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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大興寺)는 전라남도 해남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번지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유서깊은 사찰로 .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 이며, 해남.목포.영암.무안.신안.진도.완도.강진 등 8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한다.
절의 기원은 426년 신라의 승려 정관(淨觀)이 창건한 만일암(挽日庵)이라고도 하고, 또 544년(진흥왕 5)에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도 하며, 일설에는 508년(무열왕 8)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승이 중창(重創)했다는 등 여러 설이 있으나 모두 확인할 길이 없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거느린 승군(僧軍)의 총본영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604년(선조 37) 서산이 자신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전한 후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대흥사는 근대 이전 대둔사로 불리었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大興寺)로 정착되었다.
<통도사 백련정사 3寺 순례 동행>
대흥사에는 일주문이 두개 있다. 매표소를 막 지나면 첫 번째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을 지나면 2㎞에 달하는 진입로에는 아홉 굽이 숲길로 이어져 있어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 불리는데 측백나무와 편백나무가 양쪽 빽빽이 들어서 있다. 계곡을 따라 터널 같은 숲길 오른쪽에 “서편제 촬영지 유선여관”이 오른쪽에 있다. 오솔길을 따라 약 30분가량 걸어오면 두 번째 주차장과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우리 일행은 관광버스를 이용하였는데 길이 협소하여 첫 번째 일주문에서 두째 일주문까지 약 10분가량 소요 되었다.
두 번째 일주문
부도(浮屠)전
피안교를 지나 두 번째 일주문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나지막한 담장 안에 다양한 모습을 갖춘 부도(浮屠)와 탑비(塔碑)가 모두 80여기(부도 54기와 탑비 27기 )에 이르고 있었다. 이 부도전 속에는 승병 서산대사의 고혼이 잠들어 있고,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 모셔진 비석과 사리탑 이다.
서산대사부도
서산대사부도는 부도전 내에 건립되어 있다.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구비한 석조부도로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고 부도의 전체 높이는 2.7m이다.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팔각원당형 석조부도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중대석과 상대석의 동물장식, 옥개석의 전각에 표현된 용(龍)과 상륜부가 장엄 하다.
일주문에서 해탈문 가는 길
(양산 통도사 백련정사 도반님들과 동행한 친구 분들)
해탈문을 들어서면 세상에서 찌든 속세의 모든 업으로 부터 벗어 난다고 한다.
해탈문
부도전을 지나 대흥사에 들어서면 사천왕이 아닌 해탈문이 순례자를 맞이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 불이문(不二門) 즉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 서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건립된 대흥사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있다. 대흥사 해탈문에는 특이하게 사천왕상이 없다. 사천왕상이 없는 이유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지 않다.
양산 통도사 백련정사 도반님들
해탈 문에 들어서서 오욕칠정( 五慾七情)에 물들고 세상에 찌든 속세의 모든 업을 씻고 안락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해탈 문을 나온다. 확 넓어진 광장 뒤쪽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모두 발길을 멈춘다. 그저 가슴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멍하기도 하고, 한 참이나 지나서 탄성이 터진다. 울창한 여름 숲에 가려서 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능선이 초여름에 완연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두륜산(頭崙山-703m) 자락에 포근하게 감싸진 대흥사의 전경은 신선이 사는 곳 같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방문 코스를 잘 잡아야 한다.
순례코스
범종각 → 침계루 → 대웅보전 (명부전, 응진당, 백설당, 대항각, 청운당) → 가허루 → 천불전(봉항각, 용화당, 세심당, 동국선원) → 동다실 (무염지) → 사리탑 → (정행당, 보현전, 문수전, 대광명전, 수심당, 적조당, 요사채) → 호국문 → 표충사 → 표충비각 → 초의선사 동상 →성보박물관(청허당, 초의관) → 산내 암자(일지암)
대흥사는 일반 사찰과 특이하게 가람 배치가 되어 있다. 가람을 가로 지르는 금당계곡천(川)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다른 절에서 보기 힘든 서산대사의 표충사와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서선대사의 유물관 배치 영역이 반을 차지 한다. 방향을 좌측으로 잡아 금당천을 따라 5분가량 돌담을 끼고 걸어면, 침계루를 지나 대웅보전 앞에 순례자의 발길이 멈추어 진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大雄寶殿)
석가모니 부처님 오른쪽에 서방(西方)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이며 조상의 극락왕생과 내생(來生)의 행복 직결되는 아미타 부처님과 왼쪽에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이며 고통 받는 병자나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는 자비의 약사여래 부처님의 삼세불(三世佛)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大雄殿)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한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삼세불(三世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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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백련정사 원산 스님과 신도회장 신백련성 회장(사진 왼쪽)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백설당, 청운당, 대향각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에서 참배를 마치고 운장대에서 경전을 본듯한 후 각 전각에서 참배를 하고 다시 되돌아 나와 금당천을 건너나와 왼쪽으로 담장을 끼고 돌아가 층계를 올라가면 연리지가 왼쪽에 있다.
