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와 함께한 시조 백 일의 아라비안나이트
권 혁 모(시조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1. 앙꼬처럼 숨어있는 ‘별이’의 시조
고재동은 1988년 한국문인협회가 발간하는 《월간문학》의 수필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나와 중견 문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랜 문단 생활에서 수필집과 시집 등 여덟 권과 『귀촌 일기 2』를 포함한 시조집 두 권을 상재하게 되었으니, 그의 문학적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고재동 시인을 처음 만난 때가 1982년 ‘안동문협’이었으니, 40여 년의 우정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당시 쟁쟁한 문인들의 작품을 게재한 《안동문학》 제5호(1980년)에 동화 「송아지와 나」를 발표한 이후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문학은 자신의 체험을 고도의 언어로 양식화하여 펼치는 일이며, 장르는 작가의 사상을 미적 감각으로 우려낸 표현 형식에 불과할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소설가와 시인, 시조시인, 번역가를 모두 겸한 문필가였다. 노산 이은상은 시인이자 시조시인, 작가, 역사가였다. 금아 피천득은 수필가이자 시인이며 번역문학가였고, 황순원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수필가였지 않은가?
고려 중기에 형성되어 조선 초기에 완성된 시조는 오랜 역사만치 문학의 고유한 형태 미학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시조의 배행은 3~4음절로 이루어진 4음보의 정형에 3장 단수로 율격을 맺는다. 행간(장)의 제한이 없는 가사歌辭의 전술傳述 양식에 비하여 정감을 노래하고자 하는 서정성이 빼어난 운문이 시조이다.
시조는 3장 형식의 정형시에 악기 없이 일정한 가락만으로 느리게 부르는 노래가 되기도 하며, 조선 영조 때의 가객 이세춘이 시절가조時節歌調라 하여 ‘그 시절에 맞는 노래 곡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조가 정형률에 더한 민족 고유의 시로, 품品과 격格을 얹어 감동이라는 서정을 우려낼 수 있다면 고재동의 시조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하루가 시조 한 편이 된 문학적 성취 100일을 맞았으니, 그의 삶은 얼마나 순수하고 서정적이며 그리고 매혹적인가를 확인하게 한다. 『귀촌일기 2』 시편에는 존재의 이유와 서정 미학이 올곧게 스며 있다. 흙과 함께한 농심이 풋풋하게 살아 있다.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품을 떠난 자식이며 손주들의 사랑을 공감하게 한다.
가시적인 현상 앞에서, 사은유dead metaphor를 배제한 새롭게 보기가 절창을 끌어내기도 한다. 문명 비판적인 편린片鱗이 있는가 하면, 추억의 무대를 불러내는 여유와 삶의 여적餘滴을 만나게 한다.
일기는 서정이라는 문학 형태를 의식하지 않는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일기는 그 내용을 공유할 당위성도 없다. 그러나 굳이 일기가 문학적 형식을 갖춘 시조가 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용할 시조 작품이 넘치게 되니, 필자 또한 부자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울림을 주는 시편들이 보편적인 작품집 수준을 압도하고 있었기에 때문이다. 작품마다 앙꼬처럼 숨어 있다가 ‘짠~’하고 나타나는 ‘별이’, 그대는 고재동의 화신化身인가 분신分身인가?
2. 자아실현을 위한 부단한 노력
별이야
인생에는
중간고사가 있단다
그 시험 치르기가
수월하지 않구나
난 싫어
개 팔자가 뭐랬지
상팔자로 살 테야
- 「귀촌 일기·148 중간고사」 전문
고희를 앞두고도 그에게는 쉼이 없으니, 안동의 가톨릭상지대학교에 이어 안동대학교에서 늦깎이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인생의 과정에도 학창 시절처럼 중간고사가 있는가? 그 시험 치기가 쉽지 않으니, 「중간고사」는 그런 힘든 여정을 별이에게 들려주며 부러워하고(?) 있다.
