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진 작곡가 · 신창악운동가(新唱樂運動家). 2대째 목사 집안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찬송가 등으로 서양음악을 접했다. (혼자 오르간을 치는 모습에 재주가 엿보여 부친이 바이올린을 사주었다고 한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니면서 D. R. 말스베리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5학년 때 〈봄이 오면〉(김동환 작시)을 작곡했다.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다닐 때 양주동에게 배운 이은상 시(詩) <가고파>(1933) 를 비롯해서 (약관 20세에 작곡한 가고파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 김동환 시집을 애독하고〈발자욱> <뱃노래>등을 작곡해 재능을 인정받았고, 당시 애환에 공감을 불러 일으켜 국민적인 작곡가로 떠오르게 되었다. 1936년 숭실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 후 1939년에는 만주 신경교향악단원으로 일하다가 해방 직후 평양음대 교수로 중앙교향악단을 조직하여 평양예술문화협회에서도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해산되면서 월남했다. 월남후 6·25 전쟁 중 육군 종군작가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십 곡의 군가를 작곡하여 군가작곡상(1952)도 탓고, 휴전 후 서라벌예술대학에 있으면서 국방부 정훈국 주최의 연주회에서 〈조국찬가〉를 작곡했다. 초기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영화음악도 작곡하여 청룡영화제 작곡상(1966)을 타기도 했다, (지금 흐르는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 바로 영화음악으로 작곡된 곡이다.) 정부수립경축음악회에서〈승리의 길>을 작곡·지휘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부에 협력하여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타고 19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은관 문화훈장도 받았다) 서라벌 예대를 거쳐 1963년부터 경희대 음악대학 교수를 지냈고, 1967년 음악대학장을 지냈으며 1978년 정년퇴임하여, 그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경희대 재직시 개교 25주년 기념 칸타타로〈목련화(1974)>를 발표했다. 정년퇴임 후 1979년부터는 신창악연구회를 조직하여 열심히 활동했다. 신창악은 한국 가곡의 단순한 형식, 감상성, 선율과 가사의 언어적 결합의 미비점을 극복하면서 판소리 창법을 서양음악 기법과 발성으로 노래할 수 있게 한 성악 음악을 말한다. (신창악을 제대로 이해하는 가수가 드물어 김동진이 직접 노래하기도 했다) 신창악으로 〈심청전〉·〈춘향전〉의 다수 아리아를 작곡했다. 오페라 심청전 외 <신아리랑> <뱃노래> 등의 작품이 있다. 80대에도 오페라를 발표한 노익장!!! 90대에도 연주장에 나타난 평생 한국가곡인! 작곡가 김동진의 빈소 사진 작곡가 김동진의 생전 사진 모음 김동진작곡가 (좌로부터7번) 윗줄 좌로부터 최영섭(작곡가)이근배(시인)정치근(시인)황금찬(시인)황철익(작곡가) 김신환(전세종문화회관사장)김동진(작곡가)박찬석(작곡가) 제1회 울림예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앞 줄) 한 사람 건너 좌로부터 박세원(서울대교수)허방자(숙대교수)이안삼(작곡가)이해인(수녀님) 이혜자(시인)두 사람 건너 박신화(이화여대교수) 좌로부터 정치근(시인)박찬석(작곡가)김동진(작곡가)최영섭(작곡가)
2009년 8월1일, 타계하신 다음날 아침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출구 앞
시장 골목 중간에 있는 간판도 없는 순대국집을 찾아가서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그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 참깨방송
가고파의 작곡자 故김동진의 빈소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 8월3일 영락동산으로 발인
|
첫댓글 전에 이웃사촌님께 이북출신 훌륭한 음악 예술가들이 많다는 소견을 드린적이 있었는데 김동진 선생께서도 평남 출신이시군요~
60년대 대한하모니카협회에서 정기공연할때에 신아리랑을 연주했었는데 연습장에 오셔서 3시간 특별 지도하셨다는 말씀을
원로 연주인께 들었습니다.
역시 음악 ~~툭히 하모니카의 조예가 깊으신 하모니카 협회 부회장이신 오각이님[한문구]동지가 계시므로 하모동산의
앞날이 매우 밝습니다~~김동진 선생은 평양에서 60리 북쪽에 있는 안주[ 安州郡] 출신이며 보람동지의 고향인 진달래 꽃으로 유명한 약산에서
20리 북쪽에서 태여났습니다~`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전재적 작곡가 이면서 한국을 빛낸 분이지요~~오각이님의 선생에대한 회상을 잘 들었습니다~감사 합니다~~!
이웃사촌님께서 올려 주신 김동진 선생님의 동영상과 사진 자료들을 보니 수십년전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군요
지나번 하모사랑에 김동진 선생님의 대표적 가곡 가고파를 선생님을 추모하며 트레몰로 연주를 올린적이 있었지요 제가
젊은시절 대학시절부터 옥인동 선생님 앞집에 살아서 자주 가까이서 뵙던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아련히 떠 오르네요
가고파 후편을 연주해 보려고 늘 마음에 두었었는데 아직 시도를 못하고 있네요 시간이 허락 되면 해보려고 합니다
훌륭한 자료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짱가님 반갑 습니다~~님에게 그런 사연이 게셧군요~~옥인동은 참 좋은 동리 이지요~~
제가 한 20년간 중앙청에 근무하면서 자주 찾던 동리이기도 하지만~~김동진 선생과 우리 아버지는
같은 평양승실중학 출신 입니다~그리고 6,25 때도 같은 피난대열에 끼여서 내려 왔구요,
잊을 수 없는 한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명작곡가요, 이나라 음악의 선구자 이지요~`짱가님의
음악 열정에 다시 한번 감동 합니다~~작심하신 일 성공 하시길 기원 할께요~~!
많은 사람들에게사랑 받던 가고파를 두고 아쉽게 가셨군요....(고)김동진선생님께 조의를 표합니다.
이웃사촌님은 여러가지로 회한이 많으시겠네요~ 귀중한 사연소개 감사드려요*^^*
가고파는 6,25 한국전쟁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타관으로 흐터져 살면서 애타게 부르던
당시 민족의 노래로 불러 졌지요~`그렇치만 그 곡은 너무나도 유명한 민족의 회한이 넘친 곡으로 오늘까지 게속 됩니다~~!
김동진 선생은 동양은 물론 세계적 작곡가로 손색이 없으신 분이라고 생각 합니다~`휘세님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