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여행기(2)
새로운 숙소는 구 시가지의 한 가운데 있었지만 의외로 조용하였다.
게다가 내가 머무는 방은 구석방이었지만 3층이었기에
낮에는 방문을 열고 베란다에만 나오면 따스한 햇빛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러나 밤에는 온도가 뚝 떨어져 너무나 추웠다.
게다가 손이 얼어붙어서 기타를 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의 가전 제품점에 가서 전기난로를 구입하였다.
주변에 식당들이 많이 있었지만 별로 입맛에 맞는 식당이 없었고
게다가 매 끼니마다 밥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서
주변의 과일가게와 건과류가게에서 과일과 건포도 땅공 등을 사서
그것으로 식사를 대신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차분하게 티벳 탐색을 시작했다.
사실 티벳을 갈 때 아무런 책자를 들고 가지 않았는데
마침 내가 묶는 숙소가 무선인터넷이 되는 곳이었기에
여러 가지 많은 여행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첫날 방문하기로 한 곳은 티벳에서 가장 큰 사원이라는 드레풍 사원이다.
라싸 시내에서 소형 시내버스로 삼십분 정도를 가면 외각지대에 큰 산이 나타난다.
산 아래에서 약 40분 정도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되는 곳이다.
트럭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걷기를 좋아하는지라 걸어가기로 하였다.
나무도 별로 없는 황량한 산길을 뚜벅 뚜벅 걸어가니 산 중턱에 웅장한 사원이 나타난다.
드레풍 사원은 실로 많은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모습은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기에 일부분만 찍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뒷산의 모습이 황량하게 보이지만
여름에는 나무도 있고 풀도 꽤 무성하게 자란다고 한다.
이곳은 원래 달라이 라마가 머물던 사원인데
5대 달라이 라마 때부터 지금의 포탈라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바로 5세 달라이라마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달라이 라마는 14세니
5세 달라이라마는 대략 조선조 중기쯤에 살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사원의 옆에는 법륜을 돌리는 곳이 있고
왼쪽으로는 문화 대혁명 파손된 사원의 잔재들이 그냥 널브러져 있다.
60년대 후반에 불어닥친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엄청나게 많은 티벳 사원들이 파괴되고 수십만의 승려들이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윗쪽으로는 바위에 그린 탱화가 보인다.
줌을 사용해서 탱화를 좀 더 자세히 찍었다.
티벳 사람들은 이렇게 조금 평평한 바위만 있으면 탱화를 그린다.
그림 아래의 글씨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문자를 변형시켜 만든 티벳문자이다.
그리고 그 아래의 오색 깃발은 경전을 써놓은 다루쵸이다.
드레퐁 사원은 워낙 커서 내부를 다 둘러보려면
대충 둘러보는 데에도 서너 시간이 걸린다.
해가 뉘웃뉘웃 기울어갈 무렵, 구경을 마친 뒤에 사찰 앞 광장에서 트럭을 탔다.
티벳 전통모자를 쓰고 전통 복장을 한 할아버지는 마니차를 돌리고 있고
젊은 아가씨는 사진 찍는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뒤에 보이는 하얀 건물들은 모두 사찰의 일부이다.
드레풍 사원을 다녀 온 뒤에는 하루를 집에서 푹 쉬었다.
다음날에 방문한 곳은 라싸에서 두 번째로 큰 사찰이자
유명한 불교대학이 있는 세라 사원이다.
뒷쪽으로는 역시 바위에 그려진 탱화가 보인다.
저 산 너머에는 유명한 조장터가 있다고 하는 데 가보지는 않았다.
전날 숙소 근처에서 15원 짜리 모자를 하나 샀다.
모자를 쓰니까 더욱 티벳 사람처럼 보인다.
세라 사원의 불상이다.
이곳에서는 내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어야 한다.
중요도에 따라 가격이 틀리는데 여기서는 인민폐 20원을 주었다.
티벳의 불상들은 대체로 장식적이고 화려한 편이다.
그리고 불상 위에 여러 가기 색깔의 천이나 쇼울 등을 걸치기도 한다.
우아하면서도 매우 섹시한 자태의 보살상들이다.
모든 보살상들이 다 예쁜 옷들을 걸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각각의 손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이런 손 모양들을 전문용어로는 무드라라고 한다.
아직 배움 중에 있는 승려들이
불경을 가지고 서로 묻고 답하는 장면들이다.
