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이해>1
-전근대 역사현장과 사극을 중심으로-
송찬섭(문화교양학과)
이번에 <한국사의 이해> 교재와 방송(TV) 교재를 새로 제작하였습니다. 교재를 만들 때마다 고민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어떤 체계로 구성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학부과정에서는 통사를 배우는데 흥미로운 서술과 배치가 어렵고 내용도 많아서 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합니다. 주제 중심으로 구성하면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데다가 교재를 물려받은 예가 많아서 불편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오랜 검토 끝에 통사를 선택하게 됩니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구 교재를 사용해도 되느냐?”라는 질문은 반복됩니다. 하지만 이번 교재는 내용이 수정 보완되었고 15강으로 구성된 첫 번째 교재이므로 구 교재로 공부하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구교재로 공부를 해야 학생들은 반드시 워크북을 참고하도록 당부 드립니다. 워크북을 구하지 못한 학생들은 저의 홈페이지에 초고를 올려놓았고 다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료를 다운 받는 게 쉽지 않은 학생에게는 메일로 직접 보내드리고 있습니다(songcs@knou.ac.kr).
다음은 TV강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TV강의 역시 이번에 새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TV강의는 세 개의 구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전문가와의 대담입니다. 교재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와 관련한 배경지식, 주요 개념, 의미 등을 전문연구자의 해설을 통해 쉽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다만, 면대면 학습이 아니라서 궁금한 점을 바로 질문할 수 없고, 시간상 생략된 주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의의 내용만이라도 충실히 짚어본다면 한국사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넓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둘째,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리포트입니다. 우리 대학을 졸업한 연극배우 오민애씨가 리포터로서 중요한 현장으로 나아가 그 유물유적, 또는 사건의 전문가와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사 과목 중 ‘한국문화와 유물유적’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와 달리 이 과목은 통일성,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리포터가 15강 전체 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생인 만큼 방송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진행한 덕분에 여러분들이 공부하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학생 스스로 현장답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꽤 세밀한 정보를 제공하고 습니다. 본래는 강의마다 현장을 세 군데씩을 넣어서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했지만 한정된 강의시간이어서 모두 소화하기는 어려워서 두 곳씩으로 줄였습니다.
셋째, ‘줌인한국사’라는 이름으로 매 강의마다 당대를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드라마, 역사소설, 신화․설화 등과 전문연구자의 해설을 넣어서 흥미롭게 구성하였습니다.
1강 원시사회와 고조선에서는 구석기 유적지로 유명한 경기도 연천 전곡리와 신석기 유적지인 서울 강동구 암사동을 찾아갑니다. 전곡에 있던 작은 전시관은 2011년, 대규모의 전곡선사박물관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 지역 구석기유물은 세계적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암사동 유적지도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형식은 하나의 리포트지만 실제로는 두 곳을 담은 셈입니다. TV강좌를 통해 구석기, 신석기 전반의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실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 청동기관과 고조선 관을 관람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청동기 유적지 중 보존이 잘 된 곳이 적어서 박물관에서 소개하였습니다. 고조선 유적지는 남한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요동지역의 유적지를 답사했으면 좋았을 텐데 형편상 그러지 못하고 중앙박물관의 고조선 관을 활용한 것입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객관적인 역사소설, 드라마가 없어서 비중이 높은 단군신화를 선택했습니다. 신화로 꾸며졌지만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건국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신화 속에 담긴 역사의 의미를 잘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2강 '삼국'에서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유적지를 방문합니다. 교재의 ‘백제의 건국과 성장’에서 초기백제시대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교재 33쪽 참조) 그 중심지가 바로 두 곳의 토성과 석촌동의 돌무지무덤입니다. 올림픽공원에는 이미 몽촌역사관이 있지만 곧 한성백제박물관이 개관될 예정입니다. 풍납토성의 발굴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발굴된 유물유적을 전시하게 될 것입니다. 한성백제박물관 내 전시되어 있는 모형을 보면 토성 내 구역들이 바둑판처럼 정비되었고 자갈길과 토관을 이용한 상하수도관이 있어서 초기 백제의 발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현장은 벽골제입니다. 4세기 전반 백제가 만든 거대한 수리시설로서 호남, 호서 지방이라고 할 때 바로 벽골제 호수를 기준으로 나눌 정도로 중요합니다(52~54쪽 참조). 이곳에 농경문화박물관이 세워져 있어서 벽골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를 돕습니다. 벽골제로 대표되는 수리시설은 당시 농경이 그만큼 중요하고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었다는 점, 수많은 사람을 동원할 만큼 국가의 힘이 커졌다는 점 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한강 유역의 아차산을 통해 삼국 간의 쟁탈을 다루고(39~46쪽 참조)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제외했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삼국 전쟁기를 앞둔 신라의 왕권 실태와 왕실의 성골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56, 69쪽 참조).
