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 2장
개관,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의 씨앗, 종교적인 배교
<저자와 제목>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사기의 책명은 '쇼페팀'('지도자들' 또는 '재판관들')이다. (열두 명의)사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뜻을 지닌 '사사기'라는 제목은 이 히브리어 명칭에서 유래되었다. 여호수아가 죽고 사무엘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이 지도자들(재판관들)은 평상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법적인 문제점을 해결해 주고, 또한 적군의 침입할 경우에는 그들과 싸워서 몰아내는 일을 주도했었다.
사사기 자체는 저자에 대해서 밝히지 않는다. 이 책의 어느 곳도 저자에 대해서 암시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열두 사사들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들 및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여러 명의 저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사사기에 수록된 내용을 저술했을 것이다. 후대에 유대교 전승에 의하면, 사무엘이 사사기의 저자라고 한다. 이 견해는 상당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사기의 저자를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사건들의 연대>
사사기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은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주전 14세기 중엽 또는 13세기 말엽), 사무엘과 사울이 등장(주전 11세기 중엽) 하기까지의 기간에 일어난 것들이다. 이 책의 저술과 관련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는 이 책에 기록된 마지막 사건이 일어난 직후다. 곧 주전 11세기 중엽이다. 만약 삿 18:30에서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는 표현이 남유다 왕국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가리킨다면 사사기의 최종 형태는 바벨론 포로 시대 이전에는 저술(또는 편집)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십중팔구 사사기의 거의 대부분은 다윗 시대(주전 1010~970년)에 저술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사기에 머리말 부분에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거주하니라"(1:21)고 언급되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성읍을 주전 1003년에 점령했다. 그 이후로 여부스 족속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그 성읍에 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성경 구절은 소수의 여부스 사람들이 그 성읍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준다(예 삼하 24:16). 따라서 사사기의 내용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다윗 시대에 저술되었다는 견해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목적과 배경>
목적. 사사기의 종교적인 배교 행위의 결과를 보여주며, 또한 이스라엘에게 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 위해서 저술되었다. 만약 의롭고 경건한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면, 그는 백성을 하나님에게 인도해줄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차분한 분위기, 곧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마무리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사기의 거의 대부분은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여호수아 시대에도 그와 같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모든 시기에, 여호와에 대한 이와 같은 불순종은 지속되었다. 그 불순종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악화되었다.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여호와에게 등을 돌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또한 가나안 족속의 풍습을 받아들였다.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순환적 또는 반복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일종의 순환 형식으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사건마다 이스라엘을 점점더 깊은 타락과 배교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한다. 사사기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이스라엘은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다.
<역사적 배경>
사사 시대에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중대한 변천이 일어났다. 곧 후기 청동기 시대(주전 1550~1200년)가 지나가고, 주전 1200년 이후에는 초기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후기 청동 시대는 번영의 시대였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중기 청동기 시대에(주전 2100~1550년)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들이 독립된 국가들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후기 청동 시대에 그 작은 도시 국가들은 거대한 제국으로 대체되었다(예, 이집트 및 히타이트 왕국 등).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족속들은 외세로부터 어느 정도 괴롭힘을 받지 않으면서, 그 지역에서 존속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주로 산지에 살았으며 반면에 가나안 사람들은 대체로 평지와 지중해 연안에 거주했다.
후기 청동기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 전체에서 대격변이 일어났다. 이 지역에서 광범위한 파괴가 진행되었다. 고고학적인 증거 자료에 의하면, 주요 중심지들에서는 인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반면에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 산지 및 사막의 가장자리 등에는 인구가 늘어났다. 왜 그 당시 이 지역에 이와 같은 광범위한 파괴가 빚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육지와 해양 민족들의 이동'이라고 알려진 시기와 일치한다. 주전 13세기 말엽에, 이 민족들은 이집트와 충돌하게 되었다. 또한 이 민족들은 지중해 동쪽 해안지역에서도 소요를 일으켰다. 이와 같은 다양한 충돌및 싸움으로 말미암아, 초기 철기시대(주전 1200~1000년)는 일종의 '암흑의 시대'였다. 비로소 주전 1000년 경에야, 지중해 동쪽 연안의 모든 지역에서 사해동포적인 문화가 다시 꽃이 피게 되었다. 그 당시에 건설된 도시들과 주거지는 다시 후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들 및 주거지와 견줄 만했다.
