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054 세계과학의 심판관: 주간 네이처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은 비록 2차대전 이후 미국에게 밀려
지금은 유럽의 2등 국가로 전락했으나, 순수과학에 관해서는 아직도
세계 최정상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영국에 옥스포드와 캐임브리지로
대표되는 장구한 학문전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나, 또하나 125년의
장엄한 역사를 가진 종합과학 전문지 (주간 네이처 NATURE WEEKLY)
같은 세계적 권위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이처)는 미국의 (사이언스 SCIENCE)와 함께 저널리즘계의
양대산맥으로서 전세계의 과학 연구방향을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네이처)에 연구논문이나 소개기사가 실리지 않고는
노벨상을 탈 수 없다"는 속설이 생겨날 정도로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 받고 있어, 과학 분야에 몸을 담은 연구자라면 누구나 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이 잡지에 자신이 논문이 실리는 것을 일생일대의 소원으로
삼고 있다. 편집장을 1966년부터 고집스럽기로 유명한 존 머독스가
맡아, 엄정한 논문 선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네이처)에 게재되기를 희망하여 매주 전세계로부터 답지하는 논문은
200여편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로 실리는 논문은 17편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90p는 필자들에게 곧바로 되돌려지고 있다. 엄정한 심사를
생명으로 하는 (네이처)는 해당 분야의 최고 석학들로 논문평가
심사위원단을 구성해, 이곳에 글을 보내는 전세계 대학과 연구소의
170만 연구가들의 논문을 일일이 심사하고 있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다고 판단되는 논문은 절대 게재하지
않으며, 일단 게재된 논문이라 할지라도 후일 자료 해석에 잘못이
있었거나 검증이 불확실했다고 판단되는 글에 대해서는 필자에게
잘못된 부분을 다시 쓰도록 요구한다. 만약 필자가 이에 불응하는
경우에는 공개비판 기사를 게재해, 사실상 학자로서의 인생을
마감시킨다. 또 서로 상반되는 견해에 대해서는 지면을 아끼지 않고
객관적 상호비평과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기도 하다.
머독스 편집장은 그러나 최근 과학계의 풍토에 불만이 많다. "요즘
과학자들은 과거처럼 순수과학에 집착하지 못하고, 연구가 성공하면
곧바로 막대한 돈벌이가 될 수 있는 학문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다가는 또 한 차례 반과학과 무지,
맹신이 난무하던 중세의 암흑기를 경험하게 되리라는 게 그가 세계
과학자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경고이다.
과학분야의 엄정한 최종심판관, 이것이 (네이처)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문화파워이자 참 실력이다.
POWER 055 음반계의 제 1인자: 폴리그램
폴리그램POLYGRAM은 1993년도에 전세계 레코드, CD시장 점유율이
19p로 급신장하면서 마침내 오랜 숙원이던 세계 음반업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세계 레코드 시장 규모는 연간 300억 달러(24조 원)에
달한다. 폴리그램은 네덜란드의 세계적 가전제품 메이커 필립스가
전체주식 75p를 갖고 있는 까닭에 본사를 네덜란드 바른에 두고 있으나
마케팅을 총괄하는 사업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폴리그램은 U2, 존 보비, 나나 무스쿠리, 롤링 스톤즈, 아바,
비지스, 에이스 오브 베이스, 라이오넬 리치, 톰 존스, 브라이언
애덤승, 스팅, 익스트림, 스티비 원더, 엘튼 존 같은 세계적 톱가수와
그룹들을 자사 전속으로 확보하고 있는 외에, 최근에는 아시아와 남미
민속음악에까지 레퍼터리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클래식 부문에서 필립스 클래식스등 세계 3대 클래식
레이블(상표) 모두를 보유하면서 전세계 매출액의 절반을 장악할
정도로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베를린 필 하모니, 빈 필 하모니 등 세계 정상급 악단과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세계적 성악가는 거의 빠짐없이 폴리그램과 장기
전속계약을 맺고 있다.
또한 폴리그램은 네덜란드의 토코를 비롯해 포노그램, 런던
아일랜드(영국), 포리돌(독일), 모타운, AT&T(미국) 등 주요 레이블을
비롯해 모두 20여 개의 레이블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세계에 35개의
지사를 갖고 있다. 또 각국 레코드사와 라이센스를 맺어 음반 제작과
판매에 관한 한 지구촌 최대의 거미망을 구축해놓고 있다.
또 폴리그램은 1993년 20여 편의 영화와 TV드라마까지 제작하는 등
영상분야로의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알랜 레비 폴리그램 회장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같이 적은 돈을 투자한 영화가 1억
3천만 달러라는 막대한 순이익을 올려 전체 그룹수익의 14.7p를
차지하자, 앞으로는 영화제작에 본격 투자하겠다는 다부진 의욕을 펼쳐
보이고 있다.
폴리그램의 최대 강점은 모기업인 유럽 최대의 가전 메이커 필립스의
기술개발을 음반제작 및 판매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891년
전구회사로 출발한 필립스는 1962년 카세트테이프를 개발해 1차 음반
산업 혁명을 몰고온 데 이어, 1982년에는 콤팩트디스크(CD) 역시 가장
먼저 개발해 2차 음반산업 혁명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카세트테이프와
CD의 기능을 결합한 디지털 콤팩트디스크(DCC)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94년 현재 필립스는 세계 60개국에 현지법인을 두고 46개국에
275개의 생산 공장을 갖춘 네덜란드의 간판기업으로 성장했다. 부단한
기술혁신 노력이 일군 결실이다. 이같은 필립스의 신기술은 곧바로
폴리그램의 제품에 응용되어 제품화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폴리그램 역시 필립스의 돈줄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음반계에서는 폴리그램을 선두로 소니, 워너, EMI, BMG 등 5개사를
빅 5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전세계 음반시장의 80p이상을 장악하고
끊임없는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POWER 056 경매계의 250년 황제: 소더비
런던의 크리스티와 함께 전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의 90p를 장악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고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 SODERBY'S 는 한 해
동안에 평균 10억 파운드 (1조 2천억 원) 이상의 천문학적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소더비는 경매를 성사시키면서 낙찰가의 10--15p를
수수료로 받아 간단히 연간 1억 파운드(1,200억원)이상의 엄청난 알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1744년 영국의 서적판매업자 사뮤엘 베이커가 설립한 유서깊은
소더비는 1994년으로 창립 250주년을 맞이하여 전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자축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소더비란 이름은 창업주 베이커의 조카로서
1778년 베이커가 사망하자 그의 사업을 승계해 탁월한 상술로 사세를
세계 규모로 크게 확장시킨 존 소더비의 이름에서 땄다.
