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2006.01/02 제4차 갈라파고스 다이빙 원정기

[형님]

2006.01/02 제4차 갈라파고스 다이빙 원정기
The 4th GALAPAGOS EXPEDITION

글/최성순, 사진/최성순, 오경철, 오이환, 우대혁, 박세화, 진신

프롤로그 Prologue
다이버들의 갈라파고스 여행을 일반적인 해외 투어와 달리 굳이 원정(遠征)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가는 길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려면 최소한 2박 3일이 소요되는데 먼저 미국의 LA(또는 뉴욕)를 거쳐야 하며, 다시 중미의 코스타리카(Costa Rica)를 거쳐서 남미의 에콰도르(Ecuator)에 도착해서 다시 갈라파고스로 들어가야 하는 먼 여정인 것이다. 보름의 일정에서 왕복 6일의 시간을 이동하는데 소요하고, 중간 기착지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를 휴식이나 관광에 사용하면 실제로 갈라파고스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주일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갈라파고스에서도 최북단의 울프(Worlf)나 다윈(Darwin)섬을 가야 햄메헤드 상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사진/오이환

그럼에도 갈라파고스를 가는 것은 고래상어나 햄머헤드 상어, 돌고래, 만타레이, 바다사자, 개복치 등 이들 중 하나만 확실하게 볼 수 있다고 해도 충분히 상품성을 가지는 대형 해양동물들을 한꺼번에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이빙 말고도 부비새와 군함조의 군서지 방문, 화산의 형성과 풍화 과정을 볼 수 있는 지질학적 관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다사자 무리들과 바다 이구아나의 관찰, 갈라파고스 육지거북과 육지 이구나아의 생태 및 보존 프로그램 관찰 등이 다이빙 일정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다이빙은 물론 이와 함께 진행되는 육상 관광 활동들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진화론의 산실이라는 갈라파고스의 자연과 환경을 통해 다양한 해양학, 생물학, 지질학적 지식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느끼면서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단순한 투어라기 보다는 원정이라는 의미가 더욱 다가온다.
아무튼 갈라파고스 원정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생생하고 역동적인 감동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러나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간접적인 경험만으로 그런 감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갈라파고스를 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그 감동을 잊지 못해 반복해서 원정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이번 4차 원정은 이미 2 차례 원정을 다녀와서 갈라파고스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간직하고 있던 오이환 씨(DEPC 회장)가 수원 효원 다이빙 클럽의 동료 회원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면서 추진되었다. 갈라파고스를 평생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소개하며 갈라파고스의 감동을 전파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소한 5명의 회원은 참가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 오이환 씨는 진신 씨와 상의하여 예전부터 이용해왔던 미스트랄(Mistral) 호를 전세냈고, 여기에 몇몇 기존 원정 대원들이 동참하고, 재미교포 다이버들이 합류하여 원정이 성사되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참가를 장담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막판에 포기한 다이버도 있었지만 다행히 늦게라도 여건을 만들어 참가한 다이버들 덕분에 역대 최대 인원인 12명의 제 4차 갈라파고스 원정대가 구성되었다.
앞선 3 차례의 갈라파고스 원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경험이 있는 진신 씨가 이번에도 리더로서 전 과정을 이끌었으며, 이미 한 차례 이상 원정 경험이 있는 오이환, 신풍우, 우대혁(대웅슈트 대표) 씨와 필자가 이번에 다시 참가했으며, 캡핀 다이빙 풀을 정리하고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오경철 강사와 수원 효원 다이빙 클럽의 이영호, 박영철, 선치호 씨가 처음으로 원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LA 웨스턴 스쿠바의 신현구 강사와 회원인 최영규씨, 북가주에서 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박세화 강사가 LA 현지에서 원정에 합류했다.
지난 해 12월 8일 국내에서 출발하여 12월 22일까지 보름간 진행된 갈라파고스 원정은 7박 8일 간의 갈라파고스 제도 항해를 전후해서 장시간의 이동과 에콰도르 키토(Quito)에서의 힘든 고산 관광이 포함되어 있어서 비록 LA에서의 휴식이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일행 중에는 30대의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60대 전후의 장년 다이버들도 있었으나 모두 무사히 힘든 일정을 소화하며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본지는 이미 3 차례의 원정기를 통해서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갈라파고스의 자연역사, 생태지리학적 환경과 서식생물, 다이빙과 육상 관광의 에피소드 등을 정리해서 발표했다(200년 9/10월, 11/12월호 “갈라파고스 제도, 위대한 자연 역사 기행”, 2002년 7/8월호 “갈라파고스 2차원정”, 2003년 9/10월호 “갈라파고스 3차 원정기”). 따라서 갈라파고스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와 육상관광 및 다이빙 사이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면 과월호의 원정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정기를 정리하면서 새롭게 경험한 내용들과 예전에 비해 달라진 내용들을 추가하여 기존 정보들을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하겠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앞에서 기념사지을 촬영한 제4차 원정대원들. 뒷줄 왼쪽부터 박세화, 최영규, 진신, 이영호, 니콜라스, 신현구, 오경철, 앞줄 왼쪽부터 우대혁, 신풍우, 박영철, 선치호, 오이환

에콰도르 비자의 면제
Visa Exemption Agreement
최근 에콰도르 정부는 자국의 비자면제규정을 개정하여 한국인이 관광 또는 비지니스 목적으로 에콰도르 방문시 30일간(30일 경과후 추가 체류 희망시 90일까지 연장 가능) 무비자 입국, 체류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 조치는 2005년 12월 1일부터 시행되었으므로 이번 4차 원정대원들은 에콰도르 비자 없이 출국할 수 있었다.
지난 3차 원정까지는 출발 전에 미리 서울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는데 비자 발급비도 비쌌을 뿐 아니라 본인이 직접 대사관을 방문해야 했으므로 여간 번거러운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번 조치로 인해서 앞으로 갈라파고스 원정을 떠나는 다이버들은 에콰도르 비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옐로우테일드 서전피쉬(Yellowtailed Surgeonfish, Prionurus laticlavius)의 무리. 사진/최성순

