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의 최초의 흔적이 보인 것은 B.C. 7000년께이다. 그러나 현대 핀란드인은 그들의 직접 자손이 아니다. 1세기께 핀란드 만 남쪽에서 이주해 온 민족은 우랄어족의 피노우그리아어계 집단으로 추정되며, 우랄 산맥 서쪽의 볼가 강 유역에서 서쪽을 향하여 B.C. 500년 무렵 발트 해 연안으로 진출하였는데, 이들이 원핀인(Kantasuomalaiset)이다.
이들은 발트, 슬라브족과 접촉하여 그 문화를 흡수하고, 다시 게르만인과 조우하여 사회 제도와 생활 양식을 익혔다. 원핀인은 수오미족(핀란드)과 에스토니아족(에스토니아), 베프스족, 보프족, 리보니아족으로 분열해 갔다. 수오미족은 현재의 에스토니아에서 몇 개의 집단을 만들어 배로 북상하여 핀란드 남서부에 상륙하였다. 이 곳에서 선주민인 라프족을 쫓으면서 동쪽과 북쪽으로 퍼져 나갔고, 이 부족을 하메인이라 한다.
그 무렵 카렐리야인이 라도가 호 주변에 정착하였고, 곧 양자가 접합한 부분에 사보인이 발생, 이 곳에 3부족이 정립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견실한 하메인, 음악을 즐기는 카렐리야인, 밝고 쾌활한 사보인으로 부족적 기풍도 성장해 갔다. 이러한 원시 부족 시대의 핀란드는 동·서 2대 세력의 충돌의 장이 되었다. 바이킹 시대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러시아와 긴밀한 교류가 있었다.
2. 스웨덴 시대
스웨덴의 왕 에릭(Erik) 9세는 1155년 북방 십자군의 이름 아래 핀란드에 군대를 보내어 투르쿠에 근거지를 만들고 카톨릭을 전파하였다. 그후 1323년 핀란드의 남부는 스웨덴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스웨덴 왕 구스타브 바사는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3국의 칼마르 동맹에서 이탈,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루터교를 받아들였으며, 핀란드에서의 세력을 북방으로 넓히고 영내를 루터교로 개종시켜 나갔다.
스웨덴의 요한 3세는 1581년에 핀란드를 대공국으로 격상시키고, 구스타브 2세(Gustav II) 때인 1634년에 스웨덴 왕국에 합병되었다. 1640년에는 투르쿠 대학이 설립되었다. 그후 스웨덴의 세력이 약화되자 핀란드는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에 놓였다. 러시아는 핀란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고, 1721년에는 대북방 전쟁의 종결로 핀란드 영토의 일부를 양도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때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영국에 대한 대륙 봉쇄에 참가시키기 위해,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고 스웨덴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묵인하였다. 이에 1808년 출병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Alexandr I)에 맞서 핀란드는 선전하였지만, 스웨덴이 원병을 보내지 않아 전 국토를 러시아에 점령당하였다. 1809년 하미나 강화로 핀란드는 정식으로 러시아에 할양되었다.
3. 러시아 시대
러시아 황제는 핀란드 대공을 겸하였지만 핀란드의 자치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점차 러시아화가 강행되자 1904년 러시아 총독의 암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후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의한 제정 러시아 붕괴를 기회로 하여 그해 12월 핀란드는 독립을 이루었다.
4. 독립 시대
독립과 동시에 내전이 발생하였고, 내전 후 20년 동안 평화를 누렸으나 1939년 2차 세계 대전의 시작으로 다시 전쟁에 휩쓸리게 되었다. 소련의 침입을 막아낸 핀란드는 1941년 독일과 소련의 전쟁 당시 독일에 협력하여 소련과 싸우다가 1944년 소련과 휴전하여 전선에서 이탈하였다. 이로써 핀란드는 1947년 소련과의 강화에서 카렐리야 지방, 페시아모 지방의 할양, 항코 반도와 포르칼라 지구의 대여를 강요당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였다. 전후 핀란드는 소련과의 우호를 유지하며 중립 정책을 펴 나갔으며, 단기간에 놀랄 만한 경제 부흥을 이루어 냈다.