런던 본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매주 닷새 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반까지 연간 270여 차례의 세기적 고미술품
경매가 열리고 있다. 경매에 참여하는 주고객은 각국 중앙박물관,
고미술품 수집가, 다국적 기업, 공공재단 등으로 이들은 거금을 아끼지
않고 소더비가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전세계에서 긁어온 고미술품을
신속히 사들이고 있다. 이들 고객을 위해 소더비가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도감과 캐털로그는, 19세기 프랑스의 루이 나폴레옹
황제가 정기구독하면서 이를 보고 고미술품을 구입했을 정도로
세계최고의 권위와 감별력을 자랑하고 있다.
1983년 미국인 사업가 피터 윌슨이 소더비와 합작으로 (소더비 국제
부동산)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다국적 기업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는 본부인 뉴욕 맨해튼가를 비롯해 북미, 중남미, 유럽,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40개국에 전문매장을 갖춘 세계적
경매센터로 발돋움했다. 이밖에 한국 등 역사적 전통이 깊은
나라들에도 경매정보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현지사무소들을 세워놓고
있다. 소더비 국제부동산은 전세계의 고미술품 외에도 고성, 가구,
보석, 유명인사의 유품 등 거래 가능한 모든 물품을 취급하는 뛰어난
상술을 발휘하고 있다.
끊임없이 고객을 관심을 끌 만한 새 상품을 찾고 있는 소더비는 최근
한국의 고미술품들에 대해서도 남다른 집착을 보이고 있다. 소더비는
지난 몇 년간 라이벌인 크리스티와 함께 경쟁적으로 한국 고미술품
공략을 본격화한 결과, 1994년 4월 그동안 국제경매시장에서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청화백자접시 한 점을 뉴욕경매에서 308만
달러(24억 원)라는 기록적 가격에 낙찰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94년 10월에는 두달 뒤 국제경매에 부칠 한국 고미술품들을 국내
고객에게 선보이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소더비는 문화재 반출에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어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한국시장 공략을 위해, 과거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고미술품을 수집해 간 구미의 퇴역 군장성이나 전직 외교관들, 또는
일본 고미술상이나 소장가들을 상대로 치열한 한국 물량 확보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인사동에 소더비 매장이 문을 열 날도 멀지 않은 듯
싶다.
POWER 057 전위마술의 메카: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1929년 뉴욕 미드타운에 '예술의 생활화'를 캐치프레이즈로 설립된
세계최고의 현대미술박물관 Museum of Modem Art은 미국의
현대미술계는 물론, 전세계의 실험적 전위 미술계의 흐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미술박물관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하는
뉴욕 현지인들은 이를 MOMA (Museum of Modem Art)라는 애칭으로 즐겨
부른다.
뉴욕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회화나 조각,
소묘 같은 그리스, 이집트,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적 작품들을 전시하는
반면, 모마에서는 이같은 고전적 미술작품과 세계의 명품을 다수
보관하고 있는 외에도 사진, 디자인, 영화, 포스터, 가구, 장식미술,
공업 및 상품 디자인, 건축 등 현대미술의 거의 모든 장르의 작품을
중심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특히 모마의 필름 보관소는 세계최고의 영화창고로 명성이 높다.
영화 왕국 미국의 현대미술 아트센터답게 전세계에서 제작된 영화 중
작품성이 뛰어난 1만 3천 벌의 프린트를 보관하고 있으며, 수시로 유명
영화배우나 명감독의 영화작품 주간을 설정해 그들의 작품을 상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영화 초창기의 상영시간 5분짜리 무성영화에서부터
최근의 할리우드 흥행작 및 제3세계 영화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거의
모든 영화 필름이 빠짐없이 구비돼 있어 전세계 영화산업 관계자 및
영화학도, 영화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모마는 또 매년 4월 '뉴 필름, 뉴 디렉터'라는 행사를 주관해
전세계의 새로운 영화작품과 감독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뉴욕
영화제에 버금가는 행사로 평가되는 이 영화제에는 해마다 전세계의
신인감독들이 자신의 문제작을 출품하고 있으며, 박물관측은 이 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난 20여편의 작품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일반에게
소개한다. 여기서 소개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은 자동적으로
모마 필름 보관소에 영구보관된다.
모마는 또 단순히 전위적 작품들을 전시만 할 뿐 아니라 실용적인
디자인의 생활용품과 그릇 등을 관람객에게 팔기도 하고,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모마는 그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종합예술 레저타운인 셈이다.
박물관에서는 전위적 작품만 전시하는 게 아니라, 때때로
리히텐슈타인, 잭슨 폴록, 제스퍼 존스, 앤디 워홀 같은 역대 거장들의
컬랙션도 마련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올드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1992년 10월부터는 4개월간 획기적인 '마티스 회고전'을 열어
전세계로부터 90만 명의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다른 미술관들과 마찬가지로 모마도 재정난으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그동안 스폰서 역할을 해오던 대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이유로 박물관측에 대한 재정지원을 끊거나 대폭 줄이기 시작,
1991년 이후 연간 200만 달러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모마는 1994년부터 1억 달러 모금을 위한 대대적 캠페인을 펼치는
한편, 나날이 대형화되고 있는 현대 미술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제2전시관 설립을 서두르는 등 다각적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으나
단기간에 재정난이 호전될 조짐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상업주의의
파고에 신음하기는 모마도 결코 예외가 아닌 셈이다.
POWER 058 아시아의 할리우드: 볼리우드
볼리우드 Bollywood는 인도 최대도시 봄베이와 미국의 영화 메카
할리우드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이다. 이는 연간 20억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세계 최대 영화생산, 소비기지를 일컫는 단어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봄베이 영화단지에 위치한 굴 샨라이를 위시한 150여
개의 영화사는 해마다 900편 이상 배급되고 있는 인도 영화의 3분의
1을 제작해내어, 이를 인도 내 1만 3천여 개 영화관에 배급하고 있다.
제작 편수만 보면 영상왕국인 미국 할리우드의 2배에 달하여, 인건비가
절대적으로 낮은 9억 인구 대국의 영화단지 답게 연간 250여만 명의
풍성한 인력을 영화제작에 사용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매주 7천만 명이 극장을 찾아 볼리우드의 작품을 비롯해
각국 영화를 시청할 정도로 영화열기가 높다. 또 영화 스타는
대중들로부터 신과 동일한 대우를 받고 있어, 정계에 진출하는 영화
스타들은 그들이 어떤 정책을 내세우든 선거에서 한결같이 몰표를 얻어
당선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의석이 불과 3석에 불과하던
군소정당인 인도인민당은 대중의 이같은 속성을 교묘히 이용해 1991년
총선에 영화배우들을 대거 자당 후보로 공천함으로써 하루아침에
인도의 제1야당이 되기도 했다.