종장은 별이의 화답이다. 삶의 고달픔을 별이로 하여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과,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되는 별이의 마음을 눈빛으로 나누고 있는 중간고사가 화자의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아배요
시험에 든다는 것
상상하기 싫어
유유자적 내 몫만큼
시 쓰며 걸어가리
별이야
진드기는 왜
네 피만 빨아 먹어
- 「귀촌 일기·153 아배요」 전문
「아배요」는 별이의 진실된 삶을 위한 각오를 화자에게 역으로 들려주고 있다. “시험에 든다는 것/ 상상하기 싫어// 유유자적 내 몫만큼/ 시 쓰며 걸어가리”라는 별이의 각오는 종장에서 반전되었다. 화자가 별이에게 “진드기는 왜/ 네 피만 빨아 먹어”라는 질문을 하였다. 종장은 일종의 선문답인 듯, 그러나 너와 나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며 진실한 삶을 문답식으로 확인하고 있다.
종교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40년 동안 광야의 생활을 하도록 시험해 보았다고 하였다.
“上德은 不德이요 是以는 有德이라”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라네
별이야 해석이 필요해 도무지 뭔 말인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자연법칙
떠가는 먹구름은 인간의 산물이니
별이는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리
- 「귀촌 일기·160 자연법칙」 전문
「자연법칙」 들머리는 노자 말의 인용이다. 높은 덕은 덕이 필요 없다 그래서 덕이 있다는 것이다. 한참을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별이에게 묻는다. 시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붓을 들면 귀신도 흐느끼게 하며 하늘에서 비를 뿌리게 할 수 있고,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천 년 세월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은가.
둘째 수는 앞의 도덕경의 난해한 이야기를 별이에게 해석해 주고 있다. 덕은 항상 얻기만 할 뿐이기에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고, 높은 덕은 아무것도 없는 무위無爲이며, 우주 만물의 운행 원칙이라며 설명한다. “자연의 법칙”이며 “인간의 산물”, 그리하여 “별이는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별이는 자꾸만
개구리가
운다고 하는데
내 귀에는
강아지가
짖고 있을 뿐이다
강아지
눈은 천리안
나는 한 치 앞도 못 보네
- 「귀촌 일기·208 개구리는 동구 밖에서 운다」 전문
산촌에서의 생활은 개구리울음과 강아지의 짖는 소리뿐이었던가? 별이는 먼 곳의 개구리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고 화자는 가까운 곳의 강아지 짖는 소리만 들을 수 있으니, “강아지/ 눈은 천리안”이며 화자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바보라며 자책하고 있다.
초장과 중장을 대구對句로 병치시킨 가운데 귀납적 해답인 종장을 끌어내는 신선한 발견과 시조 창작의 참신한 보법이 돋보인다.
3. 애타는 농심과 흙의 철학
고추를 오 백 포기 심었다 손 없는 날
텃밭에 옥수수며 고구마도 심어야지
별이야
들깨도 심자
참새가 추수해 줄
- 「귀촌 일기·151 손 없는 날」 전문 - ①
밭에는 풀씨 심고
산에는 고추 심자
아배요
물고기가
사람을 낚나 봐요
별이야
도는 무명이래
노자가 대답하길
- 「귀촌 일기·152 노자가 대답하길」 전문 - ②
작품 ①에서 '손損'은 ‘사람을 따라다니며 해코지한다는 악귀’를 뜻하는 말로 “손 없는 날”이란 악귀가 없는 날이다. 이사나 혼례 등 중요한 날을 잡는 민간 신앙으로 화자 역시 이날에 고추를 비롯한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는다고 한다. 그런데 별이와 함께 들깨를 심자고 제의한다. 그 내면은 참새와 함께 추수를 기다리면서 삶의 여유를 얻고자 하는 역설이다. 참새가 들깨를 먹어버리는 안타까움 조차 추수를 도와주는 고마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품 ②는 노자의 도덕경의 한 부분을 별이와 함께 따르고자 하는 순박한 마음이다. “밭에는 풀씨 심고/ 산에는 고추 심자”는 초장과 “아배요/ 물고기가/ 사람을 낚나 봐요”라는 중장의 병렬적인 모순 관계를 진정하려는 모습이 여유롭다. 그래서 “도道는 무명無名”이라며 합리화하고 있다. 도는 이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온전한 섭리 그 자체에 있음을 수긍하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여름이 먼발치서 봄 동향 살피는데
