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케임-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AD20188902 류진옥
제주의 공동체와 제주의 무속신화와 의례가 어떠한 관계로 계승되어 왔는지 연구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종교를 신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사회학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뒤르케임의 입장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고등종교가 아닌 신앙이면서 주술과 종교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생각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지난 금요일 선흘리에서는 제주4.3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올해로 제주4.3은 71주년을 맞았고,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행사는 크게 3부로 진행되었다. 1부는 봉제, 즉 희생자 영령에 대한 합동제, 2부는 위령비 제막식,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3부로 시왕맞이굿이 이어졌다. 시왕맞이굿은 대상(大祥)을 지낸 후 지내는 굿으로 영혼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그를 관장하는 시왕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것이다. 선흘리는 설촌의 역사가 길고, 전승하는 제주신화 중 <선흘리 안판관>이라는 조상신본풀이를 보면 제주에서 재력을 가진 집안이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제주 무속사회에서 선흘리 안칩은 그 마을의 오랜 상단골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신앙의 역사는 단절된지 오래 되었다. 현재 선흘리는 마을 당굿을 하지 않은지 오래고, 이 또한 4.3의 영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자 위령식에 1부의 봉제와 함께 무속의례를 동시에 계획한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제주에서 확보된 무속의 지위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으며, 공동체가 유지되던 시기의 신앙이 공동체를 재복구하는 과정에서 소환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여전히 원혼의 명복을 기원하는 데 있어서 제주민이 관념하는 가장 직접적이인 것이 제주 무속의 영향력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장면이기도 하였다.
뒤르케임의 종교에 대한 총합적 진술인 이 책을 보면서 제주무속의 여러 면과 견주어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뒤르케임은 종교와 주술을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분 기준으로 ‘공동체(교회)’를 들고 있다. 현재의 교회와 같은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또한 개별적인 사가집 의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한다면 제주무속의 등위를 주술로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계승의 단절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각 마을마다 신당이 있고, 신당을 주관하는 ‘매인심방’이 있고, 정기적인 의례와 독자적인 신화를 갖춘 모습으로서 종교적 근거를 형성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신격의 성격이다. 제주 무속의 신들은 모두 가난하고 범인적이다. 가난하고 척박하게 살아왔던 제주민의 모습이 투영된 것을 볼 수 있다. 신화의 갈래 중 자연물-돌, 뱀, 솥 등-과 해골을 숭배하는 장면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원시적인 요소를 담보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을 구성하는 신들이 인격적인 신이며 비범하고 대단한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일상적 범인의 모습을 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모습의 신은 훨씬 후대의 산물이다.”라는 전제 속에서 제주신화를 바라본다면 신화 형성의 후대적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자연물에서부터 인격신에 이르기까지 구비전승의 관계 속에 변천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뒤르케임은 서술 과정 내내 다른 학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에서 원시인에 대한 인식의 차별성을 문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뒤르케임의 원시인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는가, 원시문화와 근대에까지 변천하는 과정에서 자연과학의 발전 외에 다른 차원에서는 동일한 것인가, 즉 원시원과 근대인의 인식에 있어서 정말로 별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종교는 인간이 자연 앞에서 무력하다고 느끼는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는 진술과 연관되어 고민하게 될 내용이다. 원시인의 토템에서 영혼과 신의 발명에 이르는 과정에서 원시인의 초기 꿈과 환상에 대한 측면을 완전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른 의문점 하나는 ‘데리고 온 아내나 새로 입문한 신참자들의 몸에 토템 문양의 상처를 입힌다.’는 진술은 모계사회의 반영으로 토템의 문양이 전승된다는 전술-‘토템이 명칭이 습득되는 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의 토템을 그 자녀들이 취득하게 된다.’-과 비교하여 모순된 점이 있는데 이는 부계사회로 전환된 후까지 토템문화가 전승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문제인가, 문장(紋章)으로서의 토템으로 방향이 전환되는 과정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문제인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뒤르케임의 종교관은 흡사 신념과 종교, 공동체의 도덕과 종교를 유사한 것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 논의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