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장, 아무런 일도 없이 몇 개월을 보낸다. 몸은 많이 힘들고 피곤하지만 김 여인은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고 생활 속에 파 묻혀 아이들의 재롱과 함께 열심히 생활을 해 나간다. 이제 며느리에 대한 것도 포기를 한 상태였다. 벌써 집을 나간 지 육 개월이 넘는 세월이다. 종엽이는 나름대로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 여러 각도로 연락을 취해보는 눈치였다. 그러나 어디에서고 아내에 대한 소식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막내아들 종원이는 매달 월급을 꼬박꼬박 엄마의 손에 가져다 드린다. 그 어떤 말도 잘 하지를 않는 막내아들의 듬직함을 김 여인은 사랑하고 있었다. 막내답지 않은 듬직함이 언제나 바라보아도 든든하다. “엄마! 할 이야기가 있어요.“ “무슨 말인데?” 말이 없는 막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 하면서 막내의 입을 바라본다. “소개를 시켜드릴 여자가 있습니다.” “사귀는 여자가 있었니?” “네!” “결혼까지도 생각을 하고 있니?” “엄마가 허락을 하신다면요!” “그래? 너만 좋다면 이 엄마의 허락이 뭐가 중요하니?“ ”엄마! 아무리 내가 좋아도 엄마의 눈에 들지 않으면 결혼을 포기해야지요.“ ”결혼은 네가 하는 것이지 엄마가 하는 것이 아니지 않니?“ “그래도 형수들을 보니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에 맞출 수는 없다. 너희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서로가 믿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굳은 사랑이 있다면야 엄마는 누구라도 반대할 마음이 없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간 한번 데리고 오너라!” “이번 주말에 함께 올까 생각합니다.” “그래라! 이제 너도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 김 여인은 새삼스럽게 막내아들을 바라본다. 막내가 결혼 할 나이가 되었으니 자신이 많이 살아왔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형들에 치이고 누나들에 치어 제대로 엄마의 애정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자란아들이다. 새 옷도 제대로 얻어 입어보지도 못하고 형들의 옷을 물려받아서 입고 자란아들이다. 그래도 불평은커녕 말썽 한번 피워본 적이 없는 듬직한 아들이다. 가끔은 제 누나인 막내딸 선영이를 호되게 몰아붙이기도 하는 종원이다. 김 여인은 기대를 가지면서 주말을 기다린다. 큰 딸과 셋째 딸이 오고 둘째아들내외가 새 사람을 보려고 몰려든다. 이렇게 자식들이 모이면 김 여인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된다. “엄마!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딸들이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한마디씩 한다. “많기는? 너희들 모두 모였으니 먹는 것이라도 풍족해야 하지 않니? 그리고 이 고기들은 선미가 사 왔단다.“ “요즘은 선영이가 속을 썩이지 않아요?” 선정이의 물음이다. “그야 낸들 아니? 워낙에 선미는 선영이를 싸고돌잖니? 지속이 새카맣게 타 들어가도 어디 말이나 하는 사람이냐?“ “그나저나 그년이 시집을 가야하는데 도통 결혼 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어째요?” “누가 아니라니? 나도 선영이가 결혼만 한다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좋겠다.“ “큰 언니! 어디 좋은 자리를 알아볼 수 없수?“ “말도 하지 마라! 내 그년 때문에 썩은 속이 어디 한 두 번인 줄 아니? 선을 보라고 하면 어디로 사라져 버리지를 않나 나와서는 상대방을 기암을 시켜 놓지를 않나 정말 큰일이다.“ 선경이는 선영이 말이 나오기만 하면 머리를 흔든다. 선을 보라고 하면 약속을 하고서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망신도 여러 번 당했다. 그리고는 약속을 지키느라 나와서는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코딱지를 후비거나 큰 소리로 떠들거나 아니면 청바지에 티셔츠바람으로 나타나지를 않나...... 선경이는 이제 선영이의 결혼 문제에서 아예 손을 떼어버린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어디 직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저렇게 선미언니에게 매달려서 선미언니를 골탕을 먹일 것인지 원!” 선정이는 고개를 내 두른다. “정말 큰일이다. 배운 것이 남만 못하나 인물이 남만 못하나 도대체 왜 저러고 사는지 정말 모르겠다.“ 김 여인도 한숨만 나온다. 아무리 집안일을 거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딸이다. “엄마! 수현이는 언제까지 저렇게 내버려 둘 참이에요?“ “그렇게 말을 해도 꿈쩍을 하지 않고 있으니 낸들 어쩌겠니? 오지 말라고 떠다 밀어낼 수도 없고..........“ “아무튼 우리 집안의 모든 사단은 선영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선정이는 친정에만 오면 선영이의 모습이 보기 싫다. 점심때가 되자 막내아들이 김재숙을 데리고 들어온다. 김 여인은 반갑게 맞이했으나 첫 인상이 별로 마음에 들지를 않는다. 큰 키는 보기 좋았으나 여자다운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거세게 생긴 인상이다. “어머니! 인사를 받으세요!“ 김재숙은 거침없이 어머니라 부르며 인사를 한다. 선경이와 선정이도 첫 인상이 마음에 들지를 않는다. 곱상한 막내 동생에 비해서 너무 거센 인상이다. 모든 것들이 큼직큼직하고 성격도 매우 거센 인상을 풍긴다. “지금 어디 직장에 다녀요?” 선경이가 묻는다. “네! 회계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큰 형님께서는 식당을 하시고 계시다면서요?“ “네!” “어디서 하세요? 제가 회식을 하는 날이 많거든요! 손님을 데리고 갈게요.“ “아니요! 괜찮아요.“ 선경이는 김재숙의 말투가 전혀 마음에 들지를 않는다. “우리 종원이와 사귄지는 얼마나 됐어요?” 김 여인이 말을 시킨다. “한 육 개월 정도 됩니다.” “그래요? 어디서 만났어요?“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마주쳤는데 종원씨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제가 먼저 말을 시키고 만나자고 했어요.” 역시 말투조차 거세다는 느낌이 온다. “어떻게 여자가 먼저 만나자고 그래요?” 