꽃 지고 떠나간 뜰
겨울이 와서 노네
설악산
대청봉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서리가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 듣고
줄행랑쳐 버린 봄
여름은 머뭇머뭇
물새와
내통한 계절 갈팡질팡 뒹군다
게으른 귀촌 부부 이제야 이랑 짓고
고추며 고구마 싹
이웃에 주문한 뒤
별이가
문밖에 와서 두드려도 깨 볶네
- 「귀촌 일기·154 오월아」 전문
「오월아」는 숨 가눌 틈도 없이 스쳐 지나는 사계四季의 무상함이다. “여름이 먼발치서 봄 동향 살피는” 늦봄이건만 지난 겨울은 아직 미련이 남아 설악산 대청봉에 함박눈을 내렸다고 한다. 그 사이 “줄행랑쳐 버린 봄”이었고 “여름은 머뭇머뭇” 물새와 내통하여 갈팡질팡 뒹구는 계절이라니, 이렇듯 질펀하고 뒤섞인 계절 앞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는 화자의 시선이 예리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게으른 화자는 “이제야 이랑 짓고” 고추와 고구마 싹을 이웃에게 주문하였으니 얼마나 분주한 날인가. 그래서 별이가 와서 문을 두드려도 깨를 볶듯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날이 되나 보다.
깨를 벤다 나는 을이고 아내는 갑이다
반세기 전 깨 벨 땐 아버지가 을이셨다
후드득
떨어진 깨는
참새들의 몫이다
새벽녘 잠을 깨운 건 별이 아닌 아내였다
삼십 분만 더 외치다가 햇귀가 쫓아온다
참새가
먼저 찾아와
추수하고 있었다
- 「귀촌 일기·243 참새가 갑」 전문
깨를 벨 땐 언제나 화자는 을이 되고 아내가 갑이 되나 보다. 아버지 때도 그랬다 한다. 그래서 “후드득/ 떨어진 깨는/ 참새들의 몫이다”하였으니 참새가 진짜 갑인가 보다. 그리고 노곤한 육신으로 새벽잠을 깨운 건 별이가 아니라 아내였으니, 그리고 밭에 먼저 와서 추수하는 참새가 있었으니, 갑 중의 갑은 참새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앞의 「오월아」도 「참새가 갑도」 농촌에서의 삶의 여백이 그만큼 남아있다는 방증이며, 소박한 흙의 철학을 DNA로 간직하려는 잔잔한 농심이 아닌가?
4. 지고지순의 그리움과 사랑
아버님 떠나신 지 고난의 삶 사십 년
팔 남매 건사하며 꿋꿋하게 걸어온 길
별이야 가시는 걸음걸음
촛불 들어 밝히세
- 「귀촌 일기·218 어머님 가시는 길」 부분 - ③
산에서 만난 나비 마당에 내려왔다
새집 지어 함께 살던 기억을 더듬는가
당신의 발자국 따라
나붓나붓 나르네
밤에는 별이 되고 낮에는 나비 되어
구천에 들지 못한 당신의 영혼인가
별이야 보내 드리자
이제 그만 손 놓자
- 「귀촌 일기·236 나비야 꽃에 들거라」 전문 - ④
새벽 4시 일 마치고 들어오는 나에게
별이가 이르는 말 왈 왈왈 왈왈왈왈
멧돼지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밭 아작 냈니더
이젠 안심된다는 듯 웰 웰웰 웰웰웰웰
고구마는 못 지켜도 어매는 지켰다네
이제는 우리 어매는 아배 몫 잘 보듬으시소
- 「귀촌 일기·244 사투리로 짖는 별이」 전문 - 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은 부모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다. 앞의 세 편은 맏아들인 화자의 사모곡이자 사부곡이다. 흔히 큰 슬픔 앞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과도하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하였듯,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는 슬픔이 있다. “사랑은 슬퍼하지 않은 것“이라는 ‘양파’의 노래 〈애이불비愛易不非>도 그렇다. “괜찮았나요/ 내 인사 없는 하루의 끝이/ 허전해 낯설지 않았었나요”
앞의 작품 ③의 “별이야 가시는 걸음걸음/ 촛불 들어 밝히세”와 ④의 종장 “별이야 보내 드리자/ 이제 그만 손 놓자”는 진정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할 자식의 그리움이며 그 함축적 의미이다.