3강 ‘통일신라와 발해’에서는 경주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통일 전도 그렇지만 통일신라에 있어서 당연히 경주가 가장 중요한 현장이겠지요. 첫 번째 현장은 통일전후 신라의 대내외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 문무왕릉과 감은사지를 선택하였습니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무열왕, 최고의 장수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삼국간의 전쟁을 거쳐 나당전쟁까지 완결시켰으며, 통일국가 운영에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문무왕릉 옆에는 그를 기리는 감은사지까지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69~70쪽 참조). 두 번째 현장은 안압지를 선택했습니다. 진골은 삼국을 통합했다는 자신감과 함께 전후 많은 토지를 확보하여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안압지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유물을 통해 신라의 최고지배층들이 여기서 연회를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72~73쪽 참조). 신라말기에는 이들 진골귀족 세력 간의 갈등과 권력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드라마 ‘해신’을 통해 주인공 장보고를 중심으로 신라 말 왕실의 권력다툼, 그리고 동아시아의 무역실상을 살펴보았습니다(76~77쪽 참조). 발해의 유적지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발해관이 있으니 전시된 유물을 통해 발해의 문화를 한번 둘러보시면 좋겠습니다.
4강 고려전기는 수도인 개성으로 가서 궁궐이나 태조 왕건릉 등을 담아야겠지만 분단 현실로 인해 대신 후백제를 패퇴시켰던 중요한 현장인 개태사(논산)라는 절을 택했습니다(98쪽 참조). 신라가 통일 이후 불국토를 만들었다는 자신감에 불국사를 세웠듯이 왕건도 태평성대를 열겠다는 포부로 이 절을 세웁니다. 물론, 개태사는 수도에 세운 불국사와 달리 후백제와의 전투지역에 세워진 상황을 반영하듯 석불도 무인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두 번째 현장은 은진미륵이 있는 관촉사입니다. 고려 초기에는 대형 불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는 지방에서 세력을 이루고 불교를 지원하던 호족들이 조성하기도 하고 왕권의 상징으로 중앙의 영향력 아래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애당초 답사지는 파주 용미리 석불이었지만, 최근 이 석불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서 피했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고려 초기 왕실의 권력구조, 내부 권력의 긴장과 갈등, 거란과의 전쟁 상황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 ‘천추태후’를 선정하였습니다(111쪽 참조). 태후라는 표현에서도 고려가 황제국을 표방하였던 점을 알 수가 있지요(101쪽 참조).
5강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역사현장으로 강화도의 고려궁지를 택했습니다. 이 시기는 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자겸의 난에서 시작하여 묘청의 난(서경천도운동), 무신정변, 농민과 천민의 난, 그리고 몽골의 침략도 있었습니다. 몽골의 침략을 한 번 당한 고려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천도하였습니다. 이곳에 새로 궁궐을 짓고 몽골 침략에 대비하여 삼중으로 성을 쌓았습니다. 현재 궁궐은 모두 사라지고 다만 정문 승평문만 복원하였으며 빈터 한쪽에는 조선시대에 있었던 외규장각을 세워놓았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무신정권이 이곳에서 육지의 백성에게 부세를 거두어서 연회를 즐기고 화려한 생활을 계속하였다는 점에서 이들의 목적이 항전보다는 체제유지에 있었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두 번째 현장으로는 승보사찰로 이름 높은 송광사입니다. 여기서는 지눌이 권력에 안주하였던 기존의 불교를 비판하면서 불교개혁을 위해 만들었던 수선결사를 주도하였던 사찰이었습니다. 당시 송광사는 본래 길상사라는 작은 사찰이었는데 지눌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수선사로 바꾸었다가(그리고 정혜결사도 수선결사로) 다시 송광사가 되었습니다(147~148쪽 참조). 당연히 이곳에는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가 있고 이곳 출신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국사전, 그리고 수선결사 당시를 설명해주는 수선사형지기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정혜쌍수’, ‘돈오점수’는 지눌의 사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용어지요? ‘줌인한국사’에서는 공민왕이 원으로부터 탈피하고 안으로 개혁운동을 이끌어나갈 때 앞장섰던 인물 신돈을 다룬 드라마 ‘신돈’이 나옵니다(145~146쪽 참조).
