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일며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 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은 누구의 얼굴 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 입니까...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나와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 입니까...
연꽃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하늘을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 입니까...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