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1일
조민세는 종로 3가 초동 뒷골목 활판 인쇄소 밀실에서 지하 당보 '로력
인민' 초교 교정을 본다. 김삼룡,이주하의 검거로 남조선 노동당 서울 시
당과 지도부가 궤멸된 뒤, 북의 중아당 연락부에서는 새로운 지하 당보 발
간 지령을 내렸고, '로력인민'은 그 지령에 따라 두 번째 간행되는 당보이
다. 조민세가 '로력인민' 편집 책임을 맡기는 이번 호가 처음이다. 전지
사 절에 양면 인쇄하는 한 장짜리 부정기 지하 당보인 셈이다.
인쇄소 규모가 열서너 평밖에 안 되다보니 한글 납 자모조차 제대로 갖
추지 못해 '극단적'이란 단어의 '극'자는 목각을 끼워넣고, 아라비아 숫자
도 크기가 들쭉날쭉이다 솔채로 두드려 활판 초교 갱지를 빼냈으므로 잉크
가 제대로 묻지 않은 곳도 많다. 동판 초교 갱지를 빼냈으므로 잉크가 제
대로 묻지 않은 곳도 많다. 동판 사진조차 사용하지 않아 당보는 깨알 같
은 글자만 박혔다.
당보 앞면은, 5월 30일에 실시되는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즈음하여,
남조선 민주 인민은 미 제국주의 앞잡이 이승만 괴뢰 정권의 정치 조작극
에 희생되지 말고 이승만 친미 노선에 철저하게 반대하는 민주 인사만 골
라 투표하거나 숫제 기권해야 한다는 머릿기사를 실었다. 그 아래에는 북
조선의 '조국전선(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이름으로 보낸 '남
조선 유격대 격려문'을 전재했고, 그 격려문에는 다음 구절이 삽입되었다.
...해빙기를 맞이하여 지리산을 비롯한 경북,전남북,강원도 일대에서는
유격 투쟁이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있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각 지방 유격
대 진공에는 지역 인민의 호응 궐기가 동반되고 그 활동이 대규모적이 특
징이라는 보고를 우리는 이미 접하였다. 한번 전투가 벌어질 때는 일격에
몇 동과 리는 고사하고 면을 점령하는 전과에 용기 백배하여 대대 내지 사
단 규모의 적을 상대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전투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유격대의 투쟁을 통하여 대원 배가 운동과 해방 지구
설정에 많은 진취가 있음을 우리는 주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격대원은
조국 통일이 목전에 당도했음을 명심하고 최후의 결정에 총궐기할 것을 촉
구하는 바이다...
조민세는 이 구절만은 진정 삭제하고 싶을 만큼 얼굴이 화끈하다. 어느
유격대 간부가 월북하여 자신의 투쟁을 과장해 보고했는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아첨에 발린과장이다. 남반부 전역 유격대 활동은 지난 겨울을 고
비로 동면기에 접어든 형편이다. 겨울 동안의 동면이 아닌, 영원히 깨어나
기 힘든 사멸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작년 겨울 남반부의 군경 합동 동계
작전으로 태백산 지구 기본 부대였던 제3병단과 제1병단이 큰 타격을 입었
고, 지리산과 호남 지구에도 이현상 지휘 아래 있는 제2병단 소속의
6,7,8,9연대가 각각 일백수십 명의 유격대원을 거느리고 지리산,백운산,조
계산,덕유산에 잠복하고 있었으나 작년 9월 목포형무소 습격과 4월 들어
무주경찰서,곡성경찰서를 습격한 뒤 올해로 넘어오면서 이렇다 할 전과가
없는 실정이다. 다른 한편, 경상남도,충정북도 산간 지대에서 산발적인 유
격 활동이 없지 않지만 주로 야간을 이용하여 독립 마을을 공략한 뒤 적
군경이 출동하기 전에 입산해버리는 정도의, 전투라고 이름붙일수 없는 양
식 확보를 위한 기습 작전이 전부다. 사실 조민세가 지휘한 경남 2지대 7
블록 유격대도 금년 들어 성과는 김해군 장유면 지서 공격이 고작이었다.