6장 ‘조선건국과 새로운 기틀’에서는 먼저 역성혁명으로 새로운 체제를 잡아나가려는 조선왕조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경복궁을 선택했습니다. 태조는 비록 개경에서 즉위했지만 국호를 바꾸고 한양으로 천도를 하였습니다(158, 190쪽 참조). 한양이 가진 지리적 배경도 살펴보고 유교적 원칙에 따라 건설된 조선의 궁궐을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현장으로는 조창의 하나인 남한강에 세워진 원주 홍원창을 선택했습니다. 조선건국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던 과전법, 전세제도를 비롯한 새로운 수취제도가 중요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보여줄 수 있는 현장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한강이 지닌 의미, 특히 이러한 부세를 원활하게 옮기는 역할을 하는 조창을 선택했습니다(165쪽 참조). 물론 조창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표지석과 나루터 흔적, 그리고 강줄기 자체가 유적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요즘 4대강 공사 때문에 현장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세종과 훈민정음을 다룬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조선건국의 중요한 유교적 이슈인 ‘민본’ 그리고 이러한 정책에서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 이를 둘러싼 세력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데 드라마적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175~176쪽 참조).
7장 ‘조선전기 사회변화와 외세침략’에서는 16세기 사림의 중요 인물인 조광조를 모신 심곡서원을 첫 번째 현장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시기는 훈구와 사림이 대립하면서 네 차례 사화가 일어났던 시기였고 그 가운데서도 개혁에 앞장섰다가 제거되었던 조광조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187~188쪽 참조). 두 번째 현장은 이 시기 동안 일어난 두 차례의 외세침략, 그 가운데서 병자호란과 관련 있는 삼전도와 남한산성을 선택했습니다(200쪽 참조). 삼전도의 비극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동아시아 삼국(한중일)간의 전개되었던 긴장과 갈등에 관심을 가지면 더 많은 것을 읽어내실 수 있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이 시기 난을 일으켰던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임꺽정』, 드라마 ‘임꺽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임꺽정은 훈구와 사림의 정쟁 속에서 관료와 양반들에 의한 과도한 수취가 일어났던 시기에 활약한 도적입니다(189쪽 참조). TV방송에서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이 시기 정치적 흐름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8장 ‘조선후기 경제발전과 사회동향’에서는 이 시기 치열했던 당쟁을 이끈 송시열과 관련된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선택했습니다(225쪽 참조). 충북 괴산의 화양서원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을 모신 서원입니다. 그리고 만동묘는 명나라 황제 신종과 의종을 모신 곳으로 송시열이 제자 권상하에게 당부를 해서 지은 곳입니다. 두 번째 현장으로는 실학자 정약용의 생가를 선택했습니다(232~233쪽 참조). 정약용은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로서 이 시기 대표적인 학자라고 하겠지요. 이곳에는 실학박물관을 세워놓아서 이 시기 전반적인 사회, 문화적 흐름과 실학의 전개, 그리고 정약용의 실학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정조를 다룬 드라마 ‘이산’을 선택했습니다. 정조를 통해 이 시기 정치적 흐름, 개혁의 실상을 알아볼 수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정조의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였지만 실제 정조의 정책과 구상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9장 ‘사회모순의 심화와 농민항쟁’에서는 첫 번째 현장으로 지방사회 운영의 중심지를 살펴보기 위해 고창읍성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관아, 향청, 작청 등 지방지배기구와 운영 실태를 알아봤습니다(교재 245~247쪽). 두 번째 현장으로는 19세기 농민항쟁의 중심지인 진주를 선택했습니다. 진주는 1862년 삼남 일대 농민항쟁 가운데, 모의, 발발, 전개 과정을 가장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교재 267~270쪽) 곳이라 하겠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이 시기 상업, 특히 무역관계와 관련하여 드라마 ‘상도’를 다루었습니다. 의주상인으로 유명한 임상옥에 관한 이야기지요. 본래 교재에서는 8장에서 상업을 다루고 있지만(222쪽) 임상옥이 19세기에 주로 활동하였고 9장에서는 홍경래난의 무대로서 의주상인을 설명(255쪽)하고 있으므로 연계해서 공부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다만 드라마에서 임상옥의 활동과 의식을 다룬 부분은 역사적 상황과 많이 다르므로 조심해서 봐야 하겠지요.
