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이영호목사] 물 위에 불이 붙는 신앙의 삶 |
| 이영호 (미국 필라델피아 성산교회)
본문:열왕기상 18장30절~40절
신앙은 인간의 가능성을 넘어 하나님의 확실성을 소유하는 것입니다.갈멜산에서 요구했던 것은 오직 불이었습니다.그것은 바알의 선지자들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마찬가지였습니다.불 아니면 죽음.이것이 바로 갈멜산의 상황이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불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심지어 자신의 몸을 칼과 창으로 찌르기까지 했습니다.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엘리야가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그는 먼저 열두 돌을 취하여 단을 쌓고 그 단위에 나무를 놓고 제물을 잡아 놓았습니다.그리고 번제물과 나무 위에 넘치도록 물을 붓습니다.불이 붙어야할 곳에 물을 붓는 것입니다.
왜 엘리야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불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해야하는 절대절명의 급박한 상황에서 불이 붙어야할 곳에 물을 부어 넘치게 했을까요?
물과 불은 상극입니다.불은 물을 삼키고,물은 불을 잠재웁니다.불을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물을 피해야 합니다.이것이 상식이며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불이 붙어야할 곳에 물을 넘치도록 붓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택할 방법이 아닙니다.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불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물을 넘치도록 붓습니다.그렇다고 그가 상식이 모자라거나 온전한 정신을 갖지 못한 광인은 아니었습니다.그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인간의 가능성으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성'으로 행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망각하고 우상을 따라간다고 해도 엘리야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불을 내리심으로써 그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이야말로 참 신이라는 것을 증거하실 것'이라고 확실히 믿었습니다.따라서 하나님이 불을 내리실 것이라는 것은 엘리야에게 인간의 가능성 차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확실성' 차원이었습니다.이 하나님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기에 엘리야는 불이 붙어야할 나무와 제물 위에 물을 부어 넘치게 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대부분 가능성에 의해 좌우됩니다.최대의 가능성이 최선의 방법이며 그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인식됩니다.그러나 가능성을 따라가는 삶 가운데 신앙인이 망각하기 쉬운 것이 하나님의 확실성입니다.인간의 모습만 바라볼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주 능력 소유만을 바라보며 인간의 가능성 차원에만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확실성은 열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을 닫으며 그것을 넘어설 때 하나님의 확실성이 열리게 됩니다.이것이 신앙의 삶이고 불이 붙어야할 곳에 물을 넘치도록 부은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추구하는 행복 평강 형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그런 것들은 마치 파랑새와 같이 우리의 힘으로 잡으려고 하면 달아나고 잡은 듯하면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경험과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잘 알고 있지만,아직도 우리의 힘과 가능성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고 얻으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간의 가능성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닫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그때 우리에게 물 위에 불이 붙는 신앙의 삶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물 위의 불'.이것이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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