오직 경상북도 지방만이 남파된 유격대 제1병단의 사투가 두드러질 뿐이
다. 1월 21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 지서 습격과, 24일 경상북도 영양군
포도산에서 적 제3사단 소속 부대의 습격이 있었다. 3월에 들어서고 강원
도 백암산에서 적 제3사단 소속 부대와 교전이 있었을 뿐, 해빙기로 접어
들어서는 유격대 활동이 전면 중지된 형편이다. 대규모로 남파된 정예의
무장 유격대 활동이 그럴진대 남반부 자생의 소규모 유격대 활동은 조민세
자신이 체험했듯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조민세의 입장에서 보면 앞의 과장된 표현은 모두 삭제하고 그나마 이
지하 신문을 볼 동지와 인민의 사기를 고려하여, "슴죽인 인민의 잠재력에
불을 댕길 유격대의 문화 공박과 초모 작전이 기대된다. 중국 모택동 동지
의 대장정을 보듯 유격대는 인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닌, 진정한 협력
자요 해방자로 그 인상을 심어줌이 선결 문제이다."로 수정하고 싶은 마음
이다. 이런 표현은 소극적 진단이지만 현실적으로 타당한 발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앞의 격려문을 지하 신문에 전면 게재하라는 북의 해주
5호실 연락부 지시를 조민세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 서울시당 조직부장
대리직을 맡은 조민세의 고민이 바로 그 점이다. 해주 5호실 연락부나 내
무성 정치보위국이 남반부의 정세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면 그 점을 바로잡
아 직언해야 하는데, 그 직언이 안진부의 말처럼 해당 행위 또는 유격대원
사기 저하에 따른 이적 행위로 몰릴 입장이다. 그렇다고 자기마저 해주지
휘부에 아첨을 떨며, "남반부 유격대의 진공 상황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염려 없다. 유격대는 백전백승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손뼉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월북하는 퇴로를 차단당한 김달삼 부대를 구출하려 남파되었던
김상호 부대와 김무현 부대가 모두 삼팔선 접경에서 큰 손실을 입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능히 남반수 사정을 인지할 터인데 해주시의 대남 담당 공작
기관들이 그 비관적 현실을 은폐하는 이유에 대하여 조민세는 쉽게 동ㅈ할
수 없다.
앞면 왼쪽에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맞아 평양시 기넘 집회에서 발표된
당 연설문을 그대로 전재하고 있다.
뒷면의 머릿기사는, 독도 참변 2주년에 즈음하여 기념찹 건립과 위령제
거행 행사 준비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이다. 기사의 서두는 남반부 당국
의 행사 중지를 경고하고 있으나, 차츰 미 제국주의의 고의적인 조선 어민
학살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논조로 흐른 끝에, 결론은 인
민의 반미,반일 감정을 충동질하는 격한 호소로 끝을 맺고 있다.
독도 참변이란, 재작년 6월 8일 독도에 출어했던 어민 59명이 열여덟 척
어선에 분승하여 조업하던 중 미군 연습기 사격을 받은 사건이다. 그 사고
로 사망과 행방불명된 어민이 14명, 중경상자가 6명, 선박 파손이 4척이었
다. 미 대사관은 그 사건 직후 오인 사격에 따른 사과문을 발표하고 일체
보상을 약속했다. 그런데 독도 참변 2주기를 앞두고 경상북도 지사 조재천
은 정부요로, 유엔 한국 위원회, 미 대사관의 협력을 얻어 독도에 기념비
를 건립하고 독도에서 직접 위령제를 거행함으로써 독도 영유권의 시비가
잦은 일본 당국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재천명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 머릿기사 아래에는 '유격전의 전략과 전술'이라는 제목 아래 조민세
가 쓴 논문을 깔고 있다. 2백 자 원고지 5십여 쪽 되는 글이다. 그 논문은
조민세가 2년 동안에 걸쳐 직접 소규모 유격대를 지휘했던 체험을 토대로
유격전의 전략 목표, 전략 계획, 전투로서의 전술, 적군과 대 인민과의 대
치에서의 문제점을 분석한 내용이다. 그 중 안진부가 문제로 삼은 부분이
제3장 '농촌 유격 활동의 함정'이다. 거기에서 조민세는 다섯 개의 소제목
을 따로 두어 남반부에서 농촌과 농민을 대상으로 한 유격 활동이 왜 혁혁
한 전과를 올리지 못하며 올바른 평가를 얻지 못하느냐를 규명하고 있다.
논조가 어느 편이냐 하면, 다분히 회의적인 견해로 일관하고 있다. 농민
의 보수성, 가난에 대한 운명적인 체념, 왜정 시대를 거쳐오며 배태된 폭
력에 대한 공포감과 증오심, 씨족 집단의 공동체가 장애 요인이 되며, 무
기,병참,식량의 보급이 원활치 못 하며, 해방 지구의 장기 확보 불가능으
로 부대 이동의 난점, 게릴라 부대끼리의 연락망 두절로 정보 교환과 상호
협조가 잘되지 못 한다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조민세는 그 해결
의 대안으로 남파되는 유격 부대와 자생 유격대의 정보 교환과 체제 확립,
유격대의 대 인민 위화감 해소, 적의 선전 활동 역공작, 특공대 조직, 적
군 통신망내에 정보원 투입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여러 요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제3장의 논조는 조국 전선지도부의 남반부 정세 판단과 정면으로
상반되는 자아 비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낙인이 찍히더라도 수정할 수가 없어." 조민세는 교정보던 펜을 놓으며
내뱉는다. '로력인민'은 필경 개성 연락원을 통하여 북에 전달될 터이고
언젠가는 이 신문의 평가에 따른 지시가 내려올 것이다. 그 지시가 자신에
게 어떤 불이익을 미치더라도 그는 개의치 않기로 마음먹는다.