<사사들에 대한 평가>
사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두 사람들도 미덕의 본보기를 보인 인물들은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처음에 기드온은 바알 제단을 허물고, 또한 그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는 등 용맹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그 이후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에 대해서 표적을 보여달라고 졸라댔다.
이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거나, 또는 적어도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기드온은 에봇을 만들었다. 그 에봇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악용되었다. 따라서 그 에봇은 기드온 자신과 기드온의 집안, 나아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무가 되었다(8:24~27).
삼손은 나실인 서약과 관련된 주요한 금지 사항들을 모두 위반했다(13:7; 참조, 민 6:1~21). 먼저 삼손은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마셨다(14:10). (이 구절에서 히브리어 명사 '미쉬테'는 특별히 술을 마시는 잔치를 뜻한다). 또한 짐승과 사람의 시체에 접촉했다(14:8~9, 15:15). 그리고 스스로 빌미를 제공해 주어,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의 머리털을 자르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16:17~19).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믿지 않는 블레셋 여인과 결혼했다(14:1~20). 나아가 적어도 두 명의 다른 블레셋 여인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16:1~4).
대체로 사사기는 사사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또한 이방 신들을 버리도록 이끌었다고 묘사하지 않는다. 분명히 사사들은 나중에 남유다 왕국에서 몇몇의 왕들이 여러 가지 개혁 조치를 취했던 것 같은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사들 가운데 오직 기드온 한 사람만이 단지 사역 초기에 이와 같은 노선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6:25~32).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 무렵에, 기드온은 이와 같은 행위와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8:24~27).
사사기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달리, 신약 성경에서는 기드온과 삼손 및 다른 사사들에 대해서 다소 이상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윗과 사무엘과 선지자들과 더불어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를 언급한다(히 11:33). "곧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히 11:33) 했다고 소개한다.
사실상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영웅들로 언급되는 이 사사들은 이젠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자신들의 신앙과 행위를 통해서, 그들이 항상 일관되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때때로) 사사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입증해주었다. 곧 그들과 그들의 믿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나라들을 정복하셨다. 하지만 사사기는 사사들이 지닌 성품의 다른 측면들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서, 사사기는 그 당시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져버리고, 그 대신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사들이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상태를 항상 개선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사사들의 책임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과 삶을 보여주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경건한 지도자가 진정한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여러 가지 결점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사들은 때때로 영웅적으로 행동했다. 사사기는 사사들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미화시키지 않는다. 사사기의 이야기들은 사사들 개인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역할은 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와 신실을 베푸는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주로 이방 민족들의 군대와 싸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을 통해서, 사사들은 자신들의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모든 종들은 각자 결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취약점을 지니고 있던 사사들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사용하셨다. 곧 불순종과 배교 행위가 지배하던 사사 시대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을 이루어 가셨다. 인간의 실수에 의해서, 하나님은 결코 방해받지 않으신다.
<핵심 주제>
1. 이스라엘 백성은 지속적인 배교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자신들의 존속을 위협받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모두 정복하지 못했다(1장).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약속의 땅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들을 책망하셨다(2:1~3, 20~2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부터 다른 나라로 포로로 잡혀가는 날이 올 것이다(18:30).
2.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대체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종 이방 민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또한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무질서가 판을 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속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언약을 어겼다. 그리고 가나안의 우상들을 숭배하며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2:3, 11~13, 17, 19).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뿌린 죄악의 쓴 열매를 계속해서 거두어야 했다.
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저버렸지만, 반면에 하나님은 자기의 신실함을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그들을 대적들에게서 구원해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공로나 회개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를 베푸시며(2:16, 18), 또한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기 때문이다(신 6:10~11, 창 12:7, 15:7, 35:12).