그런데 이번 4차 원정대의 에콰도르 입국 과정에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12월 9일자로 에콰도르 키토에 입국한 우리는 입국 심사를 위해 몇 개의 줄로 나누어 섰다. 대부분 아무 문제없이 심사대를 통과해서 나갔지만 다른 줄에 서있던 일부 일행들은 심사관이 비자를 요구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었다. 12월 1일부터 한국인 비자면제 조치가 시행되었다고 이야기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똑 같이 비자없는 일행들이 옆 줄에서는 통과되었다고 해도 모르쇠였다. 결국 몇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른 심사관들의 참견이 있고서야 마지막에 통과되었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는데 한국을 말할 때 “꼬레 델 수르(Corea del Sur, 남한)”라고 해야 북한과 혼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16도의 차가운 용승류가 밀려오는 갈라파고스 동부의 푼타 비센트 로카(Punta Vicent Roca)에서 만난 개복치(Sunfish, Mola mola).크기는 거의 2m 정도 되었다. 사진/최성순.

LA에서의 휴식과 부식 준비
Rest and Preparation at L.A
이미 여러 차례 갈라파고스 원정 경험이 있는 우리 일행들은 LA에서 12시간 정도 쉬는 동안 사우나에서 눈도 붙이고, 필요한 부식도 준비하기로 했다. 대형 한국 마켓에서 라면과 고추장, 김치 등의 기본적인 부식은 물론 김, 오징어, 멸치, 젓갈, 참기름, 간장, 고추냉이(와사비), 소주 등을 샀으며, 밥할 때 섞으면 좋다며 찹쌀까지 한 봉지 넣었다. 거기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군것질 거리까지 더하니 부식비만 무려 US$400(약 40만원 정도)이 되었다. 이를 차곡차곡 단단히 쌓아 포장해서 3개의 큰 박스로 만들었다.
1차 원정 때는 일체 부식을 준비하지 않았지만 승무원들만 먹고 있는 쌀밥을 달라고 해서 일행 중 한명이 가져온 고추장에 양파와 마늘을 찍어 먹으면서 겨우 입맛을 달랬다고 했다. 그래서 2차 원정 때부터는 LA에서 부식을 준비했는데 고추장과 김치, 라면 등의 필수 부식만 준비했었다. 그리고 갈라파고스에서 참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2차 원정에서 알게 되면서 3차 때에는 참치회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간장과 고추냉이도 준비했다. 그런데 이번 4차 원정에는 아예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모두 준비하는 형국이 되었다. 인원이 12명이나 되고 또 입이 까다로운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일단 최대한 준비를 하자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여하간 우리는 LA에서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해서 코스타리카 산호세(San Jose)를 거쳐 에콰도르 키토까지 가는 새벽 1시 5분 발 락사(Lacsa) 항공편을 기다리며 짐을 부쳤다. 다이버 12명의 장비와 카메라 가방은 모두 18개가 되었고 여기에 부식 박스 3개까지 추가하니 짐은 모두 21개였다. 먼저 장비와 카메라 가방을 부치고 마지막으로 부식 박스 3개까지 체크인 한 뒤에 짐들이 검사를 통과하여 모두 수탁되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일행들은 탑승구로 올라갔다. 일하는 것이 느려서인지 줄서서 기다리다가 짐을 부치는데만 거의 2시간이 소요되었다.

기내식을 파는 락사 항공과 도착하지 않은 부식 박스
Selling Cabin Food and Lost Baggages.
LA에서 산호세까지는 5시간 30분으로 인천에서 태국 방콕까지 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 소요된다. 2차 원정길에서 락사 항공은 기내식으로 차가운 햄버거를 제공했는데 3차 원정길에서는 햄버거를 따뜻하게 데워서 내놓았다. 그래서 이번 4차에는 기내식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흥미를 가지고 지켜 보기로 했는데 기내식을 제공하는 승무원들에게 1달러 짜리 지폐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박세화 강사는 이를 보고 기내식 서비스를 받으면서 팁을 주나 보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밝혀진 것은 기내식으로 음료와 스넥은 무료지만 샌드위치는 별도로 5달러에 판매 한다는 황당한 사실이었다. LA에서 비행기 탑승 전에 이미 맥도날드 햄버거로 배를 채웠던 우리는 샌드위치가 당기지는 않았지만 5시간 30분이나 소요되는 긴 항로에서 기내식을 돈을 받고 판다니 어이가 없었다. 이는 산호세-키토 구간도 마찬가지 였다.

이번 원정에 참가한 다이버들의 촬영장비,
필름 카메라가 3대, 디지털 카메라가 6대, 비디오가 2대였다.