"따뜻한 엽찹니다. 드시고 하시지요." 인쇄소 책임자 김복명이 엽차잔을
책상에 놓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는 1946년 9월 북창동에 있는 서울인
쇄소 문선공으로 재직할 당시 인쇄노동조합 총파업 주동자로 활약하다 치
안 유지법에 걸려 1년을 복역하고 나온 뒤 다시 본업을 시작한 자이다. 대
표를 다른 자로 내세워 공원 여덟 명을 둔 인쇄소를 차리는 데는 북에서
내려온 자금으로 충당되었다.
"재교 교정을 한 번 더 보고 인쇄에 넘기도록 합시다. 모레 오전에 들를
테니 빠진 글자는 목각 도장을 파더라도 그때까지 채워넣도록 하시오." 엽
차를 마시며 조민세는 의자에서 일어난다.
"오자,탈자,백자를 책임지고 맞춰놓겠습니다." 김복명이 머뭇거리다 말
한다. "다시 손볼 데는 없습니까?"
"내 허락 없이 한 자도 고치지 마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난 가보겠소. 공원들 신상에 신경 쓰도록. 요즘 시경 사찰계 활동
이 부쩍 기민해졌소."
"여긴 염려 마십시오. 보안 교육을 늘 시키고 있으니깐요."
조민세는 벽에 세워둔 지우산을 들고 밀실을 나선다. 김복명이 앞서서
조민세를 밖으로 안내한다. 조민세는 종로로 빠지는 길을 잡아 골목을 벗
어난다.
조민세는 종로 4가에서 전차를 탄다. 전차에 오를 동안 미행꾼이 있냐
없냐를 두고 몸에 밴 신경을 썼으나 4가 정류자에서 전차를 오른 사람은
어린애 둘을 거느린 중년 부부와 가방 든 학생 네댓, 자신뿐이다. 전차 안
에 서 있는 승객은 몇 되지 않지만 앞서 탄 승객이 좌석을 차지하고 있다.
조민세는 전차를 탈 때 빈 자리가 있어도 출입문 가까이가 아니면 앉지 않
는다. 갑자기 차에서 내려야 할 일이 생겼을 때를 늘 대비해야 했다. 설
자리조차 승객들로 차 있으면 몰라도 휑한 차 안에 나른하게 앉아 건너쪽
사람들의 한가로운 눈길을 받기도 무엇하여 그는 문 입구에 돌아선 채 손
걸이를 잡는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가로를 내다본다. 그제께 가랑비가 내
렸고, 어제는 하루종일 날씨가 흐렸다. 오늘 다시 부슬비가 내리다 그쳤다
한다. 상점 불빛과 귀가를 재촉하는 통행인의 움직임이 차창을 통해 지나
간다. 이제 도시 밤풍경도 눈에 익어 별 스스럽지 안다. 그는 서울 생활
처음 한동안은 전등불 환한 가로에 많은 내와객을 보면, 유격대 시절 그춥
던 산 속의 밤과 바람 소리를 연상하며 꿈을 꾸고 있는 착각에 빠지곤 했
다.
조민세는 몸이 처지는 나른함을 느낀다. 점심 끼니를 걸렸으나 배가 고
픈 느낌은 없다. 그는 심신의 피로보다 당 사업을 어떻게 수습하느냐를 두
고 마음이 무거운 요즘이다. 농사꾼이 하루아침에 양복 입은 면서기로 탈
바꿈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조민세는 서울당을 빠른 시일 안으로 활성화시
켜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짐을 안고 있다.
