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姜武太觀天山( ......드러나는 비밀 )
아버지와 어머니는 위엄이 있으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적절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며칠 전 우둔한 자식 녀석의 실수로 강소협께 많은 수고를 끼쳤소이다. 그 점 천산의 모든 식구들과 함께 감사드리는 바이오."
아버지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의 말을 신호로 한 듯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의 왼편에 20명의 천산거주 당주들이 늘어섰고 오른편에는 서른 명에 육박하는 장로들이 늘어섰다.
"왼편은 천산의 당주들이오. 오른편은 천산의 어른들이라 할 수 있는 장로들이오. 모든 분들 께서 천산제자들을 구해준 강소협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하오."
아버지가 말을 끝내자 부목을 댄 종부기와 마른 기침을 하던 요호 두 명의 장로가 앞으로 나섰고 조금 전에 당한 지권백이 한껏 못마땅한 표정으로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자연히 긴장하고 있었는데 돌연 세 사람의 장로가 동시에 포권을 해 보였다.(부목을 댄 종부기는 그냥 시늉만 했다.)
"천산의 장로들을 대표해 소협을 환영하오. 먼 곳까지 잘 오셨소이다."
나도 당황하여 인사를 하자 장로들은 뒤로 물러섰다. 내게 맞은 장로들을 내보내 인사를 시킨 것은 예전에 천산에서 탈출했을 때의 일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는 의미로밖에 해석 되지 않았다. 장로들이 물러서자 당주들 중에 세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하나는 삼촌, 다른 하나는 냉면, 마지막이 묵정이었다.
"천산의 당주들을 대표해서 소협을 환영합니다. 먼 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는 다시 맞절을 했고 당주들은 다시 한 번 포권을 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 다음에 입을 연 사람은 천산대부인인 어머니 설숙영이었다. 물색의 멋진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화려하게 틀어 올리고 있어서 단순한 유세엽의 엄마로는 보이지 않는, 기품과 품격이 넘쳐 흐르는 멋 진 중년(그래 봐야 이십 대, 무림이 이렇다. 이십 대는 중년, 사십 대는 노인......)미부의 자 태였다.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바람에 나는 다소의 실수를 저질렀다.
"너무 이른 시간이니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거처를 마련해 두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천산대부인.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영광입니다. 부인의 기품과 품격과 아름다움은 처녀들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익히 한국......조선땅에서도 본 적이 없는......음......명불허전입니다......"
말을 내뱉고 나서야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웃음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어머니는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상당히 딱딱한 표정이었는데, 실수로 그랬던 어쨌든 내 아부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정말 훌륭한 젊은 영웅이라고 말씀을 들었어요. 강소협, 무엇이라도 부족한 점이 있다면 즉시 시녀를 통해 말해주세요. 자선당의 계선향 거기 있느냐!"
아마 즉흥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뒤편에서 계선향이 튀어나왔고 어머니는 다분히 연출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잔뜩 겁을 집어먹은 계선향을 응시했다.
"넌 잠시 자선당의 일을 접어두고 강영웅을 모시며 강소협이 무엇 하나 불편함이 없도록 도 와드려야 할 것이다."
"네, 대부인,"
"천산의 중요한 손님이시다. 잘못하면 벌을 받을 것이야. 만일 네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다른 사람을 사용하겠다."
"아닙니다. 대부인, 소녀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무지하게 재미있는 사태였다. 아버지의 바람 상대였던 계선향을 강무태인 내게 임시로나마 건네준다...... (무엇 하나 불편함이 없도록이라는 말에 함축된 의미를 살펴보도록!) 얼핏 보면 내 칭찬을 듣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 같았지만 아버지의 담담해 하는 표정을 보니 미리 상의하고 하는 일 같기도 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대부인."
내가 감사 인사를 하자 어머니 설숙영은 환하게 미소 지었고 즉시 계선향이 내 앞에 서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천산 자선당의 계선향이라 하옵니다. 가마가 준비되었으니 소녀가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계선향의 안내로 삼십 분 넘게 가마를 타고 들어온 곳은 청수당 근처 청수진당이 자리 잡은 지역이었다.
청수당이 그렇듯, 그야말로 천산에서는 중심중의 중심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중산궁(中山宮)이 있고, 자선당이 가까이 있는데, 현재 자선당에는 공주와 은성노모, 은혜미등이 머물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젠장, 청수진당에는 또 다른 손님이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 그 동안 강령하셨습니까? 소제 형님의 늠름한 모습을 다시 한 번 뵙고 싶어......네, 오늘이라도 형님을 뵙게 되어 정말 기쁨이......"
