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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却说唐梦周一路疾奔,掠至一片斜斜长草披杂山坡上,长吁了一声,只见他一袭长衫上多了十数处豆大剑孔,并有数处沁出血迹,他衣袂飘飞,屹立在山坡上调匀真气,自疗伤势。
须臾,唐梦周面色微变,似有所觉。
蓦闻石道长草丛中传来一声阴恻恻冷笑,四周忽窜起七八条身影,挟着凌厉刀芒向唐梦周扑来。
唐梦周冷笑一声,身形倏地飞空腾起,长剑震出一片冷飙寒芒,半空中一个轮转,人剑合一冷芒四射挥向来袭匪徒。
这时白衣人身形已在十数丈外,见状大喝道:"速退,你等非他之敌。"
言犹未了,只见回旋寒飙剑气中,腾起连声凄厉惨叫,匪徒们纷纷震起半空跌摔在地,无法立起。
其中三人臂腿斩断,血涌如注倒卧在血泊中,一人刺穿胸腔尸横在地,尚有数人均各中要害关节,无法再施展武功。
白衣人飘身落地,见状为之一呆,道:"尊驾好辣毒的刀法,来历面目可否见示?"
说时长剑已自虚闪。
唐梦周一语不发,突然神龙穿空拔起,向来路流星曳射逃去。
白衣人冷笑道:"尊驾逃得了么?"
电奔矢射追出。
唐梦周身法迅快,两人始终相距十数丈,白衣人心中异常恼怒,但见唐梦周越过两重山丘,身形疾闪竟失去踪影。
白衣人大感一怔,四外俱是矮树长草,便于隐蔽,发出一声阴森冷笑道:"尊驾武功不凡,是兄弟生平所遇有数劲敌之一,兄弟爱才若渴,只要归顺兄弟可既往不究,逃藏并非良策。"
冷月凄迷下,寒风啸掠,空山寂寂,那有半点回声。
白衣人目中杀机暴闪,四面看了一眼,冷笑道:"尊驾再不现身,可别怨兄弟心辣手黑。"
忽闻身后随风飘送入耳苍老语声道:"阁下你在找谁?"
白衣人心神微震,霍的回身,只见五丈外立着一身穿短装蒙面人,不禁一呆。
唐梦周一袭青衫,首蒙黑巾,肩带双剑,眼前之人却是一身短装,右肩单剑,蒙面玄巾下露出长须,显然并非唐梦周,不禁冷笑道:"兄弟找谁与尊驾无关。"
蒙面老者道:"虽说与老朽无关,但老朽来此须良言奉劝阁下几句,莫起恶念为害武林,如此可保首领,苦海无边,回头是岸。"
白衣人眼中闪出一抹森森杀机,厉声道:"如此说来,尊驾定知兄弟真正来历了。"
蒙面老者摇首道:"这倒不知,如老朽所料不差,阁下必有称霸武林之企图,武林盛传隐名凶邪定是阁下。"
白衣人暴喝道:"从何而知。"
蒙面老者道:"阁下闪入火宅内欲觅获李同康尸体取得白虹剑,那知阁下竟然疏忽,使老朽不劳而获,倘使阁下觅获,从此武林之中永无宁日了,因为阁下与手下弟兄谈论之话均为老朽所闻。"
白衣人神色一惊道:"尊驾肩头长剑就是白虹剑么?"
"不错。"
蒙面老者说时已掀剑出鞘,一道惊天白虹闪出,剑气侵肤如割!
白衣人禁不住退后一步。
"站住!"
蒙面老者大喝一声,白虹剑闪起一片护身冷芒,接道,"老朽自知武功非阁下之敌,但阁下血肉之躯亦无法抗御白虹剑的犀利锋芒。"
白虹剑势未出,砭骨剑气已自逼人,白衣人不由自主地身形停住,冷笑一声道:"这倒未必!"
蒙面老者道:"幸亏此剑为老朽所得,如为阁下追踪之人所得,此刻阁下定尸陈七尺了。"
白衣人闻言,森冷的面色上突泛一丝笑意,道:"这话不错,既然尊驾自知无能保有此剑,何不………!"
蒙面老者道:"何不赠与阁下是么?"
白衣人道:"须知匹夫无罪,怀璧其罪。"
蒙面老者哈哈大笑道:"阁下不必吓唬老朽,老朽少与武林中人交往,可说是一无痕迹可留,阁下纵然查寻,无异大海捞针。"
白衣人道:"那么尊驾需此白虹剑何用?"
蒙面老者豪笑一声道:"怎说无用?用来祛魔卫道!老朽新近得来一册剑诀,只须耗费半年时光便可练成绝艺,阁下紧记,半年期间不短不长,在此期内尚有紫电剑得主可以制伏阁下。"
说着一鹤冲天而起,身剑合一,流星曳空飞去。
白衣人大喝道:"那里走!"
身形暴腾倏又沉下,知不可追及,救治属下后疾奔离去。
卢琬玲、李同康等人纷纷现身出来。
李同康目露迷惑神色道:"蒙面老者是何人?白虹剑怎会到得他手上,少侠人呢?"
卢琬玲道:"那必是唐少侠同道,故弄玄虚,李代桃僵,使凶邪堕入术中。"
只听一清朗笑声道:"姑娘错了,其实是一而二,二而一。"
卢琬玲转面望去,见是吕剑阳,诧道:"你是说先后二人都是唐……"
"不错!"
