 아닙니다. 만약 배우자를 믿는다면 배우자가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증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냥 믿는 게 속 편하니까 믿는 것입니다. 만약 의심한다면 배우자가 정말 자신을 싫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피우고 있더라도 믿어버리면 언젠가는 그 믿음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도 믿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저도 넘어져 박스에 눈 주위가 긁혀서 피가 날 때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는 집으로 가야 하는데 기분 나쁜 상태로 가면 무엇이 좋을까요? 사람들은 분명 눈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넘어져서 다친 것은 다행이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다행이라고 믿는 게 속 편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피를 닦으면서 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음 날 한가위 미사를 할 때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붓기도 했지만, 그래도 미사를 할 수 있을 정도만 다쳐서 좋았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것보다 믿는 게 더 좋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기 위해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은 좋은 것을 바라지 않는 악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수호천사를 믿으면 무엇이 좋을까요? 먼저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대전교구 신리 성지에 가면 엄청난 크기의 순교 성화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블뤼 기념관 지하 2층에 ‘순교미술관’은 순교자들을 주제로 한 작품만을 전시한 특별한 곳입니다. 이종상 화백(요셉, 1938~ )이 3년에 걸쳐서 그린 13점의 대형 순교기록화와 5점의 성인화가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종상 화백은 5천 원권 지폐에 들어간 율곡 이이 초상화나 5만 원권 신사임당을 그린 분입니다. 그러니까 손바닥만 한 그림을 그려도 수억 원에 달하는 그림을 그리는 분입니다. 그분이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3년 동안 그린 그림의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지에서 보는 그림은 사실 원본이 아닙니다. 원본은 워낙 가치가 높기에 금고에 따로 보관한다고 합니다. 그 금고는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특수 제작된 것이고 유지비도 적지 않게 든다고 합니다. 정말 귀중한 것을 맡길 때 자기 작품이 망가지지 않게 그러한 정도의 금고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금고 안에 있는 원본의 그림이 비록 혼자 방치되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됩니다. 나에게 수호천사가 붙어있다는 말은 주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보호하시기에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고 여기면 절대 포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이것을 믿게 해야 합니다.
수호천사를 믿으면 나만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될까요? 나에게도 수호천사를 붙여주셔서 나를 가치 있는 존재로 믿을 수 있게 하셨다면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수호천사를 믿어 자존감을 가졌다면 다른 피조물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전에 어떤 조그만 녀석이 돈을 달라고 까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놈을 우습게 보고 까불지 말라고 꼴 밤을 한 방 먹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자기가 아는 형들을 몇 명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저는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어린아이를 보아도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수호천사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수호천사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수호천사에게 이것저것 청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 쉽게 믿어집니다. 저도 주일학교 교사 할 때 한 아이를 야단치고는 겁이 나서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 믿으려면 먼저 왜 믿는 게 좋을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고 그다음에는 믿고 대화를 나누며 기도하는 게 좋습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몇 년 전에 기분 좋지 않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저를 화나게 했고 또 너무 억울했습니다. 글쎄 예전에 있었던 본당에서 제가 성당 돈을 많이 챙겼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문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억울했습니다. 당시 본당에서는 성당 옆 건물을 매입하느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외부 강사료, 방송 출연료, 그리고 책 인세까지 모두 성당 수입으로 넣었었습니다. 혹시라도 신자들 부담을 줄 것 같아서 축일 행사도 단 한 번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당 돈을 제 것인 양 챙기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고 있다고 하니 억울한 것을 넘어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 상황을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믿어주었던 많은 신자 덕분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몇 명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면서, 대부분의 신자는 저를 믿는다면서 힘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른 이에게 믿음과 희망을 전하는 사제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즉, 저도 다른 이의 수호천사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을 떠올린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억울하다고 화를 내던 저였지만, 주님의 억울함과 비교하면 저의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또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인간에게 억울한 판단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하십니다. 아무 죄 없는 분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면서 난리 치는 인간의 죄악에 얼마나 억울하셨을까요?
죄 많은 저의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비난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낮아지지 못하고 그만큼 나를 드러내려는 욕심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회개해서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어린이는 단순합니다. 이것저것 재면서 자기 이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그런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어른을 따릅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겸손한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호천사가 필요합니다. 어렵고 힘든 이 세상 안에서 나를 믿어주고 희망을 전해 줄 수호천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과 희망이 가득할 수 있도록 나 역시 다른 이의 수호천사로 힘껏 일해야 합니다.
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에서 보호하는 천사라고 하지요. 따라서 악을 피하고 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내 이웃의 소중한 수호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의미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자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류시화).
사진설명: 수호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