II. 자연 환경
핀란드의 공식 명칭은 핀란드 공화국(Suomen Tasvalta)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핀란드의 면적은 33만 3145km2이며, 이는 유럽에서 일곱 번째의 크기이다.
핀란드는 아이슬랜드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멕시코 만류와 발트 해의 영향으로 기후는 같은 위도상의 다른 나라에 비해 온화한 편으로 연평균 기온은 약 6℃이다.
핀란드의 총인구는 495만 5199명(1993년 기준)이고, 인구 밀도는 1km2당 약 15명으로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에 속한다.
1550년에 스웨덴의 왕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가 건설한 헬싱키(Helsingfors)는 1812년 핀란드의 수도로 지정되었으며, 50만 1527명(1994년 기준)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 곳에서 1952년에 제15회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었으며, 헬싱키 주위에 여러 큰 도시들이 집결해 있다. 에스포(Espo)는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헬싱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17만 9067명이 살고 있다. 탐페레(Tampere)는 북구 국가의 도시 가운데 내륙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는 가장 큰 도시이며, 17만 4861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투르쿠(Turku)는 1812년까지 핀란드의 수도였으며, 15만 9916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타아(Vantaa)는 헬싱키 주변 도시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인구 15만 9222명이 살고 있다.
핀란드는 국토의 약 70%가 숲이고, 15% 정도가 농경지, 거주지, 또는 도로이다. 호수는 전 국토의 약 9%를 차지하며, 2만 제곱미터가 넘는 크기의 호수가 18만 7888개나 된다. 핀란드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할리아툰투리(Haliatunturi)이며, 해발 1328m이다. 가장 큰 호수는 사이마아(Saimaa)로서 크기는 4400km2이며 이는 유럽에서 네 번째의 크기이다. 가장 긴 강은 케미요키(Kemijoki)로 길이가 552km이다.
핀란드 북위 70도 지점에서는 여름에 태양이 지지 않는 날이 73일,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끝없는 밤이 51일 동안이나 계속된다.
III. 정치
1. 개관
1917년 12월 6일 러시아에서 독립한 핀란드는 1919년 제정한 헌법에 따라 임기 6년의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다. 대통령은 6년 단임제로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고 법률을 승인하며, 주요 관리 및 법관을 임명하고 대외 정책을 결정하며 군의 최고 책임자인 군통수권자이다.
2. 정부와 의회
정부는 대통령과 각료 위원회로 구성되며,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총리와 각 부의 장관을 임명한다. 각료 위원회 아래에는 12개의 부서가 존재하지만, 일부 부서의 경우에는 다시 두 부서로 분화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각료 위원회는 총리와 17명의 각 부 장관들로 구성된다. 주요 사항은 각료 위원회에서 결정되고 세부 사항은 각 부 장관들이 직접 결정한다.
국회는 정원 200명의 단원제로 임기는 4년이며, 14개구의 선거구에서 비례 대표제로 선출된다. 국회는 대통령과 함께 입법권을 행사하며 정부예산안의 승인권과 정부 감독권을 갖는다.
핀란드는 이미 제정 러시아의 자치 대공국 시대인 1906년 보통 선거의 비례 대표제를 취하는 국회 개조에 착수하여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나라이다. 비례 대표제를 위하여 독립 이래 의회에서 1개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일은 없다.
3. 정당 현황과 지방 자치
핀란드의 정당은 10개로 대표된다. 1995년도 총선에서는 사회 민주당이 63석(득표율 28.3%), 중앙당이 44석(득표율 19.9%), 국민 연합이 39석(17.9%), 좌파 연합이 22석(11.2%), 스웨덴 인민당이 11석(5.1%), 녹색당이 9석(6.5%), 핀란드 기독교 연맹이 7석(3.0%), 핀란드 청년당이 2석(2.8%), 핀란드 지방당이 1석(1.3%) 등을 각각 차지하였다.
지방 자치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지방 의회는 비례 대표제로 주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며, 인구에 따라 17~85명의 의원이 선출된다. 지방 의회는 의장을 선출하고 행정부 요원들을 임명한다. 또한 의회의 여성 의석 수는 법에 의해 보장된다.
핀란드는 전체 국민의 약 300분의 1이 지방 정부의 직무에 종사한다. 지방 정부의 장은 의회에 의해 선출된다. 핀란드에는 병원, 학교 또는 지방 계획과 같은 분야에 있어서의 협력체인 지방 자치 단체 조합이 약 400개 있다.