지금까지 조선후기까지 TV강의에서 다룬 역사현장과 ‘줌인한국사’를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한 시기마다 수많은 역사현장이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곳만을 소개했으니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현장이 한 가지 역사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다양한 역사, 전후 역사과정을 살펴보듯이 하나의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답사를 다닐 때도 시대별로 골고루 역사현장을 선택해서 다녀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를 볼 때 줄거리를 즐기더라도 본래 실상은 어떠했을까? 라는 역사학적 상상력과 호기심을 가지면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사의 이해>2
-근현대 역사현장과 사극을 중심으로-
송찬섭(문화교양학과 교수)
지난번 학보특강 도움이 되었는지요? 어쩌면 교재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 역사의 현장과 역사드라마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워크북이 별도로 있기 때문에 교재 요약보다는 강의와 교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형태로 구성했습니다. 이번 학보특강은 한말,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시기에 해당하는 10-15강 속의 역사 현장과 중요한 역사 드라마를 중심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0강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근대변혁운동’에서는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일어난 개항, 이것이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 그 뒤 개화정책과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일련의 사건, 1894년에 일어난 농민전쟁, 청일전쟁, 갑오개혁, 그리고 이후의 전개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현장으로 먼저 강화도를 찾아갔습니다(교재 271쪽).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개항 직전 제국주의 열강이 침략해 온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제국주의 열강은 1840년 중국, 1853년 일본을 개항한 뒤 마지막 조선을 개항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일어난 사건이 1866년 프랑스의 침략(병인양요)과 1871년 미국의 침략(신미양요)이었는데 모두 강화도로 침략해 왔습니다.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이 침략했지만 조선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는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신미양요 때는 미국의 침략으로 덕진진, 광성진 등이 함락되고 조선군은 끝까지 싸웠지만 전멸하였습니다. 결국 미국은 조선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그냥 물러났지만, 이후 조선을 공략하여 개항시킨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두 번째 현장은 농민전쟁이 발발한 전라북도 정읍지역입니다. 앞서 개항 이후 갑신정변, 임오군란 등 잇달아 일어나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94년에 일어난 농민전쟁이었습니다. 이는 동학교주 최제우에 대한 교조신원운동 이후 동학의 조직과 이념이 뒷받침되어 고부지역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이 첫걸음이었습니다. 그 뒤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이 전라도 무장에서 봉기하여 일어난 1차 농민전쟁 과정은 고부(오늘날 정읍시) 일대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교재 287-288쪽). 이렇게 발발한 농민전쟁은 전주 입성과 화약, 전라일대의 집강소통치, 청일전쟁, 2차 농민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연결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줌인한국사’에서는 민왕후(명성왕후)를 다룬 드라마, 뮤지컬 등을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교재 294쪽 참고). 민왕후는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있었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반도를 차지하려 하였지만, 러시아가 군사적 압박을 가하여(삼국간섭) 이를 저지했습니다. 이에 고종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하였고, 일본은 반일적인 태도를 취하던 민왕후를 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와 뮤지컬 등에서는 민왕후와 고종 등에 대해 지나치게 미화하고 영웅화하려한 점은 역사적 평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11강 ‘대한제국의 좌절과 일제의 한국 강점’에서는 먼저 대한제국의 성립과 관련된 현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308-309쪽). 고종은 을미사변이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여 일제가 왕권을 약화시키려고 시행한 여러 제도를 되돌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궁궐로 돌아와 자주독립국을 선언하라는 여론이 들끓자 1897년 2월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을 택한 것은 외국 공사관들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황제즉위식을 갖고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했는데, 즉위식을 한 곳이 바로 환구단이었습니다. 본래는 환구단과 황궁우가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황궁우는 사라지고 환구단만 조선호텔 한 구석에 놓여 있습니다. 고종은 대한제국 수립 이후 제국으로서의 면모와 자주성을 확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폈습니다.