우리는 코스타리카 산호세에 도착하여 환승을 기다리는 동안 후안 산타마리아(Juan Santamaria) 국제공항 내의 스넥코너에서 피자와 치킨, 햄버거 등으로 대략 요기를 하고, 간단하게 쇼핑도 했다. 코스타리카는 에코 투어리즘이 발달된 곳이며 인디오들이 수놓은 현란한 무늬의 티셔츠들과 향이 좋은 커피 등이 기념품으로 유명하다. 우리 일행들도 돌아오는 길에 산호세에서 티셔츠와 커피 등을 선물용으로 구매했다.
우여 곡절 끝에 키토에 도착해서 짐을 찾는데 장비와 카메라 가방은 모두 도착했지만 부식을 담은 박스 3개만 보이지 않았다. 수화물 표를 확인하며 미착 수화물에 대해 항공사 직원들과 한창 실랑이 하던 진신 씨가 난감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LA에서 수화물을 부칠 때 항공사 여직원이 마지막 부식 박스 3개는 따로 사인을 해달라기에 해줬는데 그것이 6일 정도 짐이 늦게 도착해도 된다는 양해각서였다는 것이다. 카메라 등의 고가 제품을 수화물로 부칠 때 취급중 손상되도 괜찮다고 서명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진신 씨는 이번에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서명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숙식보트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던 일부 다이버들의 표정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러나 종종 수화물이 도착하지 않는 락사 항공의 실태를 감안하여 키토에서 고산 관광을 하며 하루의 완충 시간을 두었으므로 다음 날이라도 수화물이 도착하면 된다는 낙관적인 기대로 불안감을 몰아냈다. 지난 3차 원정 때에도 일부 장비와 카메라 가방이 도착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 바로 갈라파고스로 들어가야 했으므로 여행사인 콰사 노티카(Qursa Nautica)에서 다음 날 도착한 짐을 갈라파고스로 보내줘서 하루 일정을 조정한 다음에 무사히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이번 원정에는 키토에서 하루 더 머물며 혹시라도 수화물이 도착하지 않을 경우도 대비하며, 처음 에콰도르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세계 최고의 활화산인 코토팍시(Cotopaxi) 투어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활화산 코토팍시
Cotopaxi, The Highest Active Volcano
키토에 도착해서 솔(Sol)이라는 한국 음식점에서 간단한 반주와 함께 삼겹살과 김치찌게로 하루 동안의 허기진(?) 배를 채웠다. 경험자들은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는 해발 2,850m 고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과한 음주와 활동은 고산병 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관광하기로 한 코토팍시도 4,500m 까지 올라가는데 모두 고산증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그럼에도 에콰토르를 처음 찾은 사람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스페인어가 통하는 신현구 강사를 대동하고 키토의 밤 문화를 함께 즐기기도 했다. 에콰토르의 정정이 불안했던 시절에 왔던 1차 원정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에콰도르의 정세가 많이 안정되었고, 또 원정대의 경험이 쌓여 가면서 점차 활동 반경이 넓어진 것이다.
다음 날에는 느긋하게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10시 경에 전세 버스를 타고 코토팍시 관광을 나섰다. 코토팍시는 해발 5,897m의 높은 봉우리로 고도 4,800m 이상에는 만년설이 뒤덮혀 있으며, 분화구에서 계속해서 가스가 방출되고 있는 활화산이다. 또한 코토팍시 일원은 에콰도르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공원 입구는 키토에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있으며, 여기서 다시 30분 이상 차를 타고 올라가야 산의 정상 근처가 보인다. 차량으로는 4,500m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다시 300m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눈이 쌓인 산장이 있다. 그러나 고도가 높은 코토팍시의 정상은 항상 구름 속에 가려져 있어서 설봉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2차 원정길에도 코토팍시 관광을 나섰지만 구름에 가려 정상을 보지 못하고 돌아섰던 아쉬운 기억이 있었다.

짝짓기 시즌을 맞아 영역을 수호하는 수컷 바다 이구아나가 다른 수컷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서 싸우고 있다.

이번에는 출발할 때부터 날씨가 좋아 코토팍시의 정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해발 4,000m에 형성된 호수를 구경하고 있을 때 코토팍시의 정상이 구름에서 벋어나기 시작했다. 눈부신 하얀 눈모자를 쓰고 있는 코토팍시의 모습은 웅장하고도 신성해 보였다.
버스를 타고 4,500m 고지의 주차장까지 올라가자 코토팍시는 구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이드는 코토팍시가 이렇게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번에는 운이 참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져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와중에 오경철 강사는 눈을 만져 보겠다고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필자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며 잠깐 동안 짧은 거리를 이동했는데 어질어질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중 가장 연세가 많은 이영호 씨는 가슴이 답답하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는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것이 고산증세를 겪는 것 같았다. 빨리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증세를 호전시키는 방법이라 일행들을 불러 철수를 서둘렀다. 오경철 강사는 약 100m 정도 더 올라갔다가 사람들이 기다릴 것으로 생각하고 내려왔다는데 숨이 턱턱 막히고, 힘이 빠져서 올라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잠깐 걷다가 쉬면서 숨을 돌려야 다시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달리기를 열심히 한다는 오경철 강사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고도 4,500m에서는 움직인다는 자체가 호흡 곤란과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차량을 타고 그곳까지 올라가서 그렇지 차량이 없었다면 감히 올라가기 힘든 고도인 것이다.
차량을 타고 다시 키토로 돌아오는 길목에 코토팍시의 정상이 보이는 공원 내의 전망좋은 인디오 식당에서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다.

산크리스토발의 공항 도착
San Cristobal Airport
새벽에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미팅을 나온 가이드에게 부식 박스가 도착했는지 물어 보니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마 하는 기대를 갖고 있던 일행 몇몇은 부식이 없다는 사실에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지는 듯 했다. 서둘러 한식당 솔의 사장에게 연락하여 김치와 고추장 등 준비할 수 있는 밑반찬을 마련해달라고 사정했다. 다행히 갈라파고스 행 항공기가 출발하기 직전에 솔의 사장이 김치와 고추장 등을 두 보따리나 갖고 와서 이를 받아갈 수 있었다.
한가지 다행한 소식은 미스트랄을 비롯한 갈라파고스 숙식 보트들의 항해 상품을 제공하는 콰사 노티카에서 매주 일요일 키토-과야길-산 크리스토발을 왕복하는 전세 비행기를 운항하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수화물의 추가 요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미국을 들어가거나 미국에서 나오는 항공편은 개당 35kg까지 되는 수화물을 1인당 2개까지 허용해주지만 키토에서 갈라파고스 구간은 그간 1인당 25kg만 허용했기 때문에 다이빙 장비와 카메라 등의 무거운 장비를 휴대한 다이버들은 항상 비싼 초과요금을 내야했다. 그래서 초과요금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무겁지만 부피는 작은 카메라와 레귤레이터 등을 휴대 가방에 넣어서 가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산크리스타발 공항.