4. 외교
핀란드의 외교 정책의 기본은 중립 정책이고, 북유럽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지리적 조건에서 우호 협력상으로 원조 조약을 바탕으로 구소련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친소·중립 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동·서간 균형 외교 노선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친서방 정책으로 선회하였고, 1992년 1월에는 43년 동안 지속되어 온 구소련과의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을 폐기하고 러시아와 새로운 선린 우호 조약 및 무역 협정·지역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1955년 UN(국제 연합)에 가입하였으며 북유럽 제국 중 스웨덴과 함께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바르샤바 조약 기구 어느 곳에도 가입하지 않고 중립 노선을 유지하였다. 1962년 EFTA(유럽 자유 무역 연합)에 가입한 핀란드는 1973년에 EEC(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였고, COMECON(동유럽 경제 상호 원조 회의)과도 경제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핀란드의 평화적 중립 정책은 1975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CSCE(유럽 안전 보장 협력 회의)의 헬싱키 선언에 의해 국제적으로도 인정되었다. 1991년에 EEA(유럽 경제 지구)에 가입하였고, 1994년의 국민 투표에서 EU(유럽 연합) 가입안을 통과시켜 1995년부터 EU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5. 우리 나라와의 관계
핀란드와 우리 나라는 1973년에 국교를 수립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의 양국 관계의 주요 관심사는 경제 협력과 무역의 발전·확대였다.
우리 나라는 핀란드에 있어서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교역국의 하나이다. 핀란드의 대한 수출은 1994년 14억 핀란드 마르카(Markka 2456억 원)에 달했으며, 1995년에는 20억 핀란드 마르카(3500억 원)를 달성하였다. 핀란드의 대한 수출 품목 중 절반 이상이 기술 집약적이거나 하이테크의 기계 장비들이다. 핀란드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는 종이 제품 및 제지 산업 기계, 조선 기자재 및 기술, 건설 및 광업 기계 장비, 생산 자동화 기술 및 장비, 지역 난방에너지 절약, 기초 금속 제품, 모피류, 휴대용 전화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가 핀란드에 수출하는 품목은 가전 제품, 사무 자동화 기기, 섬유 제품, 의복, 승용차, 선박 등이 대표적이다. 양국간의 관계는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분야로도 많이 늘어났으며 문화 교류도 활발해졌다. 또한 관광객들도 핀란드와 우리 나라를 서로 많이 방문하고 있다.
IV. 경제
1. 역사적 배경
핀란드는 18세기까지는 화전(火田)을 포함한 자급적 농업이 경제 활동의 근간이었고, 어업·수렵·제철을 포함한 수공업도 대개 농업 또는 농촌에 관련되어 있었다. 임업도 목(木)타르 제조와 돛대재(材)의 벌채를 위해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 이후 신대륙의 개발과 산업 혁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면서 1차 세계 대전까지 공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1917년에 독립하여 공화국이 되기에 이르러 해외 무역의 새로운 계기가 되어 1, 2차 세계 대전 20년 동안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특히 목재 및 종이 제품의 생산과 수출에서는 세계 유수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은 핀란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는데 생산 능력과 자원의 10분의 1을 잃고, 4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집과 땅을 빼앗겼고, 배상금으로 3억 달러 상당의 제품을 구소련에 지불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소련에게 배상금을 완제한 이후에는, 헬싱키에서 제15회 올림픽 대회 주최를 계기로 다시 경제가 활기를 띄었다. 이후 공업화는 한층 속도를 빨리하여 1980년대까지 꾸준한 경제 성장을 해 왔으나, 1990년 전후 구소련에 대한 수출의 정체로 중기에는 후퇴기를 겪었다. 최근에는 다시 회복세로 들어서고 있다.
2. 최근의 산업 경향
핀란드 전 국토의 약 70%를 뒤덮고 있는 삼림 자원을 토대로 한 펄프와 종이 산업, 목재 산업이 여전히 산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전체 수출의 약 80.9%를 차지하며, 전체 산업에서는 약 33%를 차지하는 캐나다에 이은 제2의 목재 산업 국가이다. 나무의 주종으로는 소나무(40%), 가문비나무(37%), 자작나무 등을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산성비 및 다른 나라로부터 건너온 산업 오염 물질로 인해 삼림 자원이 훼손받고 있다. 또한 농업의 구조적 변경으로 인해 삼림의 소유권이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넘어가고 있다.