吕剑阳颔首道:"正是他!"
卢琬玲道:"他现在人呢?"
"走了!"
吕剑阳道:"他急于诱开白衣凶邪,而且还有要事在身,无暇与诸位告别!"
说着将手中一支纸卷递与李同康,又道:"请老前辈去约定之处交还白虹剑!"
李同康淡淡一笑道:"不必了,老朽无力保全白虹剑,反不如相赠唐少侠。"
说时匆匆阅了手中纸卷,面色微微一怔,忙道:"诸位珍重,老朽去了!"
振臂穿空掠出,去势迅快,转眼杳失在夜色苍茫中。
卢琬玲皱眉道:"唐少侠约定之处阁下必然知情。"
吕剑阳摇首道:"他匆匆交与在下,在下也不明就理,仅遵他之嘱转交与李老前辈。他行事向来莫测高深,如何可知?"
卢琬玲叹道:"这话鬼才相信!"
吕剑阳正色道:"在下倘虚言欺骗,日后必遭天打雷劈,姑娘难道仍念念不舍白虹剑么?"
卢琬玲娇靥一红,嗔道:"谁希罕白虹剑!请问阁下,唐公子去无忧谷何故?"
吕剑阳听出弦外之音,暗暗叹息道:"少女都为情所苦,看来这位女杀星亦堕入情网中。"
故作茫然摇首答道:"在下不知。"
卢琬玲明知吕剑阳不肯吐实,白了吕剑阳一眼,微哼一声道:"柏月霞真美么?"
吕剑阳道:"柏月霞人称武林绝色,可惜在下未见过,但在下这位唐老弟富贵世家,潇洒豪放,目中有色,心中无色,未必真能为情所羁咧!"
卢琬玲知再问也问不出所以然来,盈盈一笑,娇躯疾闪,远去迅杳。
吕剑阳略一沉吟放开大步向华阴县城奔去。
在他身后忽遥随一条娇俏淡淡黑影,不言而知正是卢琬玲。
卢琬玲忖知吕剑阳这个"詹南坤"与唐梦周交情并非泛泛,自必知道唐梦周的下落,是以暗随吕剑阳身后。
抵达华阴县城已是冷月西沉,四更将残,霜降满天,夜风扑身涌袭而来,奇寒砭骨。
屋面上忽闪现三条身影,其中之一正是那锦袍人,只听锦袍人语声急爆道:"不料一着之差,白虹剑竟被蒙面老者轻而易举得在手中,那白衣凶邪追踪蒙面老者,我等暗蹑他们身后,怎么到得华阴县城竟然失去踪迹?"
一个苍老语声应道:"黑夜之间,他们随便在暗处停身不动,觅寻他们便难于大海捞针了。"
锦袍人摇首道:"何况蒙面老者得手,白衣凶邪急于夺取白虹剑,怎会停住不动,其中必有蹊跷。"
"令主不必忧急!他们二人藏身在华阴县城准错不了,不如我等在四门城外设下暗桩,监视出城之人。"
锦袍人摇首道:"缓不济急,若他们此刻已出得城去远遁无踪,则又当如何?"
随行两匪不敢再言,暗中腹诽道:"真如你所料,我们也无须再滞留在华阴城了。"
忽随风送来,阴冷语声道:"尊驾说得不错,他们已远在三十里外了。"
锦袍人面色一变,循声望去,只见对面屋脊上立着一短装老者,不禁喝道:"阁下何人?"
短装老者冷笑道:"老朽彭灏,忝为县署捕头,诸位均是武林高人,明白事理,请不要在县城地面闹事生非。"
锦袍人闻言不禁一怔,道:"彭捕头真知道在下追踪之人么?"
彭灏冷冷一笑道:"阁下是追踪一手持白虹剑的蒙面老者及一白衣人么?"
"不错!"
锦袍人疑云满腹道:"彭捕头为何这般清楚?"
彭灏怒道:"职司所在,怎容疏忽!如今圣上分命大内高手出京,暗中注意武林人物,若有图谋叛逆之行着即捕杀,小小华阴县城就有四名大内高手赶来,老朽不愿无故兴起大狱,阁下火焚民宅就是一项大罪。"
锦袍人道:"彭捕头知火焚民宅真是在下所为吗?"说时目中泛出一抹森厉杀机。
彭灏微微一笑道:"阁下参与其事总不能脱出是非吧!"
说时忽见四条迅捷身影掠上屋面立在彭灏身后,目光闪闪若电,神威凛凛。
锦袍人不愿与官府为敌惹上是非,忙抱拳一拱,微笑道:"承蒙见告,德意心感,不知他们二人去向可否见告?"
彭灏沉声道:"他们两人先后掠出西门外而去。"
锦袍人大声谢字出口,三条身影腾空而起,去势如风,几个起落,便自无踪。
彭灏目送三人即将消逝的身影,轻笑一声转过身去。
蓦地,只听娇脆话声传来道:"彭捕头。"
彭灏循声望去,只见一貌美少女立在身后,双眉一皱,道:"姑娘何事呼唤老朽。"
那少女嫣然笑道:"敢间彭捕头,有一位唐梦周公子还在县署中么?"
彭灏不禁呆了一呆,道:"姑娘尊姓大名!"
少女道:"我叫卢琬玲,与唐公子乃同道好友。"
说时玉靥绯红。
彭灏哈哈大笑道:"原来是卢女侠,老朽久闻侠名,女侠当知唐公子……"
"不错!"