그리고 작품 ④에서 “산에서 만난 나비”는 팔 남매를 기르셨던 어머니의 추상抽象으로 “밤에는 별이 되고 낮에는 나비 되어” 아직은 구천에 들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당신의 발자국 따라/ 나붓나붓 나르네”라는 의태적意態的 묘사가 애잔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작품 ⑤는 별이가 짖는 목소리로 화자에게 야간근무(?) 상황을 보고한다. “왈 왈왈 왈왈왈왈”은 ‘어떻게’라는 걱정인 ‘why why~’를 떠올리게 하며, “웰 웰웰 웰웰웰웰”은 ‘좋다’라는 의미의 ‘well well~’ 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 작용과 3, 4조의 반복 성음聲音에 의한 음악성이 극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첫수에서, 멧돼지가 아작 낸 고구마밭과 어머니의 묘를 잘 지켰다는 안도감으로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주인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귀촌 일기』 전편이 그러하지만, 별이와 함께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산촌을 지키며 살아가는 화자의 정겨운 모습이 진정한 삶의 의미임을 확인하게 한다.
키 작은 달맞이꽃
내 뜰에 모셔 놓고
이슬에 젖을세라
염소에 먹힐세라
온종일
키다리로 곁에
붙박이로 섰노라
울 아가 쌔근쌔근
깊은 잠 빠져들 제
초승달 따가지고
문 앞에 걸었더니
별이의
꿈속 노랗게
달맞이꽃 필 적에
- 「귀촌 일기·246 달맞이꽃 소묘」 전문
7월이면 산에 들에 노랗게 물드는 달맞이꽃은 그리움이다. 「달맞이꽃 소묘」의 첫수는 키 작은 달맞이꽃을 마당에 옮겨다 놓고 “이슬에 젖을세라/ 염소에 먹힐세라” 조심조심 보살피는 화자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 어린 달맞이꽃은 둘째 수에서 보이는 ‘울 아가’를 위한 개연성일 것으로 보아 달맞이꽃의 이미지를 병치은유diaphor로 놓고 있다.
둘째 수에서 “울 아가 쌔근쌔근/ 깊은 잠 빠져들 제/ 초승달 따가지고/ 문 앞에 걸었더니”라는 묘사적 표현은 손녀인 ‘울 아가’이자 또 하나의 분신이기도 한 ‘별이’의 매직 사랑이며 신비스러운 마법이다. 그래서 별이의 꿈속이 달맞이꽃처럼 노랗게 피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할미 할비 떠난 서울
지구만 한 달이 떴다네
사흘간 가린 얼굴
보동보동 낯빛 설다
별이야
저 달 속에는
일곱 손주 이름 있다
- 「귀촌 일기·157 저 달 속에는」 전문 - ⑥
대구에서 서울에서 함께 모여 완성된
도레미파 솔라시 손주들의 화음은
별이야 울보 새침데기
할아비와 복을 짓네
충청도 땅 중에서도 이름도 낯선 증평
정삼각형 그려 넣고 정중앙에 모였다
열다섯 한배 탄 우리 가족
선장은 손주일세 - ⑦
- 「귀촌 일기·217 도래미파 솔라시」 전문
손주 사랑은 조부모라 하였다. “할미 할비 떠난 서울/ 지구만 한 달 떴다네” 라는 작품 ⑥에는 예쁜 동심이 숨어 있다. 소망이 얼마나 지극하면 하늘의 달이 지구만 하며, 단 “사흘간 가린 얼굴”은 “보동보동 낯빛” 설게 되었을까? 그렇게 두둥실 뜬 달 속에는 일곱 손주의 이름이 있다며 별이에게 은근슬쩍 자랑하고 있다. 자식 자랑,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였건만, 화자가 별이에게 거짓말 같은 손주 자랑을 하여도 별이는 눈 깜빡이며 받아 줄 것이지 않을까?