남로당의 모든 조직을 총괄했던 서울시당과 지도부 재건 총책 김삼룡과
무력책 이주하는 물론, 간부부,특수부,중앙위원회가 풍비박산이 된 마당이
니 서울시당과 지도부는 표류하는 난파선 형상이다. 조민세로서는 지도부
에 도움을 청할 입장이 못 된다 서울시당의 여러 부서 중 그런대로 살아
있는 선은 노동부산하 직맹이 꾸준한 지하 노조를 유지하며 노동 학교를
개설하고, 대학과 중학교에 민하(민주학생동맹)의 암약, 서울시당 간부
몇, 경제부 재정 간사 안진부와 닿는 후원회 연줄 정도가 고작이다. 조미
네가 새로 맡은 조직부는 여러 부서 중 핵심 부서이기도 하지만 그 타격이
어느 부서보다 켰다. 예컨대 조직과,교양과,연락과,선ㄷㅇ과 핵심 당원이
지난해 9월과 올 4월 사이 굴비 두름처럼 속속 피검되어 하선 연결조차 끊
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2선 3선을 찾아 겨우 하부 임시 직제를 새로이 짜
맞추는 중이라 당장 활동은 불가능한 형편이다. 남반부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탓도 있지만 경찰 수사력도 강화되어 좌익 분자 색출에 그 잔챙이까
지 낚겠다는 듯 검문 검색과 뒤추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승엽이 김삼
룡,이주하 체포 경위의 조사임부를 맡겨 남파시킨 김용팔의 서울시당과 지
도부 문책도 곤욕스럽지만 조속한 당 재건 획책만도 조민세로서는 여간 짐
스러운 책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책만은 조민세가 책임질 성질은 아
니다. 그는 지난달 중순까지만도 지방에서 유격 활동과 선무공작에 치중해
왔기에 문책권 밖에 있었다. 그 동안 지도부,간부부의 임명과 활동 지침은
북의 해주 5호실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 이상, 그 실책 절반은 해주지휘부
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헌영과 이승엽의 대리역으로 남파된 김용팔은 보
름 전 서울시당과 지도부 연석회의 석상에서 "제1, 제2,제3병단과 지방 유
격대의 혁혁한 전공에 비추어볼 때 서울시당과 지도부의 마비는 중앙당 요
구 수준을 배반한 인텔리 부르좌 가족주의적 근성의 작태요, 그 책임은 간
부부와 중앙위원회에 있다"라고 규정한 뒤, 개별 자아 비판서 제출을 요구
했다. 김용팔은 조민세를 포함한 남아 있는 간부들로 하여금 5월 30일을
마감하여 서울시당가 지도부 조직을 정상화시키고 지방당 지원에 적극 앞
장서라는 훈령이었다. "임박한 결정적 시기를 대비하여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를 활성화하라는 박위원장(박헌영)과 이비서(이승엽)의 특별 지시임"
을 김용팔이 누차에 걸쳐 부언했다. 해방 전 조선공산당 '화요계' 출신의
그는 행방 직후 재건파 막후 인물로 이승엽 직계다. 김용팔은 48년 이승엽
과 함께 월북했고 강동정치학원을 수료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앙당 연
락부 밀령을 띠고 남파와 월북을 반복하고 있었다. 김용팔이 일컫는 중앙
당이란 남,북 노동당이 합하기 전 남로당 총지휘부로, 박헌영,이승엽 라인
을 총괄한다. 중앙당 연락부는, 해주 5호실,해주지휘부로도 불리며 남반부
공작을 전담하고 있다. 중앙당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하라는 단서는 비단
이번에 내려온 특별 지시가 아닌, 늘 있어온 훈령이었다. "핵심 지하당원
한 명과 영용한 유격 전사 한 명은 적 일개 대대화 바꿀 수 없다. 결정적
시기에 대비하여 한 명의 핵원과 전사라도 더 양성하라"는 지시는 유격 활
동중이던 작년 1년동안 조민세가 여러 차례 접한 훈령이었다. 그런데 5월
말까지, 이제 스무 날밖에 남지 않았는데 서울시당과 지도부의 재조직을
완료하기란 무리다. 머리만 찾아내어 직함 붙이기는 쉽지만 그렇게 급조할
성질이 아니고, 용케 경찰 수사망을 피한다 해도 핵원의 능동적인 활동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된다. 내일을 가늠할 수 없던 초로 생활이
지만 조국 해방이란 신념 하나로 뭉쳐진 유격대 시절이 나았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고, 그것이 조민세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전차가 남대문 정류장에 멈추자 조민세는 전차에서 내린다. 우산을 펴들
고 남대문시장 쪽으로 큰길을 건넌다. 난국의 도파에 앞장서서 앞만 바라
보고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고 그는 스스로를 격려한다. 상점들이 전 등을
밝혀 가로는 환하고 통행인도 많다. 가까이에 확성기를 통해 유행가를 부
르는 여가수의 애조 띤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조민세는 시장으로 들어가는
질퍽한 길로 꺾어든다. 옷가지 실은 손수레 장시꾼이 길 가운데 늘어섰던
낮 풍경과 달리 시장길은 훤하게 뚫렸다. 가겟문을 닫은 점포도 있어 옷전
이 한결 조용하다. 그는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발 앞만 내려다보고 걷는
다.절뚝걸음을 표내지 않으려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어 걷자 정강이뼈를
대패로 깎듯 통증이 온다. 상경하기 직전 작대산 기슭에서 국방군에 쫓기
다 4미터 넘는 벼랑을 뛰어내렸는데 바위 모서리에 오른쪽 정강이를 부딪
친 게, 서울로 올라오고 뒤늦은 통증이 왔던 것이다. 몇 차례 침을 맞았으
나 별 효험이 없다. 침을 놓아주던 한의사 말로 보름 정도 꼼 짝않고 쉬며
쑥뜸을 하면 상한 뼈와 맺힌 어혈이 풀릴 거라 했지만 그는 자리 차지하고
누웠을 한가로운 몸이 아니다.
