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나의 유언장
맹상학 마르첼리노 신부
"내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람처럼 홀연히 이 세상에 왔다가 구름처럼 하느님 품으로 흘러갑니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라는 말씀처럼 천년을 하루 같이 사시는 그분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갑니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마음 때문에' 두렵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믿고 섬기고 사랑했던 그분을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는 '마음 덕분에' 설렙니다.
사제는 '사랑에 빚진 자'라고 했죠. 하느님 사랑에 빚지고 부모님 사랑에 빚지고 세상 사람들 사랑에 빚만 진 한 사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모든 형제자매에게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글을 남깁니다.
이 세상에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마리아! 불교도였던 어머니! 자식들이 사제품을 받지 못할까 봐 낯선 종교에, 낯선 기도문, 낯선 세례명을 십자가처럼 평생 걸머진 사랑 많은 나의 어머니! 천주교 신부 되면 마누라 없이 평생 혼자 살아갈 것이 걱정되셔서 뒤돌아 눈물을 훔치시던 호수 같은 우리 어머니! 남편 요셉을 성 요셉 축일에 하늘로 먼저 보내시고 홀로 밤을 지새우셨던 어머니! 그래도 아버지 곁에 묏자리를 사놓으셨다고 죽어서도 남편 곁에 있을 수 있다고 마냥 소녀처럼 행복해하셨던 우리 어머니! 평생 쌓아둔 중압감을 못 이겨 중풍까지 끌어안고 휠체어에 앉아 홀로 집에서 수도자처럼 수행 생활을 하고 계신 어머니 마리아! 어머니가 그렇게 바라던 지혜로운 며느리와 토끼 같은 손자ㆍ손녀를 품에 못 안겨드려서 미안합니다. 외로워하시는 어머니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간간이 드리는 용돈, 생활비로 스스로 아들 노릇 다했다고 자족했던 이 불효자식을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어머니! 바람이 찹니다. 몸 건강하세요! 이제 둘째 아들, 둘째 신부(神父)는 먼저 떠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셔요! 언젠가 형님 신부님이 아버지 장례미사 강론 때 이야기한 것처럼 어머니가 힘들 때마다 천사가 돼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곁에 머무를 겁니다. 어머니가 외로울 때면 어머니 꿈속에 나타날게요. 우리 아주 가끔씩 꿀 같은 데이트를 해요! 어머니 덕분에 이 아름다운 세상 잘 쉬다 갑니다.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하고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 엄니! 행복하세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주님 안에서.
제가 평생 섬겼던 주님은 아무것도 없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제 사제관을 뒤져 보면 남은 것이 많이 나올 겁니다. 하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교회가 허락한다면 화장해서 뿌려주십시오.
사제품을 받고 첫 사순시기 때 장기기증을 서약했습니다. 쓸 수 있는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시고 각막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선물해주십시오. 2명에게 각막을 선물해 줄 수 있다 해서 사제로 사는 동안 세상에 더러운 것보다 거룩한 것, 아름다운 것 많이 많이 보려고 노력했으니 제 각막을 갖게 되는 사람은 여생 동안 사랑스럽고 행복한 것만 바라보길 원합니다.
끝으로 행여 이 부족한 사제로 말미암아 상처받았던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수행이 부족해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더 나누면서 살지 못하고, 더 용서하며 살지 못하고, 더 겸손하지 못하고, 더 사랑하며 살지 못해서 나와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교회의 종으로 살게 해주셔서, 사는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늘나라 가서 하늘 아버지 만나면 청하고픈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하느님 사제로 살고 싶습니다."
+ 주님, 사제 맹상학 마르첼리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 맹상학 마르첼리노 신부님은 대전교구 소속 사제이다. 98년에 신학교 입학, 2005년에 사제 서품, 2023년 1월 31일에 선종하셨다. (맹진학 라파엘 신부님은 친형으로 두 형제가 다 늦깎이 사제로 부르심을 받았다.) 생전의 사제성소와 영원으로의 부르심을, 한 편의 드라마같이 살다 가신 신부님, 이제 연모하시던 하느님과 뜨거운 해후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