운장대
주로 전각안에 있는데 특이하게 밖에 있다
윤장대(輪藏臺)는 불교 경전을 넣은 책장에 회전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보관대이다. 각 면에 8개의 문이 있는데 동쪽 문에는 빗살무늬창살, 서쪽 문에는 꽃무늬창살이 조각되어 있고, 내부는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보관할 수 있다. 아랫부분에서 바닥 상부까지는 팽이처럼 점점 경사진 모양으로 판목을 대었으며, 한 쪽 모서리에 횡목 손잡이를 마련, 경장을 돌릴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윤장대는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장치이다. 이를 한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하며, 또한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진다. 사찰마다 틀리겠지만 삼짇날(음력 3월3일)과 중양절(음력 9월9일)을 ‘윤장대 돌리는 날’로 정해 신도들이 돌려보며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스님이 식재(植栽) 하셨을까?. 보통 사찰내서 볼 수 없는 하트 모양 이다
화목한 夫婦나 사랑하는 男女 사이를 연리지(連理枝)같은 사이라 한다. 이곳 연리지(連理枝)는 800년 수령에 보기 드물게 한 나무의 가지가 다른 나무의 가지와 맞닿아 결이 서로 통한 것이어서,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행복하게 보여 한참 발걸음을 멈추었다.
천불전(千佛殿)
연리지(連理枝)을 지나면 바로 대흥사에서 전설과 이야기가 많은 천불전이다.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항각, 세심당, 염화실 ,동국선원, 종무소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또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휘어진 자연목으로 만든 문턱을 넘어 짧은 통로를 지나가면 천불전
중앙 삼존불은 목불로써 중앙에는 석가모니불, 좌우보처에는 문수. 보현 보살상을 모셨으며 千佛이란?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거쳐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으로 화장세계를 이루고 있다
천불전(千佛殿)과 이야기
이곳 千佛殿에 봉안된 천불상은 1813년(순조 13년)에 완호윤우선사(玩湖尹佑禪師)께서 千佛殿을 중건하시고 和順 쌍봉사 화승(畵僧) 풍계대사(楓溪大師)의 총지휘로 경주 불석산에 나오는 옥석(玉石)으로 10명의 대둔사(현대흥사)스님들께서 직접 6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완성한 千佛로서 그 조각 자체가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정교함과 신비스러움이 더한 천분의 부처님 이다.
경주에서 조성된 千佛을 2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순조 17년(1817년) 정축(丁丑)11월 18일 경주 장진포를 출발하여 울산을 거쳐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둔사(대흥사)로 향하여 항해 도중 한 척의 배가 울산진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의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 에 표착 하였다 이 배에는 768여구의 옥 불을 실고 있었다.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 하려 했다. 그러나 이 불상들이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 현감 꿈에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대흥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현몽하자 현감은 사람을 보내어 사정을 확인한 후 그 다음 해 7월14일 대둔사(대흥사)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옥 불을 돌려보내기 아쉬워 불상 밑면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일본표해록”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千佛殿에 봉안된 옥 불상은 근세에도 그 영험을 보였는데 처음에는 가사(袈裟: 부처님과 스님들께서 입는 옷을 칭함)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경상도 신도님 꿈에 여러 차례 가사 불사를 해 줄 것을 현몽 하여 서둘러서 가사를 만들어 입혀 드리게 되었다.
