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모리)
오색 채운이 벽공에 어리더니, 요량헌 선악 소리 수궁이 낭자하며, 우편에 단계화요, 좌편에 벽도화라. 청학 백학 옹위허고, 공작은 춤을 추며, 앵무로 전어하여 천상선녀 앞을 서고, 용궁선녀 뒤를 따러 엄숙히 오는 거동 보든 바 처음이라. 심청을 반겨 보시고, 와락 뛰어 달려들어 심청을 부여안고,
“악아, 청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내가 너의 어미로다. 나도 본시 선녀로서 적하인간 수십 년의 너를 낳고 죽은 후으, 광한전 후토부인으로 상제의 명을 모아 오늘까지 지내더니, 내 딸 지극한 효성, 부친의 눈 뜨시기 위하여 이 수궁에 왔다기로 모녀상봉허쟀더니, 오늘 예서 보겄구나.”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는 세상에서 쓰지 못할 저를 낳고 그 길로 상사 나서, 근근한 소녀 몸이 부친 덕에 아니 죽고 이만큼 자랐으나, 모친도 못 뵌 것이 철천지한이옵더니, 오늘 예서 모시오니 저는 한이 없사오나, 외로우신 아버님은 뉘게 의지허오리까.”
(중모리)
옥진부인이 이 말 듣고,
“기특허구나, 내 딸이야. 이슬같은 네 목숨이 동냥젖 얻어먹고 이만큼 자랄 적으, 앞 못 보신 너희 부친 고생 오즉허셨으랴. 세상에서 못 먹은 젖 오늘 많이 먹고 가거라.”
“어머님이 가신 길은 머나먼 황천이요, 소녀가 죽어 온 곳은 깊고깊은 수궁이오라, 황천 수궁이 달렀삽기 모친도 못 뵐 줄로 주야장천 한이옵더니, 어머님 덕택으로 예 와서 모셨으니, 부친 이별은 허였사오나 모친 따러가겠내다.”
“애정은 그러허나, 내 딸 지극 효성 명천이 감동허사 환송인간 헐 것이니, 세상을 나가거든, 너희 부친 뵈옵는 날 날 본 말을 올린 후으, 전생에 미진한을 후생에 만나자고 세세히 아뢰어라. 유명이 다른 고로 사세가 부득하여 나는 올라간다마는, 내 딸 너도 부디 잘 가거라.”
눈물지며 이별헐 제, 문득 채운이 두르더니 공중으로 행허신다.
(중략)
(진양조)
일일은 황제께서 심신이 산란허시고, 잠을 이룰 길이 없어 화계에 배회터니, 명월은 만정허고, 미풍이 부동헌디, 강선화 꽃봉이가 완연히 요동허며, 사람소리가 두런두런. 천자님이 고이 여겨 동정을 살펴보시니, 뚜렷한 선인옥녀 꽃봉을 반만 열고 얼굴을 들어 엿보다가, 인적 있음을 짐작허고 경각에 몸을 움쳐 꽃봉을 닫더니마는, 다시는 동정이 없는지라.
(아니리)
황제 보시고 심신이 황홀하여 무한히 주저하시다, 가까이 들어가서 꽃봉을 열고 보시니 일위 소저와 양개 시녀라.
“너희가 귀신인다, 사람인다?”
시녀등 내려와 복지하여 여짜오되,
(중모리)
“남해 용궁 시비로서 낭자를 모시옵고 해상에 나왔다가 황극전에 범했사오니 극히 황송허여이다.”
천자님 내념에 옥황상제께서 좋은 인연을 보내심이라. 시녀등을 명하사,
“내궐에 옮겨 두고 모든 궁녀로 시위허되, 만일 꽃봉을 열고 보면 죽기를 면치 못허리라.”
날이 밝어 다시 보시니 낭자 부끄러워 아미를 숙이고 앉았거늘, 보고 다시 살펴보시니, 만고의 처음 보는 짝이 없는 일색이라. 황제 더욱 기뻐허사, 조회를 파허신 후 제신에게 의논헌즉, 제신이 복지주 왈,
“국모 없으심을 상제께서 알으시고 좋은 인연을 보냈사오니, 종사의 주부시요, 조정의 모후시라, 응천순민허옵시와 가례를 행케 허옵소서.”
(중략)
(중모리)
“주나라 때 태임 태사 이남덕화 장허시고, 우리나라 선대 황후 여중요순 송덕이오나, 신첩은 무슨 덕으로 만민국모 되었는지 부끄러운 주야 근심 천려일득허였사오나, 아뢰옵기 황송하와 섭유불발허옵더니, 하교가 계시오니 감히 주달허옵니다. 주 문왕은 첫 정사가 노자 안무허시옵고, 한 무제는 방춘화시 가긍헌 환과고독 사궁을 진휼허셨으니, 백성 중에 불쌍헌 게 나이 많은 병신이요, 병신 중에 불쌍헌 게 앞 못 보는 맹인이라 공부자도 일렀으니, 천하 맹인 다 모아서 주효를 먹인 후으, 그 중에 유식 맹인은 좌우에 모시어서 성경을 읽게 허시고, 늙고 병든 맹인이며 자식도 없는 맹인들은 황성에다 집을 주어, 한 데 모다 모아 두고, 요를 주어 먹이오면, 무고한 그 목숨이 전학지환 면헐 테요, 덕화만방 미칠 테니 깊이 통촉을 허옵소서.” 황제 듣고 기뻐허사,
“장허도다, 국모 말씀. 과인이 생각 못헌 바를 황후가 도우시니 만복의 근원이라. 소회대로 허오리다.”
