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국 24년째를 맞는 KBS-1FM(이하 1FM)은 사실상 국내 유일의 클래식 전문 채널이다.
CBS-FM의'아름다운 당신에게'(오전 9~11시)를 제외하면 다른 상업방송에선 거의 클래식을 틀지 않기 때문이다.
1FM은 음반 제작은 물론 FM콘서트.실황음악회,신작가곡 초연과 보급 등으로 악단에 적잖은 기여를 해왔다.
1FM은 공연장.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음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공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 구성과 진행을 음대 교수들이 맡았던 초창기에 비해 최근 1FM이 지나치게 부드러움과 가벼움을 추구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단적인 예가 올 봄 개편에서 선보인 '세상의 모든 음악'(오후 6~8시)이다. 크로스오버와 월드뮤직으로 퇴근길의 동반자가 되어준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물론 가벼움과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것은 클래식 방송의 세계적 추세다.
라디오를 본격적인 감상 수단보다 일상생활의 동반자로 여기는 청취 패턴의 변화 때문이다.
하지만 크로스오버와 편곡 위주의 선곡은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전곡 감상은 하루 10여곡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발췌곡이나 소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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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가을 개편 이후 KBS-1FM이 전문성 강화의 움직임을 보이면서 초심자와 매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의 특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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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들이 대부분의 진행을 맡고 있는 가운데 음악 전문가가 한 명 더 가세했다.작곡가 이경화(46.한양대 강사)씨가 '세계음악의 현장'(오후 8시~9시30분)을 맡은 것. 생존 작곡가의 최근작이 심심찮게 방송되는 이 프로의 특성상 전문가를 진행자로 초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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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을 맡아온 음반평론가 정만섭씨는 '명연주 명음반'(오후 2~4시.오전 3~5시 재방송)의 진행자로 자리를 옮겼다. 전곡 감상으로 정평이 나있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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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0년이 넘게 1FM에서 진행을 맡아온 음악평론가 김범수씨는 '명연주 명음반'에서 '음악의 향기'(오전 1~3시)로 시간대를 옮겨 모차르트 전곡 감상 등으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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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어들이 많이 듣는 심야나 새벽 시간대에 전곡 감상이나 바로크 음악을 집중 배치한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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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음악을 집중 감상하는'새아침의 클래식'(오전 6~7시)은 이른 아침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적잖은 고정팬들을 확보하고 있어 제작진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특화가 청취자를 끌어들인다는 당연한 진리를 일깨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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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재즈나 월드뮤직은 오히려 편성시간을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곡 감상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나있는 영국 BBC 라디오3은 매일 재즈에 3시간, 월드뮤직에 1시간을 할애한다.1FM에서 재즈 코너는 매주 1시간에 불과하다. 월드뮤직도 독립된 프로그램은 없고 크로스오버 위주로 선곡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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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욕심을 부리자면 선곡표 예고를'새 아침의 클래식'에서 전 프로그램으로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흥미 위주로 흐르기 쉬운 연주자나 에피소드 소개보다는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을 보강하고 본격적인 새음반 비평 코너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 중앙일보
프롬스 축제로 유명한 런던 로열앨버트홀. 오는 17일 이곳에서는 한 라디오 방송의 생일 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진다.
헨델의'사제 자도크'로 첫 방송을 시작한 지 10주년을 맞는 민영 상업방송'클래식 FM'(100~102㎒)이 그 주인공이다. 베르디의'개선 행진곡', 차이코프스키의'1812년 서곡' 연주에 이어 로비에선 마치 축포를 쏘듯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할 게 분명하다. 70년 전통의 클래식 방송인 BBC 3라디오의 3배 가까운 청취율을 자랑하는 채널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매주 7백만명에 가까운 청취자들이 '클래식 FM'(www.classicfm.com)을 듣는다. 영국인 5명 중 한명이 클래식 FM에 다이얼을 돌린다는 얘기다. 그중 평소에 록음악을 즐겨 듣는 25세 이하의 젊은이들도 1백30만명이나 된다.
지난 6월엔 영국 마케팅 협회가 수여하는'올해의 브랜드 개발상'을 받았다. 최근 휴대전화 신호음 서비스를 시작했고 내년 클래식 전문 MTV 채널까지 개국할 예정이다. 1995년부터 발행 중인 월간지'클래식 FM'은 클래식 잡지로는 세계 최대 판매부수(23만부)를 자랑한다.
음반 레이블도 만들어 지금까지 1백만장 이상의 CD를 판매했다. 음악회.오케스트라.연주자.교육 프로그램을 주최.후원하기도 한다.
10년 전 클래식 FM이 출범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은 얼마 안가서 이 방송국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계나 언론에서는 위대한 작곡가의 걸작을 한 악장씩 조각내 4분 내외로 틀어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지함의 몰락''저급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한 고급 예술''클래식의 리더스 다이제스트'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전곡 아닌 발췌 감상으로 작품을 불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클래식 FM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놀라는 눈치들이다.
로저 루이스는 8년간 음반업계와 팝 라디오에 종사하다 4년 전 클래식 FM 총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연설.뉴스.팝뮤직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도입해 많은 이를 청취자로 확보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런치타임 리퀘스트''7시의 부드러운 클래식''드라이브 타임''이브닝 콘서트''휴식같은 클래식'등. 클래식 음악의 배타성과 보수성, 엘리트적인 이미지에 정면 도전하면서 스트레스로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클래식으로 달래준다는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하지만 크로스오버 일색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클래식 FM은 인터넷으로 청취자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청취자가 뽑은 '팝 차트'가 매주 발표된다. 매년 설문조사로 뽑는'클래식 명예의 전당'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라흐마니노프의'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