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바다 2024 겨울호 청탁시]
외눈 밖의 섬
송병호
지구는 한 방향으로 외눈이다 외눈의 시야는 편협에 가까워서 겹겹이 베껴 쓴 사막의 모래층, 해독이 난해한 달필의 메모지 같다 태양이 해바라기의 길벗인 것도 손등과 손금의 고독한 연대일 뿐 항상 제자리인 나선형의 경로를 표절한 시간적 궤적을 추적해 보지만 모로 누운 섬의 정원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시차를 달리하는 다변적 달과는 달리 녹슨 흙비에 젖은 외눈의 가시거리 안팎, 빛의 농도는 근시안적 착시로 가파른 해안선 모서리 말리듯 사막을 횡단하는 오아시스의 민낯 같아서 황급히 늙어 가는 목주름처럼 수분이 말라 버린 미라의 전설일 뿐
테이블 위에 놓인 탄소중립
불가능을 먹고 사는 인공지능 긴급 처방에도
굴뚝의 원성은 지혈을 멈출 재간이 없다
문득 어렵사리 홍해를 가로지른
히브리 백성들, 어디에 불을 댕겨야 할지
가나안은 부재중인데
송병호 | 2016년 『詩苑』, 2018년 『예술세계』, 2019년 〈국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궁핍의 자유』 『환유의 법칙』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가령 무제의 입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