하하, 남궁혁필은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고 있었다. 가마에서 내리자마자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자버릴 것을, 처음 천산으로 온 것처럼 두리번거리다가 혁필이에게 손을 잡혀버린 것이다.
"하하하, 혁필 아우......하하, 그 지저......하하, 그 멋진 사자상에 대공자께서 아우님과 함께 새겨놓은 표시를 보았어. 하하하. 그걸 보고 달려왔지......"
"그러셨군요......음......"
내 말에 혁필이는 반가운 표정이 되었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이내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형님 혹시 저와 대공자가 했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까?"
"응?"
"아뇨,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혁필이는 강무태가 그와 유세엽이 나눈 이야기를 듣지 않았었으면 하는 견해를 암묵적으로 무척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굳이 '응 다 들었어. 그런데 너 정말 남자니?' 하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나, 들은 이야기는 전혀 없어."
"하하, 다행입니다. 형님......"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길래?"
"형님께서 신경 쓰실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저 개인의 신상과 제 집안과 관련된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아하, 그런데?"
"그게 소제의 개인적인 문제라서 말입니다......"
혁필이는 난처한 목소리가 되었다. 그가 난처해할수록 더욱 재미있어졌다. 이 넘의 비밀을 샅샅이 파헤쳐 봐야 쥐......
"자네가 나를 형이라 부르는데 이는 말하자면 우리는 형제간인데 개인적인 문제가 또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를 안내해온 계선향이 혁필이를 구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강영웅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유모로서 수개월간 계선향을 관찰했던 바에 의하면 현재 그녀의 눈빛은 '이 인간은 왜 남궁 공자를 괴롭힐까? 아, 마음은 남궁공자에게 있는데 몸은 이 난폭한 남자에게......' 하는 느 낌이었다. 재수 없는 것......
"잠깐 기다려주게, 내 의동생이라 할 수 있는 남궁형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내 말에 혁필이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형님, 하찮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로 형님의 중요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이제 식사도 하고 또 천산의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셔야 할 텐데요."
"하하, 형제의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혁필이는 잠시 주저하는 눈치였다. 나와 함께 있고는 싶은데 함께 있게 되면 내가 그의 신상에 대해 캐물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고,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슬픈듯한 미소 ......
"이 형과 이야기하는 것이 싫다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형님......"
"우선 안에 들어가세, 참견이 심하고 주둥이 가벼운 시녀가 나불거릴까 두렵단 말이야."
계선향은 자기를 가리킨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쭉 내밀었고 나는 그 모습을 못 본척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대공자인 유세엽이 머무는 방과 비슷한 사이즈였고 (말하자면 50평 아파트 의 거실 사이즈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지하게 크다는 거다.) 조선인인 나를 배려해서인 지 좌식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혁필이를 앞세우고 들어섰는데 바닥이 따뜻했다. 보일 러라도 돌린 것처럼......
"은성노모께서 조선에서 오신 형님을 배려해서 온돌방으로 꾸미자고 건의를 했었습니다. 온돌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바닥을 데운다니 겨울에는 정말 생활하기 좋을 듯싶습니다."
"하하, 온돌......은성노모라......"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 할망구는?'
"갈아입으실 옷을 마련해 두었고 소세를 위한 준비도 마쳤습니다. 차를 준비해 드릴까요?"
계선향은 방에 들어서서 싹싹하게 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병풍 비슷한 중국 그림들이 걸려있는 쪽에 놓인 방석에 앉았다. 혁필이도 주저하지 않고 내 앞에 양반다 리를 하고 앉았다. 우리가 앉는 동안 계선향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 앉아 마주 대하자 혁필이의 여성스러운 몸매가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그가 흉갑이라고 했던 딱딱한 뽕 은 차치하더라도 목과 어깨를 흐르는 라인은 남성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길고 좁고 매끄러우 며 여전히 목의 복숭아뼈는 보이지 않았다.
"혁필아우를 처음 만났을 때 조금 낯선 구석은 있었네, 하지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네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 유일한 동생인 여동생이 동영호리에게 공산당 ......마교가 싫다고 말했다가 입이 찢겨 죽은 이래 흠...... 자네는 처음으로 내 동생이 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된 거야."
별것 아닌 헛소리였는데 남궁혁필은 꽤 감동을 받은 듯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큰 절을 올렸다.
"형님, 이 동생의 절을 받아주십시오.“
"하하, 아, 정말 슬픈 일이야. 집안의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건, 그 아이가 죽었을 때의 상황은 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어. 빌어먹을 동영호리, 처음이야. 이번이 직접적으로 내 집안의 비밀을 말해준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의외로 속이 시원하네,"
"집안의 비밀이라고 하셨습니까?"