1차에서 3차까지는 모두 발트라(Baltra) 공항을 이용했지만 콰사 노티카의 이카루(Icaru) 항공 전세기는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 공항에 도착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산 크리토발 섬은 처음이라 기대가 많았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공항 청사의 모습은 발트라와 너무나 똑 같았다. 다만 발트라 섬에는 공항만 있지만 산 크리토발은 갈라파고스의 수도인 푸에르토 바케리조 모레노(Puerto Baquerizo Moreno)가 바로 붙어 있다는 점만 달랐다.

푸에르토 바케리조 모레노.

키토 공항에서 수화물을 부치는 순간부터 미스트랄 호에 탑승하는 순간까지는 더 이상 수화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화물들에는 이미 미스트랄 호 승객의 짐이라는 표식을 붙여 놓았기 때문에 짐이 도착하면 승무원들이 찾아서 보트까지 옮겨 주기 때문이다. 일행들은 휴대 짐만 가지고 공항을 나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버스를 타고 바케리조 모레노 항으로 이동했다.

울프 섬에서 만난 옐로우테일드 고트피쉬(Yellowtailed Goatfish, Muloidichthys vanicolensis)의 무리들. 사진/최성순.

승무원들이 수화물을 챙기는 동안 일행들은 항구 근처의 가게들을 구경하며 티셔츠나 모자, 선상에서 입을 바지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나중에 산타 크루즈 섬의 아요라 항과 비교해보니 바케리조 모레노 항의 가게들이 20%~40%까지 저렴했는데 이는 갈라파고스를 찾는 관광객들의 절대 다수가 아요라 항을 방문하는 반면 바케리조 모레노 항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는 거기에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수요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격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바케리조 모레노와 아요라를 모두 방문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바케리조 모레노에서 쇼핑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품질이나 종류 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참고로 갈라파고스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섬은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 산타 크루즈(Santa Cruze), 이사벨라(Isabela), 플로리아나(Floreana, 또는 산타 마리아) 등 4곳 뿐이다. 현재 갈라파고스의 인구는 22,000~23,000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산타 크루즈에 14,000명, 산 크리스토발에 7,000명, 이사벨라에 1,000명, 플로리아나에 600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갈라파고스의 인구는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본토에서 꾸준히 유입되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관리국은 갈라파고스의 자연 생태를 보전하기 위해서 과도한 인구의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다윈 스테이션의 권고를 받아 인구의 유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갈라파고스 주민들은 관광과 어업으로 본토보다 소득이 높기 때문에 불법적인 인구의 유입을 막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바케리조 모레노항에 정박한 보트들. 아요라 항보다는 선박들의 통행이 적었다.

● 갈라파고스 제도 항해 일정
12월 11일 산크리스트발 도착, 로보스 섬
12월 12일 고돈 락, 노스 시모, 바르톨로메
12월 13일 울프 섬
12월 14일 다윈 섬
12월 15일 레돈다 락, 푼타 비센트 로카
12월 16일 마샬 코브, 제인스 만
12월 17일 고돈 락, 다윈 스테이션, 산타크르즈 하이랜드
12월 18일 산크리스토발 해설관 방문, 산크리스토발 출발

이번 항해에 이용했던 미스트랄 호의 모습

8일간의 갈라파고스 군도 항해
8 Days Crusing Around The Galapagos Islands
숙식 보트 미스트랄 호를 이용한 이번 갈라파고스 항해는 12월 11일부터 18일까지 7박 8일간 진행되었다. 처음 갈라파고스를 방문하는 일행들에게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상당한 이동거리 임에도 불구하고 최북단의 다윈(Darwin)과 울프(Wolf) 섬은 물론 남쪽에 있는 산타마리아(Santa Marina, 플로리아나)의 챔피언(Champion) 섬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 울프 섬과 다윈 섬의 다이빙에서 햄머헤드 상어와 고래상어를 실컷 구경한 일행들은 다음 여행지에 대해서 크게 게의치 않았고, 가이드인 니콜라스(Nicolas)가 개복치(Sunfish, Mola mola)를 볼 수 있다는 푼타 비센트 로카(Punta Vicente Roca)를 추천하자 그에 따르기로 하면서 결국 챔피언 섬은 포기하게 되었다. 챔피언 섬은 맑은 시야에서 바다사자를 한없이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이미 체크 다이빙에서부터 바다사자를 실컷 만난 다이버들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진행된 항해 여정은 산 크리스토발의 바케리조 모레노 항-로보스(Lobos) 섬-산타크르즈(Santa Cruz)의 고돈 락(Gordon Rock)과 노스 시모(North Seymour) 섬-산티아고(Santiago)의 바르톨로메(Bartolome) 섬-울프(Wolf)-다윈(Darwin)-이사벨라(Isabela)의 레돈다 락(Redonda Rock)-푼타 빈센타 로카(Punta Vicentea Roca)-마샬 코브(Marshall Cove)-산티아고의 제임스(James) 만-고돈 락-아요라 항(Puerto Ayora)-산크리스토발 등이다. 이 7박 8일의 항해 동안에 최대 21회의 다이빙과 7회의 육상 관광이 포함되어 갈라파고스의 수중과 육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찬물이 용승하는 푼타 비센트 로카의 절벽에 자라고 있는 고르고니언 산호들.

