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18년 11월 13일에 열렸던 소산 선생 학술대회에서 안유경 교수가 발표한 논문중 일부인데, 전문은 한산이씨 대동보인 <큰 뫼> 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특히나 이 대목은 만학도 생손인 내가 대하며 읽을때마다 깨닫는 바가 많게 하는, 가슴에 늘 새겨야 할 좋은 교훈의 글이다. 이에 여기에 옮겨서, 관심있는 분들과 같이 그 내용을 공유하며 뜻을 다시 한 번 되씹고자 한다:
[이광정은 73세(1786)에 재종(再從, 6촌) 손자 이영필(李永苾)에
게 보내 편지에는 ‘거경궁리’로써 학문의 요체를 설명한다. 이로써 한산이씨 가학의 학문정신이 ‘거경궁리’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비는 오직 뜻이 없음을 걱정할 뿐이지 참으로 뜻이 진실하 고 독실하면 어찌 고원(高遠)한데 이르지 못함을 걱정하겠는가. 거경궁리(居敬窮理)는 학문하는 요체이다. 궁리(窮理)의 방법으 로 독서할 때는 그 의리를 연구하고 사물에 응접할 때는 반드 시 옳은 곳을 구해야 하니,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막론하고 반 드시 철두철미한 곳까지 이해해야 한다. 쌓인 것이 많으면 자 연히 마음이 점차 밝아져서 의리가 분명해진다. 거경(居敬)의 방법으로 정시(靜時)에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허명정일(虛 明靜一)하고 동시(動時)에는 일에 따라 성찰하고 주일(主一)하 여 마음이 다른 데로 가지 않게 하여, 행하기를 오래하면 자연 히 심과 리가 하나가 된다.45)"
이광정은 ‘거경’과 ‘궁리’로써 학문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먼저 학문을 하기에 앞서 뜻을 진실히 가질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선 비는 오직 뜻이 없음을 걱정할 뿐이지, 참으로 뜻이 진실하고 독 실하면 어찌 고원(高遠)한데 이르지 못함을 걱정하겠는가”라고 말
45) 小山集卷7, 「答再從孫永苾(丙午)」, “士惟患無其志耳, 苟志之誠篤焉, 何患不 到於高遠哉. 居敬窮理, 爲學之要則得矣. 窮理之方, 讀書則硏究其義理, 應事接 物則必求其是處, 無論大事小事, 必理會到徹頭處. 積之之多, 自然心地漸明, 而 義理昭著矣. 居敬之方, 靜時則整齊嚴肅, 虛明靜一, 動時則隨事省察, 主一靡他, 行之之久, 自然心與理一, 打成一片矣.” 58 ∙ 소산 이광정의 삶과 학문
한다. 즉 무엇보다도 학문에 대한 뜻을 확고히 세우는 것이 중요 하며, 뜻이 확고히 서면 학문 과정에서 생기는 제반 문제들은 크 게 걱정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궁리는 격물궁리(格物窮理)의 다른 말이요, 거경은 거 경함양(居敬涵養)의 다른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광정은 학문의 요체로써 ‘격물궁리’와 ‘거경함양’의 두 가지 공부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격물궁리’를 통해 밖으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넓혀나갈 것과 ‘거경함양’을 통해 안으로 마음속에 갖추어 진 덕성을 함양해나갈 것을 동시에 강조한 것이다.
이어서 이광정은 ‘격물궁리’의 방법으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되 지극한데까지 철저히 궁구해나갈 것을 강조한다. 지극한데까지 이 르지 못하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이에 이 광정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막론하고 철두철미한 곳까지 이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주자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궁 구해야 한다. 만약 2~3분만 궁구한다면 이것은 격물이 아니다. 반 드시 10분까지 궁구해야 비로소 격물이다”46)라는 말의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철저하게 사물의 이치를 궁구해나가다 점차 쌓인 것 이 많아지면 어느 순간 관통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니, 이것이 바 로 “자연히 마음이 밝아져서 의리가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광정은 ‘거경’의 방법으로 정시(靜時)의 공부와 동시(動 時)의 공부를 제시한다. 이것은 경이란 정(靜)과 동(動)을 관통하 여 실현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정’은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
46) 朱子語類卷15, 「大學(2)」, “格物者, 格盡也. 須是窮盡事物之理. 若是窮得三 兩分, 便未是格物. 須是窮盡得到十分, 方是格物.” 한산이씨의 가학연원과 학문정신 ∙ 59
정이 일어나기 이전의 고요한 때를 말하니 미발(未發)이라고 하고, ‘동’은 사물과의 교섭에 의해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난 이후를 말하 니 이발(已發)이라고 한다. 또한 미발 때의 공부를 존양(存養 또는 涵養)이라고 부르고 이발 때의 공부를 성찰(省察 또는 察識)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이광정은 ‘정’과 ‘동’을 관통하는 경(敬)의 실천 원리를 제시한다. 즉 안으로 마음을 고요히 보존하여 본체를 보존 하는 정시(靜時)의 공부와 밖으로 모든 일에 대응하는 동시(動時) 의 공부를 동시에 강조한 것이다.