선정이의 놀라는 표정이다. “그야 먼저 반한 사람이 만나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저는요 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을 만나면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요.“ “........................” 모두들 할 말을 잃는다. 김재숙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는 듯이 스스럼이 없다. 좋게 생각하면 막힘이 없는 화통한 성격이라고 해야겠지만 사귀는 남자 집에 처음 초대를 받고 온 사람치고는 여성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김 여인의 생각하고는 너무나 딴판의 여자다. 김 여인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기가 싫어진다. 그러나 아들이 좋아한다면 굳이 반대를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여자를 바라다 주고 들어오는 종원이를 누나들이 부른다. “너 저런 여자가 어디가 좋으니?” “큰 누나 눈에는 들지 않아요?” “나 뿐만이 아니다. 엄마도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다.“ 종원이는 안방으로 들어가 엄마 앞에 앉는다. “엄마!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종원아! 엄마는 반대한다기보다 왜 내 아들이 그 애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엄마! 사실 나도 처음에는 여자가 너무 거센 것 같아서 만나자는 것을 회피해 왔어요. 헌데, 우리 형수들의 성격이 어떤지 생각해 보았어요. 만일 큰 형수가 저런 성격이라면 지금 우리 집안이 이렇지는 않지 싶더라고요. 거센 성격 같으면서도 리더쉽이 있고 추진력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래! 그건 아마 네 말이 맞을 것 같구나! 허지만 그렇다고 너희들이 맏이 노릇을 할 것도 아니지 않니?“ “네! 그럴 수는 없겠지요! 허나 집안의 모든 일들을 추진해서 이끌어 나갈 수는 있지 않겠어요?“ “어느 집안이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면 서로 불화가 끊이지를 않는 법이다. 아랫사람은 어디까지나 윗사람의 뜻을 따르고 존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집안이 조용하고 가지런히 해 나갈 수가 있지 않겠니?“ “엄마! 저는요 두 형수들의 성격에 질렸어요. 큰 형수는 이제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작은 형수의 피곤한 성격도 완전히 질렸어요. 차라리 조금 거세다 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탁 트인 사람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여인은 막내아들의 말도 이해를 한다. 두 며느리 모두 김 여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김 여인은 무언지 막내아들이 그 아이의 거센 성격에 치일 것만 같은 불안이 밀려온다.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하지 말고 좀 더 두고 보자!” “네!” 막내아들은 조금 서운한 모양이다. 김 여인은 지금 막내아들의 결혼보다도 맏아들의 문제가 더 시급했다. 이혼을 하려면 빨리 결정을 하던가 해야 하는데 본인을 만날 수조차 없으니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예전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서 마음껏 뛰놀면서 상처를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었다. 지금도 아이들을 바라보면 죄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겁에 질려있던 영빈과 영훈이의 모습이 밝고 명랑하다. 영애의 귀여운 애교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었다. 김 여인은 힘든 것도 모르고 가족들 챙기고 아이들 돌보는데 당신 자신을 잊고 있다. 영애를 놀이방이라도 보내려고 했더니 영애는 겁에 질려서 할머니를 잠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어린 가슴에 상처가 매우 깊어서 아직도 그 상처가 치유가 되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김 여인을 이제 맏며느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 이상은 연분이 다 한 모양이라고 체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과 아이들의 앞길을 생각하니 어떤 식으로든지 결정이 나야 할 일이었다. 이제 남편이 모습도 점점 더 병이 악화되어간다. 아들들이 돌아가면서 목욕을 시킨다고 했으나 시간을 내기가 쉽지가 않다. 또한 남편은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이 씻겨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들이 씻기고 나면 남편은 무엇이 서러운지 자꾸 울기만 한다. “선경 아부지! 왜 그래요? 아들들이 씻겨드리는 것이 싫으세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만 끄덕인다. “제가 너무 힘이 들어서 그래요. 그래도 싫으세요?“ 그러나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세요! 그럼 제가 씻겨드릴게요!“ 그제야 남편의 얼굴은 환해져온다. 아무도 당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남편이다. 김 여인은 이제 남편을 목욕 한번 시키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져나가는 듯이 맥을 출 수가 없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르면서 기운을 쓸 수가 없게 된다. 그런 날을 저녁을 간신히 해 놓고 쓰러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영빈이가 할머니의 심부름을 곧잘 한다. 영빈이가 가져다주는 물을 마시면서 다시 기운을 차려본다. 그렇게 김 여인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도 그런 사실들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김 여인의 몸은 망가져간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자식들(17회)"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하지(夏至) 오늘은 좋은것을 양보하고 배려하며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