산크리스토발의 로보스 섬
Lobos Island, San Cristobal
푸에르토 바케리조 모레노(Puerto Baquerizo Moreno)를 출발한 미스트랄 호는 로보스(Lobos) 섬으로 이동하여 로보스 섬과 산크리스토발 섬 사이의 얕은 내만에 정박했다. 바케리조 모레노 항을 출발한 다른 요트들과 다이빙 전문선박인 스카이덴서(Sky Dancer)도 모두 로보스 섬을 찾았다. 다이버들은 먼저 웨이트와 장비를 점검하는 체크 다이빙을 실시했다. 적도 근처에 있는 갈라파고스는 다른 열대 지역과 달리 물이 차기 때문에 두꺼운 왯수트를 입어야 한다. 또한 파도와 조류가 강하기 때문에 입수 즉시 하강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갈라파고스의 다이빙 가이드들은 따뜻한 열대 다이빙에 익숙한 다이버들이 갈라파고스의 험한 다이빙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먼저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웨이트를 확인하여 착용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실제 다이빙에 들어갔을 때 수면에서 입수를 못해 머뭇거리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체크 다이빙 포인트이긴 하지만 로보섬의 얕은 수심에서는 바다사자들과 옐로우테일 서전피쉬(Yellowtail Surgeonfish) 무리등 촬영 소재들이 많아 다이버들이 카메라나 비디오 등 자신의 촬영 시스템을 점검하며 충분히 촬영 연습을 할 수 있었다. 6m 정도의 모래바닥에는 가오리들이 있었고, 롱테일 블레니(Longtail blenny)도 보였다. 체크 다이빙임에도 수심 6m에서 50분 정도 다이빙을 했다면 볼거리가 상당했슴을 알 수 있다.
다이빙을 마치고 나오니 일행 중 한 명의 비디오 하우징이 침수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들렸다. 그것도 빌려서 가져왔는데 첫 다이빙에서 침수가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그러나 성격이 좋은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초연하게 행동하며 일행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2차 원정 때도 첫 다이빙에서 비디오가 침수되는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다 보니 꼭 한 건 정도는 침수 사건이 발생한다. 따라서 낭패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백업 장비들을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짝짓기 시즌이라 붉은 색을 많이 띠고 있는 이구아나들

로보스 섬 육상에서는 군함조와 부비새 등의 조류와 바다사자 등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부비새는 가끔 보였고, 군함조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들만 보였다. 바다사자는 매우 많았다. 상륙지점 계단을 차지하고 누워있는 바다사자들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지역의 육상 생태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쉬운 것은 바르톨로메 섬의 촛대바위와 함께 갈라파고스의 상징적인 지질학적 구조물인 키커 락(Kicker Rock)를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로보스 섬에서 멀리 키커 락이 보이기는 했지만 항해 일정상 키커 락을 방문하지는 못했다. 체크 다이빙과 육상 관광을 마치니 이미 해가 저물었고, 배는 한밤 중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로보스 섬에서는 야간 다이빙도 진행했는데 갈라파고스 까지 도착하는 장시간의 여행에 피곤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음 날 다이빙을 위해 일찍 쉬기로 했고, 몇몇 열성 다이버들만 롱테일 블레니(Longtail blenny)를 촬영하기 위해 야간 다이빙에 들어갔다.
참고로 갈라파고스 원정에서는 매일 3~4회의 다이빙을 실시하며 다이빙이 적은 날에도 육상에 상륙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등 항상 빠듯하게 일정이 짜여져 있다. 또한 거친 파도와 강한 조류 그리고 차가운 수온 등에서 진행되는 다이빙 활동인지라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요구한다. 긴 일정 동안 적절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컨디션을 살펴가며 불필요한 활동은 자제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무리가 될 것 같으면 중요하지 않은 다이빙은 한 두 번 쉬는 지혜도 필요하다. 무리해서 활동하다가 탈이 나면 정작 좋은 곳에서는 체력이 달려 누워 있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촬영한 사진을 확인해보는 다이버들

또 한번의 부식 배달 사고
Sinking of Dinghy Boat
다음 날 새벽 6시 산타 크루즈 섬의 고돈 락에 도착하여 첫 다이빙을 실시했다. 거친 파도에서 조디악을 타고 들어간 다이빙 포인트는 매가오리와 카우노즈레이(Cownose ray) 편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수온약층이 뚜렷하여 차가운 깊은 수심은 시야가 괜찮았지만 얕은 수심은 시야가 흐렸다. 예상 외로 가오리들은 볼 수 없었고 다이빙을 마칠 즈음에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뮬렛 스내퍼(Mullet Snapper, Lutjanus aratus)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보트는 이동하여 노스 시모(North Seymour) 섬에서 다시 다이빙을 실시했다. 동굴 속에 쉬고 있는 화이트팁 상어와 블루스트라이프드 스내퍼(Blue Striped Snapper) 무리, 블랙 스트라이트드 살리마(Black Striped Salema) 무리 등을 볼 수 있었다.

사진/오경철. 다윈섬에서 만난 큰돌고래(Bottlenose dolphin. Tursiops truncatus) 이 돌고래는 나이가 들어 무리에서 이탈한 것으로 다윈 섬의 플랫폼 포인트에
아주 붙박이로 살고 있기 때문에 다이버들 눈에 자주 띤다고 한다.

다이빙을 마친 다음 바로 노스 시모 섬에 상륙하여 육상 관광을 하기로 했다. 노스 시모 섬은 지진 활동으로 융기된 낮고 편형한 섬으로 부비새와 군함조, 물개와 육지 이구아나, 바다 이구아나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부비새의 산란장으로 5월~11월의 산란기에는 관광객을 위한 소로 중간에도 부비들이 둥지를 만들고 구애와 산란, 보육하는 모습을 흔하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 산란기가 끝나서 그런지 부비새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섬의 관목 숲 한가운데는 군함조들의 산란장이 있는데 선명한 붉은색 목주머니를 가진 수컷 군함조들이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암컷들을 유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륙을 마치고 미스트랄에 탑승하여 점심을 먹는데 보트가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래 상륙해 있는 동안 미스트랄 호는 발트라 항에서 연료와 추가 부식 등을 실어 오기로 했다. 추가 부식에는 미리 부탁했던 우리 입맛에 맞는 캘리포니아 쌀과 생선회를 위한 싱싱한 참치 그리고 간장과 고추냉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부식이 늦어 조디악들이 다시 발트라 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 뒤 무전 연락이 왔는데 부식을 싣고 오던 두 척의 보트 중 하나가 갑자기 일어난 높은 파도에 뒤집혔다고 했다. 보트맨은 겨우 육지로 헤엄쳐 갔지만 싣고 있던 참치와 부식들은 모두 수장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심사인지 이번 원정에서는 부식과 관련된 일이 계속 문제가 생겼다. 그마나 다행인 것은 캘리포니아산 쌀과 간장, 고추냉이 등을 실은 보트는 무사히 배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전복된 보트를 인양하고, 대체할 보트를 수배하느라 출발 시간은 계속 지연되었다.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출발하니 예정되었던 커슨락(Cousin Rock) 다이빙과 바르톨로메 섬 관광 중 하나는 포기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결국 상의 끝에 다이빙을 포기하고 바르톨로메 섬에 상륙하기로 했다.
바르톨로메 섬은 해발 114m 높이의 화산섬으로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을 나무 계단으로 만들어 놓아 관광객들의 활동에 의한 인위적인 침식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했다. 정상에서는 바르톨로메 섬과 산티아고 섬 설리반 만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중턱에서는 끓어 오른 용암의 거품이 튀어서 형성된 원뿔형 기생 분화구와 용암류, 용암동굴 등의 화산성 지형을 관찰할 수 있기도 하다. 또한 화산섬이 풍화되어 토양이 형성되고, 식물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늦은 관계로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기에 서둘러 기념 촬영만 하고 산을 내려와야 했다. 갈라파고스의 육상 관광은 일몰 이전에 마쳐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무리지어 다니는 코튼마우스 잭(Cottonmouth Jack, Uraspis secunda) 사진/최성순.