불상은 높이 25㎝ 안팎의 소형불상이며, 중앙 목조삼존상 뒤쪽으로 항마촉지인을 결한 석조 석가여래삼존상이 천불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다. 천불전에 봉안된 옥불상은 근래에도 그 영험을 보였는데, 경상도 불자들의 꿈속에 현몽하여 ‘가사를 입혀 달라’는 요구에 따라 4년마다 한번씩 가사를 입히고 있으며, 갈아입은 헌 가사를 지니고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고 전해진다(천불전 안내 표지판에서 옮김)
가람을 둘러보고 동다실에 앉아 무염지를 내려보며 차(茶) 한잔에 피로를 풀다.
동다실(東茶室)에 걸려 있는 서산대사의
生이란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생이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 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뜬구름이 쓰러 짐이라
뜬구름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 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눈덮인 벌판 걸어갈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왼쪽의 인연이란 詩가 마음에 닿아 기념으로
한 컷 하였슴.
차(茶) 한잔에 산사의 고요함과
맑은 분위기를 담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의선사를 마주하듯 차(茶)를 마시다 보면
마음이 부자로 될 것 같은 전통찻집 동다실이다.
대흥사에 있는 전통 찻집인 동다실에서 차를 한 잔 마시 면서 눈아래 보인 무염지애 찻잔을 띄우고
여여히 피어날 초의선사 다도와 서산대사의 구국혼이
대흥사를 찾는 여행객의 마음도 품어줄 것 이다 .
해탈문을 나오면 왼쪽으로 전각과 가람, 우측으로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서산대사의 나라사랑과 위대함을 접할 수 있는 곳이어서 청소년들에게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어 살아 있는 교육장 이라 할 수 있다.
오른편에는 서산대사의 사우인 표충사와 그 부속건물인 비각, 조사전, 의중당, 강례제, 명의제,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표충사 뒤편에는 대광명전과 보련각, 그리고 요사채로 이루어진 대광명전이 위치하고 있다.
(사진 왼쪽)
차(茶)로서 유명한 대흥사는 동다실내 찻잔과 선사들의 詩가 주로 판매되고 있었다.
(신기한 도자기 찻잔, 선사들의 詩를 감상하시는 통도사 백련정사 신도 분들과 동행한 친구 보살님들)
성도박물관과 서산대사
대흥사에 들어서면서 우측에 성보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서산대사의 나라사랑과 위대함을 접할 수 있는 곳이어서 청소년들에게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어 살아 있는 교육장 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관군이 패퇴하자 임금마저 의주로 피난하였는데, 73세의 휴정은 선조의 간곡한 부탁으로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국의 모든 승려들이 총궐기하여 싸움에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이곳 해남 대둔 사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의 휘하의 승군총본영이 있었으며, 선조대왕이 의주로 피난하자 그는 전국의 승군 5천 명을 모아 관군을 도왔는데, 사명은 강원도 금강산에서, 처영 스님은 전라도 지리산 에서,해안은 경상도에서, 영규는 충청도에서 승군을 일으켜 스승인 서산대사를 도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총력을 기 울렸다. 이듬해 승군은 휴정의 지휘로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다.
선조대왕은 평양탈환에 공을 세운 서산대사에게 “팔도 선교도총섭”(八道禪敎總攝)이라는 최고의 승직을 내리려하였으나 나이를 내세워 사양하고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총섭의 일을 부탁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했다.
1604년(선조 37)에 세속 나이 85세로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한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한 마지막 설법에서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스님에게 『삼재불입지처 만년불파지지 종통소귀지처(三災不入之處 萬年不破之地 宗統所歸之處-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렵혀지지 않을 곳)』이라며 자신의 가사(승려가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치는 법복)와 발우(바리때-스님들 식기)를 해남 대흥사(대둔사)에 두라고 부탁했다. 제자들은 삼년상을 치른 후 서산대사의 유물을 챙겨 대둔 사로 모여들었다. 먼저 영잠(靈岑)대사가 1607년(선조40년) 스승의 유품인 금의(錦衣)와 벽옥발(碧玉鉢) 등을 대둔 사로 가져 왔으며 이듬해 기일(忌日)에는 이 유물들을 받들어 놓고 재를 올렸다. 이어 진영을 모시는 영각을 짓고 1631년(인조9년)에는 당대의 명문장가 장유(張維)가 지은 서산대사의 비문을 새겨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1655년(효종6년)에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의 발우와 신발, 가사 등을 대둔 사로 가져 왔다고 한다.