작품 ⑦은 “대구에서 서울에서 함께 모여 완성된” 손주를 ‘도’에서 ‘시’까지의 일곱 음계로 표현하였다. 그중에는 “울보”도 “새침데기”도 있으니, 별이라는 너와 함께 복은 짓고 있다는 화자의 유유자적함이 보인다. 자식들이 살고 있는 곳의 중심인 충청도 증평에서 모여 함께한 시간, 가족 열다섯이 모여 한배를 타고, 선장의 자리를 ‘손주’에게 넘겼으니 얼마나 즐거운 항해가 될까?
5. 언어로 그리는 서정의 한 폭 그림
지는 꽃도 눈부시다던
해 맑은 그녀
영원히 해 뜨는 언덕에
명작 한 폭 지었네
별이야
그 집 안에는
만년 소녀가 살고 있대
소나무 몇 그루와
윤슬 흐르는 강기슭
달밤이면 그림 속에서
소녀가 걸어 나와
우주의
생성에 대해
소곤소곤 별을 적네
- 「귀촌 일기·233 송강마을 이야기」 전문
「송강마을 이야기」는 안동시 송강초등학교가 폐교된 자리에 개관한 송강미술관의 소회를 별이에게 들려주고 있다. 시인이자 관장인 그는 “지는 꽃도 눈부시다던/ 해 맑은 그녀”였으며, “영원히 해 뜨는 언덕에/ 명작 한 폭”을 지었다. 그곳에 “만년 소녀가 살고 있다”고 하였다.
“소나무 몇 그루”가 있고, “윤슬 흐르는 강기슭”이 있어 “달밤이면 그림 속에서/ 소녀가 걸어 나오는” 풍정風情에 더하여 “우주의/ 생성에 대해/ 소곤소곤 별을” 적는다고 한다. 시어의 점층 구조에 더하여 몽환적인 배경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지는 꽃도 눈이 부신다는 만년 소녀, 달밤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와 우주의 생성과 소곤소곤 별을 적는 그녀는 누구일까?
태풍이 지나고 머리 위에 별 몇 점 떴다
남은 별들이 어디 갔나 했더니 풀숲에 있네
하늘은 별님을 채근하여
지구에 보냈나 봐
- 「귀촌 일기·241 개똥벌레」 전문
「개똥벌레」는 반딧불이과의 딱정벌레로 반딧불이라고도 한다. 태풍이 자나자 화자가 사는 시골 하늘에는 별이 몇 점 떠 있는데, 남은 별이 어디 있는가 찾아보니 풀숲에 있더라는 것이다. “하늘은 그 별님을 채근하여” 지구에 내려보냈다고 한다.
온전한 시의 구상은 이러한 새로운 ‘발견’에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별’ = ‘지구에 보낸 별’ = ‘개똥벌레의 빛’ = ‘사랑하는 별이’ 이 모두가 ‘별’이라는 객관적 상관물 앞에서 마치 스퀴즈 플레이squeeze play라도 하듯 이미지의 충돌과 간섭을 유발하여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건강한 시는 이처럼 사유의 참신한 발견이며, 울림을 주는 요인 또한 ‘참신성’에 있다고 한다면, 「개똥벌레」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바람도 더위 먹고
고갯마루 숨 가쁘다
동산의 원추리꽃
맨몸으로 시위하나
별이야
칠월 염천에
익어가는 자두 몇 알
- 「귀촌 일기·211 詩, 더위 먹다」 전문
「詩, 더위 먹다」는 깜찍한 단수이다. 시조 창작 과정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음수율’이나 ‘음보율’, ‘음위율’ 그리고 척척 들어맞는 구句와 구, 장章과 장이 주고받는 관계 미학의 완벽함이 돋보인다.
