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football/)에 올린 글을 여기에 그대로 옮깁니다. 높임법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6일(일요일) 낮 3시, 인천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컵대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며 느낀 것인데, 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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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인천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0 K-리그 8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FC - 포항 스틸러스'의 맞대결은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천의 4-0 대승, 네 골도 골잡이 유병수가 혼자서 몰아넣은 것이었다.
지난 해 6월 21일 안방에서 포항에게 1-4로 참패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경기 승부의 갈림길은 경기 시작 25분만에 만들어졌다. 높은 공을 다투던 포항 수비수 김형일이 뜻밖의 부상으로 오까야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벤치로 물러난 것. 그로부터 15분 뒤, 김형일의 부상이 유병수의 밀기 반칙에 의한 것이라 앙심을 품었던 황재원이 유병수에게 플라잉 니킥을 작렬시키며 두번째 노란 딱지를 받고 쫓겨났다.
[2010. 6. 6 전반전, 인천 문지기 송유걸이 포항의 코너킥을 주먹으로 쳐내고 있다]
그로부터 약 40일 뒤 두 팀은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났다. 2010 K-리그 컵 대회 조별리그 마지막 날 경기, 남아공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빠진 신형민이 뛸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모았지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이긴 팀만이 8강 토너먼트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는데 두 팀은 최악의 결과를 내고 말았다. 1-1로 끝나는 바람에 동반 탈락. 인천은 안방 관중들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긴 휴가 신고를 해야만 했고, 포항은 무더위에 고생 많았지만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부드러운 드리블에 이은 깔끔한 마무리로 이준영의 선취골이 터졌다. 경기 시작 3분만에 이루어진 일이어서 인천 팬들 입장에서는 4월 18일처럼 대승의 기운을 느끼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이후 포항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무더위 탓이기도 하지만 인천의 공격은 부정확했다. 아니,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8분, 선취골의 주인공 이준영이 완벽하게 만들어준 기회에서 브루노의 이마가 빛났지만 문지기 신화용은 기가막히게 각도를 잡고 기다렸다는 듯이 막아냈다. 또, 유병수의 재치있는 발리슛은 포항 수비수가 아니라 브루노의 몸에 맞는 바람에 포항 골문으로 빨려들어가지 못했다.
[후반전, 선취골의 주인공 이준영이 포항 수비수들을 또 한번 모조리 따돌렸지만 신화용의 침착한 대응에는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후반전 13분만에 바꿔 들어온 모따의 찔러주기를 막지 못해 조찬호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인천은 다시 앞서가는 골(결승골)을 노리기 위해 임중용까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앞에는 신화용이라는 넘기 힘든 벽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AFC 클럽 챔피언의 문지기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같은 선수들을 상대로 또다시 참패할 수 없다는 듯 신화용의 몸에는 '레프 야신'이 강림한 듯 보였다.
특히, 88분(위 사진)에 유병수가 오른발로 찬 공은 수비수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을텐데도 신화용은 기막히게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쳐냈다. 이 장면을 2층 관중석 그늘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던 친구는 "역시 아시아 챔피언 팀의 문지기답다"는 평가를 내렸다.
6월 6일 한낮의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인천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낸 신화용은 추가시간 7분까지 버텨내며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필드 플레이어들도 곳곳에 드러누웠다가 일어났지만 신화용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후반전 추가 시간 7분까지 훌륭하게 막아낸 문지기 신화용이 탈진해서 쓰러져 있다.]
포항 스틸러스의 의료진이 가까이 와서 겨우 일으킨 신화용은 겨우 서포터즈에게 인사를 올릴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그는 정말 2009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에 입맞출 자격이 충분했던 '화용 神'이었다. 인천을 상징하는 세로줄무늬 옷을 입고 박수를 칠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고 있었다.
사실, 신화용의 빼어난 순발력과 침착하게 각도를 잡고 대응하는 자세를 고려하면 그는 벌써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2010 남아공월드컵에 참가했어야 했지만 황당하게도 팀 수비의 핵 김형일과 황재원이 흔들린 바로 그 경기(4월 18일)에서 무려 네 골이나 내주는 불운을 겪고 말았다.
문지기가 실력이 모자라 그럴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축구 경기에서 수비수, 그것도 가운데 수비수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4월 18일 경기였다. 그에 비해 이번 6월 6일 컵 대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오까야마가 이를 악물고 유병수를 따라다녔고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새로운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신형민은 비록 없었지만, 김형일도 없었지만 그들은 인천 방문 경기에서 또 한 번 망신을 당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의 고별전이 된 이 경기는 인천으로서는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았다. 관중석에서 우리들이 발 빠른 날개공격수 겸 측면 미드필더 김민수의 투입을 그토록 원했지만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송유걸 대신 김이섭을 들여보내는 바람에 교체 카드가 모자라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더운 날씨에 측면이 흔들렸던 포항의 수비 장면을 생각하면 서북쪽 구석 그늘진 곳에서 몸만 풀던 김민수의 헛심은 너무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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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입니다. 모자란 글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축구 현장에서 느낀 점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댓글 화용신 정말 키가185정도만 넘었어도 공중볼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대표팀과의 인연을 만들수 있을텐데... 항상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신화용선수 칭찬을 얼마나 했던지...ㅠㅠ...한골만 먹히라고 얼마나 소리쳤던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