4. 사사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해서 배교 행위를 하는 것을 거의 막지 못했다. 오히려 사사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행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하도록 부추겼다. 사사들 가운데 주요 인물들인 기드온(8:24~27)과 입다(11:30~31)와 삼손(14~16장)도 스스로 심각하고 중대한 죄를 범했다. 오직 여자 사사인 드보라만이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4~5장).
5. 여호와의 목전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받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17:6, 21:25) 지도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경건한 왕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17:6, 16, 35:11, 49:10). 또한 경건한 왕은 어떤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셨다(신 17:14~20). 사사기는 경건한 왕이 없던 상황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인 무질서와 배교 행위에 빠졌는지 보여준다.
사사기 1장1절~36절, 2장10~23절
배교 행위의 씨앗, 종교적 배교 행위
배교 행위에 대한 전주곡: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쫓아내지 못한 사사기 머리말의 첫 번째 부분은 유다 지파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몇몇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들과 계속 전쟁을 하는 것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복 전쟁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했음을 가리켜 줍니다. 또한 여기서 몇몇 지파들은 정복 전쟁을 계속하지만 그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자신의 사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으므로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 했다고 지적하십니다
1절~21절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16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초기의 전쟁들 및 배교 행위로 자라게 된 씨앗>
여기서 이스라엘의 몇몇 지파들은 가나안 땅의 주민들과 다시금 전쟁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된 평화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여기서 유다 지파에게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역할이 주어집니다. 곧 유다 지파는 다른 지파들보다 먼저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던 족속들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연합합니다. 그들은 이 전쟁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길한 전조를 보여주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점으로서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인도할 새로운 지도자가 임명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앞으로 사사기의 이야기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 무질서한 상태와 배교 행위를 미리 넌지시 알려줍니다(1절).
<가나안 정복에서 열두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야곱이 죽기 직전에 자신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부터,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곧 야곱은 유다 자손에게서 장차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창 49:8~12).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족속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서로 연합을합니다. 두 지파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곧 유다와 시므온은 모두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창 29:33, 35). 또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영토 안에서 자신들의 기업을 물려받았습니다(수 19:1, 9). (2~3절)
'아도니 베섹'과 같이 가나안 땅에 있던 각각의 도시와 성읍마다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도니 베섹이라는 이름은 '베제크의 주인'을 뜻합니다.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6절)', 이것은 아도니 베섹이 다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적군의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관습은 메소포티미아의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서도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전에 아도니 베섹 자신도 이 관습을 실행했었습니다(5~7절).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두 지파는 모두 예루살렘의 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내는데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삼하 5:6~10). (8절). 갈렙은 기랏 세벨을 정복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가져온 다윗에게 사울 왕이 자기의 딸 미갈을 아내로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악사는 자기의 아버지에게 땅 이외에 또한 '샘물'도 줄 것을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신선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땅은 거의 쓸모없기 때문입니다(10~15절).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이름은 이드로 입니다(출 3:1).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과 겐 족속은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전에 모세는 자신의 장인 미디어 사람 루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민 10:29)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과 겐 족속이 서로 협력하는 것을 통해 모세의 말이 성취됩니다.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에 대한 또 다른 이름입니다(대하 28:15). (16절)
<가나안 전쟁때 정복된 성읍들>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에그론', 유다 지파는 블레셋의 중요한 성읍들 가운데 세 곳을 점령했습니다(수 13:2~3). 그러나 그 성읍들을 계속해서 평정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그 성읍들을 차지했습니다(18절).
'골짜기의 주민들은....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얼핏듣기에 이 말에는 위험 요인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상 불길한 조짐에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에게 등을 돌리는데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며, 또한 그들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삿 2:11~3:6).