卢琬玲低声道:"手持白虹剑的蒙面老者就是唐公子……"
彭灏面色疾变,低喝道:"姑娘!你胡乱张扬不怕为唐公子带来一场是非么?"
卢琬玲顿悟心急失言,不胜赧然,低声一笑道:"是我一时心急失言,请勿见罪,唐公子现在何处?"
彭灏略一沉吟,道:"好吧!老朽带姑娘去见唐公子。"
卢琬玲随着彭灏进入县署西押房*⑴侧院,只见一间室内灯光明亮。
彭灏高声道:"唐公子,有故人来访。"
只听唐梦周应道:"卢姑娘么?请进!"
房门呀地开启,唐梦周迎出,笑容满面道:"姑娘见访,必有指教,请!"
卢琬玲娇靥一红,走入房中。
唐梦周微笑道:"请坐!"
顺手斟了一杯香茗。
卢琬玲坐下,颦眉嗔道:"公子你瞒得我好苦!"
唐梦周闻言目露讶异之色道:"在下何事瞒了姑娘?"
卢琬玲道:"公子深藏不露,我今晚才知道,不然还在梦中。"
唐梦周笑道:"在下自幼习武,只是不愿涉身江湖中罢了,但如今事非得已,黄河渡口飞凤镖局失去暗镖竟无缘无故将在下卷入,故决意查一个水落石出。"
"公子查出了一丝端倪未?"
"尚未!"
唐梦周道:"此事至今仍是一难解之谜,究竟乾坤独叟、王屋盲叟因何致死,遗物有何隐秘,武林中掀起一片汹涌的暗涛,可见遗物重大,关系整个武林安危,但此物只有少许数人知情,这些日来在下大有问道于盲之苦,如在下所料,今晚所遇白衣凶邪必其中关键人物。"
"公子为何放过他?"
"武功不敌,徒然打草惊蛇,不如长线放远鸢………"
"公子有白虹剑在手何惧于他。"
唐梦周朗笑道:"倘非白虹剑,在下已血溅荒野了,此刻白虹剑在下已交还李同康。"
卢琬玲面色一惊道:"交还了么?"
唐梦周答道:"交还了,此刻白衣人追踪的正是李同康。"
卢琬玲目露困惑之色道:"这样做为了什么?"
"釜底抽薪。"
唐梦周道:"使凶邪心有畏忌,不敢放手施为,到底还有克制凶邪的物与人在!"
卢琬玲一撩鬓旁云发,嫣然笑道:"公子何妨说得清楚一点。"
唐梦周道:"凶邪畏惧的仅武林中寥寥数人,据在下所知,武林中有令师及独掌阎罗邵宫虎、独臂人魔冷飞几位老前辈在,如今更有紫电白虹双剑,凶邪更有所忌惮,惟因如此,我等才可从容不迫查明凶邪真正来历和动机。"
卢琬玲柳眉微耸道:"我始终不明白,为何查不出乾坤独叟、王屋盲叟两位老前辈真正死因。"
唐梦周淡淡一笑道:"原因是还有第三人在,这位第三者至今还不知下落……"
"其他二人是谁?"
"今晚所见的白衣凶邪及锦袍人均是参与杀害乾坤独叟元凶,惜王屋盲叟将遗物带走,不幸留下痕迹,二凶追踪前往,但二凶赶至时不料被第三者捷足先登,飞凤镖局所失暗镖只是部份遗物而已………"
唐梦周说此顿了顿,微微叹息道:"第三者必是个工于心计,聪明绝顶之人。"
卢琬玲嫣然一笑道:"这道理恕我愚昧难解,大部份遗物由何人取去。"
唐梦周笑道:"自然是第三者。"
卢琬玲道:"那飞凤所失暗镖呢?"
唐梦周道:"也是第三者。"
卢琬玲不禁呆住,两只杏眼睁得又圆又大凝注在唐梦周脸上。
唐梦周叹息一声道:"此乃在下猜测之词,第三者留下部份遗物托付飞凤镖局,意在淆惑二凶不注意到自己身上,由此可知第三者定是那白衣凶邪或锦袍人的亲信,那携去之物亦必是件极为重要之物。"
"武功秘笈?"
唐梦周摇首道:"未必尽然。"
卢琬玲道:"珍异宝藏?"
唐梦周道:"并无可能。"
卢琬玲瞠道:"那是什么东西?"
唐梦周耸耸肩,笑道:"如果在下知道,也不致凭空臆断,盲目探索了。"
卢琬玲道:"看来,只有白衣凶邪或锦袍人知道真实内情了。"
唐梦周颔首道:"还有第三者知情,目前在下纵使能制伏二凶,他至死坚不吐实也是枉然,所幸在下在二凶身旁均设下一着伏棋,假以时日,不难水落石出。"
卢琬玲暗暗钦佩唐梦周的才华,杏靥含笑道:"那么第三者是谁,公子必然寻出一丝线索。"
唐梦周略一沉吟,道:"在下疑心无忧谷主万胜刀柏春彦不无关连,但也只是心疑而已。"
卢琬玲嫣然一笑道:"所以唐公子假扮谈灵混入无忧谷,风闻公子与柏月霞有一段不平凡的情谊,倘或不错,堪谓珠联璧合。"
唐梦周俊面一红,道:"姑娘取笑了,在下与柏姑娘并无什么情谊,正与卢姑娘一般,只是道义之交,红粉知己。"
卢琬玲闻言芳心舒慰异常,柳眉扬了扬,似压抑住心头喜悦,道:"真的么?"