남궁혁필은 눈을 깜박거렸다. 지권백도 아는 이야기를 내게 꽤 관심이 있는 혁필이가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강무태 여동생 사건......
"음, 내 여동생의 일 말이야. 내 입으로 말해준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천산에서 사람들이 들은 이야기는 아마 동영호리라는 놈에게서 들은 걸 거야."
혁필이는 다시 감동 먹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 자네도 말해보게, 대체 어떤 비밀이 있다는 건가?"
"아, 그 문제는 역시 너무 개인적인 문제고 또 부끄러운 일이라서......"
혁필이는 계집애처럼 얼굴을 붉히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느낌이 팍 오고 있었다. 자, 커밍아웃 하는 거야. 혁필아!
"어여 말해보게, 시작부터 비밀이 있어서야 어디 형제라고 할 수 있겠나?"
혁필이는 우선 한숨을 내뿜었다.
"소제는 특이체질입니다. 천산대공자처럼 끔찍한 것은 아니지만 비견될 정도로 이상한 체질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아?"
"네, 귀를 좀......"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귀를 내밀었다. 혁필이는 입을 가까이 댔고 녀석의 따뜻한 입김이 느껴졌다.
"소제는...... 괴음양혈맥(괴음양혈맥) 이라는 기맥입니다. 소제 이전에 같은 혈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다름아닌 동방불패, 이후로 소제가 유일합니다. 이 혈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남자로 태어난 자는 십중팔구 여자로 변하고, 여자로 태어난 자는 십중팔구 남자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증세는 결코 고정되지 않아 평생을 간다고 하여......
다행히 소제가 태어났을 때 완생편작이라는 중원 제일의 명의가 우리 집에 식객으로 머물고 있었으며 소제를 진맥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동방불패가 어쩌니 저쩌니 내 귀를 간질이며 뜬금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던 혁필이는 예고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는, 쪼르르 문으로 다가가서 마침 차 쟁반을 들고 들어오던 계선향에게서 쟁반을 받아 들고, 그녀에게 몇 마디 ( 우리의 말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 도록 부탁 드립니다.) 해준 다음 문을 걸어버리고는 내 앞으로 다시 다가왔다.
"형님!"
무척 비분강개한 듯한 음성이었다. 조지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하겠다고 말할 때의 단호함과 텔레비전에 나와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라고 외치던 이름 모를 사내의 진지함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무지하게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역시 이 자식과 한 방에 있는 것 은 위험한 일이다! 아 젠장 빌어먹을 쓸데없는 호기심이......
"하하, 형제, 어쩐지 아버......천산연맹주께서 나를 찾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형님! 소, 소제는......"
이번에는 울음기가 가득 섞인 소리였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아우, 일단 진정하고......"
혁필이는 말을 더듬으며 손을 좌우로 젓고 있던 나를 눈물이 가득한 두 눈으로 바라보더니 갑자기 훌러덩 웃옷을 벗고 번개 같은 속도로 내게 덤벼들었다. 제기랄! 역시 이 자식은 호모였어!!!
"형님! 저를 좀......"
"젠장, 이럴 줄 알았어. 놔! 이 후레아들 이반XX 호모XX???"
다급해진 내가 고함을 치며 내게 달려드는 혁필이의 모가지를 잡아 비틀어버리기 직전이었다. 나는 손에 감긴 혁필이의 목 아래로 보이는 기묘하고도 기묘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었고 팔에 힘을 풀면서 훌쩍거리는 혁필이를 바로 앉혔다.
"이게 뭐냐?"
내 눈에 보이는 광경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대공자로서 내가 만졌던 딱딱한 뽕브라는 흉갑의 가슴부위에 솟아있었는데 남자 갑바를 가리기에는 좀 크고 여자 가 슴을 보호한다기에는 다소 애매한 크기였다.
목 아래 쇄골이 있는 부위부터 바지로 덮인 아래 부분까지 정교하게 잘 짜인 검정 가죽과 이름 모를 금속실로 엮인 갑옷이 3센티미터 정도의 폭으로 가로 세로 얽혀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뽀오얀 피부가 엿보이고 있었다. 갑옷이라면 모든 부분을 가려야 할 터이고...... 내 눈앞에 있는 물건은 그냥 SM 동영상에서 보이는 그런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왼쪽 옆구리에는 정교한 기계장치와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입고 벗을 때는 이 부분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오른쪽 옆구리와 목에는 경첩이 보였다.
"집안에 좀 이상한 취미를 가진 어른이 있거나......"