볼리우드 영화의 평균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의 그것들보다 상당히
뒤떨어지지만, 워낙 영화인이 많다 보니 제3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
칭송받는 1992년 아카데미상 수상자 고 샤트야지트 레이나 감독이나
국제영화제에서 7차례나 수상한 고 팔라크시난 감독 같은 세기적
명감독을 배출하기도 했다.
볼리우드 영화의 주된 수출지역은 아시아와 북미, 중동의 일부
지역에 국한되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를 위시한 제작비가 워낙 낮은
까닭에 볼리우드는 해마다 불과 2억 달러를 투자하여, 연간 최소한
20억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알짜수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과연 볼리우드가 계속해 지금과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최근 들어 구미의 불법 비디오가 인도에 연간
5만여 개 정도 대량 유입돼 낮은 관람료로 공공장소에서 상영되는가
하면, 자극적인 서구 오락문화로 무장한 '스타 TV'나 '지 TV' 같은
글로벌 위성 TV와 유선 TV가 인도 대륙을 융단 폭격하여 매일 평균
2천만 가구가 이를 시청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중산층은 요즘 들어서는 일요일날 외출을 삼가고
스타 TV를 보느라 TV 수상기 앞에 매달려 있을 정도로 서방 전파의
파괴력은 실로 가공스럽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경험한 까닭에
웬만한 이들은 영어에 능통한 점도 서방문화가 급속히 침투할 수 있는
한 요인으로 풀이되고 있다.
마침내 볼리우드에도 다른 나라 영화계가 앞서 처절히 경험했던
할리우드와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POWER 059 통일유럽의 문화수도: 베를린
나치 지배와 2차대전 때의 파괴로 많은 손상을 입었음에도 파리 등을
제치고 현대 유럽의 문화 문화수도로 급부상하고 있는 독일의
베를린Berlin. 그러나 오늘날의 베를린으로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1945년 동서베를린으로 분단된 뒤에도 양 진영이 경쟁적으로
문화진흥에 힘써온 결과, 1989년 통일 후 양대진영 문화의 정화를 활짝
꽃피우기에 이르른 것이다. 오는 1998년 정식으로 통일독일의 수도가
되면 마르크 파워의 지원사격 아래 명실상부한 유럽의 수도가 될 것이
확실하다.
베를린은 우선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최대의 박물관
도시이다. 독일 전체에 존재하는 3천여 개의 박물관 중 프로이센
문화국립박물관, 기술 교통박물관, 사진박물관 등 국제적 명성이 높은
각종 전문박물관이 즐비하다. 이들 박물관의 각종 전시물은 2차대전
와중에도 문화재를 지키려는 독일박물관협회의 헌신적 노력으로 거의
완벽하게 보관돼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악성 베토벤의 나라답게 독일은 전국에
195개의 전문 오케스트라와 정부지원을 받는 95개의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이 가운데 세계 정상의 음악가들이 지휘봉을 잡기를 원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도이체 오페라, 도이체
슈타스오페라 같은 국제적 오페라 하우스가 모두 베를린에 모여 있다.
베를린은 이밖에 매년 세계 3대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를 개최하는 국제영화도시로도 유명하다. 1951년부터
시작된 베를린 영화제는 상업성을 중시하는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와는 달리 비상업적이고 진보적이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는 전통을 세워놓고 있어, 그 어떤 영화제보다도 제 3세계
영화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높다.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강대진
감독의 역작 '마부'가 은곰상을 수상한 것도 바로 이 영화제에서의
일이다.
베를린은 동시에 국제적 학술, 연구센터이기도 하다. 200여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인문사회과학의 메카인 훔볼트 대학, 빌헬름 대학,
알렉산더 대학을 비롯해 첨단과학의 본산인 기술대학, 자유대학 등이
즐비하다. 이밖에 한 마이스터 원자물리학연구소, 하인리히 헤르츠
커뮤니케이션 기술연구소, 프로시안 문화유산재단같은 국제적
연구소들이 모두 베를린에 위치하고 있다. 오는 1998년 연방정부와
국회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오면 막강한 마르크화와 장구한
문화전통으로 중무장한 베를린은 통일독일은 물론, 명실상부한 유럽의
심장부가 될 것이 분명하다.
POWER 060 스포츠 중계 왕국 TWI
'세계 프로스포츠계의 차르(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마크H.멕코맥은
1966년 'TV 와 스포츠를 결합시키자'는 절묘한 착상을 구체적 실천에
옮겼다. 대중 우민화의 3대 병기로 일컬어지는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 등 이른바 3s 중 두 가지를 결합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스포츠전문 방송사가 오늘날 전세계
스포츠중계를 독점하고 있는 트랜스 월드 인터내셔널 Trans World
International, 곧 TWI이다.
TWI는 골프, 테니스, 농구, 카레이스, 육상, 체조, 하키, 복싱,
미식축구, 야구, 스키, 스케이팅 등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는
모조리 경기장면은 독점적으로 촬영, 이 프로그램의 중계권을 전세계
방송사에 파는 뛰어난 상술로 단기간에 미디어 업계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TWI가 단기간에 이같은 위치에 오르기까지에는 TWI의 모회사에서
전세계 프로스포츠 선수들을 전속선수로서 완전 장악하고 있는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그룹(IMG)이 배후에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TWI는 현재 뉴욕, 로스엔젤레스, 런던에 프로그램 제작국을
두고 있는 외에 뉴욕, 런던, 동경 등 전세계 12개 주요도시에 프로그램
판매사무소를 두고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 중계 TV
프로그램인 '트랜스 월드 스포츠'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생중계 및
녹화 프로그램을 전세계 방송사에 팔고 있다. TWI가 맨 처음 시작한
사업은 유명 골프선수들의 필름 판매이다. TWI는 모사인 IMG소속
스타인 아놀드 팔머, 게이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등의 유명
경기장면을 편집해 이를 세계 방송사에 판매했다.
그후 TWI는 1973년
캔디드 프로덕션과 손을 잡고 TV 프로그램 '슈퍼 스타'를 미국의 ABC
방송에 판 것으로 시작으로 본격적인 중계 대행 사업을 본격화했다.