唐梦周道:"在下面对武林同道怎会谎言欺瞒。"
语言略顿,话锋突转,又道:"明晨在下又要易作谈灵模样,再上无忧谷,但仅逗留片刻即须追踪白衣凶邪。"
窗外突起了落足微声。
卢琬玲面色一变。
唐梦周笑道:"是自己人!"
一条身影翩若惊鸿般疾闪而入,灯光微晃,显出詹南坤。
只见詹南坤含笑道:"姑娘一路追踪在下,好不容易在下甩开姑娘追踪,不料还是被姑娘寻着了唐老弟。"
卢琬玲冷哼一声道:"跑了和尚跑不了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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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한편 당몽주(唐梦周)는 줄곧 급히 내달리다가 긴 풀이 우거진 산비탈에 이르자 비로서 질주를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걸친 장삼 위에는 검봉에 찔린 콩알만한 구멍이 십여 군데나 보였고, 몇 군데에는 핏자국마저 배어 있었다..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그는 산비탈에 우뚝 서서 진기를 운행하여 스스로 상처를 치료했다.
잠시 후 당몽주의 안색이 살짝 변했는데,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았다.
갑자기 긴 풀숲 속에서 음산한 냉소가 들리더니, 일고여덟 명의 그림자가 벼락치듯 뛰쳐나와 일제히 날카로운 도망(刀芒)을 뿌려대며 당몽주에게 달려들었다.
당몽주는 즉시 냉소를 터뜨리며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검을 빼자마자 신검합일(身剑合一)을 이루어 차가운 검풍과 한망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이때 그를 쫓던 백의인은 아직 십여 장 밖에 떨어져 있었는데, 상황을 목격한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속히 물러나라! 너희는 그의 적수가 못 된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회오리 치는 차가운 검기 속에서 처량하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연달아 들리며 악도들의 신형이 일제히 튕겨나와 땅으로 뒹굴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 중 세 명은 팔과 다리가 잘린 채 피가 솟구치며 넘어져 있었고, 한 사람은 가슴을 관통 당한 채 엎어져 있었으며, 그 외는 모두 요해관절(要害关节)에 치명상을 입어 더 이상 무공을 펼칠 수 없었다.
백의인이 뒤늦게 땅에 내려서며 부하들의 처참한 모습에 기가 막힌 듯 입을 열었다.
"귀하는 매우 독랄한 도법을 지녔는데 그 내력과 본래의 용모를 보여줄 수 없는가?"
말하는 그의 수중에서 장검이 저절로 번뜩거렸다.
하지만 당몽주는 한마디 대꾸도 않고 갑자기 신룡천공(神龙穿空) 수법으로 하늘을 뚫을 듯 몸을 솟구치더니 오던 길로 유성처럼 날아 도망쳤다.
백의인이 냉소를 날렸다.
"이대로 도망칠 수 있을까?"
백의인은 다시 쏜살같이 당몽주의 뒤를 쫓기 시작했는데, 당몽주의 신법이 워낙 빨라 십여 장 정도 떨어진 둘 사이의 간격을 시종일관 좁힐 수가 없자 백의인의 가슴속 분노는 더해가기만 하였다.
도중에 당몽주가 두 개의 산언덕을 앞서 넘어서더니 순식간에 종적을 감춰 버렸다.
백의인이 크게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키 작은 나무들과 긴 풀들이 서로 엉키고 뒤섞인 채 우거져 있어 사람이 숨으면 찾기가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가 음산한 냉소를 터뜨리며 소리를 높였다.
"귀하는 무공이 비범한 형제가 평생 만난 몇 안 되는 강적 중 하나요. 형제는 인재 구하기를 목마름과 같이 여기니, 형제에게 귀순하면 절대 과거를 따지지 않을 것이오. 도망쳐 숨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외다."
차가운 달빛이 처량하게 비추는 가운데, 찬 바람이 스쳐 지나는 텅 빈 언덕은 고요하기만 할 뿐 자그마한 반향도 없었다.
백의인이 눈에 다시 살기가 띠며 사방을 둘러보고 크게 냉소를 터뜨렸다.
"귀하가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형제의 마음이 모질고 손이 독랄한 것을 원망하지 마시오."
갑자기 등 뒤에서 바람을 타고 창노한 음성이 들렸다.
"당신은 누구를 찾고 있는 거요?"
갑자기 마음이 진탕된 백의인이 재빨리 몸을 돌리니, 다섯 장(丈) 밖에 단장(短装) 차림에 복면을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멍해졌다.
원래 당몽주는 푸른색 장포에 얼굴은 검은 수건으로 가렸고 어깨에는 쌍검을 메고 있었는데, 백의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단삼(短衫)에 오른쪽 어깨에만 검을 메고 얼굴을 가린 검은 두건 아래로 긴 수염을 드러내고 있어, 그가 쫓던 인물이 아님은 분명했다.
백의인이 싸늘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형제가 누구를 찾든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오."
복면노인이 말했다.
"비록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이왕 이런 곳에서 만난 김에 좋은 말 몇 마디 충고를 줘야겠소. 그대는 나쁜 마음을 버리고 무림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거요. 인생이란 고해(苦海)는 끝이 없어 보이지만 고개만 돌리면 바로 피안(彼岸)이라오."