불경을 질문할 때는 손뼉을 치거나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 하거나 등등
여러 가지 재미있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
약 1시간 남짓 이렇게 서로 경전토론을 하고 그런 뒤에 다시 강의를 듣는다.
세라 사원을 다녀온 뒤에 새해를 맞이해서
숙소에서 푹 쉬면서 가족들에게 전화도 하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여행 소식을 전하는 글도 올리곤 하였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려고 하니 이상하게도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몇 번씩이나 심호흡을 하였지만 여전히 무언가 불편하였다.
태어나서 숨을 쉬기가 힘든 것은 처음이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결국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현지의 한국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아마도 먹는 게 부실해서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단식을 48일을 할 때도 그런 현상이 없었다고 말했더니
이곳은 고산지대라 몸이 아주 힘들면 간혹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의 소개로 걸어서 20분 남짓 되는 한국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를 먹었다.
그날 밤에는 호흡곤란 증세가 전혀 없이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매일 한 끼는 밥을 먹기로 하였다.
이틀을 푹 쉬고 난 뒤에 이번에는
라싸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다니기로 하였다.
첫 번째로 가기로 하였던 곳은 간덴 사원.
옛날 키타로의 실크로드 음악의 제목으로 쓰였기에 귀에 익은 이름이다.
새벽에 5시 반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명상을 하고 나갔다.
조캉 사원에 가서 버스를 타고 간덴 사원에 도착하니 9시 반,
중국은 그 넓은 땅덩어리에도 북경에 맞추어 하나의 시간대를 사용한다.
그래서 이곳 라싸는 겨울에는 아침 9시 반이 넘어야 해가 뜨고
여름에는 밤 11 가까이 되어야 해가 지는 기이한 일이 생긴다.
서서히 동녘이 밝아오는 시간이다.
사원 입구에 많은 상인들이 손짓을 하면서 부른다.
파는 물건들은 대부분 사찰순례할 때 필요한 물건들이다.
간덴 사원은 상당히 높은 곳에 지은 사원이다.
뒤에는 산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다.
간덴이라는 말의 뜻은 도솔천이다.
이 사찰은 현재 티벳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겔룩파,
노란 모자를 쓰기 때문에 황모파라고도 하는데
이 겔룩파를 창시한 종꺼빠라는 사람이 지은 절이다.
종꺼빠의 제자로부터 달라이라마 제도가 시작되었다.
사원 한 쪽의 무너진 담벼락에서 사진을 찍었다.
수염이 점차 길어지고 옷도 꾀죄죄해지면서 점차 티벳인을 닮아간다.
다루쵸라고 부르는 오색깃발을 다는 순례자들의 모습이다.
티벳 사람들은 높은 산에 올라갈 때에는
불경이 쓰인 오색 깃발을 들고 가서 묶어놓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도 높은 곳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따라 저 멀리 하늘로 가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오색깃발을 다는 것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전통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무당집에서 사용하는 오색 깃발도 티벳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있다.
높은 산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야크소
그 옆으로는 자그마한 길이 꾸불꾸불 펼쳐져 있고
멀리 뒤쪽으로는 웅장한 산맥이 펼쳐져 있다.
길을 보니 갑자기 저 길을 따라 정처 없이 떠나고픈 마음이 생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숲속으로 나 있는 조그마한 길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설레면서 그 길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 일곤 하였다.
그러나 새벽에 라사에서 온 버스가 1시에는 출발을 한다고 해서
아쉬움을 달래면서 다시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둘러본 곳은 라싸 시내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여름 별궁이다.
티벳 말로는 노불링카라고 한다.
입장료는 엄청 비싼 데 그다지 볼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다른 곳에 비해 수령이 높은 나무들이 많아
여름이라면 참으로 시원하고 상쾌한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노불링카 한 가운데 있는 자그만 호수 속의 정자이다.
이 건물은 지어진 연도가 얼마 되지 않는다.
1950년대 중반의 건물로서 달라이 라마 14세를 위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 달라이 라마 14세는 인도의 다람살라 망명 정부에 있고
주인 잃은 건물만이 덩그러니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를 라싸 시내 구경을 하였기에 다음 날은 다시 먼 곳으로 나갔다.
역시 도착할 무렵에는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는 상태이다.
이곳은 11세기에 티벳 불교의 중흥에 큰 역할을 하였던
아시타라는 수도자가 수도를 하였던 자예르빠 동굴사원이다.
산 전체에 수 많은 자연동굴이 흩어져 있고
그 자연 동굴을 이용해서 만든 사원들이 몇 개 보인다.