(아니리)
이렇듯 황후를 칭찬허시고, 이튿날 즉시 하교허사,
“천하에 있는 맹인 궐내에서 백일잔치를 허되, 방방곡곡 지시문에 국경연으로 기송하라.”
이렇듯 어명이 나리시니, 각 성으로 차사들을 보내는디,
(중략)
(아니리)
이렇듯 방아 찧고, 밥 얻어먹고, 사랑방에서 편히 잘 자고, 아침밥까지 얻어먹고 또 황성을 올라가는디, 또 석양을 당도하여 한 모롱이 돌아드니, 어떠한 여인인지,
“저기 가시는 게 심봉사시오?”
“거 뉘기오? 아, 그 이 근방서 나를 알 만헌 사람이 없는디, 괴이헌 일이로다.” “심봉사시먼 이리 좀 오십시오.”
여인을 따러가니, 집안으로 들어가 외당에 앉히고 저녁을 잘 대접헌 연후에, 여인이 다시 나와,
“봉사님, 내당으로 들어가십시다.”
심봉사 듣더니,
“아니, 여보시오. 내당으로 들어가다니? 거 이 댁 주인 유무는 모르지마는, 거 이 댁에 혹시 무슨 우환 있소? 나는 봉사만 되었지, 점도 못 치고, 독경도 못 허요.” “아니오. 그런 염려 말으시고 나를 따러가옵시다.”
심봉사 마지못해 따러가며,
“이것 암만해도 내가 여, 보쌈 당하는 것 아니라고, 여? 어찌 여, 위태위태허다.”
(자진모리)
내당으로 들어가니, 내당에 어떤 부인 시비를 부르더니 좌를 주어 앉힌 후에, 그 부인 허는 말이,
“당신이 분명 심봉사시지오?”
“어찌 그렇게 아십니까?”
“아는 도리가 있답니다. 내 성은 안가이옵고, 십 세 전 안맹허여 점치는 법을 대강 배웠삽기, 삼십오 세 금년이라야 방년인 줄 내 이무 알었으나, 간밤의 꿈을 꾸니, 일월이 떨어져서 물에 가 잠긴 것을 첩이 선뜻 건져내어 품에다 안었으니, 천상의 일월이란 사람의 안목이라, 내의 배필 날과 같은 맹인인 줄 알었으며, 물에 가 잠겼기로 심씨인 줄 짐작하와 당돌히 청했사오니, 첩이 비록 용렬하오나, 버리지 않으시면 평생 한이 없겄내다.”
(아니리)
심봉사 듣고 어떻게 좋던지 속으로 두부자루 터지는 웃음을 한 번 웃더니마는, “흐, 말이사 좋은 말이지마는, 그 그렇게 되기가 쉬우까 몰라?”
그날 밤 심봉사와 안씨 맹인과 동방화촉에 호접몽을 꾸었것다. 모든 근심 다 잊어뻐리고 잠시라도 즐기더니, 그날 밤 몽사가 괴이헌지라. 이튿날 일어 앉어 심봉사 걱정수심으로 한숨 쉬고 앉었거늘, 안씨부인 묻는 말이,
“우리가 백년가약을 맺인 후 첩은 평생 소원을 이뤘는가 허옵는디, 무슨 걱정이 있으신지, 첩이 도리어 불안허오이다.”
(중략)
(아니리)
이렇듯 애통허실 적으, 이날도 대궐문을 활짝 열어제쳐 놓고 각 영문 군졸들은 봉사들을 인도허고, 내관은 지필 들고 오는 소경 거주성명이며, 연세 직업 자녀유무와 가세빈부 유무식을 일일이 기록허여 황후 전에 올렸것다. 황후 낱낱이 받아보실 적으,
(자진모리)
각기 직업이 다르구나. 경을 읽어 사는 봉사, 신수 재수 혼인궁합 사주 해몽 실물 심인 점을 쳐 사는 봉사, 계집으게 얻어먹고 내주장으로 사는 봉사. 무남독녀 외딸에게 의지허고 사는 봉사, 아들이 효성 있어 혼정신정 편한 봉사, 집집이 개 짖키고 걸식으로 사는 봉사, 목만 쉬지 않는다면 대목장에는 수가 난다 풍각쟁이로 사는 봉사. 아들이 앉은뱅이라 지가 벌어다 멕이는 봉사. 그 중에 어떤 봉사 도화동 심학균디, 연세는 육십오세, 직업은 밥만 먹고 다만 잠자는 것뿐이요, 아들은 못 낳아 보고 딸만 하나 낳었다가 제수로 팔어먹고, 출천대효 딸자식이 마지막 떠날 적에 앞 못 보신 늙은 부친 말년 신세 의탁허라고 주고 간 전곡으로 가세는 유여터니, 뺑덕이네란 계집년이 모두 다 털어먹고, 유무식 기록에는 이십 안맹허였기로 사서삼경 다 읽었다 뚜렷이 기록이 되었구나.