백의인이 눈에 한 줄기 살기를 띠우며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리 말씀하는 걸 보면 귀하는 형제의 내력을 알고 있는 듯하오."
복면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저 이 늙은이의 추측대로라면 당신은 분명히 무림을 제패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으며, 무림에서 회자되는 소위 익명의 흉사가 바로 당신일 것이오.."
백의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그딴 헛소리를 한단 말인가!"
복면노인이 말했다.
"당신이 불 속으로 뛰어들어 이동강의 시체를 찾아 백홍검을 얻으려 했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런데 당신의 소홀함 덕분에 노부는 아무 수고도 않고 뜻밖에도 검을 얻을 수 있었소. 게다가 만약 백홍검이 당신의 수중에 들어갔다면, 무림에는 영원히 평안한 날이 없었을 거란 사실도 알게 되었소.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수하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조리 들었기 때문이오."
백의인의 안색이 급변하였다.
"그렇다면 귀하의 어깨에 있는 장검이 백홍검이란 말이오?"
"그렇소."
복면노인이 대답과 동시에 검집에서 장검을 뽑아 높이 들자, 상공에 새하얀 무지개가 그려지며 살을 에이고 뼈를 시리게 하는 싸늘한 검기(剑气)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백의인이 놀라 급히 한 걸음 물러서자 복면노인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움직이지 말라!"
복면노인이 공격 대신 백홍검을 한 차례 휘둘러 한랭한 검막을 형성하여 몸을 보호하며 말을 이었다.
"이 늙은이가 무공만으로는 귀하의 적수가 되지 못할지라도, 귀하가 백홍검의 예리함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도 믿지 않소."
백홍검의 검세가 발동된 것도 아니었건만 검에서 폭사되는 한랭한 검기가 뼈가 시리게 파고 들며 사람을 핍박했기에, 백의인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냉소를 날리며 응수했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복면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이 검을 이 늙은이가 얻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귀하가 추격하던 자의 손에 들어갔다면 아마 지금쯤 당신은 시체가 되어 누워 있을 것이오."
백의인이 돌연 차갑던 얼굴에 한 줄기 미소를 띠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옳은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조금 전 말한 대로 귀하는 보검을 보전하기에 스스로의 무공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잘 아는 듯한데, 어찌하여......."
"기왕이면 귀하에게 드리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이지요?"
복면노인이 백의인을 나머지 하려던 말을 대신하자, 백의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옛말에 필부(匹夫)는 죄가 없지만 구슬을 품으면 죄가 된다고 했소."
복면노인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이 늙은이를 너무 윽박지르지 마시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 늙은이는 원래 무림 인물들과 왕래가 없다 보니 강호상 남아 있는 흔적이 거의 없소. 귀하가 아무리 내 뒷조사를 해 봐야 마치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 될 것이오."
백의인이 물었다.
"결국 그 말도 강호 출입이 없는 귀하에게는 백홍검을 꼭 써야 할 용도가 없다는 거나 매한가지 아니오?"
복면노인이 두 눈이 화등잔만해지며 한바탕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쓸 용도가 없다니? 당연히 마(魔)를 제거하고 도(道)를 지키기 위해 써야지! 이 늙은이는 최근에 검결(剑诀) 한 권을 얻었는데, 반년의 시간만 들이면 절예(绝艺)를 익힐 수 있소. 귀하는 명심하시오. 반 년이라는 기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데, 이 기간 동안에 자전검(紫电剑)을 얻은 자가 귀하를 제압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을 마친 복면노인은 일학충천(一鹤冲天) 수법으로 몸을 솟구치더니 신검합일(身剑合一)로 유성처럼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어디로 도망가느냐!"
백의인이 놀라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솟구쳤으나 따라가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 앉았다.
그후 부상으로 신음하는 수하들을 치료한 뒤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노완령(卢琬玲)과 이동강(李同康)이 숨어 있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동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복면노인은 누구고, 백홍검이 어떻게 그의 손에 들어갔으며, 소협은 또 어떻게 된 거지?"
노완령이 입을 열었다.
"그는 틀림없이 당 소협과 같은 편 사람일 거예요. 흉사를 현혹시키고 농락하여 혼란에 빠지게 하는 술책을 부린 것 같아요."
이때 맑고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가 틀렸소이다. 사실 하나이면서 둘이었고, 둘이면서 한 사람이었소이다."
노완령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여검양이었다.
그녀가 무언가 깨달은 듯 깜짝 놀라 물었다.
"그 말은 두 사람 모두 당(唐) 공자......였단 말씀인가요?"
여검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바로 그 사람이었소이다!"
노완령이 다급히 물었다.
"그는 지금 어디 있죠?"
"떠났습니다!"
여검양이 말했다.
"그는 백의흉사를 유인한 후 다른 급한 일로 즉시 떠나야 했기에 여러분에게 따로 작별을 고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여검양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두루마리를 이동강에게 건네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노선배님께서는 여기 기술된 약속 장소로 가셔서 백홍검을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이동강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이다. 노부는 백홍검을 지킬 능력이 없으니 차라리 당 소협에게 주는 게 낫겠소."
말하면서 손에 든 종이 두루마리를 잠깐 읽더니 안색이 변해 다급히 말했다.