핀란드의 금속 및 기계 산업 역시 중요한 산업 분야로서 전체 산업의 약 36%를 차지하고 있다. 금속 산업의 주생산품은 강철과 구리를 이용한 고도의 기술 집약적 생산품이며, 기계 산업의 주생산품은 농업 및 임가공 기계류, 지게차 및 전자 부품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 트럭, 특수 원양 어선, 쇄빙선, 석유 채취용 장비 등도 포함된다.
그리고 광산에서 나오는 구리, 니켈, 코발트 등의 비철금속이 수출의 약 9%를 차지하며, 석유 정제, 비료 및 제약 상품 등을 포함한 화학 산업은 수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핀란드의 전화 교환기, 무선 핸드폰, 텔레비전 등의 첨단 전자 상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장식 유리잔, 칼, 가구, 양말 등은 뛰어난 디자인으로 인해 국제 시장에서 높은 상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핀란드의 주요 기업으로는 전 세계에 추운 날씨에 적합한 가솔린과 디젤 연료를 공급하는 네스테 피트로케미컬 컴퍼니(Neste petrochemichal company)와 첨단 장비를 생산하는 바이살라 일렉트로닉스 컴퍼니(Vaisala electronics company), 무선 라디오, 전화 기기를 생산하는 노키아모비라(Nokia-Mobira) 등이 있다.
3. 경제 수준과 금융 제도
핀란드는 사회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가 혼합된 선진 경제국으로서 GNP(국민 총생산)는 약 836억 96만 달러이다. GNP의 원천은 주로 제조업, 무역, 금융업, 서비스업 등이다. 국가는 주류, 철도, 항공 및 오일 정제, 전기 등의 전매권을 가진다. 1990년대 들어와서 핀란드 경제는 성장률 감소 및 구조적인 실업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핀란드의 금융 시장은 1811년에 세워진 핀란드 중앙 은행에 의해 통제되며, 이 은행은 다른 은행들, 할인율 및 통화량을 조절한다. 중앙 은행의 운영은 의회에 의해 감독받으며, 중앙 은행 이외에 민영 상업 은행군과 연합 은행군 및 저축 은행군 등의 세 가지 은행 그룹이 있다.
핀란드의 통용 화폐는 핀란드 마르카이며, 핀란드 마르카는 다시 100페니(Penni)로 나뉘어진다. 오늘날 핀란드의 은행들은 대규모화되고 있으며, 새로운 은행업을 위한 정부 보조금으로 인해 헬싱키의 주식 시장 업무가 민영화와 은행 대리업자로 옮겨 가고 있다. 이 밖에 상당한 양의 보험 회사 및 국가, 은행 등의 대출 자금과 핀란드의 정치적 안정은 외국 투자자로 하여금 핀란드를 좋은 투자 대상으로 꼽도록 유도하고 있다.
4. 대외 무역
핀란드의 대외 무역은 한정된 국내 시장 때문에 핀란드 경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외 시장 확보는 핀란드 경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1961년 FINE EFTA협정을 체결하여 EFTA에 들어갔으며, 1973년에는 EEC와 특별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하였고, EFTA와 EC(유럽 공동체) 사이와의 EEA협정을 통해 유럽의 거대한 시장을 확보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EU에의 가입을 승인하여 1995년에 완전한 EU회원국이 되었다.
무역 대상국을 살펴보면 EC 회원국인 서독, 프랑스, 영국 등과는 수출 46.9%, 수입 46.5%, EFTA 회원국들과는 수출 17.0%, 수입 18.3%, EC와 EFTA 이외의 유럽 국가들과는 수출 13.6%, 수입 11.0%, 그리고 우리 나라, 말레이시아 등의 개발 도상국들과는 수출 12.4%, 수입 7.8%이고, 미국, 일본 등 그 밖의 나라와는 수출 12.4%, 수입 16.3% 이다. 총수입액은 180억 6100만 달러, 총수출액은 234억 7900만 달러이다.