세탁소를 지나 몇 발 내딛다 조민세는 길을 건넌다. 맞은쪽 문이 닫힌
포목점 앞에서 그는 되돌아선다. 우산을 접고 좌우를 살핀다. 컴컴한 시장
길 멀리로 사람 그림자가 얼씬거렸으나 신경쓰이는 움직임이 잡히지는 않
는다. 그는 왔던 쪽으로 되돌아 걷는다. 골목 쪽 대문을 이용할까 하다 백
광세탓소란 간판이 붙은 쪽문을 두 번 약하게 두 번 세게 두드린다. 기다
렸다는 듯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 전등불 아래 방기오가 남자 바지를 다림
질하고 있다.
"레포(통신원)와 느티성님이 기다리구 있시오." 방기오가 평안도 억양으
로 말한다.
세타소 안이 숯내로 차 조민세가 잔기침을 한다. 방기오가 앞장서서 옷
가지가 줄줄이 걸린 세탓소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좁은 마당이 나서고, 방
두 개가 붙은 안채는 나지막한 함석집이다. 안방은 말소리와 아기가 칭얼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건넌방은 깜깜하다. 방기오가 깜깜한 건넌방 앞에
서 기침을 한다. 전등이 켜지고 방문이 빠끔 열린다. 검정 교복 입은 단발
머리 여학생이 얼굴을 내민다. 조민세는 들고 있던 우산을 쪽마루 아래 밀
쳐 넣고 방으로 들어간다.
"신발 여ㄱ시오." 방기오가 조민세의 신발을 건네준다.
조민세가 방기오로부터 비에 젖은 농구화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가 방
문을 닫는다. 여학생이 조민세 신발을 받아 방문 옆 모서리 깔개 함석판에
자기 운동화와 나란히 놓는다. 그녀는 무릎 꿇어 다소곳이 앉는다.
"황양이 수고가 많군." 바깥 동정에 잠시 귀기울이던 조민세가 여학생을
마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황송희가 수줍게 웃는다. 이마가 맑고 뺨이 도톰한 귀염성스런 용모다.
그녀는 옆에 둔 책가방에서 교과서 한 권을 꺼내더니 책표지 싼 꺼풀을 벗
겨낸다.
"등교길에 받았어요." 황송희가 책 꺼풀 안에서 접은 종이쪽지를 꺼내어
조민세에게 준다.
"다른 말은 없었고?"
"네."
조민세는, 사건이 더 확대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쪽지를 받
아 펴본다. 성냥갑 크기의 쪽지에는 앞뒤로 깨알 같은 크기의 아라비아 숫
자가 적혀 있다. 그는 쪽지에 쓰인 무작위 아라비아 숫자를 숙지한 난수표
해독법에 따라 읽는다.
-3명 외 안전. 활동 전면 중단. 선 불가. 선거 지원 난관. 2명 지원 불
가...
