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도심 속 켄싱턴 공원의 어린이 놀이터. 놀이터는 자연 속에서 흙을 밟고, 언덕을 뛰어 다니고, 바위를 타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없는 도시 어린이들의 건강한 신체활동과 지능 발달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도시에서 탄생한 놀이터
지금도 시골은 놀이터의 개념이 거의 없다. 산과 들, 숲, 개울에서 나무를 타고 물놀이를 할 수 있으니 놀이터가 따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놀이터의 발달은 도시에서,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 사는 아이들의 건강과 정서적 문제가 부각이 되면서 첫 등장했다.
1907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도시는 어린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위험하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놀이터의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는 1859년 영국의 맨체스터에 처음으로 공공 시설물의 개념으로 놀이터가 등장했고, 1885년 독일에서 “모래 정원(Sand garden)”이, 그리고 1887년에는 오늘날 개념의 미끄럼틀, 그네 등의 기구가 들어선 놀이터가 샌프란시스코의 공원에 첫 선을 보였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놀이터는 공공 시설물로서의 개념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공공의 놀이터 디자인은 1930년대 덴마크의 조경가 쇠렌센(Søren Carl Theodor Marius Sørensen, 1893– 1979)이 디자인한 ‘모험형 놀이터’가 효시이다. 덴마크에서 시작된 공공의 놀이터는 런던과 미국으로 번져나가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놀이터의 진화
각 시대별로 놀이터는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조 프로스트(Joe Frost)박사는 자신의 연구 논문인 <미국 의 놀이터의 진화The Evolution of American Playgrounds>에서 다음과 같은 시대별 놀이터의 변화를 언급했다.
• 1880, 90년대의 놀이터: 모래 놀이터
매우 단순한 사각 공간 속에 모래가 놓여진 놀이터
• 1900~ 1940년대: 모델 놀이터
메리고라운드나 쇠로 만든 터널, 그네, 시소 등의 규격화된 놀이기구가 놓여진 놀이터
• 1940~1950년대: 모험형 놀이터
동굴, 정글짐, 다리 등과 같이 탐험과 모험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고안된 놀이터. 1943년 조경가 쇠렌센에 의해 디자인 된 덴마트의 도시, 엠드럽(Emdrup)에 등장한 ‘정크 놀이터’가 첫 선을 보인 후, 런던으로 전해져 전세계적으로 놀이터 디자인의 큰 줄기로 정착되었다.
• 1950~1970년대: 상상형 놀이터
로켓 모양의 구조물, 동물 형태의 미끄럼틀, 독특한 형태의 터널 등으로 구성된 놀이터로 화려한 색상과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형태로 디자인된 놀이터
• 1970~1980년대: 플라스틱 규격 놀이터
놀이터에서의 안전사고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고, 쇠로 된 재료를 플라스틱으로 교체하는 등의 안전을 강조한 놀이터
• 1980년대 이후: 현대적 복합 놀이터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고, 플라스틱 외에도 고무, 합성물 등의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안전과 상상력, 학습을 겸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된 놀이터
모험형 놀이터의 변형된 모습. 지금까지도 가장 보편적인 놀이터의 형태로 몸과 머리를 사용해 탐험을 즐기는 개념으로 디자인돼 왔다.
‘뛰지마시오’의 놀이터
놀이터의 발달에는 교육자와 철학자의 역할이 컸다. 독일의 교육자이면서 철학자인 프레데릭 프뢰벨(Frederick Froebel, 1782 – 1852)과 미국의 존 듀이(John Dewey, 1859 – 1952)는 어린이 놀이터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주장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놀이터는 어린이들의 ①신체활동, ②나이에 따른 단계별 행동발달, ③창의성을 발달시키는 자극제가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기구를 이용해 신체활동을 끌어내는 개념은 독일에서부터 발전됐다.
프뢰벨은 자신의 유치원에 직접 디자인한 기구를 설치했는데, 이 기구들은 동굴을 탐험하고, 개울을 건너고, 나무나 산을 오르고, 숲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자연에서의 어린이 활동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벨이나 존 듀이가 생각했던 놀이터의 개념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화 되었다.
1960년 대 이후 이른바 ‘맥도널드 놀이터’ 혹은 ‘쿠키 커터 공원(Cookie cutter park)‘이라는 개념의 놀이터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일종의 레스토랑이 만들어낸 어린이 실내 놀이터의 탄생이었다. 이 놀이터는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으로 하였으며, 실내공간이라는 제약상 뛰거나 지나치게 활동적인 부분을 제한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놀이터의 디자인은 어린이들의 육체적 활동이나 창의성보다는 안전과 규격에 맞추어지는 디자인에 더 많은 무게가 실렸고, 이것이 바깥 공간의 공공 놀이터에도 반영되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미 2005년부터 놀이터에 “뛰지마시오”라는 팻말이 등장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초기 많은 학자들과 교육자들이 추구했던 놀이터의 기능에서 상당히 멀어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스러운 놀이를 통해 식물의 세계를 습득하도록 디자인 된 식물원 큐가든(영국)의 실내 어린이 놀이터. 현대로 올수록 놀이터는 다양한 주제나 특별한 활동과 그 목적에 맞게 전문적으로 디자인이 되고 있다.
