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7장 교육과 학술이 올바른 인간을 만든다
8. 과학과 종교를 아우른 국제과학통일회의
불행히도 과학과 종교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근본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선명은 이 문제를 다루고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원리를 제시하기 위해 전 세계의 과학자들을 참여시키는 국제과학통일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Unitiy of Sciences:ICUS)를 창설했다.
ICUS에서 지속적으로 다룬 2가지 주제는 '지식의 통일'과 '가치관의 통일'이었다. 이는 처음에는 낯선 주제였지만 세계 과학자들과 학자들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훌륭한 도전 과제가 되었다.
그동안 과학은 자연세계를 탐구해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부정적인 결과도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다. 이를 해결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한편 철학자・예술가・신학자들도 인간의 정신세계를 분석해 참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과학과 연결되지 못해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과학・종교・철학 중 그 어떤 것도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문선명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국제과학통일회의를 만들었다.
1971년 코네티컷 뉴헤이븐(New Haven)에서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은 첫 번째 통일교회를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통일원리 강의를 들은 한 대학생이 크롬웰에게 코네티컷 주립대학에서 그가 수강하고 있는 통일과학(Unified Science)이라는 과목에 대해 일러주었다. 담당 교수는 에드워드 하스켈(Edward Haskell)이었다. 대학생은 통일 과학이 통일원리와 아주 비슷하다고 지적하면서 크롬웰에게 통일과학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했다.
크롬웰은 비록 그 대학의 학생은 아니었지만 수업을 등록했으며 내용이 흥미롭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통일과학 이론을 개발하는 하스켈의 연구에 동참한 동료로는 예일대학 화학과 교수 해롤드 카시디(Harold Cassidy) 박사, 하버드대학 철학과 교수 월라드 콰인(Wallard V. Quain)박사,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 아서 젠센(Arthur Jensen)박사, 그리고 코네티컷 주립대학 경제학부 학장 제레 클락(Jere Clark)박사 등이었다.
하스켈은 뉴욕에 거주하고 있었고, 이 수업을 가르치기 위해 뉴헤이븐으로 통근했다. 수업을 마친 후에는 통일교회에 머물렀다. 하스켈과 크롬웰의 우정이 돈독해지자 미국 통일교회협회장 페리 존스(Farley Jones)에게 연락했다. 존스 협회장이 문선명에게 하스켈에 대해 말하자 즉시 그를 초청해 뉴욕에서 만났다. 그때 문선명은 처음으로 미국 7대 도시 순회강연을 했었는데 하스켈이 통일원리를 과학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문선명은 그의 연구를 후원하기 위해 1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과학자들을 모아 그의 이론을 실질적으로 진전시켜 나가라고 당부했다. 하스켈은 기부금을 사용해 여러 대학을 다니며 최고의 학자들을 만났으며
통합연구교육회의(Council for Unified Research and Education:CURE)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화학, 철학, 심리학, 경제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이었다.
문선명은 이들을 모아 국제과학통일회의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꼭 추수감사절에 대회를 열고 싶어했다. 모든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기간에 대회를 열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1972년 11월의 추수감사절 주간에 뉴욕에서 열린 제1회 국제과학통일회의는 7개국에서 학자 20명이 참석했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20명은 무척 적은 숫자일 수 있으나 40년 전에 다른 학문 분야의 학자 20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회의의 주제는 '현대과학의 도덕적 방향에 대하여'였으며 문선명은 '세계 도덕 계도에 대한 통일과학의 임무'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과학은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과학은 민족적・국가적 장벽에 가로막혀 훌륭한 발명이 이뤄졌어도 그것이 즉시 인류 전체에 기여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문명은 본질적으로 인류 전체의 것이어야 합니다. 과학자들의 염원이 실현되려면 반드시 먼저 선의 세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도덕의 세계요, 종교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가치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현재 지성인의 실증적이요, 논리적인 정신을 지도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 교리를 통일할 수 있는 고차적인 통일 사상 체계에 의해 비로소 정립이 가능합니다."
1973년에 열린 2차 대회는 일본 도쿄에서 '현대과학과 도덕적 가치'라는 주제로 18개국 60여 명이 참석했다. 1년 만에 숫자가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제3차 대회는 영국 런던에서 1974년 11월에 27개국 128명의 과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과학과 절대가치'라는 주제로 열렸다. 문선명은 학자들에게 그들의 사명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과거에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자연를 정복하고 개발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습니다. 오늘날은 바로 그 과학이 우리에게 새로운 윤리적 표준을 확립하도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윤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의 가치를 재검토하는 문제들, 그리고 인간 상호간 협력의 필요성과 관련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과 윤리도덕을 필요로 합니다. 현세계를 보다 높은 차원과 절대가치의 세계로 이끌어갈 교량 역할을 여러분께서 해주시기를 깊이 간구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제4차 대회는 1975년 미국 뉴욕에서 57개국 340명의 석학들이 참석한 가운데 '과학의 구심성과 절대가치'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어 제5차 대회는 미국 워싱턴에서, 제6차 대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제7차 대회는 보스턴에서, 제8차 대회는 마이애미에서 열렸다. 시카고대학 정치학 교수 몰턴 캐플런은 제9차 대회의 의장이 되었다. 출범 10년 째를 맞아 1981년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대회에는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808명의 학자들이 참석했다. 처음에 20명이었던 것에 비해 무려 40배나 늘어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의 학자와 과학자들이 자신의 학문 분야를 초월해 인류의 근본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회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수많은 학자들이 ICUS에 꼭 참석하려 했다. 로마클럽(Club of Rome)회장 알렉산더 킹 박사는 "국제과학통일회의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 모여 세계 문제에 대해 각자의 전문 분야에 걸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학문의 상호작용을 논의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장소"라고 칭송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존 에클스(John Eccles), 칼 프리브람(Karl Preibram), 유진 위그너(Eugene Paul Wigner)등 노벨상 수상자와 퓰리처상 수상자 등이 참여해 과학자들 사이에서 최고로 명망 있는 단체가 되었다.
1984년 9월 3일, 제13차 대회는 워싱턴 DC에서 국제문화재단 후원으로 열렸다. 회의에는 전 세계 42개국에서 250명이 참석했다. 이 대회는 지난 12번의 대회와 달랐다. 문선명이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문선명은 댄버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회의는 예정대로 열렸고 한학자 총재가 환영사를 했다. 이후에도 국제과학통일회의는 계속되어 1995년 제20차 대회까지 이어졌다.
30년 동안 국제과학통일회의는 매년 추수감사절에 한번도 거르지 않고 개최됐다. 매 회마다 발표되는 학자들의 다양한 논문은 그 수준이 아주 뛰어났으며 책으로 발간되어 전 세계의 대학과 연구소, 도서관에 보급되었다. 문선명은 국제과학통일회의를 만들었고 세계의 석학들은 연구와 탐구, 토론을 거듭했다. 그 결과 수많은 논문들이 간행 되었고 오늘날 과학과 정신세계의 통합에 진일보를 내디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