현재 TWI는 각 주요경기 생중계 및 녹화방송 외에도 '지프 슈퍼스타와
슈퍼팀' '너트라스위트 월드 프로 스케이팅 챔피언십' '마지막 도전'
'유럽 PGA 투어' '아메리칸 글라디에이터' '지상최고 역사' '아이비
리그 풋볼' '스포츠 포럼'등 연간 100종 이상의 각종 스포츠
엔터테이먼트 프로그램을 전세계 방송사에 공급하고 있다. TWI는 또
1968년 국제스키 연맹의 전권 위임을 시작으로 전세계 30여 개의 주요
스포츠 협회들로부터 아예 프로 제작 및 중계권 판매 등 업무 일체를
위임받아 놓고 있기도 하다. 현재 TWI가 독점적으로 중계권을 확보하고
있는 주요 대회만 해도 세계최고 권위의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테니스, 영국 오픈 골프대회, U.S.오픈
대회, 전미 풋볼 리그, PGA 챔피언십, 국제스키연맹 (FIS) 스키대회,
오렌지볼, U.S. 스키대회, NCAA 농구 챔피언십, 마스터 골프 토너먼트,
국제 배트민턴 연맹대회, 세계복싱연맹 (AIBA)대회, 조니 워커 세계
골프 챔피언십, 앨링턴 국제 육상대회 등 엄청나다.
1980년대 들어
유럽에서 위성방송 다채널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자 TWI는 한층
바빠졌다. 영국위성방송(BSB)사의 경우 하루 13시간씩 하는 스포츠
전문 채널의 제작 및 운영권을 아예 TWI의 자회사 방송국인 챔피언
TV측에 모두 맡겨 버렸다. TWI는 또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BSB
스카이 방송사에도 일주일에 몇 시간씩 스포츠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다.
TWI는 개별 스포츠 종목만 취급하는 게 아니다. 1980년대 들어 TWI는
스포츠 중계에 관한 한 세계최고인 제작, 판매 노하우를 무기로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막후 협상을 벌인 결과, 천문학적 액수의 각종 올림픽
중계권도 패키지로 모조리 손에 넣어버렸다. 1988년 캘거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88 서울 올림픽,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등의 생생한
경기 장 면은 모두 TWI의 손을 거쳐 전세계로 위성 중계된 것들이다.
최근 TWI는 스포츠 이외의 영역으로도 손을 뻗치기 시작하여
노벨평화상 수상식의 중계권 및 판매 대행권을 따내는 등 급속히 그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POWER 061 과학과 점의 만남: 갤럽
나날이 시민 여론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지금 지구촌에서는 여론의
향배를 사전에 조사하는 일이 정치나 경제 모든 부문에서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 결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기라성같이 많은 여론조사
기간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여론조사
기관을 꼽으라면 누구나 서슴없이 조지 갤럽 Georgy H.Gallup이 창업한
갤럽Gallup을 가장 먼저 꼽는다.
1901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출생한 조지 갤럽은 아이오와
주립대학을 거쳐 동 대학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년간
노스 웨스턴, 콜롬비아 대학 등에서 매스컴 및 광고학 강의를 하는
평범한
학자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1932년 장모 올라 밀러가 아이오와
주지사에 입후보하면서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는 계기가
마련됐다. '어떻게 장모를 도울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자신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과학적 선거 여론조사 방식을 동원, 정확한 예측 및
그에 따른 선거운동방식 변경으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던 장모를
당당히 당선시킴으로써, 그 무렵까지만 해도 주먹구구식으로
선거운동과 선거예측을 해온 미국 정치권과 언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당시 T.브라운이 개발한 표본조사이론을 응용해 표본대상의
성별과 소득, 정치적 견해, 지방색 등을 일일이 면접 조사를 거쳐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인구의 단면도를 작성해 이를
여론조사의 표본으로 활용하는 과학적 방법을 개발해 사용했다. 이것이
오늘날 '갤럽 여론조사'로 불리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과학적 여론조사 방식이다.
이때부터 자신의 과학적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큰 자신을 얻은 그는
1935년 미국 여론연구소 (AIPO: 갤럽의 정식명칭)를 창립, 초대연구소
소장에 취임하면서 각종 정치, 사회, 시사문제에 대한 여론조사 활동을
본격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 1939년에는 시청자
조사연구소(ARI)를 창립해 라디오 프로의 청취율, 영화 관객의 반응
등을 세밀하게 조사해 미국이 오늘날 지상최대 엔터테인먼트 왕국이
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창립 후 갤럽연구소는 매주마다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미국 국내 및
한국 등 전세계에 깔려 있는 네트워크를 동원해 정치, 경제, 사회문제
등 그때마다 일반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현안들에 대한 여론
조사결과를 발표해오고 있다. 1992년 말 빌 클린턴 민주당후보가
당선된 미국대통령 선거 등 역대 11차례에 걸친 미국대통령 선거에서도
평균오차 1.2p의 정확한 예측을 해 그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예측을 점쟁이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일,
이것이야말로 갤럽이 인류사회에 남긴 거대한 족적인 셈이다.
POWER 062 혼돈의 가공할 힘: 카오스 이론
"중국 베이징의 나비 한 마리가 몇 번 날개짓을 하면 그 다음날 이로
인해 미국 뉴욕에서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얼핏 들으면 황당하기조차 한 이 말이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기둥이 되는 핵심 철학 중 하나인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이다.
지난
1963년 미국의 수학자 겸 기상학자인 E.N.로렌츠 박사가 이 이론에
기초해 장기 기상예보의 예측 불가성을 주장한 이래, 카오스 이론은
과거 수천 년 과학기술의 방향을 틀어버릴 만큼 기상학, 수학, 물리학,
경제학, 사회학 등 모든 학문분야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 오고 있다.
로렌츠는 '단 3개의 변수가 역관계를 형성하기만 해도 정확한 미래
예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과학계에서는 이 카오스
이론을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에 이어 20세기 물리학이 낳은 3대 업적
중 하나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마이클 크리이튼은 이 이론을 그의
대표적인 소설 '쥬라기 공원'의 기저 논리로 이용해 일반인들이 이
이론에 친숙해지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카오스는 말 그대로 '혼돈'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이런 혼돈을
과학적 탐구 대상에서 배제했었다. 그러나 로렌츠의 문제제기 이후
세계 과학자들은 이런 수수께끼들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질서와 규칙을 찾아내어 이를 해석하려는
사고의 대전환이다. 한 예로 대표적 카오스 이론가인 제임스 요크는
"혼돈은 도처에 존재하나 보기와는 달리 안정된 상태이며
구조적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런 노력은 최근 잇따라 성과를 거두기 시작해 컴퓨터의 도움 아래
각 부문의 과학자들은 자연의 무질서 속에서 일정한 규칙들을 속속
발견 해내고 있다. 이런 발견은 인공로봇, 반도체, 소프트웨어,
가전제품 등의 개발에서부터 기상예측, 통신암호, 생체현상연구, 영상
디지털, 건강진단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이용되고 있다.