V. 문화와 생활상
1. 언어
핀란드의 공용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이다. 핀란드어는 핀·우고르어족의 한 어파로서 에스토니아어와 헝가리어가 언어상으로 가장 가깝다. 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세계에서 약 2300만 명밖에 안 된다. 또한 중세 시대에 올란드 섬 및 핀란드 만과 보스니아 만의 해안선 지역이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스웨덴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 라플란드(Lapland) 지방에서는 라프어를 사용하고 있다.
2. 인종과 종교
핀란드에는 대부분이 파란 눈과 금발머리를 지닌 핀족이 살고 있으며, 그 밖에 스웨덴인, 사메족(라프인), 집시족이 살고 있다. 사메라고 자칭하는 라프인들은 주로 라플란드 지방에 살고 있으며, 대략 4400명이며 집시족은 주로 남부에 거주하며 대략 5500명 정도이다.
핀란드의 총인구는 490만 명밖에 안 되나 급속한 산업화와 농업의 기계화로 인해 수도 헬싱키를 비롯한 남부 지방의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서, 국토 전체의 15%밖에 안 되는 지역에 인구의 약 53.5%가 살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인구의 자연 증가율은 0.5%로 낮은 반면에 국외 이주가 많은데, 스웨덴으로의 이주자는 25만 명, 미국으로는 28만 명, 캐나다로는 20만 명 등이다.
종교는 복음 루터파 교회가 국교로 되어 있으나,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다. 국민의 90%가 루터파 교회, 1.1%가 동부를 중심으로 러시아 정교를 믿고 있다.
3. 생활상
오늘날 핀란드 국민의 계급간의 구별은 수입보다는 오히려 생활 양식의 격차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연금 및 의료 혜택, 실업 수당 등의 사회 복지 제도의 확충으로 극빈층이 감소하는 반면에, 신용 카드의 채무 증가로 인한 새로운 극빈층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핀란드인들은 열렬한 독서광으로 1년에 평균 17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며, 연극 및 텔레비전 시청 또한 인기가 높아 각 도시마다 극장이 있으며, 그 곳에서 아마추어 연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서적으로도 풍부한 핀란드인들은 주말마다 식당에 가서 탱고를 즐겨 춘다. 특히 핀란드인들이 애용하는 것으로 사우나(bastu)를 들 수 있는데, 토요일 저녁이면 사우나에서 일주일 동안의 지친 신체와 정신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한 후,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 전 국민의 생활 습관이 되어 있다. 이를 위해 임대 주택 및 자기집에는 사우나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새로운 집을 지을 때는 개별 사우나 시설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오늘날 이러한 핀란드식 사우나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대부분의 핀란드인들은 여름에 한 달, 겨울에 일주일의 휴가를 즐긴다. 겨울에는 일반적으로 2월에 있는 스키 강습 학교에 참가하는 것으로 휴가를 보내며, 여름에는 호수 주위나 다른 여러 지방을 여행하거나 친척들을 만나며 휴가를 보낸다. 최근에는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4. 축제
핀란드인들은 옛부터 여러 신들과 자연을 합치시켜서 숭배하는 고대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중세 시대 핀란드에 널리 퍼진 기독교와 만나면서 기독교적 축제 의식 속에 융화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1520년에 종교 개혁을 맞이하여 구교적 의식은 사라져 버리고 고대 의식은 아직도 일반인들 속에 여러 축제 형식으로 흡수되고 있다.
이러한 축제일로는 데시우스(Decius) 황제로부터 쫓겨나 246~447년 동안 동굴 속에서 잠을 잔 에페수스(Ephesus)의 일곱 순교자들의 전설을 기리기 위해 6월 27일에 행해지는 슬리피헤르 데이(Sleepyhead Day:잠꾸러기의 날, 우니케오포이보Unikeonp v , 부활절 전의 7주일 동안 행해지는 쉬로브 튜스데이(Shrove Tuesday:고해 화요일, 라스키아이넨Laskiainen), 풍요로운 생산과 번영을 기리는 세인트 존 더 밥터스트 데이(St. John the Baptist's Day:일명 본파이어스 앳 밋 섬머Bonfires at midsummer, 유한누스Juhannus) 등이 있다.