"여러분 몸 보중하시오. 노부는 속히 가 봐야겠소!"
팔을 휘저으며 공중으로 날아 오르더니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노완령이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당 소협이 그와 약속한 장소를 당신은 당연히 알고 있겠죠?"
여검양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총망간에 건네 받다 보니 저 역시 영문도 모른 채 경황없이 이 노선배께 전해드렸을 뿐이외다. 또한 그의 행동은 예측 불가하고 워낙 심오해 달리 짐작할 방법도 없소."
노완령이 발끈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여검양이 정색을 했다.
"만약 내가 거짓말을 했다면 훗날 반드시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설마 노 낭자는 여전히 백홍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겁니까?"
노완령이 붉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흥, 그깟 백홍검 따위가 뭐라고! 하나 더 묻겠어요. 당 공자가 무우곡에 들어간 이유가 뭔가요?"
여검양은 그녀의 질문에 숨은 의미를 알아채고 속으로 탄식했다.
'일반 여인네들이 정(情)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그렇다 쳐도, 설마 이 여살성(女杀星)마저 정의 올가미에 빠졌단 말인가?...'
여검양은 내색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모릅니다."
노완령은 여검양이 알면서도 실토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다시 그를 한 차례 흘겨보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백월하(柏月霞)가 정말 아름답나요?"
여검양이 대답했다.
"백월하가 무림절색(武林绝色)이라지만, 아쉽게도 저는 만나 본 적이 없군요. 하지만 내가 알기로 당(唐) 소협은 부귀세가(富贵世家) 출신으로 기품이 소쇄(潇洒)하고 성격은 호방하며, 마음은 색즉시공(色即是空) 공즉시색(空即是色)의 경지를 터득한 인물이라, 정의 굴레에 얽매일 사람이 아니외다."
노완령은 더 물어봐야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차례 생긋 웃더니, 돌연 날렵한 몸을 날려 멀리 사라졌다.
여검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화음현성(华阴县城)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희미한 검은 그림자가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인영은 노완령이었다.
노완령은 첨남곤(詹南坤)이란 이름을 쓰는 이 사내와 당몽주 사이의 교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가 반드시 당몽주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여 암암리에 미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화음현성에 도착했을 때는 사경(四更)이 거의 지날 무렵으로, 달은 이미 졌고 땅에는 서리가 내리며 밤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니, 지독한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 들었다.
화음현성 어느 집 지붕 위에 갑자기 세 명의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그 금포인(锦袍人)이었다.
금포인의 목소리가 무척 다급했다.
"간발의 차이로 백홍검이 복면노인의 손에 들어갔고, 그 백의흉사가 복면노인을 추적하고, 또 우리는 그들 뒤를 몰래 밟았는데 어찌하여 화음현에 들어서자마자 모조리 종적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까?"
한 창노한 음성이 말했다.
"만약 그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꼼짝하지 않으면, 그들을 찾는 일은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금포인이 고개를 저었다.
"복면노인은 검을 손에 넣었고 백의흉사는 검을 빼앗으려고 추격하는 판인데, 어찌 그들 모두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 속에는 반드시 숨은 곡절이 있을 게야."
"영주께서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이 화음현성에 숨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네 군데 성문 밖에 염탐꾼을 잠복시켜 성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면 될 것입니다."
금포인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시간이 걸릴 뿐더러, 만약 그들이 이미 성을 나가 종적을 감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하들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속으로만 투덜댔다.
'정말 당신이 예측한 대로라면 우리도 화음성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갑자기 바람을 타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이미 성을 나가 삼십 리 밖에 있소이다."
금포인이 안색이 변하며 음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맞은편 지붕 위에 단장(短装) 차림의 노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금포인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당신은 누구요?"
단장노인(短装老者)이 냉소하며 말했다.
"노부는 팽호(彭灏)라 하고, 이곳 현성의 포두(捕头)로 있소이다. 보아하니 무림의 고인들 같은데 사리를 잘 판단하여 성안에서 말썽을 일으켜 화를 자초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오."
금포인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팽 포두는 정말 내가 추적하는 사람을 알고 있소?"
팽호가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하는 백홍검을 든 복면노인과 또 다른 백의인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맞소!"
금포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의혹이 가득한 시선으로 팽 포두를 바라보았다.
"팽 포두께선 어찌 그리 잘 아시는가?"
팽호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게 주어진 직무가 있는 바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소! 일찍이 성상(圣上)께서 대내(大内) 고수들에게 명을 내려, 경성(京城)을 나가 암암리에 무림 인물들을 감시하라 하시고, 반역의 기미가 엿보이는 자가 있으면 즉시 잡아 죽이라고 하셨소. 하물며 보잘것없는 이곳 화음현성(华阴县城)에도 무려 네 명의 대내 고수가 파견되어 와 있을 정도요. 노부는 까닭 없이 큰 옥사(狱事)를 일으키고 싶지 않지만, 그대가 민가에 불을 지른 것은 중죄임을 알아야 하오."
"팽 포두는 민가를 불태운 화재가 정말로 내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하고 묻는 금포인의 눈에 삼엄한 살기가 번뜩였다.
팽호가 가벽게 웃으며 대꾸했다.
"만약 그 일에 관여했거나 현장에 있었다면 시비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요!"
