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족의 병력도 드러나 유전병 예방에 도움도
조선조 1850년 무렵부터 1900년까지 전국적으로 사망 인구가 급증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 기간에 전염병이 극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전염병의 이동 경로를 보자. 외국인 선교사, 상인 등의 이동에 따라 외래병이 서울에서 창궐한 경우 위로는 황해도, 아래로는 충남까지 확산되는데 충북 대다수 지역은 빠져 있다. 그 후 전염병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 호남으로 내려간 다음 북상해 평안도로 옮아가고 다시 내려와 경상도에 퍼진다. 이후 강원도로 북상한 전염병은 평안북도까지 올라갔다가 강원도로 내려와 머물다 북상하지만 함경북도 일부에서 멈춘다.
현대 의학이 등장하기 전인 조선 시대에 전염병의 발생과 이동 경로는 역학구조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지만 좀처럼 기록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만의 독창적인 족보(族譜)가 그러한 자료를 풍부하게 전해준다. 씨족의 족보에서 특정 기간에 부자, 부부 등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망하는 경우가 지역과 시기에 차이를 두고 나타났던 것이다.
족보 전문출판사 ‘가승미디어’의 이병창(53) 사장은“족보를 오랜 기간 다루다보니까 몇몇 씨족의 족보에서 갑자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망하는 기간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1850년 무렵에서 1900년까지의 경우 평균 나이가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기간에 전염병이 극심했다는 기록이 있다. 과거 본관이 거주지와 겹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염병의 분포와 확산 경로를 족보 연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게 이 사장의 주장이다.
족보 전문출판사 ‘엔코리안(www.n-korean.com)’가 올해 초 전자족보 형태로 제작한 신안 주씨(新安 朱氏) 대동보(大同譜: 가장 넓은 범위의 족보로 같은 시조 아래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갖고 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에 따르면 수록 인원 23만313명 중 남자는 15만6,646명(68%)으로 여자 7만3,667명(32%)보다 월등히 많다.
문중 구성원의 출생률은 1~3월에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평균 9.35%), 4~5월이 가장 낮았다(평균 7.66%). 사망률은 1~3월이 가장 높았고(평균 9.25%), 6월이 6.78%로 가장 낮았다.
나주 임씨(羅州 林氏), 선산 김씨(善山 金氏), 삼척 심씨(三陟 沈氏), 이천 서씨 공도공파(利川 徐氏 恭度公波) 문중의 경우도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1~3월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장흥 임씨(長興 任氏) 문중은 출생률은 1월, 사망률은 10월이 각각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조양 임씨(兆陽林氏)는 출생률이 1월에, 사망률은 5월이 가장 높았다.
엔코리안 최용석(38) 대표는 “족보에는 문중에 따라 출생과 사망이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임신 시기에 따라 아들과 딸의 출생률에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통계학적 의미를 가질 경우 의학적으로 접근하면 문중마다의 특이 질병력(歷)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유전적인 성격을 띠는 질병을 예방하거나 사고를 줄일 수 있고, 나아가 임신 시기를 조절하면 아들ㆍ딸의 출산 확률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족보를 살펴보면 청주 한씨(淸州 韓氏)는 평균적으로 키가 크고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머리와 목소리가 크며 문중에 따라 눈동자의 색깔이 각각 다르고 치아의 테두리도 차이가 있다는 게 족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병창 사장은“족보에는 사람의 DNA를 암시하는 정보도 담겨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면서 “앞으로 족보를 통해 연구하고 활용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족보는 씨족의 특성을 가늠케 하는 요소도 있는데, 청주 한씨나 신천 강씨(信川 康氏)가 그러한 예를 보여준다.
청주 한씨는 역사의 격변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가 청주 한씨이며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비(妃) 신의왕후 역시 청주 한씨다. 왕건 어머니의 친척인 시랑(侍郞) 한헌옹(韓憲邕)은 신라왕 김부(金傅ㆍ경순왕)의 시랑인 김봉휴를 만나 고려의 통일에 공을 세웠고 조선의 한 시대를 풍미한 덕종 비(소혜황후) 인수대비, 세조의 계유정난을 도운 한명회 등도 청주 한씨 사람이다.
신천 강씨는 족보상 유대민족과 같은 ‘오뚝이 문중’에 비유된다. 역사상 수많은 씨족이 멸문의 화를 당하면 아예 사라지거나 왜소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신천 강씨는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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