이 밖에 여전히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축제인 크리스마스(율루Joulu)가 있는데, 특히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 세계에 빠르게 전파된 핀란드식 크리스마스의 부산물이다. 현재의 산타클로스는 라플란드의 코르바툰투리(Korvatunturi)의 집에 거처하며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영원한 기쁨이 되고 있다.
5. 여성과 결혼관
핀란드의 여성들은 1906년에 유럽에서 최초로 보통·평등 선거권을 부여받았으며, 세계에서 최초로 의회 선거의 피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1950년대 이후 핀란드의 산업 구조는 급격히 변화되어 노동력의 과반수가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는 도시 복지 사회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회 변화는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를 확대시켰으며, 이로 인해 현재는 임금과 봉급 수령자의 과반수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 여성이 많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노동 시장에서의 성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40세 미만의 연령층에 있는 여성들은 같은 연령 그룹의 남성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해도 공공 부문이나 민간 부문 모두에서 남성 급여의 75%밖에 받지 못한다.
직업 훈련과 교육은 핀란드 여성 운동의 중요한 이슈가 되어 왔다. 1990년대에는 대학 재학생 가운데 과반수가 여학생이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는 아직도 남학생 수가 많고, 여학생들은 인문 과학 분야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 박사 학위 지원자의 약 절반이 여성이나, 대학 교수 중 여성은 10%에도 못 미치며 낮은 등급의 강사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1907년의 단원제 의회 구성을 위한 첫번째 선거 결과 상당수의 여성들이 국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총 200명의 국회 의원 가운데서 19명이 여성 의원이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여성 국회 의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1991년의 의원 선거에서는 200명 가운데 77명(38.5%)의 여성 의원들이 탄생하였다. 1926년에는 사회부 장관에 처음으로 여성 장관이 임명되었다. 1991년의 선거로 구성된 핀란드 정부에는 17명의 장관 중 7명이 여성이다.
핀란드의 가족 제도는 오랫동안 고대 농경 사회부터 유지되어 왔던 대가족 제도였다. 그러나 최근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아이들의 교육과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로 이주하면서, 또한 연금 제도의 실시로 노년의 경제력이 확충되어 노인들이 스스로 자기를 돌볼 양로원 및 보호소에 거주하면서, 이러한 대가족 제도는 사라져 가고 있다. 이렇듯 핵가족화는 핀란드 사람들의 결혼관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혼율의 증가와 일반적인 결혼과 같은 법적 위치를 지니는 보통법 혼인(common-law mariages)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 부모가 한 명인 가족은 전체 가정의 15%나 되며, 핀란드의 평균 자녀 수는 2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이 자신의 결혼 전 직업 경력 또는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여성의 결혼 적령기도 30세 이후로 옮겨 가고 있으며 육아나 가사일도 부부간에 동등하게 부담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다.
6. 인물
수세기에 걸쳐 많은 핀란드인이 세계의 과학 및 문화에 공헌을 해 왔다. 그 예로, 아르투리 비르타넨(Artturi Virtanen:1895~?)은 여름이 짧은 기후 조건에서 사료 및 목초를 저장할 수 있는 A.I.V. 저장법을 고안했으며, 미카 왈타리(Mika Waltari:1908~1979)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에집션 The Egyptian』을 썼고, 진 시벨리우스(Jean Sibelius:1865~1957)는 교향시곡 `핀란디아'를 작곡했다.
현재 핀란드의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 디자이너로는 마르쿠 피리(Markku Piri), 쿠카푸로(Kukkapuro), 레르피 팜로스(Rertti Palmroth), 변 웩스트룀(Bj n Weekstr ) 등이 있다.
이 밖에 국제적 명성을 얻은 영화 감독으로는 연 도너(J n Donner)가 있는데, 그는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과 라우니 몰베리(Rauni Mollberg)가 주연한 ‘The Earth is Sinful Song’을 제작했다.
7. 언론 매체
핀란드의 라디오 방송은 1923년에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1926년에 설립된 ‘수오멘 일스 라디오(Suomen Yleis Radio:YLE)’국영 방송 회사가 전 지역에 두 개의 공용어로 전송하고 있다. 이 회사는 3개의 전국적인 방송 채널과 10개의 지역 방송 채널을 가지고 있으며, 하루에 24시간을 방송하고 있다.