1:18에서 언급된 블레셋 사람들의 세 성읍들은 산지의 평평한 지역에 있었습니다. 이 절은 이스라엘이 세 성읍들외에 다른 성읍들은 정복하지 못했다고 밝혀줍니다. 그리고 이 절은 이스라엘이 심지어 세 성읍들에 대한 통제력도 얼마 후에 잃어버렸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철 병거'는 평지와 지중해 연안에서의 싸움에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나안 산지에서는 별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철 병거를 갖지 못했습니다(19절).
'베냐민 자손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 두 번째로 언급됩니다. 이 언급은 27~36절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무려 여섯 번이나 나타나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에 만족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신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온전히 정복하고자 하는 열정이 부족했었습니다(21절).
22절~36절
22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배교를 예고하는 불안정한 정복>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북부 지역에서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처음에 그들은 벧엘에서 승리를 거둡니다(22~26). 하지만 여섯 지파들- 므낫세, 에브라임, 스볼론, 아셀, 납달리, 단 지파는 자신들의 기업으로 물려받은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27~36). 이 지파들에게 분배된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운데 북부 지역의 3분의 2에 해당합니다.
'요셉 가문', 사실상 요셉 지파는 없습니다. 요셉의 기업은 두 아들,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분할되었습니다(창 48:5~6). 므낫세 지파는 27절에서, 또한 에브라임 지파는 29절에서 언급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창 28:19). 이곳은 족장들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벧엘에서 처음으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야곱은 이곳에서 꿈을 통해 여호와에게서 계시를 받았습니다(창 28:10~19). 또한 여호수아가 맨 처음으로 벧엘을 정복했습니다(수 12:16). 아마도 아이 성을 함락시키고 나서 여호수아는 벧엘을 점령했을 것입니다(참조, 수 8:17). (22절)
유다와 베냐민 지파와 마찬가지로 다른 여섯 지파도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곧 므낫세, 에브라임, 스블론, 아셀, 납달리, 단 지파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 왔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그 대신 자신들과 함께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인 바알을 승배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온전히 섬겨야 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강제로 노역을 시켰습니다. 나중에 다윗과 솔로몬도 대적들을 이와 같이 부렸습니다(왕상 9:15).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에 속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산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단 지파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따라서 마침내 단 지파는 북쪽으로 옮겨갔습니다(삿 18:1). (27~34절).
2:10절~23절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수아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 그림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바뀝니다. 여호수아의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신 일을 포함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겠더라'고 언급됩니다(10절).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
'이스라엘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를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이 표현은 사사기 전체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또한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의 왕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 표현은 열왕기상하에서도 여러번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에게 등을 돌리는 성향을 보여줍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몇몇의 경건한 지도자들(통치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가까스로 이방 민족들의 타락한 종교와 문화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으로부터 건짐을 받았습니다(11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 하신 것과 같아서',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여호와는 그들을 대적들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고 진지하게 주의를 주셨습니다. 또한 여호와와는 이 대적들(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와 덫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에 불순종 하던 이스라엘에게 고통과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통해서, 여호와의 이와 같은 경고는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15절).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비록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사사들의 주요 역할은 군사적인 것이었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원하시려고 사사들을 보내셨습니다(16절).
'음행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져버리고 다른 이방 신들을 따라간 것은 음행을 한 것으로 비유적으로 표현됩니다. 이 비유적인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음란한 행위를 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호세아의 사역은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호 1~3장). 여호와에게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그들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며, 또한 그들에게 꼭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기 때문입니다(17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왜냐하면 여호와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들에게 내어주신 다음 여호와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이 대적들에게 더 이상 압박과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그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18절)
'이 백성', 문자적으로 이 용어는 '이 나라'를 뜻합니다. 히브리어 명사('고이')는 원래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대체로 구역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가리킬 때 '백성'이라고 언급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이 나라'라는 표현에는 경멸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이 표현은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에게 혐오감을 품고 있으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제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여기시는 것입니다(20절).
'나도....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여호수아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했습니다 .이 절은 하나님의 그와 같은 경고의 말씀을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이 경고의 말씀은 삿 2:23에서 실현됩니다.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21~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