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를 켰더니 통역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전문가일 것으로 추측되는 출연자는 인공지능과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는 통역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 기술이 창출하는 시장이 요 몇 년 동안 10배로 커졌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웨어러블 번역기 “일리”가 나왔는데 97% 이상의 정확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친구와 네이버의 파파고 번역기로 장난을 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이제 그야말로 바벨 피쉬의 시대가 온 것일까? 바벨 피쉬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물고기인데, 이 생물을 귀에 넣으면 다른 종족의 언어 뇌파를 먹고 자신의 언어로 내뱉는다는 미라클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만일 바벨 피쉬 같은 통역기가 나온다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외국어를 배우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도 있는
것일까? 어제 소개한 [Fluent Forever]에는 미국인들을
풍자하는 이런 문장이 있다.
Americans who travel abroad for the first
time are often shocked to discover that, despite all the progress that has been
made in the last 30 years, many foreign people still speak in foreign
languages. – Dave Barry
“처음으로 외국을 여행하는 미국인들은 지난 30년 동안 이루어진 모든 진보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들이 여전히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먹는다.”
하하. 이제 미국인들이 더 이상 그런 불쾌하고도 놀라운 사실에 직면해야
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안에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고 믿어야
하는 걸까? 나처럼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술의 힘을 신뢰하지 못하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들인 걸까.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저 언어가
그렇게 단순하게 의사소통의 도구만은 결코 아님을 지적하는 데 그치기로 하자. 부르디외가 말한대로 언어는
항상 ‘구별짓기’의 도구였다. 역사 속에서 언어는 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나타내는 차별과 배제의 도구 역할을 해왔다. 만일 만능 통역기가 일반화된다면, 어떤 사람들은 통역기가 이해할
수 없는 방언들을 만들어서 유통시킬 지도 모른다. 문화가 기술에 종속되기도 하지만, 문화는 기술을 선택하고 배치하기도 한다. 글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어떻게 될까?
첫댓글 미국인의 자만심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군요... ^^
이제는 좀 더 쉽게 각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겠군요.. “일리” 가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