놀이터의 새로운 시도들
그렇다면 오늘날 놀이터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을까? 지금도 놀이터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행히 획일적인 기구를 이용한 놀이터나 지나치게 안전에만 주안점을 둔 플라스틱 놀이터를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1. 아트와 놀이터의 만남
미국의 조경가이자 조각가인 이사무 노구치(1904-1988)와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 1901 –1974)은 1960년대 공동작업으로 신개념의 놀이터를 구상했다. 이들은 이미 놀이터 디자인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던 터라 미국 뉴욕의 아델 네비 공원(Adele Levy Memorial Park)을 함께 디자인하면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놀이터의 디자인을 시도했다.
이 놀이터는 땅 자체를 높낮이와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여기에 시소, 그네, 미끄럼틀, 모래밭 등의 기구를 예술적으로 재디자인 했다. 더불어 놀이터가 기구들의 배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시리즈로 연결되어 어린이들 스스로 놀이를 만들도록 고안됐다.
노구치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신체적 운동을 북돋우면서도 상상력을 자극시켜야 한다”는 말로 놀이터 디자인에 있어 창의성에 큰 비중을 두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놀이터는 여러 개의 설계도만 완성되었을 뿐 만들어지지 않아 그 실제의 모습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1960년대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선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지금도 놀이터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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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사무 노구치 박물관에 전시된 놀이터 미니어처 <(cc) watashiwani at flickr.com> 2 생전 이사무 노구치의 모습. 이사무 노구치는 놀이터 디자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7개가 넘는 어린이 놀이터를 설계했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된 놀이터는 안타깝게도 하나 밖에 없다. |
2. 자연 놀이터, 플레이스케이프
최근에 시도되고 있는 플레이스케이프(Playscape) 놀이터는 플라스틱, 쇠 등을 배제하고 가공을 하지 않은 자연의 소재인 흙, 돌, 나무 등으로 재료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서도 흐르는 시냇물, 잔디, 언덕, 진흙 동굴, 나무 그루터기가 자연의 상태처럼 자연스럽게 놓이게 구성된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낙엽, 모래, 물 등을 자유롭게 만지며 놀게 된다. 플레이스케이프의 가장 큰 특징은 어린이들 나무 막대기, 낙엽, 진흙, 물 등을 이용해 스스로 상상하는 것들을 놀이로 만들어내도록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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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형 텐트를 지을 수 있도록 구성된 놀이터. 영국 위즐리 가든. 2 내츄럴 플레이스케이프는 자연의 소재로 놀이터를 구성하고, 그 형태 또한 기구의 이용보다는 창의적인 활동에 중점을 둔다. |
3. 생태 학습 놀이터
생태 학습 놀이터는 자연의 소재를 끌어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습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된 놀이터를 말한다. 연못을 조성해 연못 속에 살고 있는 생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디자인하기도 하고, 곤충이나 식물의 성장주기를 어린이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자연습지 등에 부설로 만들어지는 사례가 많은데 최근에는 도시 속의 빌딩 옥상 등에도 생태 학습 놀이터의 개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생태학습놀이터는 어린이들의 육체적 활동보다는 창의력과 자연학습에 중점을 둔 놀이터로 생태환경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도시 속에 꼭 필요한 놀이터 개념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4. 팝업 놀이터(Pop-Up Playground)
팝업 놀이터의 개념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기구를 통해 즐기는 놀이터의 개념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영국과 미국을 근간으로 두고 있는 비영리단체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놀이터의 개념이다. 도시의 골목 등 일정 장소를 일정 시간 동안 빌린 뒤, 그 안에서 각종 재활용 도구, 의상, 미술용품, 의상 등을 이용해 어린이들이 창의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거나 게임을 즐기는 등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 놀이의 목적은 어린이들이 어른이 구성해준 경직된 놀이터 환경을 떠나 스스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놀이를 즐기게 하는데 있다. 특히 팝업 플레이그라운드는 고정된 장소나 특정 놀이기구의 설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시설 설치비, 관리비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교육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개념으로 최근 큰 각광을 받고 있다.
팝업 플레이그라운드는 고정된 장소에 설치된 놀이터가 아니라 기획에 의해 한시적으로 특정 장소를 빌어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놀이터 개념이다. 2014년 평택 안정리 마을에서 있었던 팝 업 플레이그라운드 행사. 많은 학생들이 어른들과 함께 꽃밭만들기 놀이를 하며 하루를 즐겼다.
놀이터와 정원문화
놀이터 디자인은 조경과 가든디자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시설 차원에서만 다뤄지면서 디자인적 발달이 매우 미약했다. 그러나 최근 아트 놀이터, 내츄럴스케이프, 팝업 플레이그라운드와 같이 그 개념이 다양화되면서 새로운 디자인의 시도도 활발해지고 있다. 놀이터는 그 탄생 배경 자체가 자연에서 뛰어놀기 힘든 도시 어린이들에게 육체적 활동과 정서적, 교육적 효과를 주기 위해서였던 만큼 도시 속 어린이 놀이터는 정원의 영역으로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 글/그림
- 오경아 | 정원 디자이너
- 글쓴이 오경아는 16년 간의 방송작가 활동을 접고 2005년 영국으로 가든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친 뒤,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조경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2012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는 <오가든스>라는 정원관련 종합회사를 설립해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속초에서 정원학교를 운영중이다.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정원의 발견]의 저자이며, 정원을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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