핀란드의 텔레비전 방송은 전부터 아마추어 방송을 해 왔으며 1995년에 설립된 헬싱키 공과 대학 내의 ‘테비시오 스타순(Tevisio Station)’과 1957년에 설립된 MTV가 YLE로 합쳐졌으며, 1964년부터는 YLE만이 핀란드 내의 방송 허가권을 부여받아 20년 동안 독점 방송을 해 왔다. 1985년에는 YLE, MTV, 및 `OY NOKIA Ab(TV3)' 등이 나누어 방송하는 새로운 체제로 되었으며, 1992년에는 MTV만이 홀로 텔레비전 방송을 하게 되었다. 현재 핀란드 내의 방송 채널은 4개이며, 이 밖에 케이블 방송 회사인 PTV가 있다.
핀란드어로 발행된 가장 오래된 신문은 1824년에 창간된 『우시수오미Uusi Suomi』이며, 최근에는 103개의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주요 일간지로는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발행되고 있는 『헬싱인 사노맷Helsingin Sanomat』이 있고, 이 외에 『리타 스노맷Lita-Snomat』 (석간 신문), 『아물레티Aamulehti』 (정치 신문) 등이 있다.
8. 스포츠
핀란드 사람들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데, 가장 인기 있는 겨울 스포츠는 스키이다. 특히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활강 스키가 유명하다. 가장 큰 스키 대회로는 매년 개최되는 핀란드 스키 마라톤 대회로서 1만 명 이상이 참가한다.
여름 스포츠로는 수영, 조깅, 사이클, 페스 팔로(pes pallo:핀란드식 야구), 자동차 및 오토바이 경주 등이 인기가 높으며, 아이스 하키는 전 국민이 좋아하는 스포츠이다. 이 밖에 골프도 인기가 높다.
9. 관광지
핀란드는 도로망과 버스 운행 체계가 아주 뛰어난 수준이다. 핀란드를 관광할 때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핀란드의 관광지는 크게 다섯 곳으로 나눌 수 있다.
남서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지역이고, 현대 경제 생활의 중심지이다. 수도인 헬싱키와 구수도인 투르쿠가 볼 만하다. 그 밖의 지역으로는 요트인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올란드( and) 섬과 투르쿠 군도, 아름다운 성으로 유명한 포르보(Porvo), 요트 경기 대회로 유명한 항코(Hanko), 국제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한 포리(Pori), 아름다운 목재 건물들로 유명한 라우마(Rauma), 올란드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아름다운 항구 마리에함(Mariehamn) 등이 있다.
호수 지역은 `핀란드의 심장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요 호수로는 사이마아(Saimaa), 페이옌느(P j ne), 바나야베시(Vanajavesi), 네시예르비(N ij vi) 등이 있으며, 호수를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며 배 안에서 즐기는 것이다.
보스니아(Bothnia) 지역에서는 보스니아의 해안과 서부 핀란드의 평야 지대인 바아사(Vaasa), 칼라요키(Kalajoki), 오울루(Oulu)가 유명하며, 바아사와 토리노(Torino)는 스웨덴으로 들어가는 중요 지점이다. 카우스티넨(Kaustinen)의 포크 뮤직 페스티벌은 이 지역에서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다.
동부 핀란드는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지역이다. 자연 그대로의 맑은 호수, 작은 강, 산림 지역으로 유명하다. 북부 카렐리아(Karelia)의 관광 명소인 콜리(Koli) 주변의 경치는 매우 아름답다. 카이누(Kainuu)와 쿠사모(Kuusamo)의 경치는 라플란드와 비슷하며 하이킹을 하기에 좋고, 겨울철에는 스키장으로
첫댓글 핀란드는 정말 존경할 만한 면모가 있는 나라입니다. 2차세계대전때, 독일과 소련의 흉폭함을 적절히 이용하고 외교상의 실수는 재빨리 수정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제 아이디도 그 장본인이었던 "만넬하임"원수의 이름을 땄죠..^ . ^;;
와 잘읽었습니다. 신용카드때문에 점점 채무자가 늘어나는것은 이나라나...핀란드나..같군요.^^;;
어디서 훔쳐왔는지 밝혀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