Power Group V 글로벌 소비 폭발, 레포츠 소비파워
"내 나이 25살이 되는 오는 1996년, 1억 달러를 벌어 보이겠다." -
샤킬 오닐
탈냉전과 정보통신혁명은 비로소 지구촌을 하나의 단일 소비시장으로
만들었다. 동서 양진영을 잇는 이같은 단일 소비시장이 형성된 것은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이 과거에 소비력이 거의 없던 제
3세계가 제조업의 생산기지화가 됨으로써 지구촌의 소비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리제이션이 진행될수록 이에 비례해 지구촌의 소비패턴은 더욱
단일화되고 대규모화될 것이다. '글로벌 X세대'의 출현이 그런 판단을
가능케 하는 근거 중 하나이다.
지금 지구촌에는 단일한 문화와 사고, 소비성향으로 무장한 글로벌
X세대가 소비의 주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음악과 스포츠라는
국제어를 공유하고 있으며 '컴퓨터 마인드'로 중무장한 이들은 다국적
자본과 다국적 전파가 유도하는 대로 같은 음식과 옷, 가전제품을 대량
소비하고 있다. 범지구적 규모로 '자본 - 전파 - 소비'의 거대한
코넥션이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전 미국의 경영전문지 (포춘)은 '지구촌 최대시장, 10대'라는
특집을 통해 지구촌 소비시장의 새 흐름을 분석한 적이 있다.
"미국 인구의 14p를 차지하는 2,800만 명의 10대가 1993년 한 해
동안 쓴 돈은 570억 달러(46조원). 이들은 전체 영화 티켓의 27p를
사들였고, 비디오 대여고객 중 25p를 차지했다. 청바지를 사는 데 15억
달러를 쓰고, 운동화 구입에 30억 달러를 썼다. 미국보다 청소년층이
두터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4,200만 10대나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의 5,700만 10대, 유럽의 5천만 10대의 소비성향도 결코
미국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이들 10대는 기성세대와 여러모로 다르다. 위성TV를 통해 쏟아지는
다국적 월경전파와 다국적 비디오 게임, 퍼스널 컴퓨터의 세례를 듬뿍
받은 인류 최초의 '컴퓨터 마인드 세대'인 이들은 국경개념이나
애국심이 대단히 희박하다. 이들은 또 깊이 생각지 않고 선택을 서둘러
하는 조급성을 가지고 있다. 다국적 자본들이 이처럼 공략하기 쉬운
고객은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다국적 자본은 다국적 월경전파를 주된 공략무기로 이용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 바이어컴사의 음악전문방송 MTV는 미국의 10대뿐 아니라,
유럽의 5,900만 가구, 아시아의 1억 가구가 시청하고 있다. 글로벌
X세대는 이를 보고서 유명가수의 노래, 옷, 신발, 머리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다. 이들은 MTV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리바이스, 존슨 앤
존슨, 펩시, 애플 컴퓨터 등 200여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폭발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35세 이상의 소비자들이 자국 음식과 패션을 선호하는
반면, 이들10대는 국제적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촌 X 세대만 범지구적 소비 신드롬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 기성세대도 글로벌
소비 열풍에 휘말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중산층의 신들린 듯한
해외여행붐, 골프열기, 패션열풍, 레저붐만 보아도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21세기 세계를 지배할 마이더스의 대열에 레포츠그룹, 패션
그룹, 인스턴트 그룹이 속속 가담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세계관광 여행협회(WTTC)의 조사에 따르면 40년 전에
2,500만 명에 불과하던 해외여행자가 1992년에는 4억 8천만 명으로
폭증했다. 이런 급증세는 앞으로도 계속돼, 오는 2000년에는
6억 6천만명, 2010년에는 9억 4천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또 세계의
관광여행업 매출액도 1994년 현재 3조 4천억 달러이던 것이 2005년에는
7조 9천억 달러로 크게 늘고, 이 업종 종사자 숫자도 1994년 2억
명이던 것이 2005년 3억 4천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세계관광협회의 전망이다. WTTC는 앞으로 관광이
세계의 국내총생산(GNP)과 고용자 숫자 가운데 10p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말 그대로 거대한 소비 빅뱅이 범지구적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구촌 전체 가족이 이런 글로벌 소비에 동참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유엔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구촌 전체 인구의
6분의 1만이 이런 소비에 동참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6분의 5는 갈망과 적의가 교차하는 눈길로 이들을 지켜볼 것이라는 게
유엔의 우울한 전망이다. 글로벌 소비시대의 개막, 이는 '범지구적
박탈감'을 양산하는 촉매가 될지도 모른다.
@FF
POWER 063 프로 스포츠계의 차르: 마크 맥코맥
1994년 9월, 전세계 프로골프 챔피언십에서 92차례나 우승을 거둔
'골프계의 신화' 아놀드 팔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전기가
출간돼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세간의 관심을 끈 대목은
이 책의 첫 장인 '맥코맥과 악의 제국'이었다. 팔머 같은 세계최고의
골프스타조차 평소 맥코맥의 전횡에 얼마나 시달려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해프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총본부를 두고 전세계 19개국의 48개의 지사를 두고 있는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그룹 Internation Management Group, 약칭
IMG를
이끄는 마크 H.맥코맥 Mark H.McCormack 회장은 프로 스포츠계의 살아
있는 신과 다름없는 절대없는 절대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현재 그의 밑에는 닉 팔도, 버나드 랭거, 콜린 몽고메리, 게리
플레이어, 레이 플로이드, 낸시 로페즈, 아이언 우스먼, 닉 프라이스,
밀러 바버, 칩 백 등 기라성 같은 세계최고 골퍼들이 빠짐없이 전속돼
있다. 이들은 맥코맥이 짜주는 일정에 따라 군말없이 세계 골프장을
돌며 대회를 빛내야만 한다. 모든 전속 선수들의 일정은 최소한 앞으로
2년 동안 언제, 어느 대회에 참석해야 하며, 언제 개인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 까지 빽빽이 잡혀 있을 정도이다.