내가 생각해도 그건 아닌 듯 해서 다시 입을 다물자 혁필이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괴물 같은 겁니다. 소제도 거울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이 가죽은 의외로 부드럽고 탄력이 좋아 위에 어떤 옷을 입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이렇듯 가슴과 복부, 그리고 다리 위까지 비슷하게 덮고 있습니다."
"아하......특이하긴 한데, 뭐 딱히 괴물로는 보이지 않지만......"
"처음 언제 이런 옷을 입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옷은 소제가 남자 또는 여자로 변했을 때 소제의 몸을 동일한 크기로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며 지속적으로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 소제가 스물 다섯 정도 되게 되었을 때 확고하게 남자와 여자 중 하나의 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물건입니다."
아무리 봐도 이 야한 레이싱걸 유니폼 또는 SM 작업복 같은 물건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 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되었건 이야기 자체가 너무 기이했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내게......믿으라는 거겠지?"
"네, 믿지 않으셔도 별 수 없지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소제는 태어났을 때 당당한 사내아이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돌이 지날 무렵 한번 성이 역전해서 계집아이가 되었고 이 후 3년 주기로 다시 역전해서 남자아이가 되고 여자가 되고 했었는데 소제가 열다섯이 되 면서부터 그 주기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지금은 석 달의 주기로 안정된 상태인데 옛날 완생편작님의 말씀에 의하면 속도는 얼마든지 느려질 수도 있고 빨라질 수도 있으며 느려져 도 3년을 넘지 않고 빨라져도 한 달을 넘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하하하, 정말 동방불패 같은 소리다. 동방불패는 원작 소설에서는 스스로 거시기를 잘라버린 넘으로 나오고 영화에서는 애매모호한 존재로 나왔다. 혁필이가 아는 동방불패는 아마 영화 버전의 동방불패인 모양이거나 시간이 흘러 후대에 전설로 전해지는 신비한 존재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동방불패는 소설의 주인공이잖아??? 실존인물이었나????? 그럼 김용선 생이 무협소설이 아니라 역사소설을 썼던 건가??????
"허어...... 아래는 어떻게 생겼나?"
내 질문에 혁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슷하게 생겼다고만 알아두십시오."
"그걸 열고 닫는 열쇠 같은 게 있는 건가? 정조대처럼 열쇠는 남편과 열쇠장이만 갖고 있다가 사용하는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지만 열쇠는 없고 조작을 해서 제가 열 수 있습니다. 거의 매년마다 신품으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비싼 물건입니다. 가죽은 천축에서도 희귀한 흑상 (검은 코끼리?)의 가죽이며 금속은 북쪽에서 소량만 캐는 만년한철을 엮어서 만든 것입니다. 흑상은 양기가 강하며 한철은 음기가 강한 물체입니다. 만드는 방법도 극비이며 배합의 함량도 극비입니다. 오직 완생편작께서 제 아버님께만 알려주셨습니다."
"흐음......"
머릿속이 정신없이 복잡해졌다. 그래 난 꿈을 꾸고 있는 거다. 남궁혁필과 같은 증세에 대 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다. 따라서 이건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나는 유 세엽이고 낮잠을 자는 중인데 이런 개꿈을 꾸고 있는 거다......
"소제는 곧 여자로 변합니다. 형님."
돌연 남궁혁필의 이야기가 내 귀를 강하게 때려내서 현실도피중인 나를 끌어내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형님, 소제를 도와주십시오. 지금 소제는 여자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 옷을 입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완전히 여자로 변할 것이며 수염도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무얼 도와달라는 건데?"
"남궁세가에서도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주님과 혼약을 한 이후로, 네 그 천관에게 뇌물을 써서 혼인 날짜를 미룬 것도 우리입니다. 소제는 몸은 비록 가끔씩 여자로 변하지만 마음만은 늘 남자였습니다. 그간 먹어온 약재의 힘으로 인해 앞으로 오 년이 지나면 남자, 여자 어느 쪽으로 확실히 고정이 되겠지만 몇 가지 특이한 내공과 영약을 복용하게 되면 그 시일을 확실히 당기고 또 제가 원하는 '성' 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완생편작님 의 말씀이니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완생편작이라, 내가 아는 놈은......"
"반생편작이던가요? 완생편작님은 반생편작이라는 사람의 사부가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차를 마셨다. 너무 오래 우려 찻물이 쓰디썼다.
"그래, 도와달라는 걸 말해보라고,"
"소제, 천외천의 무학이 필요합니다."
"호오......"
남궁혁필의 눈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손에 턱을 괴면서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호오......흥미로운데......천외천이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