울프 섬 다이빙
Wolf Island Diving
전날 오후 6시 경 바르톨로메 섬을 떠나 16시간 만인 오전 10시에 울프 섬에 도착했다. 미스트랄 호가 울프 섬 근해에 들어서자 돌고래들이 뱃머리에 따라 붙어 뛰어 올랐다. 돌고래들은 언제나 반가운 존재들이었다.
울프 섬의 다이빙 포인트는 몇 군데가 되지만 주 포인트는 절벽이 무너져 내린 곳으로 항상 조류를 맞받는 곳이다. 무너져 내린 암석들이 쌓여 이루어진 경사지의 수심 20m 정도에서 기다리면 햄머헤드(Hammerhead) 상어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첫 다이빙에서는 다이버들이 햄머헤드를 쫓아 다니느라 오히려 접근하는 상어를 쫓는 결과가 되었고, 두 번 째 다이빙에서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으니 햄머헤드 상어와 함께 갈라파고스 상어들이 계속 선회하며 지나다녔다. 햄머헤드 상어는 다이버들이 내뿜는 기포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갈라파고스 상어는 기포를 내뿜어도 개의치 않고 다이버들 정면으로 접근하여 지나다녔다. 크기가 2m가 넘는 큰 갈라파고스 상어들이 다이버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다이나믹한 분위기는 역시 울프 섬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 번 째 다이빙은 수중동굴과 피너클 포인트였다. 지난 원정 때 강한 조류에 혼이 났던 경험이 있는 필자는 입수하면서 피너클에 매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조류를 타고 흘러야 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라 수중의 빛은 너무 어두웠다. 그래도 동굴 입구에서 엄청난 수의 옐로우테일드 고트피쉬(Yellowtailed Goatfish) 무리를 만나 촬영할 수 있었고, 대형 낫잿방어(Seriola rivoliana) 무리도 만났다.
드디어 울프 섬의 그늘을 벗어나 프레사 (Fresa) 섬과의 사이에 있는 채널 입구로 들어섰다. 조류는 점차 거세지고 있었고 다이버들은 바닥을 기면서 수중 피너클로 접근했다. 피너클에 도착한 다이버들은 조류를 피할 수 있는 피너클의 뒤편에서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필자는 애초 생각한대로 조류를 따라 피너클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 다른 일행들은 아무도 흘러갈 생각을 하지 않고 피너클 근처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하는 순간 뭔가 시커먼 그림자가 왼쪽에서 나타나 피너클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고래상어였다! 있는 힘껏 킥을 하며 고래상어를 쫓아갔다. 고래상어는 피너클 앞에서 회전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고래상어가 지나갔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고래 상어 옆에 붙었을 때는 이미 고래상어의 꼬리지느러미가 막 내 옆을 스치고 있었다. 등지느러미에 붙어 있는 대빨판이(Remora remora)를 겨냥해 셔터를 눌렀다.

울프섬에서 만난 고래상어들.

갑판에 올라오니 난리가 났다. 처음으로 고래상어를 보고 촬영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다이버도 있었고, 피너클 밑에서 바닷가재를 구경하느라 고래상어를 보지 못했다는 다이버도 있었다. 울프 섬에서 고래상어를 만났다면 다윈 섬에서는 더 많은 고래상어들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섞인 위로를 했다. 니콜라스에 따르면 아직 수온이 올라가지 않아서 다윈 섬에 고래상어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울프 섬에서도 야간 다이빙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다이빙에서 고래상어를 만나 쫓아 다니느라 다들 체력 소모가 많았고, 탱크에서 매연 냄새가 심하다며 두통을 호소하는 다이버들도 생기면서 분위기는 야간 다이빙을 포기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울프 섬에서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잠수어부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바닷가재와 해삼을 잡고 있었다. 갈라파고스 공원 관리국과 다윈 스테이션에서는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해삼과 바다사자들의 먹이가 되는 바닷가재들의 개체수를 보존하기 위해 상업적인 어업을 규제했지만 몇 년 전 다윈 스테이션의 입구를 봉쇄하고 과격한 시위를 벌였던 어민들의 반발에 못이겨 해삼과 바닷가재 어업을 허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야간다이빙을 하면 상당히 흔하게 보였던 해삼이나 바닷가재들이 이번에는 잘 볼 수 없었다.

울프섬에서 만난 갈라파고스 상어(Galapagos Shark, Carcharhinus galapgensis)
사진/이영호.