이어서 이광정은 정시(靜時)의 공부로써 정제엄숙(整齊嚴肅)과 허명정일(虛明靜一)을 제시하고, 동시(動時)의 공부로써 성찰과 주 일무적(主一無適)을 제시한다. 그러나 주로 외적인 언행이나 용모 를 단정하고 바르게 하는 ‘정제엄숙’은 정시(靜時)의 공부가 아니 라 동시(動時)의 공부가 되어야 하고,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생각 이 다른 데로 달아나지 않게 하는 ‘주일무적’은 동시(動時)의 공부 가 아니라 정시(靜時)의 공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47) 어째든 ‘정제 엄숙’이나 ‘허명정일’ 또는 ‘주일무적’처럼 동(動)과 정(靜)의 두 측 면에서 ‘경’을 오래도록 실행하면 자연히 심과 리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른다고 강조한다. ‘심과 리가 하나가 된다’는 말은 마치 물속의 돌멩이가 밝게 드러나는 것처럼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는 천리(본성)가 발현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이광정은 이렇게 학문 하는 궁극적 목적이 실천에 있음을 강조한다.
47) 안유경, 「대산 이상정의 敬사상 고찰」, 한국사상사학59, 한국사상사학회, 2018, pp.79~83 참조. 60 ∙ 소산 이광정의 삶과 학문
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실제로 어려우니 오직 힘쓰고 힘쓰는데 있을 뿐이다. 의리를 사색하고, 허원(虛遠)하 고 형체가 없는 곳에 들어가는데 천착해서는 안되며, 일상의 평소에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사이나 자고 먹고 말하는 곳에서 천리가 유행하지 않은 곳이 없음을 보아야 한다. 가르 침을 익숙히 간파하여 책을 볼 때에도 평이한 데에 마음을 두 고 절실히 사유하여 맛이 없는 가운데 맛을 얻고 평범한 말 속 에 저절로 고원함이 있는데 이르러야 옳다.48)
여기에서 이광정은 “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실제 로 어려우니 오직 힘쓰고 힘쓰는데 있을 뿐이다”라고 하여 실천의 어려움을 강조한다. 이러한 실천은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거나 천 하의 도리를 행하는 것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부모 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 속의 것들이다. 사람 은 하늘의 이치를 가지고 태어나며, 이 이치가 일상생활 속에 유 행하기 때문에 자고 먹고 말하는 것들이 모두 천리의 유행이 아님 이 없다. 이에 “일상의 평소에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사이나 자고 먹고 말하는 곳에서 천리가 유행하지 않은 곳이 없음을 보아 야 한다”라고 말한다. 즉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며 자고 먹고 말하는 평범한 일상생활 밖에 따로 천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 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며 자고 먹고 말하는 자체가 바로 천리의 유행이라는 말이다.
48) 小山集卷7, 「答再從孫永苾(丙午)」, “言之非難, 行之實難, 惟在勉之勉之而已. 思索義理, 不可穿鑿入虛遠無形影處, 日用平常, 事親從兄之間, 起居飮食言語之 地, 看得無非天理流行處. 看破敎熟, 看書亦平鋪放著, 切己思惟, 以至於無味中 得味, 平淡中自有高遠可也.” 한산이씨의 가학연원과 학문정신 ∙ 61
때문에 책을 볼 때에도 어려운 곳에 천착하지 말고 평이한 곳에 서 절실히 사유해나갈 것을 권유한다. 그래서 “허원(虛遠)하고 형 체가 없는 곳에 들어가는데 천착해서는 안된다”, “평이한 데에 마 음을 두고 절실히 사유하여 맛이 없는 가운데 맛을 얻고, 평범한 말 속에 저절로 고원함이 있는데 이르러야 옳다”라고 말한다. 이 것은 바로 주자가 강조한 격물(格物)의 방법과 절차이며, 또한 유 가의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의 의미이기도 하다. ‘하학이상달’은 낮고 쉬운 것에서 출발하여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달아가는 유가의 단계적 학습방법이다. 이처럼 이광정의 학문은 밖으로 지식을 탐 구하고 안으로 덕성을 함양하는 거경궁리를 바탕으로 하며, 이를 통해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등 일상생활 속에서 천리의 실현 을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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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뒤늦게 나마 소산 선생의 학술대회 뉴스를 올림: https://www.yna.co.kr/view/AKR20181112071100053
감사합니다 ^^
포스팅이 좀 늦어서 죄셩합니당 할머님~~ ^^
영필 할배의 장인되는 강세충: <경북유학인물/강세충(姜世忠)>:1730(영조 6)~1780(정조 4)
강세충(姜世忠):1730(영조 6)~1780(정조 4).
本貫 晉州. 初名(초명) 世鐸 (세탁). 字 春路 (춘로). 號 (호) 芝溪 (지계). 父 진사 必燁 (필엽). 祖父 木+賢 (현); 居 (거) 尙州 (상주) 鳳臺 (봉대). 權正宅 (안동인 소산 권정택)의 사위. 문학으로 이름이 남. 유고가 전함. [참고] 嶠南誌.
권정택(權正宅): 1706~1765년 자(字)는 사안(士安)이고 호(號)는 소산(小山)이며 충재 벌(沖齋 橃)의 후예(後裔)로 영조(英祖) 때 진사(進士)하고, 현감(縣監)을 역임(歷任)하였다. 저서(著書)로는 소산집(小山集)이 간행(刊行)되었다.
특별히 대산 휘 상정-소산 휘 광정과 권정택 선생은 죽마고우로 막역한 사이였슴: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531A_0030_010_0100_2016_001_XML
소산 권정택의 부 창설재 권두경: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6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