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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3번 국도및, 37번 국도를 이용,
전곡도착, 연천 방향으로 약 6Km 정도
직진하여, 통현삼거리에서 우회전, 재인폭포
주차장까지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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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도봉산 역에서 2번 출구로 나가, 낮은 계단을
올라가 횡단보도를 건너서, 전곡가는 39번
버스가 있다.(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
39번 버스의 노선도로 보아, 소요산역에서
내려, 39번을 타는 것이 더 빠를것 같다.
수유리역에서 39번(시외)버스로 전곡까지
약 15~20분정도 소요.
전곡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재인폭포가 있는
고문리(신답리)로 들어가려면 전곡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큰길로
나와 왼쪽으로 200미터 정도 내려가면 전곡
시내버스 터미널이 있다.
전곡에서 고문리 들어가는 시내버스는 하루에
8대 정도, 그나마 오후 13시 20분에 이후에는
고문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16시 20분에 있다.
(택시는 12,000원 정도이며, 약 1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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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입장료: 1,000원
재인폭포까지 도보로 약 5분)
전곡 버스터미널에서 재인폭포로 들어갈 때와
재인폭포에서 나올 때, 56번 버스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하루 8회 정도만 운행하고,
배차 간격이 가장 큰 것은 3시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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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인폭포의 유래
괴암절벽의 폭포로서 높이가 18m로 깊은 늪을
이루며 재인의 한과 부인의 절개에 관한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전설을 소개하며, 오랜 옛날
이 고을에 재인이라는 광대가 살고 있었는데
그 부인은 절세의 미인으로 소문이 온 고을에
자자하였다.
어느 해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한 원님은 재인의
부인을 한 번 본 후 그 미모에 반하여 남모르게
부인을 흠모하게 되었다.
어느 날 원님은 관아의 관사들과 함께 지금의
재인폭포에서 큰 잔치를 열었고 재인에게 줄을
타는 재주를 보이게 하였다. 까마득한 폭포 위에
매어진 줄을 한발 한발 타던 재인이 폭포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밧줄이 끊어져
재인은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깊은 계곡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재인을 죽임으로써 그의 부인을 차지하려고
꾸몄던 원님의 계획에 의거 일부러 밧줄을
끊게 한 것이었다.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장사를 지낸 후
조용히 집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부인에게
며칠 후 동헌으로 들어오라는 원님의 전갈이 왔다.
동헌으로 들어간 날 밤 원님의 방에서 "으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하인들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원님은 재인의 부인에게
코를 물려 코가 떨어져 나간 채 피가 낭자하여
방에 나뒹굴고 부인은 혀를 깨물고 자결하여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사람들은 재인의 한이 서린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마을을
코문 이가 살았다 하여 코문리로 부르게 되었고
후일 어음의 변화로 고문리라 부르게 되었다.
연천군 홈페이지 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가마골 입구에 있는 18.5m 높이의 폭포,
현재 이 폭포는 고을 원의 탐욕으로 인한
재인의 죽음과 그 아내의 강한 정절이 얽힌
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문헌에는
전설과는 상반된 기록으로도 전해 내려온다.
옛날 어느 원님이 이 마을에 사는 재인(才人)
아내의 미색을 탐하여 이 폭포 절벽에서
재인으로 하여금 광대줄을 타게한 뒤 줄을
끊어 죽게 하고 재인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였으나, 절개 굳은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짓으로 수청을 들며
원님의 코를 물어 뜯고 자결하였는데,
그 뒤부터 이 마을을 재인의 아내가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하여 '코문리'라 불리게 되었으나,
차츰 어휘가 변하여 '고문리(古文里)'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반면, 옛날에 한 재인(才人)이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 사람과 이 폭포 아래에서 즐겁게 놀게
되었으나, 자기 재주를 믿고 흑심을 품은
재인은 그 자리에서 장담하며 약속하기를,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 라고 호언장담 하자, 마을
사람은 재인의 재주를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게 되었다.
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가듯 하자 이에 다급해진
마을 사람은, 재인이 줄을 반쯤 지났을 때 줄을
끊었고 재인은 수십 길 아래 구렁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
이러한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로
부르게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상반되는
전설을 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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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曆: 2008년 06월 02일. 월요일. 陰曆: 戊子年 四月 二十九日 癸酉日>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con.sie.net%2Fimage%2Fhomepage%2Fline%2Fline004.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