어부들이 바닷가재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가이드를 통해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12마리를 구했다. 바닷가재 회와 찜은 입맛이 까다로운 일행들에게는 특식이 되었다. 며칠째 항해가 계속되면서 박세화 강사와 신현구 강사가 주방에 드나들며 주방장을 훈련시킨 덕분에 이제는 밥도 그런대로 먹을만하게 나왔고, 식후에는 후식으로 누렁지까지 제공되었다. 키토의 식당에서 구해온 김치와 고추장은 입맛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아껴가며 먹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식단의 만족도는 높아져 갔다. 비록 부식으로 구매했던 참치는 조디악의 전복으로 잃어버렸지만 승무원들이 항해 중에 대형 꼬치삼치(Wahoo) 한마리를 낚았기 때문이었다. 이를 회로 뜨기도 했고 생선초밥을 하기도 했으며, 구워먹기도 했다.

단행본 한 권이면 사전학습은 물론 현장 참고서가 충분히 될 수 있도록 책을 만들어 보겠다.

하늘을 뒤덮은 엘로우 테일 서전피쉬(Yellowtail Surgeonfish) 사진/오이환.

환상의 다윈섬 다이빙
Fantastic Diving at Darwin Island
드디어 갈라파고스 다이빙의 하이라이트인 다윈 섬에 도착했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식전 다이빙을 준비했다. 독립문 처럼 생겨 1차 원정 때 본지 발행인이 독립문 바위라고 명명했던 다윈 아치(Darwin Arch) 앞의 플랫포옴 포인트에서 첫 다이빙이 시작되었다. 편편하고 넓은 바위가 외해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그곳은 항상 조류를 맞받는 곳으로 지형적으로는 팔라우의 블루코너에 비해 스케일이 떨어지지만 해양동물들의 활동은 더욱 다이나믹한 곳이다.

다윈 섬과 다이빙 포인트가 있는 독립문 바위

플랫포옴 포인트로 입수하자 바로 고래상어를 만났다. 고래상어는 조류를 거슬러 왼쪽에서 나타났다. 맨 왼쪽에 있던 다이버들부터 차례로 고래상어를 발견하고 접근하여 촬영을 했는데 고래상어가 워낙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가까이 가면 이미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고래상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정면에서 조류를 타고 흘러왔는데 깊은 수심에서 다이버들이 있는 곳으로 대각선으로 상승했다. 그래서 일부 다이버들은 고래상어를 정면에서 마주칠 수 있었고 다른 다이버들도 가까운 측면에서 고래상어를 볼 수 있었다. 고래상어는 얕은 수심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


울프섬 피너클 앞에서 크게 회전하는 고래상어. 사진/최성순

다시 플랫포옴에 자리잡고 있다가 상승했는데 몇몇 다이버들은 고래상어를 또 한번 만났다고 했다. 1회 다이빙에 고래상어를 3마리나 만나다니 갈라파고스 다윈 섬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다윈 섬의 첫 다이빙을 마치고서 일행들은 다들 흥분을 금하지 못했다. 전날 울프 섬에서 못봤던 다이버들도 이번에는 확실하게 고래상어를 보고 촬영까지 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른 시간이고 날씨도 흐려서 수중에서 빛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이다. 허나 날씨 문제는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두 번 째 다이빙에서 다시 플랫포옴 포인트를 찾았다. 다른 보트(스카이 댄서)의 다이버들과 뒤섞이는 바람에 혼란이 생겨서 일행들이 작은 그룹들로 흩어져 버렸다. 시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떨어져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다시 고래상어가 나타났다. 조류를 따라 흘러온 고래상어에는 백인 다이버가 한명 붙어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니 고래상어는 몸을 돌려서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래상어가 바로 앞에서 방향을 바꾼 덕분에 상어의 눈 옆에 바짝 붙어서 전체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무리를 지어다니는 화이트 딥.사진/이영호

세 번 째 다이빙도 플랫포옴 포인트로 들어갔다. 수심 15m의 플랫포옴 턱에 앉아 외해 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고기들이 너무 많았다. 크레올피쉬(Creole fish), 낫잿방어, 잭피쉬 등 정말 물반 고기반이었다. 그런 중에 돌고래가 나타났다. 니콜라스에 따르면 다윈과 울프 섬에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늙은 돌고래 몇 마리가 항상 발견된다고 했는데 바로 그 놈인 것 같았다. 두 번 째 다이빙에서도 얼핏 지나가는 것을 몇번 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플랫포옴 앞 쪽의 수심 20m 지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주기적으로 통과하는 것이었다. 플랫포옴의 턱 위에서 기다리다가 돌고래가 지나갈 때 마다 내려가서 촬영했다. 처음에는 뒷모습을 촬영했지만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미리 앞쪽에서 기다렸다가 촬영했다. 전체 모습을 파인더에 가득 채워서 촬영하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잔압이 50bar를 가리켰다. 돌고래만 30여장을 촬영하고 다이빙을 마쳤다.

안전감압을 위해 얕은 수심에 있을때마다 만나는 실크 상어(Silk Shark, Carcharhinus falciformis) 사진/박세화

늦은 점심을 먹고 4시쯤 샌드 뱅크(sand bank) 쪽으로 다이빙을 가기로 했다. 플랫포옴 쪽에서 입수하여 조류를 타고 왼쪽으로 흘러가면 수심 15m 정도되는 곳에 수중 모래톱이 나타나는데 예전에 그곳에서 햄머헤드 상어 떼를 촬영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는 햄머헤드들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플렛포옴 다이빙은 식상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래도 한번 가보자고 했다.
플렛포옴에서 샌드 뱅크 쪽으로 가는 길목에 또 다시 고래상어 한 마리를 만나 촬영을 했으며, 코튼마우스 잭(Cottonmouth Jack, Uraspis secunda) 무리도 만났다. 니콜라스의 말 대로 샌드 뱅크를 지나 산호지대까지 갔는데도 햄머헤드 상어 무리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햄머헤드의 몸에 붙어있는 기생충을 제거한다는 바버피쉬(Barberfish, Johnrandallia nigrirostris)들만 산호 지대에 엄청나게 무리를 짓고 있었다. 손님이 없는 탓에 자기들끼리 모여 반상회를 하는 모양이었다. 다이빙을 마치고 상승하는 중에 멀리서 한무리의 햄머헤드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흐린 시야에 촬영해도 증거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다윈 섬 다이빙을 마쳤다.
네 번 째 다이빙을 마치고 다윈 섬에서 하루 더 머물 것인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인가를 상의했다. 다들 고래상어를 충분히 봤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 니콜라스가 추천하는 푼타 비센트 로카(Punta Vicente Roca)로 이동하기로 했다. 수온이 차긴 하지만 개복치를 볼 수 있는 확률이 80%나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개복치와 촬영을 위해 접근하는 다이버. 다이버와 비교해보면 크기가 거의 1.5m 정도는 될 것 같다. 옆은 더 큰 개복치로 크기는 2m가 넘는다. 뒤에 다이버가 있지만 완전히 가려버렸다.