1894년 농민전쟁 이후에도 민중항쟁은 계속되어 영학당, 활빈당 등의 활동과 외래자본이 침투한 광산, 철도부설지, 개항장 등지에서의 초보적인 노동자들의 항쟁이 있었습니다. 의병항쟁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무력항쟁이었는데,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국권이 침탈되자 더욱 본격화되었습니다. 의병항쟁은 호남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는데, 호남의병의 활동지였던 보성의 쌍산의소를 찾아가 봤습니다(교재 329쪽). 교재에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못했지만 양회일 의병장, 그를 이어 다시 일어난 머슴 출신 의병장 안규홍, 그리고 심남일 등이 이 일대에서 치열하게 활동하였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최근 안중근을 주제로 한 뮤지컬 영웅 등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중근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안중근은 한말 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힘쓰다가 1907년 연해주에 건너가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다가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한국특사로 들어와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체결했던 인물입니다. 고종과 일부 대신이 반대를 하자 일본군을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한 가운데 을사오적을 내세워 강제로 체결하였습니다. 나아가 1909년에는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병합한다는 방침을 결정했습니다. 안중근은 여기에 맞서 동양평화를 해치고 한국의 자주독립을 방해하는 적으로서 그를 쏘았습니다.(교재 322쪽 참조)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는데, 지금 이 시대에도 한번 살펴봐야할 의미 있는 글입니다.
12강 ‘일제의 식민지배와 민족해방운동의 발전’에서는 먼저 1910년대의 일제지배의 잔악성, 이에 따라 일어난 3.1운동의 현장을 다루었습니다. 3.1운동의 현장은 전국 방방곡곡이겠지만 서울에서 먼저 계획되고 첫 발걸음을 터뜨렸기에 서울 일대를 살펴보았습니다. 처음 3.1운동이 기획되었던 중앙학교, 독립선언서를 등사했던 보성사, 그리고 33인 대표들이 모였던 태화관, 만세시위가 울려 퍼졌던 탑골공원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1910년대 일제의 경제정책이라면 토지조사사업이 대표적이겠지만 1920년대는 산미증식계획입니다. 산미증식계획의 대표적인 지역은 만경강 일대였는데, 이후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많은 양의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대표적인 쌀 유출 지역은 바로 군산항이었습니다(교재 357-358쪽). 군산은 본래 작은 포구였지만 일제시기에 쌀 유출을 통해 큰 항구로 성장하였습니다. 지금도 군산에는 그 시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현장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이렇게 증산된 쌀보다 더 많은 양의 쌀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유출되었습니다. 당연히 조선인의 쌀 소비는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점이 식민지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일제에 강점이 되면서 국외로 건너간 대표적인 인물인 이회영을 다루었습니다(교재 347-349쪽 참조). 당시 많은 인물들이 만주와 연해주 등지로 가서 장기항전을 준비했는데, 이회영은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신민회에서 활동하다가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만주에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데 처분한 재산을 모두 투여하였습니다. 신흥강습소는 이후 신흥무관학교로 개편하였는데, 학비와 숙식비는 모두 이회영의 재산으로 충당하였습니다. 청산리, 봉오동전투는 여기에 힘입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문가 출신으로서 우리 민족이 어려웠던 시기에 기득권을 포기하고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다한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13강 ‘전시동원체제와 항일무장투쟁’에서는 황국신민화정책, 전시동원체제, 전시수탈, 여기에 맞선 노동자 농민운동, 비밀결사운동, 그리고 나라밖의 항일무장투쟁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시동원체제 가운데 가장 악랄한 종군위안부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활하시는 경기도 광주 퇴촌리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에는 기념관이 있어서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현장은 일제 총독부이 조선인을 동화하려는 정책들을 살펴보기 위해 독립기념관을 찾아갔습니다. 동화정책의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식민지교육정책을 이용하는 방법일 겁니다. 네 차례에 걸쳐 조선교육령을 실시하여 조선인에게 식민정책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들고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의식을 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황국신민화정책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속에는 황국신민서사를 들 수 있습니다(교재 381쪽, 401-407쪽). 독립기념관에는 황국신민서사를 새긴 비석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일제말기 독립운동 단체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다루었습니다(교재 397-401쪽 참조). 1990년대 초에 만들어져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던 이 드라마는 일제 강점기인 1943년 겨울로부터 한국 전쟁 직후인 1953년 겨울까지 10년의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강의와 관련해서 일제말기 몇 년의 시기를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에 차출된 여성과,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조선의용군이 되어 항일운동을 펼치거나 역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광복군에 들어간 인물이 주인공이어서 일제말기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14강 ‘해방과 분단’에서는 해방직후 자주적 건국운동, 미군정의 운영,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안과 신탁통치 문제, 남북협상, 한국전쟁 등이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역사의 현장으로서 남북협상과 관련된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남북협상은 평양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곳을 찾기는 어렵고 중심인물인 김구가 머물었던 경교장, 그리고 올라가는 길목인 임진나루, 그리고 이런저런 모습을 전시한 백범기념관 등으로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부수립이 되면서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 잘 아시듯이 1950년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한 달여 만에 낙동강전선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유엔군과 중국군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현장은 전국에 걸쳐 있었지만 거제포로수용소도 관련된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교재 434쪽). 