초의 스님
대흥사 하면 일지암(一枝庵)과 다도문화를 부흥시켜 차(茶) 문화의 성인이라 일컫는 다성 초의 스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 귀의한 스님이면서도 초의는 당대 유가의 명사, 시인들과 폭넓은 교분을 가졌는데 다산과의 인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대둔사의 12대강사로 백련사에 있으면서 다산초당에 유배와 있던 다산과 가깝게 지냈던 혜장에 의해 만난 두 사람은 속세의 나이를 뛰어 넘어 깊게 사귀게 된다. 이 때(1809년) 다산은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어 있었으며 초의는 24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대흥사에서 700m쯤 위에 있는 일지암은 한국의 다성(茶聖)이라고 하는 초의선사(1786~1866)가 만년 40년 동안 다선일체(茶禪一體)를 행한 곳 이다. 다산 정약용, 완당 김정희 등 여러 석학들과 차와 학문을 주고받았던 스님은 차의 교과서가 된 동다송(東茶訟)과 다신전(茶神傳)을 지었다. 요즈음 ‘차인’ 이라고 자처하면 동다송 정도는 외워야 된다고 한다.
화재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곳에 1979년 초당과 자우홍연사(紫芋紅蓮社)를 복원 하였다. 초당 옆 계곡에 연못을 만들고 장주석이 아닌 단주석 여러 개를 포개 쌓은 위에 올린 누대 건물은 참 멋이 있다. 자우홍연사라는 현판이 걸린 누대에서 대둔산 계곡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는 정취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일지암 뒤 유천(乳泉)이란 샘물은 차 맛을 특급으로 만들어 일지암을 찾게 되면 주지스님께 친견하여 인사 드린후 드린고 차(茶)의 향기에 젖어 보면 속세에 내려오기 힘들다 한다. 당일 동행한 일행들이 200여명이 넘어 남아 있는 바쁜 일정 때문에 일지암을 방문하지 못 했다. 다음 기회에 일지암을 조용히 혼자 방문하고 싶다. 그래도 못내 아쉬워 불교TV에서 제작 방영한 '영상으로 보는 암자, 茶의성지 - 일지암" , 동영상으로 그 날의 기억을 되 살려 본다(동영상 첨부)
동다송(東茶頌)
朝鮮의 차를 칭송함
제 1장 동다송 본문 본주(東茶頌 本文 本注)
1. 생장개화 (一頌)
후황가수배귤덕 (韻)
后皇嘉樹配橘德 후황(后皇)이 아름다운 나무(차나무)에 귤나무와 같은 덕(德)을 갖게 하였으니,
수명불천생남국
受命不遷生南國 명(命)을 받아서 옮겨가지 아니하고 남쪽 나라에서만 사는구나.
밀엽투선관동청
密葉鬪霰貫冬靑 빽빽한 이파리는 싸락눈과 싸우며 겨우내 푸르르고,
소화탁상발추영
素花濯霜發秋榮 흰꽃은 서리에 씻기어 가을 정취를 빛내누나.
고야선자분기결
姑射仙子粉肌潔 고야산(姑射山)에 사는 신선(神仙)의 살결 같이 희고 깨끗하며,
염부단금방심결
閻浮檀金芳心結 염부제(閻浮堤)의 단금(檀金)같은 황금빛으로 꽃술을 맺었구나.
다수여과로
茶樹如瓜爐 차나무는 과로(瓜蘆)와 같고,
엽여치자
葉如梔子 잎은 치자(梔子)와 같고
화여백장미
花如白薔薇 꽃은 백장미(白薔薇)와 같고
심황여금
心黃如金 꽃술은 황금과 같아
당추개화
當秋開花 가을이면 꽃을 피워
청향은연운
淸香隱然云 맑은 향기가 은은하더라
주(註)
① 후황(后皇):황천후토(皇天后土)의 줄인말, 즉 천지의 신,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를 말한다.
② 고야산(姑射山):장자(莊子)의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보면 고야산에 신선이 사는데 살결이 처녀같이 곱고 희다고 하였다.
③ 염부단금(閻浮檀金):지도론(智度論)에 보면「염부주(閻浮洲)에 큰 숲이 있고 그 숲 가운데 하천이 있고 그 밑바닥에 사금(沙金)이 있다. 이를 염부단금이라고 한다」 그 빛깔은 적황색(赤黃色)이다.