올해 여름은 마치 우리나라를 적도에 내려놓은 듯 무더위가 끝이 없다. 그래서 “바람도 더위 먹고” 고갯마루도 숨 가쁘며, 마을 꽃동산에는 주황색 물감이 녹아서 흐르듯 원추리꽃이 맨몸으로 시위하는가 보다. 이런 “칠월 염천에/ 익어가는 자두 몇 알”의 추억과 낭만과 서정을 별이와 함께 나누고 싶었을까? “칠월 염천”을 원추리꽃의 ‘주황색’과 자두의 ‘빨간색’으로 만나게 하는 시자법示姿法이 수채화인 듯하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 내일은 비요일
낮달은 뜨는데 낮 별은 뜨지 않을까
낮달도
낮 별도 뜨지 않는
먹구름이 두렵다
- 「귀촌 일기·228 별요일 비요일」 부분 - ⑧
일 더하기 일은 영
깨닫는데 육십구 년
별이야 하룻강아지
네가 뭘 알까 마는
음지와
양지가 만나
영이 되는 이치를
비 오다가 해 나고
후텁지근 깨를 볶네
매미는 그늘에서
양지를 부르는가
칠 년을
깊은 땅속에서
갈고닦은 목청이여
- 「귀촌 일기·232 수확」 전문 - ⑨
작품 ⑧과 ⑨는 시의 창작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관념의 탈피를 통한 새롭게 보기이다. 이미 관념화된 추상성에 새 생명을 이입하였다. 그것은 먼저 밑줄 친 “낮달은 뜨는데 낮 별은 뜨지 않을까” 하는 의문과, “일 더하기 일은 영”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음지와/ 양지가 만나/ 영이 되는 이치를” 찾아내는 비약이다.
농부의 속마음은 “낮달도/ 낮 별도 뜨지 않는/ 먹구름이”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고, 이런 이치는 “깨닫는데 육십구 년” 걸렸다 하더니,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별이는 어떻게 이런 걸 알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하고 있다.
“비 오다가 해 나고” 깨를 볶듯 후텁지근하니, “매미는 그늘에서” 양지를 부르고, 칠 년 동안 땅속에서 갈고닦은 목청이 시인에게는 짠하게 들려오나 보다. ‘밤하늘’, ‘별’, ‘낮달’, ‘먹구름’, ‘해’, ‘음지’, ‘양지’, ‘매미’ 이런 시어들이 일군 전원 일기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6. 고요한 마음 세계가 열어놓은 서정의 화두
산에서 내려오는
향내가 무서워요
아배요
맨날 맨날
밤중에 어디 가나요
별이야
그 꽃 잘못 꺾으면
가시에 찔린단다
- 「귀촌 일기·167 아카시아꽃」 전문
「아카시아꽃」은 별이와 나누는 이야기가 다의적多義的으로 숨어 있다. 밤이면 곁의 야산에서 밀려오는 아카시아꽃 향기, 그 속에서는 추억과 함께 행복감에 젖어 들게 되지만, 화자는 별이를 통하여 산에서 내려오는 향내가 무섭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아배요/ 맨날 맨날/ 밤중에 어디 가나요”하고 묻는다.
그래서 별이에게 들려주는 답는 둘째 수의 질문은 제외한 체 “별이야/ 그 꽃 잘못 꺾으면/ 가시에 찔린단다” 하며 완곡하게 가르쳐 준다.
여기서 하나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향기’가 나는 꽃에는 언제나 ‘가시’라는 대가가 따른다. 야간 운행을 나가는 화자의 우회적인 다짐일 수도 있다.
시는 이렇듯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사유의 영역을 확장하여 일반화할 수 있을 때, 그 시적 가치는 배가되는 것이다.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해답으로의 귀결이 아니라, 미학적이며 주술적이거나 가상의 현실에서 울림을 줄 수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별이의 육아 일기
절반은 바람이 썼다
100일간의 웃고 울던
선돌 언덕의 삶
열흘 뒤
책으로 나온다지
절반은 누가 썼지
- 「귀촌 일기·173 시조집」 전문
지금까지 화자가 써 온 “별이의 육아 일기”를 “절반은 바람이 썼다”며 감사의 자리를 양보한다. 그리하여 “100일간의 웃고 울던/ 선돌의 삶”이 곧 책으로 나온다며 “절반은 누가 썼지”하고 반문하고 있다.