저항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골프계를 떠날 각오 없이 그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회한 맥코맥은 전세계 골퍼 등
인기 스포츠맨들의 등급을 매기는 전문회사 소니 랭킹이라는
통제장치를
만들어, IMG사에 소속되지 않은 골퍼나 여타 선수들은 제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도 랭킹에서 삭제하는 혹독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IMG에 소속된 골퍼나 여타 선수들은 스포츠계를 떠날 비장한 각오를
하기 전에는 맥코맥이 주관하지 않는 대회에 감히 출전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종속된 생활을 있다. 맥코맥과 원수가 되고서도 살아있는
프로선수는, 1992년 맥코맥과 대판 싸운 뒤 IMG사를 결연히 떠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보급 프로 골퍼 그랙 노만 정도가 있을 뿐이다.
프로 골프뿐이 아니다. 그의 휘하에는 최근 브룩 실즈와 세기적
염문을 뿌리고 있는 안드레 아가시를 비롯해, 크리스 에버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아이번 린들, 제니퍼 카프리아티, 짐 쿠리에 등 세계
최강의 프로 테니스 선수들도 빠짐없이 소속되어 있다. 맥코맥은 이들
외에도 유명대회들을 주최하고 있다. 맥코맥은 이들을 내세워
프랑크푸르트 프로테니스 대회(APT)등 전세계의 유명대회들을 주최하고
있다. 맥코맥은 이들 외에도 유명 사이클선수들을 확보해 프랑스의
국제 나이스 트라이애슬론 (3종경기)등도 개최하는가 하면, 미식축구,
프로농구, 야구, 축구, 자동차레이스, 아이스 하키, 스케이팅, 스키,
체조, 복싱, 하키, 육상, 수영등 모든 대중스포츠 종목에 막강한
IMG스타군단을 구축해놓고 있다. 예컨대 세계적 자동차경주 레이서인
에디 치버, 재키 스튜워드, 블록 에이츠를 위시해, 미식축구의 조
몬타나, 존 오퍼달, 러셀워커, 하키의 웨인 그레츠키와 브레트 헐,
야구의 마이크 그림스키와 댄메이얼, 미치 리치몬드 등이 모두IMG에
전속돼 있다. 이들 프로선수들의 신세도 프로골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IMG는 이들 유명선수의 게임 섭외를 도맡아하면서 그들이 대회에
참석할 때 받는 출연료의 25p와 상금의 10p를 매니저비로 꼬박꼬박
챙긴다. 그러나 IMG의 진짜 타깃은 이같은 잔챙이 수수료가 아니다.
이들 최고 유명선수들을 무기로 전세계 각종 유명대회를 주관함으로써
생기는 천문학적 액수의 TV방영권과 스포츠용품 업체등 각국의 다국적
대기업들이 내놓는 두둑한 협찬비용이다.
30여년에 걸친 집요한 작업 결과 현재에 이르러서는 윔블던대회,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테니스, 브리티스 오픈, 내셔널 풋볼 리그,
마스타, U.S.오픈, PGA챔피언십, 오렌지볼, 뉴욕마라톤, 팬 암 게임,
내셔널하키 리그, NCAA농구 챔피언십, 마스터 골프토너먼트, APT투어
등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유명 스포츠 대회의 TV 중계권이
예외없이 IMG의 수중에 들어와 있다. 전세계의 수십여 스포츠협회는
아예 IMG에게 모든 행사 협찬사 섭외와 TV중계권을 위탁해놓고 있을
정도이다. 사상 초유의 글로벌 스포츠왕국이 완성된 것이다.
이같은 초대형 스포츠왕국 IMG는 한 골프광의 기발한 착상과 집념의
산물이다.
윌리엄 메리 대학과 예일 종합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서도 자나깨나 골프 생각에만 빠져 있던 골프광
맥코맥은 1962년 '스포츠와 TV를 결합시키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절묘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곧바로 이를 실행에 옮겨 IMG사를
창립했다. 어린 시절 골프를 배운 이래 대학 재학시절에도 학내
골프팀의 주전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열렬한 골프팬이었던 맥코맥이
마침내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IMG 창립 당시 맥코맥의
나이는 32살에 불과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골프란 단지 상류층들만이 인적드문 들판에서
호젓하게 즐기던 유한계층의 친목 스포츠였을 뿐, 통일된 경기방식이나
토너먼트와 같은 흥미있는 경기방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맥코맥은
그러나 골프가 내포하고 있던 대중 스포츠로서의 대단한 오락성과
미래의 잠재적 골프인구인 중산층의 폭발적 증가, 그리고 대기업들의
투자가능성에 주목했다.
'최선을 다하라, 사업을 배워라, 그리고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철학을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골프 및 법률
전문지식을 무기로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그는 우선 천재 골퍼 아놀드
팔머와 손을 잡고 당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골퍼들을 대거 자사에
전속시킨 뒤 대중의 흥미를 끌 만한 새 경기방식을 개발하는
동시에, 스포츠용품 메이커 및 그밖의 다국적 기업들과 협상을 벌여
각종 골프대회를 엮어 나갔다.
그 무렵 최고의 구매력을 갖고 있는 골프인구들을 겨냥, 앞다퉈
대회개최를 추진하기 시작한 다국적기업들은 세계최고 골프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맥코맥의 도움 없이는 권위 있는 골프대회 개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싫든 좋든 그와 계약을 맺어야만 했다.
영국의 도요다 세계챔피언십, 자마이카의 조니 워커 세계 골프챔피언십
등은 모두 맥코맥과의 협상을 통해 탄생할 수 있었던 골프대회들이다.
맥코맥은 자신과 계약한 대회에는 반드시 세계 상위급 골프 10여 명을
참석시켜 대회를 빛냈다.
그는 이와 동시에 1966년 스포츠경기 TV중계 전문 제작 및 보급을
주업으로 하는 TWI방송사를 설립, 전세계 각국 방송사에 자신들이
제작한 대회를 독점적으로 배급함으로써 단기간에 골프를 중산층이
가장 애호하는 대충 스포츠로 만들었다. TWI는 그후 골프에 만족하지
않고 미식축구, 농구, 야구, 육상, 체조, 빙상경기 등 모든 종목의
경기를 독점적으로 중계했고, 1980년 들어서는 88서울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동, 하계올림픽 경기의 중계권마저 장악해버렸다.
맥코맥의 최근 관심사는 황금시장인 아시아의 공략이다. 맥코맥은
전세계 다국적기업들이 지구촌 최대의 생산기지 겸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아시아를 선점하기 위해 자사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을 교묘히 이용, 이들을 스폰서로 끌어들이면서 각종
스포츠경기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1994년 한 해 동안에만 IMG사는
베트남 호지민에서의 하이네켄 배드민턴 월드컵대회, 중국
베이징에서의 나이키 후프 히어로 농구대회, 싱가포르에서의 엡슨
싱가폴 오픈 골프대회, 대만에서의 월드컵 테이블 테니스 대회 등
14개의 빅 이벤트를 개최했다.
