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프라 안젤리코
도미니코회 수사인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는
수도원 형제들의 기도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1440-43년에
그의 제자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 1420-1497)와 함께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프레스코를 그렸는데,
이 프레스코는 서양미술사 속 가장 초현실적이면서 신비로운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수도원은 원래 12세기에 세워진 낡은 수도원이었는데,
1435년경에 도미니코 수도회가 수용하여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보수하였고,
안젤리코가 수사들의 방과 복도에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도록 그림을 그렸다.
그중 <애도>는 두 번째 방에 있는 벽화이다.
벽화의 배열로 볼 때
수도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뒤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며 애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뒤에 예수님의 장례는 누가 치렀을까?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고,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으며,
니코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가지고 와서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고 기록했다.
(마태 27,57-61; 마르 15,42-47; 루카 23,50-56; 요한 19,38-42)
그러나 프라 안젤리코는 복음의 내용과 달리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었던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도 요한만을
장례의 현장에서 애도하는 모습으로 그렸다.
안젤리코는 예수님께서 선종하시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장례를 맡긴 것이다.
돌무덤 안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석관이 있고,
석관 앞에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예수님의 머리에는 가시관에 찔렸던 혈흔이 묻어 있고,
그분의 옆구리에서는 창에 찔렸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성모님은 왼손으로 아들의 머리를 받치고
슬픈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죽기까지 사랑한 이가 바로 이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모 살로메는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시신의 균형을 맞추고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수건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며 슬퍼하고 있다.
여인들의 맞은편에 등을 보이고 있는 사도 요한은
무릎을 꿇어 예수님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면서
예수님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려한다.
예수님의 장례가 치러지는 곳은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돌산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도미니코 성인은
동정을 상징하는 백합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을 들어
예수님 앞에서 동정서약을 하고 있으며
도미니코 성인의 뒤에는 꽃과 나무가 무성하게 피어있다.
도미니코 성인의 수도생활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