다른 장르의 저술은 이미 여러 권 낸 바 있지만, 새로운 시조집을 낸다는 마음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렇지만 그 대망의 공치사는 절반이 “바람”이었고, 남은 절반은 “별이”에게 돌려주었으니, 시조시인으로서 주체하지 못할 기쁨과 겸양지덕이 작품 속에서 보인다.
큰 산이 무너진 날 비바람 몰아쳤다
반변천 넘친 물이 선어대를 삼켰다
수첩에 깨알 글씨 적다가
날 새는 줄 몰랐다
한 발짝 먼저 가고 뒤에 가는 게 대수더냐
모두가 찰나인데 이름 석 자 적은 게
별이야 얼마냐 다행인가
시 한 수 읊다가 가세
- 「귀촌 일기·191 찰나 인생 찰나 견생」 전문
「찰나 인생 찰나 견생」은 큰 산이라도 됨직한 한 시인의 부고를 받고, “반변천 넘친 물이 선어대를 삼켰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곧 둘째 수에서는 이를 시인하고 만다. “먼저 가고 뒤에 가는 게 대수냐”며 반문하더니, “이름 석 자 적은 게/ 별이야 얼마냐 다행인가” 하고 애써 슬픔을 감추고 있다.
여기서 반전은 둘째 수 종장이다. 삶과 죽음, 이 모든 명제는 이름을 남기는 것이기에 애哀와 비悲 그것조차도 ‘다행’이라는 위안이다. 마지막 귀납은 “시 한 수 읊다가 가세”였으니, 김립의 「죽시竹詩」 한 수가 곁에 있는 듯하다.
“~ 세상만사 마음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리萬事不如吾心竹/然然然世過然竹 가수 명국환은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을 구성지게 노래하였다.
산에는 산새가
들에는 곡식이 자란다
산새와 곡식을 쪼개면
이름이 완성될까
참새야 너희끼리 부르는
철수 영희 그런 이름 있어
- 「귀촌 일기·181 참새도 이름이 있을까」 부분 - ⑩
학교 주변 온 들녘을 금계국이 덮었다
오월의 마지막 정열 햇볕이 따갑네
별이야 성난 달 속에
네 얼굴이 떠간다
배스도 황소개구리도 바다 건너와서
남의 땅 점령하고 주인인 양 설치더니
꽃마저 우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으니
- 「귀촌 일기·180 성난 낮달」 전문 - ⑪
존재의 아픔이 밴 작품 ⑩과 ⑪에는 동시조 같은 펼침이다. 동시조에서 바라보는 마음의 안식과 추억과 다짐 같은 것들이 더욱 서정적일 수 있다.
작품 ⑩의 산→산새, 들→곡식이라는 인과관계에서 “산새와 곡식을 쪼개면/ 이름이 완성될까”하고 물었으니, 이를 원용하여 참새에게도 철수와 영희 같은 이름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철수’와 ‘영희’가 추억 속에 간직된 이름이듯이, ‘참새’도 이처럼 소중한 이름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시인의 기원이다.
작품 ⑪은 “꽃마저 우리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성난 달 속에” 별이의 얼굴을 그려 넣어 우회적으로 질타하고 있다. 금계국이 뒤덮인 들녘이며, 흑장미처럼 정열을 불태우는 오월의 햇살은 얼마나 따가울까? 그런 정취를 가득 담아내는 안동호에는 배스도 황소개구리도 남의 땅을 점령하고 있다며 고뇌하고 있다. 온갖 외래종의 꽃들이 영역을 넓히고 있으니, 별이도 성난 낮달에 겹쳐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가 보다.
7. 사랑이라는 테제These
이태 전에 그니가
놓고 간 씨앗 한 톨
내 뜨락 깊은 땅속
정성껏 심었더니
별이야
백옥 같은 피부
백합꽃이 피었네
- 「귀촌 일기·213 백합화, 내 뜰에 핀」 전문 - ⑫
밤나무 꽃 필 때면 그니가 생각난다
작금은 그 향내가 유난히도 짙구나
별이야 네가 그리는 그곳에도 밤꽃 폈을까
- 「귀촌 일기·201 밤꽃 피는 계절」 전문 - ⑬
작품 ⑫와 ⑬은 사랑 이야기이다. 두 편 모두 특정의 ‘그니’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마음속에 품는 것도 죄가 되며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존재의 확인이며 하늘이 내린 축복일 것이다.
