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도 개나리가 피고 버드나무에는 물이 올라 새순이 돋고 있다. 그렇지만 요즘이 여행하기에는 좀 애매한 시기이다. 쓸쓸한 겨울 정취는 다 사라졌고, 그렇다고 아직 완연한 봄도 아니다. 벚꽃 잔치가 끝나야 비로소 완전한 봄이 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벚꽃을 봄의 전령사라 부르기도 한다. 이번 주는 경남 밀양으로 떠나보자. 밀양에는 유서깊은 사찰 표충사가 있고, 조선 최고의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가 있다. 또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과 시례호박소가 있다. 그러나 얼음골은 지금 갈 만한 시기가 아니니 이번 주는 1박 2일로 표충사와 영남루를 돌아보는 느긋한 여행 코스이다.
영남루(嶺南樓)는 경남 밀양시 내일동, 밀양 시내를 가로지르는 남천강변 언덕 위에 자리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이층 누각으로 현재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이 영남루가 있는 자리에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영남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그 사찰이 폐사되고 고려말에 이 자리에 누각을 짓고 폐사된 사찰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 있는 영남루는 조선 헌종 10년(1844년) 중건된 건물이다.
이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누각으로 꼽히기도 하고 또 진주 촉석루, 함양 농월정과 함께 영남의 3대 누각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 만큼 이 영남루는 남천강을 바라보는 전망도 좋고 규모도 크며, 모양새도 당당한 조선의 대표적인 누각이라 할 수 있다.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커다란 이층 누각으로, 동쪽에는 침류각(枕流閣)을 또 서쪽에는 능파각(凌波閣)을 부속 누각을 거느리고 있다. 다른 이층 누각들이 대개 이층에 구멍을 내 그 구멍으로 계단을 연결해 오르게 되어 있는데 비해, 이 영남루는 부속 누각인 침류각과 능파각을 통해 이층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이층 누각에 오르면 밀양 시내를 가로지르는 남천강(밀양강이라고도 함)을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하다.
이 영남루 주위에는 다른 볼거리도 있다. 천진궁, 밀양시립박물관, 무봉사, 아랑각을 차례로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천진궁(天眞宮)은 영남루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는데, 단군 왕검의 위패와 역대 8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매년 음력 3월 15일과 10월 3일에 각각 어천대제와 개천대제를 거행한다고 한다. 천진궁 앞에는 석화(石花)가 있다. 말 그대로 돌꽃인데 평평한 땅에 밋밋한 돌이 있는 형태이다. 이 돌의 무늬가 꽃을 닮았다고 하여 석화라 부르고 보호대를 둘러 놓았다. 보통 때는 별로 특이한 것을 느낄 수 없는데, 비가 온 후에는 꽃 무늬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한다.
천진궁 옆으로 작은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밀양시립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옆에 사명대사의 동상이 있는데, 원래 이 박물관 건물도 사명당 기념관으로 사용되다가 시립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박물관 내에는 밀양 인근의 유물 및 도자기, 골동품 등 약 10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내려와 옆길을 따라가면 무봉사(舞鳳寺)라는 작은 절이 있다. 법당 안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무봉사에서 내려다보는 남천강의 모습도 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영남루에서 남천강변으로 내려가면 아랑각을 만날 수 있다. 아랑각(阿狼閣)은 밀양 아리랑의 유래가 된 아랑이라는 처녀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 아랑은 밀양 태수의 딸이었는데, 인물도 빼어나고 심성도 곱기로 소문이 났었다고 한다. 어느날 아랑은 유모와 함께 영남루로 달 구경을 나갔다. 그때 괴한이 나타나 아랑을 겁탈하려 하자 아랑은 완강히 저항하다가 결국 괴한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괴한은 아랑의 시체를 영남루 아래 대나무숲에 버렸고, 아버지인 사또는 아랑의 시신조차 찾기 못하고 밀양을 떠났다.
그후 밀양 태수로 오는 사람에게 자신의 한을 호소하기 위해 아랑의 원혼이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놀란 태수들이 죽고 말았다. 그러다가 용감한 태수가 부임하여 아랑의 원혼의 말을 듣고 한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이때부터 아랑의 정절을 기리며 부른 노래가 밀양 아리랑이라 한다.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에서 워낙 많이 다루어진 내용이라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보았을 내용이다. 이 아랑의 사당이 아랑각이고 아랑각 옆 대나무숲에는 아랑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곳에 아랑탑이라는 작은 비석을 세워 놓았다. 아랑각까지 다 보고 강변을 따라 밀양교 쪽으로 나오면 영남루 관광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