④ 과로(瓜蘆):고로(皐蘆), 과라(過羅), 물라(物羅), 고등(苦등)이라고도 한다. 나무이름. 우리나라의 고로수와 같은 나무로 차나무와 비슷하다.
⑤ 치자(梔子):나무이름. 상록수로 잎이 차나무 잎과 비슷하다. 약초로 쓴다
⑥ 백장미(白薔薇):꽃나무, 장미과에 속하는 것으로 하얀 꽃이 핀다. 찔레꽃은 차의 꽃과 비슷하다.
해설(解說)
제1송
제1구:차나무가 지니고 있는 덕이 귤나무와 같음을 말했으며,(君子의 德을 상징)
제2구:차나무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자라며 옮겨가지 않는 것을 말했으며, (부녀자의 貞節을 상징)
제3구:차나무는 상록수(常綠樹)로서 겨울철 추운 눈보라에도 굴복하지 않는 지조가 있는 나무이며, (선비의 忠節을 상징 歲寒精神)
제4구:차나무의 꽃은 흰색이며 작은 백장미 같다고 했으며, (純潔을 상징)
제5구:신선의 살결같이 곱고 깨끗하며 아름답다고 했으며,
제6구:꽃술은 노란 황금빛을 띄었으며 염부제 단금천의 황금처럼 좋더라고 하였다.
원문주:차나무의 생김새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는데 차나무는 과로와 같고 잎은 치자잎과 같고 꽃은 백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과 같은데 가을이면 꽃이 피어 맑은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더라고 하였다. 제1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나무가 인간에게 베푸는 덕(德)과, 따뜻한 곳에서만 생장하는 성품과, 상록수가 가지는 지조 있는 품덕과 가을의 영화로움을 한껏 자랑하는 꽃의 소박함과 향기 등 차나무의 생김새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는 『도덕경』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고 한 노자의 말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물이 만물에 평등하게 그 품을 내어주는 생명의 어머니라면, 차(茶)는 선(禪)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라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근간을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신령한 나무가 바로 차이다. 이런 차를 달여 그 물을 깊이 음미하다 보면 정신을 가다듬게 되어 번뇌를 벗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며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선의 세계이다. 오늘날까지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후기 선승 초의(草衣,1786~1866)는 이러한 차의 맛을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했고, “차는 군자와 같아서 그 성품에 사특함이 없다.”고 그 덕을 노래했다. 그가 다도(茶道), 특히 우리 차의 빼어남에 대하여 시의 한 형식인 ‘송(頌)’으로 지은 책이 바로 유명한 『동다송(東茶頌)』이다.
후기
두륜산은 중국 곤륜(崑崙)산맥의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서 백두산(白頭山)을 이루고 그 영맥이 남으로 뻗어내려 소백산맥 자락에 지리산을 만들더니 영암의 월출산을 지나 한반도(韓半島)의 땅 끝에서 홀연히 일어나 쌍봉을 이루고 일어선 산이다. 이 때문에 백두산의 두(頭)자와 곤륜의 륜(崙)자를 따서 두륜산(頭崙山)이라 한다.
영상으로보는 암자
차의성지- 일지암 / 불교TV제작 (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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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9년 4월 4일 통도사 백련정사에서 己丑年 3寺 순례護國)를 가졌습니다. 호국(護國)선사 서산대사와 茶文化(초의 대선사)의 聖地인 해남 대흥사와 백련암, 미황사는 늘 가보고 싶었던 사찰 이었습니다. 동참의 기회를 주신 원산스님과 백련정사 신도회잘님께 감사 드리며, 순례 다녀온 후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이 바빠 정리하지 못하다 기억을 더듬어 옮겨 봅니다. 대흥사는 여름철과 가을철에 계곡을 따라 걷는 숲 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침일찍 출근하여 지월님의 순례기를 읽고 똑 같은 사찰을 가도 이렇게 찾아가는 사찰의 역사를 글로서 담을수 있다는게 놀랍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지식을 주셔서 다시 감사 합니다. 오후에 다시 들려 찬찬히 읽겠습니다
차의 고향 일지암에서 차를 나누고 싶습니다. 비가 오시면 더욱 좋고요. 감사 합니다 지월님,,,궁금 했었는데 순례기를 올려 주셨군요. 일지암 영상도 잘 보았습니다. 불교TV제작진선생님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대흥사와 일지암이로군요. 저는 아직 못 가본 곳입니다.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즐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