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743FA4F4E19302F04)
집에서 직선거리로 100미터도 안되는 곳인데 이제야 와 봅니다.
냇길이소
![](https://t1.daumcdn.net/cfile/cafe/173EBD4F4E1930300C)
오늘 처음 구럼비에서 만난 친굽니다.
까페에 이런 인사글을 올렸더군요,
"저는 에밀리예요. 인사드려요.
저는 대만사람이예요. 저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를 돕고 싶어요.
우리 함께 구럼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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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1242014F4E19303207)
![](https://t1.daumcdn.net/cfile/cafe/1543684F4E19303305)
![](https://t1.daumcdn.net/cfile/cafe/1221004F4E19303535)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DC64F4E1930350D)
![](https://t1.daumcdn.net/cfile/cafe/185A364D4E19303625)
![](https://t1.daumcdn.net/cfile/cafe/145CAB4D4E19303821)
![](https://t1.daumcdn.net/cfile/cafe/12584F4D4E19303928)
프랑스에서 온 벤자민입니다.
채식주의자랍니다. 한국말을 거의 전혀 모릅니다.
어느날 부터 한국어스승이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오분작'을 먹다가 오분작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파이브 미니츠, 오분, 유 오케이!"
그리고 등판을 짝 소리나게 힘껏 때립니다.
"벤자민! 파이브 미니츠 오분 앤 짝! 유 오케이!"
"오케이 오분짝! 유 그레이트 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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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1761FB4D4E19303B17)
같은 공간에 전혀 다른 돌들이 함께 있습니다.
물어보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알려고 해보지만 알 길이 없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58A4D4E19303C2C)
벗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구럼비에서도 이것 때문에 미칩답니다. 벗고 싶은데 벗을 수 없으니...
채식주의자에다가 나체주의자.
참 골치 아픈 친굽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53EF4D4E19303D2C)
비자 기한이 되어 7월 말엔 돌아가야 한다는군요.
네팔로로 간답니다. 그곳에 먹거리를 해결해주는 어떤 사업체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저런 천, 의류, 물건들을 프랑스로 보내 먹고 산다고 하는군요.
심리치료,명상, 힐링...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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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스타이넘과 함께 구럼비를 찾았던 친굽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290D4E4E19303E18)
서른 넷의 떠돌이 총각인 것 같은데...
관심있는 여성들은 옆구리 찔러 보시길.
![](https://t1.daumcdn.net/cfile/cafe/122B104E4E19303E23)
이런 자료가 있군요.
강정마을의 설촌과 유래
강정 마을은 먼저 세종 21년(1439)에 동해방호소(가내관방)가 설치 되었다.
이 동해방호소에는 마.보병 군인이 56명 있었다.
이런 군사 방어 시설인 동해방호소 주위에는 촌락이 형성되어 강정마을을 이루는 기초가 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조 10년 (1577)에 고둔은 고득종의 옛집이었는데 차후에는 고둔관원으로 변모했음도 파악됨.
1709년의 고지도상에도 새수촌과 고둔촌,강정촌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이런촌이 강정마을로 발전 및 형성되어 갔음을 지리지와 호구단자를 통해서 명확히 파악됨.
즉 문헌 기록상의 강정마을 최초 기록은 세종21년(1439년)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25CD4E4E19304013)
'대정현 지'( 정조4년(1780) ~ 정조13년(1789) 사이에 작성된 읍지)의 자료에 의하면
'좌면 강정 마을은 대정현에서의 거리는 동쪽거리가 47리이고. 민호는 96가구이며 남자는 190,여자는 257명 이다.'라고
서술되어 이 당시 비로소 행정적인 마을에 관한 파악과 실체가 분명하게 기록 되어 짐.
풍부한 용천수, 좋은기후와 비옥한 토질, 그리고 좋은 바다환경을 가진곳,
그래서 예부터 제일강정이라 불리우는 우리 마을 역사는 역사자료에 기록되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이라 생각 된다.
강정에 관한 최초 문헌은 이조실록 중종 5년(1510년) 7월10일에 제주자제인 부사맹과 김의중 등이 올린
상소문에 나타난 ' 대정현 동쪽 2식 거리에 가내포가 있다'라는 기록이 처음 있지만,
'함벡이골'에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고, 대궐터 등의 유적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강정마을의 설촌은 선사시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신케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21164E4E19304133)
1948년 4,3사건 이전에는 '안강정' 세별동산''소왕물' '내배곁디' '물터진개' '강정포구'
'덧내동산''함베기골' ' 불컨터' '변수인대(새수촌)' 등에 마을이 흩어져 있다가
4,3사건이 일어나면서 마을 소개령이 내려져 지금의 강정마을이 크게 형성되는 계기가 됨
1981년 서귀포시가 승격되면서 중문면 강정리에서 서귀포시 강정동으로 명칭이 바뀜.