팽호가 말하는 동안 갑자기 대내 고수로 여겨지는 네 명의 민첩한 인영이 지붕 위로 올라와 팽호의 뒤에 우뚝 섰는데, 눈빛이 번갯불처럼 번쩍였고 신위(神威)가 늠름했다.
금포인은 관부와 시비를 일으키기 싫어 급히 포권 후 공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들에 대해 알려주신 덕의(德意)에 깊이 감사드리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들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 좀더 귀띔해 줄 수 있는지요?"
팽호가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문(西门)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소."
금포인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감사의 말을 내뱉더니 세 인영은 하늘로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이내 종적을 감췄다.
팽호가 세 사람의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곤 가볍게 웃으며 몸을 돌리는데, 갑자기 가냘프면서도 교태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팽 포두!"
팽호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뒤에 서 있었다.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가씨,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부르셨소?"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감히 팽 포두께 여쭙고자 합니다. 당몽주 공자가 아직 현청에 계신가요?"
팽호가 잠시 멍해 있다가 입을 열어 물었다.
"아가씨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시오?"
"소녀는 노완령(卢琬玲)이라고 하며, 당 공자의 동료입니다."
대답하는 그녀의 옥 같은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팽호가 허허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노 여협(女侠)이시군요. 노부는 오래전부터 낭자의 협명을 들어왔는데, 여협께서는 당 공자가......"
"맞아요!"
노완령이 낮은 목소리로 급히 말했다.
"백홍검을 든 복면의 노인이 바로 당 공자라는 것 알고 있어요."
팽호의 안색이 급변하며 낮게 호통쳤다.
"아가씨! 함부로 떠들면 당 공자에게 시비가 생길 것이 두렵지 않소?"
노완령은 문득 급한 마음에 말을 잘못 나왔음을 깨닫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잠시 마음이 급해 입을 잘못 놀렸군요. 용서해 주세요. 그나저나 당공자는 지금 현청에 계신가요?"
팽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좋소! 노부가 아가씨를 모시고 당 공자를 뵈러 가겠소."
노완령은 팽호를 따라 현청의 서쪽에 있는 판공실(办公室=押房) *⑴ 옆 정원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한 칸짜리 작은 건물이 있었고 안에는 불빛이 밝게 켜져 있었다.
팽호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당 공자, 친구분이 찾아왔습니다."
당몽주의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 낭자이시죠? 들어오시게 하세요!"
방문이 열리자 웃는 얼굴의 당몽주가 보였다.
"낭자께서 오신 것을 보니 무슨 가르침이 있을 터, 어서 들어오시지요!"
노완령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방으로 들어갔다.
당몽주가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그리고는 손을 들어 향긋한 차 한 잔을 따랐다.
노완령은 자리에 앉자마자 아미를 찌푸리며 다소 화난 듯 입을 열었다.
"공자께선 나를 속이고 힘들게 했어요!"
당몽주는 그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가 무슨 일로 아가씨를 속였단 말입니까?"
노완령이 말했다.
"공자가 본 모습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으니, 저로서는 비로소 오늘 밤에야 모든 걸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미몽간에 헤매고 있었겠지요."
당몽주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무술을 배웠지만 강호에 몸 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황하 나루터에서 비봉표국의 암표(暗镖) 분실 사건에 영문도 모르게 휩쓸리면서, 기왕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공자께선 일말의 단서라도 찾으셨나요?"
"아직은요!"
당몽주가 말을 이었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데, 도대체 건곤독수(乾坤独叟)와 왕옥맹수(王屋盲叟)는 왜 죽었고, 유물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모든 것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무림은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고......유물이 매우 중요한 물건이고 전체 무림의 안위와도 연관되어 있음은 짐작할 수 있지만, 물건의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요 며칠 동안 저는 눈 먼 사람처럼 힘들게 여러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었는데, 일단 제가 장담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오늘 밤 만난 백의흉사가 틀림없이 그 중 관건이 되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럼 공자께서는 왜 그를 순순히 놓아 주셨나요?"
"무공으로는 제압할 수 없으니 공연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멀리 나는 솔개를 길게 풀어놓는 것이 낫겠지요."
"공자께서는 백홍검이 손에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당몽주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물론 백홍검이 없었다면 저는 이미 피바다 속을 뒹굴고 있었겠죠. 하지만 백홍검은 이미 이동강 노선배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노완령의 얼굴색이 변했다.
"돌려주었다고요?"
당몽주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백의인이 추적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동강입니다."
노완령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솥 아래서 아예 장작을 빼냄으로써(釜底抽薪) 당장 화가 될 만한 근본을 제거한다고 할까요..."
당몽주가 말을 이었다.
"흉사로 하여금 두려움과 꺼림칙함을 갖게 하여 감히 마음 놓고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고, 흉사를 극제(克制)할 수 있는 물건과 인물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것입니다."
노완령이 귓가에 늘어진 구름 같은 머리자락을 쓸어 올리며 교태로운 웃음을 흘렸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공자께서 좀더 분명하게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군요."
당몽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되지 않지만 무림에는 흉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인물이 몇 분 계십니다. 노 낭자의 영사(令师)와 독장염라(独掌阎罗) 소궁호(邵宫虎), 그리고 독비인마(独臂人魔) 냉비(冷飞) 등 몇 분이 그 분들입니다. 게다기 지금은 자전(紫电)과 백홍(白虹)의 쌍보검까지 출현했으니 흉사는 더욱 꺼림칙해 하며 행동이 위축될 것이고, 그 틈을 이용하여 우리는 흉사의 진정한 내력과 동기를 좀더 여유롭게 조사할 수 있습니다."