쪽지 내용은 조민세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우선 사건이 박 선에서 주춤
한 상태라 안심이 간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상공부 비서관이란 요직에 있
으며 노동당 충청남도 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영수가 수하 연락원의 변절로
지난 월초 대전역에서 충남경찰국 형사대에 전격 검거됨으로써 충청도당도
그 활동이 완전 중단 상태이다. 그쪽 연락책 강의 보고에 따르면, 박동지
와 요직요원 두 명이 검거되었을 뿐 수사가 확대되지 않고 있으나 박동지
의 자백 여하에 따라 충남은 검거 선풍이 거세게 일 듯하여 모든 간부진이
흩어져 은신중이라 당분간은 선 연결이 어려우며, 서울시당이 지원해온 지
리산 유격댕 보낼 보급품을 아직 전달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란 보고이
다. 모든 총력을 지리산 유격대 지원에 이바지하라는 김용팔의 지령을 상
기하자 조민세는 당장 충청남도당에 훈령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박헌
영은 김삼룡이 검거되기 전 남로당 재건 총책에 있을 때도 북에 앉아 자주
그런 지령을 보내왔다. 박헌영으로서는 해방 전 서울 콤그룹 시절 직계 세
사람이던 김삼룡,이관수,이현상 중 이관술은 46년 조선 정판사 위폐 사건
으로 일찍 피검되어 옥중 생활을 하고 있고 이제 김삼룡과 해방 후 굳건한
동지가 된 이주하마저 떨어져 나갔으니, 신뢰할 수 있는 남로당 조직의 마
지막 보루는 강력한 무장 유격대 제2병단을 지휘하고 있는 이현상밖에 남
지 않은 셈이다. 박헌영의 훈령을 받고 남파된 김용팔의 지령이 아니더라
도 조민세로서는 지리산 유격대 지원이 무엇보다 급선무임을 자각하고 있
다. 남반부에서 가장 든든한 성채는 누가 판단하더라도 지리산 일대에 해
방 지구를 설정하고 있는 제2병단의 건제가 아닐 수 없다.
난수표는 '사태 예의 주시. 분골쇄신 충성'으로 끝맺고 있다. 조민세는
성냥을 켜 난수표를 불에 태운다.
서울시당과 충남도당의 연락은 무인 포스트를 이용한다 올 5월에 6년제
경기여중을 졸업할 황송희는 무인 포스트 중간 레포다. 서울시당과 지도부
가 와해된 뒤 조민세가 조직부장 대리직을 맡고 나서 그는 선 연결의 새
점검에 필요성을 느껴 무인 포스트의 위치와 전달 날짜를 변경하고 그전까
지 써왔던 난수표에서 몇 가지 주요 군호를 고쳤는데, 이번 황송희가 그
쪽지를 제대로 가져옴으로써 보고 내용이야 어쨌든, 충남도당 연락부장 강
과 선 연결은 그 전달 과정에서 의심쩍은 점 없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셈
이다. 지난 월말에 조민세가 무인 포스트를 통하여 지시한 포스트의 위치,
날짜 변경, 군호의 새로운 해독, 그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그쪽 강이 숙
지 못 했다면 지방 레포가 새로 지정한 포스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
러면 서울시당 레포가 남산 어귀에 지정된 무인 포스트에 가도 헛수고를
했을 테고 황송희도 그 쪽지를 전달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조민세는
지난번 역공작에 따른 김삼룡 동지의 체포 경위와 같이, 치안국은 물론 서
울시경 사찰계가 손바닥에 가지고 놀 듯 남로당 서울시당과 지방당 조직의
잔존 세력을 일망타진하겠다고 개별 체포를 뒤로 미룬 채 투망식으로 지하
활동을 낱낱이 관찰하고 있을 경우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친 경
각심은 오히려 그나마 활동마저 위축시키게 마련이어서 그는 우선 충남도
당과의 연락 문제에는 당분간 안심해도 무방하겠다는 판단을 한다. 그렇지
만 끊어진 선을 연결시켰다고 안심할 형편은 아니다. 충남 도당이 난장판
맞고 있으니 월별로 올라올 군부대 이동 상황보고조차 가망 없는 지경이
다. 조민세가 한숨까지 내쉬지는 않았지만 깜깜한 밤에 첩첩 산중 가시밭
길을 헤쳐가야 할 앞 길을 내다본다. 충남도당은 서울시당 다음으로 중요
한 지방당이다. 남반부 중심부 대전에 위치해 있는 이점으로 서울시당이
충남도당으로, 충남도당이 지리산 유격대(제2병단)와 경북도당의 중개연락
을 맡고 있다. 지라산 유격대는 전라남북도당, 경상남도당, 제주도당을 관
장하고, 경기도당과 강원도당은 여태껏 서울시당이 직접 지령내리는 선 연
결을 취해왔던 것이다.
"언짢은 소식인 모양이군요?" 황송희가 묻는다.
"다들 어렵게 일하고 있으니깐. 조만간 노력의대가만큼 좋은 세월이 오
겠지."
"저도 그렇게 믿어요." 황송희는 난수표 내용을 모르는 만큼 충남도당의
실정을 알지 못한다.
서울시당 조직부 연락과는 당성과 신분 안전이 철저한 자를 가려뽑아 레
포로 쓰고 있는데 용케 수사선상에 노출되지 않은 연락부책 홍락만 알 뿐
그 위와 아래로 선이 닿지 않는다. 또한 점조직으로 짜여 있어 레포끼리도
서로가 누군지를 모르고, 무인 포스트 자체가 지방당 레포와 직접 면대할
수 없으므로 서로 면식이 없다. 황송희는 한정화의 천거도 있었지만 조민
세가 첫 눈에 봐도 신실하고 영민하여, 수하에 두고 심부름시키는 셈이다.