맥코맥은 이처럼 자신의 법률지식과 뛰어난 섭외력을 무기로 사세를
키워나가는 한편, 1964년부터는 BBC방송의 골프 해설을 맡아 지금까지
30년간 해박한 골프지식과 비화를 무기로 세계 골프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기도 한다. 그는 또 틈틈이 자신의 경험을 (프로골프
세계) (멋진 프로골프 세계) (하버드 비지니스 스쿨에서 당신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 (법률가 세계의 가공할 진실) (성공 비결)
(110p 해결책) 같은 책으로 엮어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는 등
다방면에서 팔방미인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는 또 IMG 아티스트라는 엔터테인먼트 흥행사를 만들어 그 산하에
전속 오케스트라단을 운영하면서 연간 35회 이상 세계공연을 도는가
하면, 전속 오페라단을 통해서 최소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아이다) (카르멘) (토스카)같은 세기적 흥행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밖에 그는 3개의 모델대행사를 운영하고 출판업에도 손을 대
나브라틸로바, 코너 등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전기를 독점적으로
발행하는 등 돈이 될 만한 사업에는 모조리 손을 대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로 유명한 맥코맥은, 1994년
영국의 브리티시 스카이 방송사, 홍콩의 스타 TV사 등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24시간 글로벌 위성방송을 하고 있는 미디어계의 황제 루퍼트
머독과 손을 잡고 미국 최고골퍼 대 전세계 유명 골퍼들 사이의 빅
이벤트를 개최하여, 사흘 동안 이를 전세계에 동시 생중계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프로 스포츠의 위력을 잘 아는 머독이나 세계적 신발메이커인
나이키사의 필 나이트 회장 등은 IMG사를 사들이기 위해 천문학적
액수를 내걸며 온갖 추파를 던지고 있으나 맥코맥은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다.
POWER 064 파라다이스로 모십니다!: 클럽 메디테레네
'인간을 위한 레저'를 표방하는 클럽 메디레네(지중해)는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들에게 지상최고의 휴식을 제공하는 세계최대의
프랑스 관광여행사로서, 영어권에서는 약칭 클럽 메드Club Med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클럽 메드의 창업자인 질베르 트리기노 등 50여 명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2차세계대전 직후 전쟁의 참화로 입은 정신적 상처를
휴식과 레저생활의 활성화로 치유하기 위한 비영리 활동을 펼치기로
약속했다. 1950년 이들은 그 첫사업으로 스페인 마주르카 섬에 텐트
바캉스촌 '아르카디아'를 만들고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글로벌 바캉스
빌리지(지구 바캉스촌)' 구상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사업수완이 뛰어난 질베르는 1953년 기존의 비영리 친선조직의
성격을 개조해 영리기업인 '클럽 메드'로 재설립하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956년 스위스 레잔에 스키 바캉스촌을 열었다. 이어 그는 1965년
세계적 관광휴양지 모로코에 최초로 200개 객실과 각종 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형 바캉스촌을 세우면서 사업을 완전히 본궤도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후 팽창을 거듭한 결과 현재의 이르러서는 인도네시아의
발리 등 아시아 8개국을 비롯해 전세계 35개국의 유명해안 및
산악지대에 134개소의 바캉스 빌리지를 직영하고, 각지역 문화유적지에
10개의 빌라촌, 휴일용 빌라 107개, 시티클럽 등을 갖고 있는
세계최대의 레저 파워로 급성장했다. 이와는 별도로 호텔업에도 진출해
세계12위를 마크하는가 하면, 자체 항공회사도 보유하고 있는 등
레저산업을 입체화, 일관화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클럽 메드는 세계를
4대 구역으로 나눈 뒤 이들 지역4그룹이 각각 그 지역의 사업을
총괄토록 하고 있다. 현재 클럽 메드의 총경영은 창업자 질베르의
아들인 세르주 트리가노가 1989년 부터 책임맡아 하고 있다.
클럽 메드는 현재 일하는 종업원 숫자만 2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으며 해마다 이 클럽을 이용하는 관광객 숫자도
200만 명을 넘어섰고, 해마다 15p이상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클럽
메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최고 성장지대로 급부상한 아시아의
관광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1997년까지 한국 설악산과 베트남에 바캉스
빌리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클럽 메드가 운영하는 바캉스촌의 특징은 TV나 신문, 전화 등 문명의
이기를 일절 비치하지 않고, 여행객들이 가능한 한 자연 속에서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여행 상품들과는 달리
손님이 계약만 하면 비행기 예약부터 목적지의 공항에 내려 빌리지에
들어오기까지, 또 그후 일단 빌리지에 들어오면 그 내부에서 스포츠,
문화, 취미, 쇼핑활동을 모두 불편없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등 여행
전과정을 클럽측이 맡아 패키지로 해주고 있다. 클럽 내에서는 또 세계
각국의 고급요리와 수십여 종의 레포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아울러
각 빌리지는 가능한 한 그 나라의 전통건축양식을 가미해 세움으로써
이국적 풍취를 더해 주고 있다.
클럽 메드는 바캉스촌과는 별도로 1990년부터 2척의 초호화요트
'사랑의 유람선'도 운항시키고 있다. '클럽 메드2'로 이름붙여진 길이
187m, 무게 1만 4,500t의 세계에게 가장 큰 이 요트들은 카리브해와
남태평양등지를 순항하며 여러 휴양지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최대한
만끽하게 하고 있다. 밤에만 주로 항해하는 이 유람선에서 이용객들은
밤에는 각종 쇼와 레저활동, 그리고 낮에는 경관이 뛰어난 해변에서
관광, 해수욕, 윈드서핑을 즐긴다. 클럽 메드는 레저계의 황제답게
레저의 개념을 또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POWER 065 지금까지 판 햄버거, 800억 개: 맥 도널드
"누가 감히 우리를 추월할 것인가. 21세기에도 우리는 패스트푸드
업계 톱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이다."
맥도널드 McDonald's 창업주 레이 크록의 호연한 호언이다.