약간 위쪽으로 올라가니 오샛깃발인 다루쵸가
정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하게 펼쳐져 있다.
영혼의 비상을 바라는 간절한 꿈들이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아무렇게나 걸려져 있다.
자예르빠 동굴 사원에는 역대로 많은 고승들이 수도를 하였고
지금도 자그마한 동굴 속에서 추위와 싸워가면서 외롭게 수도하는 승려들이 있다.
참고로 이곳은 해발 사천 수백미터이기 때문에 밤에는 엄청 춥다.
어느 자그만 동굴을 방문하니 수행자가 있어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동굴의 크기는 대략 두평 정도나 될까...
그 속에서 모포를 깔고 담요를 덮고 추위를 무릎 쓰고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밤 그 매서운 추위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이미 생각이 다 사라져버렸을까?
무슨 바램으로 저렇게 차가운 동굴에서 홀로 외로운 수행을 하고 있을까?
멀리 동굴 사원을 바라보면서
관광용 야크 소위에 타고 사진을 찍었다.
야크 한 번 타는 데에 5원,
이제는 티벳에서도 경치 좋은 데서는 이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멀리 동굴을 이용한 사원들과 자연 동굴들이 보인다.
멀리 아득히 산들이 펼쳐져 있고
산 길은 산 모퉁이 너머로 이어져 있다.
마치 아득한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로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저 순례자들은 영겁의 순례자로 보이고
나 또한 그들 중의 한 명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세속의 번뇌를 벗어던지고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과 끝없이 펼 쳐진 장엄한 산맥들 속으로 사라져간다.
내 가슴 속에도 뜨거운 순례자의 열정이 끓어오르고
귓전에는 천상의 음악이 아련하게 퍼지고
눈에는 눈물이 어른거린다.
그러나 사실 저 길을 돌아서면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거기서는 다시 장사치들, 손님을 부르는 버스차장들, 담배를 피우며 거드럼 피우는 운전수들이 있다.
아득한 영원의 세계는 사실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영원한 방랑자 너른돌
첫댓글 그림자 벗을아 걷는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지만...마음의 님을 따라 가고있는 나의길은 꿈으로 이어진 영원한길..방랑자여 방랑자여 기타를 울려라..방랑자여 방랑자여 노래를 불러라..오늘은 비록 눈물어린 혼자의 길이지만...박인희의 '방랑자' 노래가 어디선가 들려오는듯 하네요 ♬저 시방 나갈준비해야 되야서...낭중에 시간 날 때..감상문 올리지요사진속 푸른빛 하늘과 맑은 공기가 코를 뻥 뚫어주듯상큼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죠. 방랑자,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이지요.^^ 바이올렛님의 감상문이 궁금해집니다.^^
볼수록 멋진 사진입니다. 참으로 부럽네요 ^^
감사합니다.^^
너른돌님 모자 쓰신 모습이 정말 멋찌십니다 ^^ 진정한 멋쟁이 영원한 방랑자 !!!
ㅎㅎㅎ 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정말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하시다고 하니 저도 참으로 기쁩니다.^^
사진 속에서 보이는 하늘이 어쩜 그리 한결같이 맑고 푸르지요 그래선지 사진 속 풍경과 모습들이 더욱 선명하고 신비스럽게 보이네요.너른돌님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바라보자니 마치 제가 티벳,그 곳에 잠시 머물다 돌아온 듯 생생합니다.정성스레 올려주신 글 감사드려요.
정말 하늘이 맑지요. 있는 내내 구름이 거의 없이 맑고 투명한 나날들이었지요.
이렇게 잘 정리해서 보여주시니 여행할 자격이 있으세요나도 배워야지 ....
여행할 자격?^^ 감사합니다.
너른돌님 이렇게 중생들을 위해서 정성껏 사진과 글을 선사 해 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어떤 사진은 한참 보게 되는데 왜 그런지 나도 모른다는......
중생들을 위해서^^ 학무님께서 이런 말을 쓰시다니...
맨 마지막 사진은 분위기가 구도자의 길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확 나오더군요. 아아 다시 가보고 싶은 곳...
다들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계시는지요? 저는 아침에 차례를 다 지내고 난 뒤에 지금 잠시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의 피씨방에 와 있답니다.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세요.
와~멋진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주제넘은 말인것같지만 너른돌님의 표정이 한껏 깊어 지신것 같습니다
와우~~진짜 가서 보는것같은 느낌이 드네요.....눈이 오랜만에 호강 했습니다......사진이 어찌 그리 생생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