휴전회담의 진행과 포로교환 문제가 함께 걸려있었고 포로수용소는 이념대립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포로교환 과정에서 미국은 포로 개인의 의사에 따르자는 ‘자원송환’을, 북한과 중국은 모든 포로를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자동소환’을, 이런 속에서 이승만은 일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아무튼 포로문제가 타협되고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휴전이라는 미봉의 형태로 전쟁은 막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 정권은 더욱 강화되고 분단은 고착되어 나갔습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시대적 흐름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 ‘서울1945’를 선택했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 그리고 김구, 이승만 등 우리가 잘 아는 인물뿐 아니라 중도파, 좌파들의 인물도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마지막 부분에 한국전쟁과 포로수용소가 나옵니다. 아무튼 분단, 나아가 전쟁으로 인해 세계적 냉전체제 속에서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15강은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대장정’이라는 제목으로 전쟁이후 지금까지의 우리 현대사를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이승만정권, 1960-70년대 박정희정권, 1980년대 5, 6공화국을 거쳐 21세기 초반까지 이르렀고, 한편으로는 경제개발, 민주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장으로서는 먼저 우리 현대사의 민권 승리를 이룬 중요한 4월혁명과 관련된 수유리 국립묘지를 선택했습니다(교재 442-444쪽). 1950년대 이승만은 분단 상황과 반공을 이용하여 독재체제를 강화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 개헌을 하여 이어나갔는데 결국 부정선거를 통해 권력유지를 하려하였고 여기에 저항하여 4월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사건의 전개과정도 2월 28일의 대구학생시위,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면서 발발한 3.15 1차 마산시위와 4.11 2차 마산시위 등을 거쳐 4.19로 나아가는 전개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국립묘지 내 기념관에는 이 같은 부정선거, 시위전개 등에 대한 전시물이 설치되어서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역사 현장으로는 오늘날 우리 민주화의 초석이 된 1987년 6월항쟁과 관련된 곳을 선택했습니다(교재 463-464쪽). 10.26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국민들은 민주화에 대해 기대를 했지만 다시 신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등장하면서 압살당하고 이에 민주화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1987년에 5공화국 대통령 임기의 종료를 앞두고 직선제를 쟁취하려는 국민들의 소망은 매우 컸고 이것이 6월항쟁으로 발발하였습니다. 6월항쟁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으므로 중요한 도시 길거리가 모두 6월항쟁의 역사 현장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서 6월 10일 국민대회가 개최되었던 정동 성공회대성당, 그리고 6월항쟁이 지속적이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명동성당 등을 중요한 현장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줌인한국사’에서는 1960, 70년대 국가홍보영화로서 제작된 팔도강산을 선택했습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나 역사 인물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 부부가 각지에 흩어져 사는 아들딸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일주를 하는 내용입니다. 가는 곳마다 각 지역의 명승지,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딛고 조국근대화를 내세워 눈부시게 발전하는 전국의 산업현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교재 450-452쪽 참조). 당시 박정희정권의 경제성과를 적극 홍보하려는 것이 목적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기를 얻은 것은 당시 일반 대중들이 잘 살고 싶어 하거나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군사정권이 여러 차례에 걸쳐 시리즈의 형태로 활용한 영화였습니다.
이상 근현대 역사현장과 사극과 영화를 통해 각각의 시기의 중요한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교재는 개설이기 때문에 하나의 역사현장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고 약간 언급된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역사현장은 구체적인 사건 전개와 더불어 한 시기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이번 특강에서는 이렇게 특화해서 비교적 상세히 다루었습니다. 더구나 사극, 역사소설 등은 역사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픽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개설에서 다룰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극은 대중들에게 매우 쉽게 다가가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흥미 있게 역사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교재 속에 담긴 큰 틀과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이 같은 현장과 드라마의 주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한국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의문이 있으면 메일(songcs@knou.ac.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 여러분, 한 학기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첫댓글 굵은 글씨 부분이 출석시험 내용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읽어 보니 내용 이해가 쉬워 올립니다.
이 학보특강 내용이 작년 2012년 기말고사 문제에 엄청 많이 출제되었네요. 한국사 막막했는데 언니 덕분에 의욕이 생겼어요. 감사합니다^^
그렇죠. 소래씨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