노완령이 버들잎 같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저는 줄곧 건곤독수와 왕옥맹수 두 분 선배님의 진짜 사인(死因)을 왜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몽주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이유는 제삼자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 삼의 인물은 아직 내력이나 종적을 알 수 없고요."
"제삼자가 그렇다면 첫번째와 두 번째 인물은 누구를 말하나요?"
"오늘 밤에 본 백의흉사와 금포인입니다. 그들 모두 건곤독수의 살해에 참여한 원흉들입니다. 먼저 도착한 왕옥맹수가 유물을 갖고 떠나면서 안타깝게도 흔적을 남기는 바람에 두 흉수가 추적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왕옥산에 도착했을 때 제 삼자가 먼저 도착하여 선수를 칠 줄은 몰랐던 것이죠. 그리고 비봉표국(飞凤镖局)에서 분실한 암표(暗镖)는 전체 유물의 일부일 뿐입니다....."
당몽주는 여기까지 말한 뒤 잠시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 삼자는 분명히 심계에 능하고 총명함이 절정에 달한 인물일 겁니다."
노완령이 다시 예쁘게 웃으며 물었다.
"그 가운데의 복잡한 이치는 제가 우매하여 이해하기 어렵군요. 간단히 말해서 대부분의 유물을 누가 가져갔단 얘긴가요?"
당몽주가 웃음을 머금었다.
"당연히 제삼자입니다."
노완령의 질문이 쉴 새 없이 뒤따랐다.
"그럼 비봉표국이 잃어버린 암표는 어디에 있는 거죠?"
"그것도 제삼자!"
노완령은 자기도 모르게 멍해졌고, 두 개의 살구 같은 눈동자는 당몽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크고 동그란 원을 그리며 계속 맴돌고 있었다.
잠시 후 당몽주가 한숨을 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제 추측일 뿐입니다만, 제삼자가 일부 유물을 비봉표국에 맡긴 이유는 두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여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제삼자라는 인물은 다름 아닌 분명 그 백의인이나 금포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이며, 그가 가져간 유물들은 그중 가장 중요한 물건들일 것입니다."
"무공비급(武功秘笈)일까요?"
당몽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다는 아닐 것입니다."
노완령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럼 진귀한 보물들도?"
당몽주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보물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노완령이 눈이 더욱 커졌다.
"그럼 뭐가 더 있을까요?"
당몽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으며 말했다.
"만약 제가 안다면, 이처럼 무턱대고 억측하거나 맹목적인 탐색에 나서지 않았겠죠."
노완령이 두 눈을 반짝였다.
"보아하니 백의흉사나 금포인만이 진실한 속사정을 알고 있는 것 같군요."
당몽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외에는 제삼자도 알고 있겠죠. 설령 제가 지금 두 흉사를 제압할 수 있다 해도, 그들은 죽어도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것이니 괜한 헛수고일 겝니다. 다행히 제가 두 흉사 가까이에 사람을 심어 놨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노완령은 당몽주의 재능에 은근히 감탄하며, 두 눈에 교태를 담뿍 담고 말했다.
"제삼자가 누구일지 참 궁금하네요. 공자께서는 반드시 실마리를 찾으실 거예요."
당몽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무우곡주(无忧谷主)인 만승도(万胜刀) 백춘언(柏春彦)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말 그대로 그저 의심일 뿐입니다."
노완령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서 당 공자께서 가짜로 담령(谈灵)을 사칭하여 무우곡에 들어가신 거였군요."
그리고는 곧바로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공자께서는 백월하(柏月霞)와 남다른 정분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진주와 벽옥이 한데 모이는 주련벽합(珠联璧合)의 경사나 다름 없겠어요."
당몽주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낭자께서 놀리시는군요. 저와 백 소저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노 낭자와 마찬가지로 그저 도의적인 교분의 홍분지기(红粉知己)일 뿐입니다."
노완령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지고, 솟구치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버들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정말인가요?"
당몽주가 말했다.
"제가 무림 동도를 상대로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잠시 말을 멈춘 후, 화제를 돌렸다.
"내일 아침 저는 다시 담령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무우곡으로 올라가 잠시 머무른 후 백의흉사를 추적하러 떠나야 합니다."
갑자기 창 밖에서 작게나마 발소리가 들려왔고 노완령의 얼굴색이 변했다.
당몽주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쪽 사람입니다!"
인영 하나가 기러기가 날개짓 하듯 부드럽게 미끄러져 안으로 들어섰고, 방안의 불빛이 살짝 흔들리며 첨남곤(詹南坤)의 모습이 드러났다.
첨남곤이 노완령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가 저를 계속 추적하셨고, 저는 아가씨의 추적을 겨우 따돌렸다 여겼었는데, 뜻밖에도 이미 당 노제를 찾아내셨군요."
노완령이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입을 삐죽거렸다.
"중은 절을 떠날 수 있어도, 절은 어디로 가지 못하죠."
(14장 마침)
〔註〕
*⑴押房 : 签押房(첨압방)의 줄인 말 같습니다.
签押은 서명과 날인의 의미로 签押房은 관공서에서 공문을 작성하고 배포하는 업무를 맡은 부서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인 관공서의 집무실을 칭하기도 하는 듯.
본문에서는 단순히 판공실로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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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감질나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