지상에서 가장 간단한 음식인 햄버거를 전략무기로 내세워 지난
1955년에 설립된 맥도널드는 1994년 현재 미국 내 9,500개를 포함해
전세계 66개국에 1만 4천여 개의 직영업소를 갖고 있는 세계최대의
체인
레스토랑으로 발전했다. 맥도널드는 1993년 한 해 동안에만 자그마치
73억달러 (5조 8,400원) 어치의 햄버거를 팔아 이 중 10억달러
(8천억원)를 순이익으로 남겼다. 맥도널드는 전세계매장을 잇는
20가지의
독자적 초고속 정보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각종 수집, 분석해 급변하는
시대변화에 따라 판매전략을 신속히 마련하여 집행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중국, 러시아 등 구사회주의권의 시장경제
도입과 우루과이라운드 체결에 따른 각국의 시장개방으로 맥도널드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의 베이징, 러시아의 모스크바 등
새로 맥도널드가 진출한 도시에서는 다른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편임에도 손님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설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맥도널드측은 이런 추세로 볼 때 20세기 말에 현재의 매출액을
두배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양대 식품 중 하나인 맥도널드는
1994년 현재까지 모두 800억 개의 햄버거를 판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 가운데에는 각국 경제를 비교하는 집표로서
빅맨(맥도널드의 대표적 대형 햄버거)의 판매 가격을 사용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로 맥도널드는 이미 지구촌의 기본 음식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이렇게 승승장구해온 맥도널드도 그러나 최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를 경쟁가들에게 선두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그런 식의 것이 아니다. 대중들의 환경인식 고양에 따른
패스트푸드 자체에 대한 경계심 및 기피심리 확대가 바로 위기의
핵심이다.
맥도널드는 그동안 여러 차례 환경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런 대표적 예가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여러 환경운동 단체들에 의해
제기된 스티롤 유해논쟁이었다. 당시 맥도널드는 햄버거 포장물로 연간
7천만 톤의 스티롤을 사용하던 세계 제 1의 스티롤 소비회사였다.
그런데 '유해 폐기물 정보교환을 위한 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가
스티롤 생산에 사용되는 염화불화탄소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맥도널드는 이에 스티롤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다음에도 맥도널드가 햄버거 용지 수거에 성실치 않다면서,
햄버거 포장지 쓰레기를 맥도널드 사장에게 우편물로 보내는 운동이
펼쳐졌다. 결국 이번에도 맥도널드는 1988년 이 압력에 굴복, 포장재를
수거해 단열재를 만드는 재활용 프로그램을 작동하겠다고 발표해야만
했다.
그후 1994년 들어서는 맥도널드의 햄버거용 고기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됐다는 영국 소비단체의 고발에 시달리는 등 끊임없는
환경압력으로 맥도널드는 애써 키워온 이미지 파워에 적잖은 상처를
입고 있다.
POWER 066 글로벌 X세대의 절대우상: 샤킬 오닐
미국을 움직이는 3대 스포츠는 미식축구(NFL), 야구(MLB),
농구(NBA)이다. 흑인 샤킬 오닐 Shaquille O'Neal은 이 가운데 모든
게임들이 17개국이 생중계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기 높은 NBA농구에게
신화적 활악상을 보이고 있다.
1992년초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3학년을 중퇴하고 올랜드 매직 팀에
7년간 4천만 달러(320억 원)의 천문학적 계약액으로 전격 스카우트된
오닐은 그해 시즌에서 맹활약해 NBA 루키(신인왕)로 뽑힌 데 이어,
1993년 들어서는 만년 중위권에 머물던 팀을 창단 후 최초로
NBA 플레이오프에까지 끌어올리는 경이적 활약상을 보였다. 오닐은
1993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그해 한
해에만 5,200만 달러(416억 원)의 천문학적 거금을 벌어들임으로써
전세계 청소년, 이른바 글로벌 X세대들의 존경스러움을 한몸에 받는
절대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다.
216Cm, 137Kg의 거구로 찍어내리는 오닐의 덩크슛은 경기 도중
농구골대를 두개나 박살냈을 정도로 그 위력이 엄청나, 팬들은 그에게
'괴물센터'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그는 라이벌 매직 존슨이
에이즈에 걸려 은퇴하고 잇따라 마이클 조단마저 1993년 은퇴한 후에도
감히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 존재로서 농구 코트를 휘젓고 있다.
게임당 그의 평균 득점력은 28.9점으로, 29.2점을 기록한 데이비드
로빈슨에 이어 역대 랭킹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재주가 많은 오닐은 연봉 외에 광고, CD, 영화, 출판 등을 통해서도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의 주된 수입원은 바로 광고 출연으로
연봉의 3배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는 현재 리복, 펩시콜라, 스폴딩
등 세계적 다국적기업들과 광고전속 계약을 맺어 있어, 한국 내 TV나
신문 광고에서도 자주 그의 모습을 접할 수 있을 정도다. 오닐과
계약을 맺은 의류업체 리복은 그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미국 내
청바지 판매량의 25p를 장악하는 폭발적 점유율 신상을 기록하고 있다.
오닐을 모델로 쓴 펩시 콜라는 마이클 조단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코카
콜라를 물리치고 다시금 미국 내 판매시장을 석권했다.
오닐은 이밖에 자신이 작사한 랩음악 '샤크 디젤'이라는 CD음반을
출판해 전미국 빌보드 히트차트에 오르고 100만 장이나 파는가 하면
책을 쓰기도 하는 등 X세대다운 팔방미인의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블루 칩스'라는 영화에 닉 놀테와 함께 출연해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기도 한 오닐은 영화사측으로부터
할리우드 최고 액션스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함께 '터미네이터3'에
출연해달라는 끈질긴 섭외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오닐은
자신이 터미네이터로서 주연을 맡을 때만 출연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미국 경영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1993년 한 해 동안에만 오닐은
연봉 330만 달러 외에 CM 출연료 960만 달러, CD 및 비디오 저작권료
125만 달러, 영화 출연료 100만 달러 등 모두 5,2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오닐은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25살이 되는
해인 오는 1996년에는 한해 동안에 1억 달러를 벌어 보이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 음악 스튜디오 및 9개의 거실이 달린 550만
달러짜리 초호화 저택에서 전자오락게임과 영화보기를 즐기되 술은
한방울도 입에 안대는 오닐, 그야말로 팔방미인을 좋아하고 대단히
변덕스러우며 소비성량이 강한 글로벌X세대를 대표하는 우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를 오늘날의 지구촌 우상으로 만든 배후는 다름아닌 다국적
스포츠용품 및 의류업체들과 엔터테인먼트계라는 사실, 그리고 그에
앞서 무수한 스포츠 우상들이 '효용가치'가 다하자 매몰차게 버림받고
쓸쓸히 은막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 또한 한 시대의
보랏빛 물거품 인생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