⑫에서 2년 전에 놓고 간 씨앗 한 톨은 화자의 가슴이라는 미시적 공간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그리하여 “백옥 같은 피부” “백합꽃”이 피었다며 별이에게 자랑하고 있다.
⑬은 ‘밤꽃’이라는 에로틱 향취香臭를 추억으로 떠올리며 별이가 그리워하는 그곳에도 밤꽃이 피었을까 하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이기를 바라고 있다. ‘밤나무’, ‘그니’, ‘향기’ 등 이런 시어의 외연外延 확장을 넘어 ‘별이’와 함께 넘치는 정감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이 짠하게 느껴진다.
벽 하나 사이 두고 허한 밤 가슴 앓던
촌뜨기 소나무는 한마디 말 못 하고
떠나는 뒷모습이 애잔한
옆집 누나 경자야
반세기 건너와서 또다시 가슴앓이
젖은 속 달래려고 타는 놀 멍울 하늘
내 고향 별이 뜬 산등성에
목을 빼고 서 있네
- 「귀촌 일기·204 촌뜨기 소나무」 전문
황혼의 우리 시대, 누구나 “벽 하나 사이 두고 허한 밤 가슴 앓던” 그런 “촌뜨기 소나무”가 아니었을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뒷모습이 애잔했던 우리의 누나 경자, 서울에 가 쪽잠을 자며 공순이가 되어 돈 벌던 그 경자를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둘째 수는 반세기 건너온 그리움의 가슴앓이다. 그 세월은 온통 젖은 가슴이었고, 붉게만 타는 놀이었으며 하늘 조차 멍울진 가슴이었던가? 그런 시절의 순박했던 추억 영상이 밤하늘 와룡 산등성이에 떠 있다. “촌뜨기 소나무”인 화자는 소나무의 키만치 자라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다.
「촌뜨기 소나무」 첫수는 시인의 언어로 그린 심미안의 세계이며, 둘째 수는 그 배경의 현장을 보조관념으로 올려놓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진경珍景세계를 은유적, 비유적, 시각적으로 겹치며 관조하게 한다.
8. 에필로그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삿포로의 시골 마을 호로마이역에서 평생 이 종착역을 지켜온 철도원 ‘오토’,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죽은 딸 ‘유키코’가 환생하여 펼쳐는 영화 《철도원》의 이야기가 있었듯, 고재동에게는 ‘별이’라고 하는 분신이 있어 시조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카시아꽃 향기에 스민다.
그는 ‘사랑’을 테마로 한 제삼의 언어를 ‘별이’와 주고받았다. 그리고 시조라는 미학적 동행으로 넘치는 정감을 진정시키며 삶의 여적餘滴을 남길 수 있었다. ‘별이’를 가슴에 태우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는 시조의 가객이었다.
눈빛으로 마주칠 수 있는 별이가 곁에 있다는 것으로도 축복이었다. 별이는 존재의 화두이자 시조의 독자였다. 그래서 시조 창작의 수월성은 물론 독자의 공감에도 쉽게 이를 수 있었다. 시조를 통한 치열한 삶의 모습이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진실,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겸손과 긍정이 또 한 권의 시조집을 완성한 것이다. 흔히 만나는 불감不感의 어설픈 시편이기보다는 독자를 향한 울림이 더욱 클 수 있었기에 동지가 된 행복감을 지울 수 없다.
고재동에게 100일간은 어머님을 떠나보낸 안타까움도 있었다. 일터에서 돌아와 별이와 나눈 눈빛 이야기는 어쩌면 외계의 언어에 불과할 수 있어도, 일일이 해독하고 읽어낸 그의 서정은 단정하였다. 하루를 반추하며 적어가는 시조 일기가 온전한 서정 시편이 되어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화자의 역량이자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시조의 품격과 탄탄한 서정을 올곧게 담은 『귀촌 일기 2』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고재동 시인의 앞날에 문운을 기원한다.
- 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