서울지도부 간부진의 자중지란에 따른 체포는 물론, 충남도당 총책 박영수
수하 레포마저 변절하는 마당이라 조민세는 황송희에게 두 번에 걸쳐 어려
운 일감을 맡겨 시험해본 결과 일처리가 깨끗했고 안전도도 합격점이었다.
개성의 인삼 중개업을 하는 부상 집안 출신의 황송희 부친은 용산에서 큰
건재상을 열고 잇는데, 여당인 대한민국당에 돈줄을 대는 실력자로 정계에
도 발이 넓다. 황송희가 남로당에 관여하게 되기는 순전히 외삼촌 영향 탓
이다. 그녀 외삼촌은 개성 송도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을 중퇴
한 뒤 일정 때부터 좌경 독립 운동에 투신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해방 후 서울 용산중학 교사로 재직중 민학을 암암리 지도하다 경찰 수사
망에 포착되어 쫓기는 몸이 되자 작년 가을 월북해버렸다.
"목요일 방과후에 한 번 들러줘. 다섯시쯤이면 되겠지?"
"얼마 있잖아 졸업식이라 오전 수업밖에 하지 않아요. 더 일찍올 수도
있습니다."
"잘됐군. 그럼 두시로 약속하지. 만약 내가 다른 일로 못 온다면 방군한
테 일감을 맡겨놓을 테니, 홍한테 전해줘." 조민세가 팔목시계를 보며 말
한다.
"다른 부탁은 없습니까?"
"민학은 잘 되고?"
"김선생님이 열심으로 지도해주시고 있어요. 이번 달도 신입회원 셋을
받았답니다."
"황송희는 지하 학생 조직 민학 경기여중 연락책이고 김선생은 그 학교
국어 교사로 지도원이다. 지난해 여름 방학 끝무렵 민학지도원 몇이 학생
간부들과 양평군 용문사에서 하기 수련회를 갖다 그 수련회의 목적이 경찰
에 의심을 받아 지도 교원 넷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따라서 여러 중학
교 지하 조직이 꼬리 잡혀 수난을 당했으나 아직 지하 조직이 건재한 채
활동을 계속중인 학교가 있고, 경기여중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럼 먼저 가봐. 조심하고." 조민세가 말한다.
황송희는 조민세에게 목례하고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조민세가 방문을
열어준다. 황송희가 마루로 나서자, 바깥채 세탁소 뒷문 처마 아래 마을
보던 방기오가 소리나지 않게 대문을 열어준다. 황송희의 뒷모습을 보며,
지하 활동에 여자의 역할이 어라나 큰가를 다시 인식한다. 행동이 찬찬하
고 세심하여 적진에 잘 노출되지 않을뿐더러 당성이나 충성심을 따지더라
도 남자보다 강한 여성 동지를 그는 많이 보아왔다. 한 번 이 길로 들어서
면 외곬의 강한 신념이 남자보다 더 강햇다. 유격대 시절 국방군 총탄을
다리에 맞아 낙오된 끝에 체포되어 남조선 경찰 감방에서 고문 끝에 장독
으로 죽은 여성 유격대원 김금례 동지가 그런 실례엿다. 그런 애젊은 여성
동지의 목숨 내건 순결한 혁명 정신을 봐서라도 조국 통일을 앞당겨 실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그는 다시 마음에 심는다. 그러나 아직 여명이 보이
지 않으니 답답하다.
조민세는 농구화를 들고 방에서 나온다.
"조선생님 나가시오." 방기오가 안방에 대고 말한다.
안방문이 열리고 이느티와 방기철이 주위를 살피며 쪽마루로 나선다 이
느티는 충청남도 예산군 고향 마을 이름에서 따와 느티라고 불리는 선동부
요원이다. 윗자리 간부들이 체포된 뒤 선동부의 실질적 일꾼으로 떠오ㅡ
스물 후반의 예산농고 출신 젊은이다. 방기철은 방기오의 형으로 일정 때
부터 일본인 아래 백광세탁소 직공으로 일해오다 해방 후 세탁소를 인계받
아 자영한다. 평안북도 선천이 고향인 그는 해방 후 아우를 서울로 불러내
려 세탁일을 맡기고 자신은 좌익 운동에 뛰어든 열혈 지하당원이다.
"늦었구만유. 어서 가야 되겠시유." 작업복 차림의 이느티가 마루 밑에
둔 고무신을 꺼내 신으며 조민세에게 말한다.