(아니리)
심황후 낱낱이 읽어가실 적으 오죽이나 반가웠으며, 그 얼마나 기뻤으리오마는, 그러나 흔적 아니허시고 내관 불러 분부허시되, 맹인 성책 내어주시며,
“이 중에 심맹인이 계시거든 이 별궁으로 모시어라.”
내관이 영을 듣고 나가,
“심맹인! 심학규씨 있으면 이리 나오시오! 심맹인!”
심봉사 듣더니,
“심맹인이고 무엇이고 배 고파 죽겄구만! 술이나 있으먼 한 잔 주제.”
“아, 술도 주고, 밥도 주고, 떡도 주고, 집도 주고, 돈도 주고 헐 터이니 이리 나오시오.”
“거 실없이 여러 가지 것 준다. 근디 어찌서 꼭 해필 날만 찾으시오?”
“상을 줄지, 벌을 줄지는 모르지마는, 우에서 심맹인을 모셔오라 허셨으니, 어서 들어가십시다.”
심봉사 듣더니,
“상을 줄지, 벌을 줄지? 놈 용케 죽을 데 잘 찾어왔다. 내가 딸 팔어먹은 죄가 있는디, 이 잔치를 배설키는 날 잡어 죽일라고 배설헌 것이로구나. 에라! 내가 더 살어 무엇허리! 갑시다.”
주렴 밖에 당도허여,
“심맹인 대령이오!”
황후 자서히 살펴보시니, 백수풍신 늙은 형용 슬픈 근심 가득찬 게 분명한 부친이라. 황후께서 체중허시고, 아무리 진중허신들 부녀천륜을 어찌허리!
(자진모리)
심황후 거동 보아라. 산호 주렴을 걷혀버리고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 우루루루 달려나와,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한 번을 부르더니 다시는 말 못허는구나. 심봉사 부지불각 이 말을 들어노니, 황후인지, 궁녀인지, 굿 보는 사람인지 누군 줄 모른지라. 먼 눈을 희번쩍 희번쩍 번쩍거리며,
“에이? 아버지라니? 아니, 누가 날다려 아버지래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수삼 년이 되었는디, 누가 달다려 아버지래여?”
황후 옥루 만면하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여식 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심봉사 이 말 듣고,
“에이? 이게 웬 소리? 이것이 웬 말이여? 심청이라니? 죽어서 혼이 왔느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웬 말이여?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먼 어디 보자. 아이고 이놈의 눈이 있어야 보제. 아이고 답답허여라. 이런 놈의 팔자 좀 보소. 죽었든 딸자식이 살어서 왔다해도 눈 없어 내 못 보니, 이런 놈의 팔자가 어디가 또 있느냐?” 이 때의 용궁 시녀 용왕의 분부인지, 심봉사 어둔 눈에다 무슨 약을 뿌렸구나. 뜻밖에 청학 백학이 황국전에 왕래허며 오색채운이 두르더니, 심봉사 눈을 뜨는디, “아이고, 요 어찌 눈갓이 이렇게 근질 근질 근질 근질허고 섬섬섬섬허냐? 웟다, 이놈의 눈 좀 떠서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이놈의 눈 좀 떠서 내 딸 좀 보자 아!”
(아니리)
“아니, 여기가 어디여? 심봉사 눈 뜨는 바람에 천하에 있는 맹인과 각처 맹인들이 모도 눈을 뜨는디, 심봉사는 약이나 뿌려 눈을 떴지마는, 다른 봉사는 어떻게 눈을 떴는고 허니, 이 약은 용궁 조화가 붙은 약이라, 약 기운이 별전에서 쫙 퍼지더니, 방방곡곡으로 꼭 맹인 있는 곳만 찾아다니면서 모다 눈을 띄이는디,
(자진모리)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만좌 맹인이 눈을 뜰 제, 전라도 순창 담양 세갈모 띄는 소리라. 짝 짝 짝짝허더니마는 일시에 모다 눈을 뜨는디, 석달 열흘 큰 잔치에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간 맹인들은 저희 집에서 눈을 뜨고, 병들어 사경되야 부득이 못 온 맹인들도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헌 맹인도 노중에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
(휘모리)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어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홰내다가 뜨고, 성내다가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힘써 뜨고, 애써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일허다가 뜨고, 앉어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적거려보다가도 뜨고, 눈을 부벼보다가도 뜨고, 지어비금주수라도 눈먼 짐승은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는디, 그 뒤부터는 심청가 이 대문 허는 소리만 들어보아도 명씨 백여 백태 끼고, 다래끼 석 서는 디, 핏대 서고, 눈꼽 낀 데, 원시 근시 궂인 눈도 모도 다 시원허게 낫는다고 허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