수온 16℃의 차가운 용승류
Cold Water Diving at Upwelling Area
다윈 섬에서 14시간의 항해 끝에 다음 날 오전 8시 쯤 이사벨라 섬 북쪽에 있는 레돈다 락(Redonda Rock)에 도착했다. 적도 반류에 의해 찬물이 용승하는 지역이라 수온이 차갑지만 레돈다 락에서는 수중 화산에 의해서 온천이 솟아 오른다고 했다. 그러나 조류의 방향을 잘못 파악한 니콜라스 덕분에 수중 온천은 구경도 못하고 냉탕에서 서지(surge)에 이리 저리 쓸려다니다가 나온 다이빙이었다.
다시 3시간 정도 항해를 한 다음에 원래 목적지였던 푼타 비센트 로카에 도착했다. 후미진 내만에 미스트랄 호를 정박한 다음에 조디악을 타고 다이빙을 시작했다. 입수하는 순간 한기가 싸하게 느껴졌다. 수온을 보니 16℃였다. 적도 상의 바다에서 수온이 16℃라니 적도 반류니 용승이니 하는 용어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외해와 면한 곳은 더욱 추운 느낌이었다. 니콜라스를 따라 개복치를 찾아 한바퀴를 돌았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내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만과 외해의 경계가 되는 코너에는 작은 피너클(pinnacle)이 하나 있었고 피너클과 절벽 사이에 살리마(Salema) 무리가 모여 있었다. 바다사자들이 지나칠 때 마다 살리마들이 동시에 방향을 틀며 피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다른 두명의 다이버들과 함께 머물렀다. 살리마를 뚫고 지나가는 바다사자를 촬영하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났는데 다른 일행들을 내만으로 안내했던 니콜라스가 다시 돌아오더니 혼자서 외해 쪽으로 나갔다가 왔다. 개복치를 못 보여준 것이 아쉬워서 그런 것 같았다. 니콜라스의 행동을 보니 분명 개복치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리마와 바다사자를 촬영하면서도 가끔 외해 쪽을 쳐다보는데 어느 순간 피너클 옆에 못보던 것이 하나 붙어 있었다. 다시 자세히 쳐다 보니 개복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내려가서 한 컷을 촬영했다. 옆에서 오경철 강사가 쫓아와서 스트로브를 터뜨렸다. 그 순간 큰 빈대떡 처럼 생겨서 느릴 것만 같았던 개복치가 긴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를 한번 획획 치니 마치 방패연이 허공을 가르며 솟구치듯 저멀리 사라져 버렸다. 개복치가 그렇게 빠른 놈인지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이빙을 마치고 나오니 다들 원망 섞인 눈으로 필자를 쳐다보는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26℃나 되는 따뜻한 바다에서 편하게 다이빙했는데 하루 아침에 10℃나 차이 나는 찬물 다이빙을 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것이다. 개복치를 보고 촬영까지 했다고 자랑하니 그렇게 좋으면 혼자서 야간 다이빙까지 다 하라며 다들 옷을 갈아 입어 버렸다. 다들 수온 10℃ 차의 충격을 극복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다윈에서는 수온이 26℃였고, 물이 차다고 느꼈던 레돈다 락에서도 22℃는 나왔었다. 6.5mm 세미드라이수트를 준비한 다이버들도 있었지만 5mm 원피스에 후드 조끼만 준비한 다이버들에게 16℃의 수온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도 마찬가지로 5mm 원피스에 후드 조끼로 버텼다.
결국 개복치를 보았던 필자와 오경철, 박세화 강사만 같은 곳으로 다시 다이빙을 들어갔다. 이번에는 입수하자 마자 아까와 같은 피너클에서 개복치를 만났고, 외해로 나가면서 돌출된 부위마다 각각 한마리씩 버티고 있는 개복치를 모두 3마리나 만났다. 깊은 수심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개복치가 기생충 청소를 위해 얕은 수심의 클리닝 스테이션으로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비록 수온이 차서 다이빙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간 꼭 한번 만나기를 고대했던 개복치를 만났으니 만족스러운 다이빙이었다.

엘로우 테일 서전피쉬(Yellowtail Surgeonfish) 사진/최성순.

일행들의 원망 섞인 눈초리에 필자는 자의반 타의반 야간 다이빙까지 들어가야 했지만 색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만의 모래 바닥에는 수많은 가오리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고, 절벽 근처에는 바다거북들이 머리만 구석에 처박고 잠을 자고 있었다. 튜브코랄(Tube coral)들은 노란색의 촉수를 펼치며 절벽을 수 놓고 있었고, 야간에 사냥을 하는 바다사자들은 랜턴 빛이 비치는 곳에 물고기들이 있으면 이를 쫓아 바위 틈 속으로 머리를 쳐박곤 했다. 바다사자의 움직임에 놀란 살리마 떼들이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돌진하다가 필자에게 부딪혀 왔는데 마치 따발총을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좋은 다이빙을 춥다고 포기하다니! 따뜻한 선실에서 쉬고 있을 일행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모래바닥에 몸을 비벼대는 바다사자들. 사진/오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