![](https://t1.daumcdn.net/cfile/cafe/1724384E4E1930412E)
여기서 이백미터 거리에 강정천 다리가 있습니다.
시간나면 은어 구경하며 물길 따라 걸어보고 싶군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225C74E4E19304328)
강정마을 미디어팀에 새로 들어온 친굽니다. '영실'이라는군요.
영어작업을 맡았습니다. 국제부가 생긴 셈이죠.
국제부팀장입니다. 홀로. 물론 페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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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에밀리도 영실도 솔로입니다.
관심있으신 구럼비 총각들은 일단, 대쉬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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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냇길이당이 있습니다.
가방끈 긴 한진오 블로그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강정에는 본향당과 두 개의 일렛당, 그리고 여드렛당, 갯당이 있다.
일렛당은 모두 본향당 각시인데 서당할망이 본 각시인데 돼지고기를 잘먹어서 쫓아버려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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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냇길이소 일뤠당’
강정천 상류 냇길이소 곁에 비밀에 쌓인 신전이 있다.
산신백관의 둘째 부인 ‘동이본향 일뤠할망’이 계신 곳으로
절벽에 뿌리를 내린 거대한 담팔수나무는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를 압도할 기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41A44B4E1930491B)
"마을의 신당을 두루 돌아보고온 뒤 한 해가 지나지않아 강정마을엔 경천동지할 사단이 벌어졌다.
기어이 해군이 제 나라 백성들을 내모는 광란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절박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우리의 신들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곳곳에 좌정해 자손들의 안위를 하루 같이 굽어보신다던 신들께선
군홧발에 유린당하기 일보직전인 구럼비와 어질고 그윽한 마을사람들을 두고 어디로 갔을까?
자손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지상에서 영원히 종적을 감춰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제주의 신은 늘 사람 곁에 있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신의 권위를 벗어 던지고 사람 속에 섞인다.
물빛 고운 바다 구럼비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름조차 ‘중덕이 아빠’, ‘강정 김씨 일대조’, ‘중덕사 주지’로 바꿔 사람의 길을 택해
만행이 자행되는 해군기지 공사장 너머 수만 년 깊은 잠에 빠져있는
섬땅의 창조주 설문대할망의 육신 한라산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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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집안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군요.
제주에선 심방이라고 부릅니다. 무당. 그쪽에선 마녀라 부를까요?
언제간 프랑스친구들이 제주심방에 대해 다큐를 찍을 때 보니 타이틀을 'A one-woman opera' 로 붙이더군요.
제대로 보는 것 같더군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F734B4E19304C1E)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미신이라고 여깁니다.
그렇습니다. 미신.
美神, 美信
아름다운 신념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1324B4E19304D1B)
올 여름 놀 곳이 또하나 생겼습니다.
냇길이소.
가끔 차가운 물에 빠지고 싶을 땐 여기로 와야겠습니다.
첫댓글 저 곳을 방문 못 했다니..너무 아쉬워요!
강정마을 방문했다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마음이 채 미처 돌아오지 않아
발 딛고 사는 현실감이 쫌 없답니다.
근데 저기 못 가본 건 진짜 쫌 아쉽네요.ㅠㅠ
또 온다면서... 그 때.
기도가 절로 나오는 신비한 장소네요. 어떻게 저 아름다움 위에 시멘트를 바르려 하는 걸까요??
냇길이당 신목이 천년도 더 산 나무라는 군요.
영진 행님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
물엔 발목만 담갔지요. 벤자민도 윗옷만 벗었지 몸을 담군건 아닙니다.
사진 찍기 위해 간거니깐요.
다음엔 발도 안담겠슴.
그곳은 신성한 곳이며 어머니의 젓줄이고 천년기념물 무태장어가 서식하며 은어.송사리.버들치. 동남참게.원앙.등 평화롭게
생존 하는 곳입니다 . 멀리서 구경만 하시고 신선한 공기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추천>냇길이소 아래에있는 배락마은소 추천.
알갔소,
냇길이소의 다른 이름은?
경상도버전으로 "댓낄이소"
한 달이 넘게 강정에 있으면서 가보덜 못헌 곳인디 ... 이번에 내려가면 가볼 시간이 있을래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