"그럼 그렇게 되는 줄 알갔네. 자네가 덩 급하다면 내가 연락을 해주갔
구." 방기철이 팔짱을 끼고 쪽마루에 서서 이느티에게 말한다. 방안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자지러진다.
"아주머니 말조심이나 잘 시켜두시유. 내 일은 알아서 처리할 테니껀
유."
이느티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앞장서고 조민세가 우산을 펴들고
그 뒤를 따라, 둘은 질척거리는 남대문시장을 거쳐 퇴계로 쪽으로 걷는다.
둘 사이 거리는 오십 미터 남짓하다. 지하암약이란 잠들어 있을 때도 경계
심을 풀지 않아야 하므로 모든 행동에 모든 행동에 철저한 약속을 지켰는
데, 쌍방 거리 확보도 바로 그런 묵계의 한 가지이다. 동료 셋이 길을 나
설 때 각자 안전 거리는 늘 오십 미터 정도 간격을 유지한다. ㅆ이면 간부
가 반드시 중간에서고, 둘인 경우 간부가 뒤를 따른다. 앞쪽에서 안내하는
자는 앞을 경계하고 뒤쪽은 뒤를 경계하여, 앞쪽이 위급함을 당할 때, 도
둑이야 하고 외치며 뛰고, 뒤쪽이 위급함을 당할 때는 큰 소리로 앞선 사
람의 성씨를 불러 주위를 환기시킨다. 절대 안전 지역이 아닐 때는 신발을
벗지 않는다. 밀폐된 공간이 아니곤 공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목소리
는 늘 옆엣사람이 들릴 정도로 낮춘다. 증거 우려가 있는 것은 즉시 없앤
다는 따위도 그런 약속에 속한다.
철시한 시장 중심을 벗어나 싸구려 음식점이 즐비한 돼계로 입구까지 오
자 이느티는 좁은 골목길로 모습을 감춘다. 그는 굽은 골목길을 한참 빠져
들어가 허름한 이층 적산 가옥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골목 안은 빗소리만
들릴 뿐 조용하다.이느틴느 판자담 위로 손을 넘겨 무엇인가 더듬어 찾는
다. 손 끝에 줄이 잡히자 그는 그 줄을 세 번 당겨 흔든다. 잠시 뒤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고 안세서 앳된 여자 목소리가, 안중ㄴ 없어요 하고 말한
다. 이느티가 그 말을 받아, 재봉실이유 하고 대답한다. 판자문이 열린다.
이느티와 뒤따라온 조민세가 문 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이 없는 집이다. 현
관ㅇ로 들어서자 이느티와 조민세는 신을 신은채 이층 나무 계단을 밟는
다. 계단은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는 길만 틔워놓고 헌 옷가지를 뭉쳐 싼
꾸러미가 층층이 재였다. 이층으로 올라가 이느티가 문을 두드린다. 안쪽
에서 문을 열어준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중년 아냔네다. 컴컴한 이층 마
루방에는 재봉틀 두 대가 있고 옷꾸러미가 쌓였다. 이느티가 안쪽으로 돌
아가자 옷꾸러미 쌓아둔 벽 뒤쪽으로 밀실이 따로 있다.
"조선생, 저 좀 봐요." 아냔네가 조민세를 부른다. 서울시당 부녀부책
공현숙 여사다.
"소리 선생이 오늘 개성으로 떠낫어요." 층계참까지 돌아나오자 공현숙
이 귀엣말로 말한다. 소리 선생이란 북에서 내려왔던 김용팔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떻게 갑자기... 다른 말은 없었소?"
조민세는 누구한테도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조민세가 김용팔을 만난
것은 이틀 전 파고다공원 뒷골목 다방에서이다. 그 자리에 한정화도 동석
했다. 그때 김용팔은 북으로의 복귀 의사를 비추지 않았다. 기회가 닿으면
그에게 맏아들 유해의 월북 대동건을 부탁하려 했는데 서울시당 사정이 풍
전등화라 조민세는 가족주의적 발상이란 말을 들을까봐 그 말을 꺼내지 못
했다. 평양근교 사동에 침식까지 당비로 운영하는 정박아 특수 학교가 있
다는 사실을 조민세는 알고 있었고, 설령 험구가로부터 가족주의적 발상이
란 말을 듣게 되더라도 그는 그 일이 가능하리라 여겼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루트는 한 달에도 여러 차례, 개성 부근을 통과하는 육로와 인천에서
서해안을 건너는 해로가 있다.
"긴급 지령인지 급히 떠나는 것 같았어요."
김용팔이 한 달 가까이 서울에 머물 동안 그 은신처는 공현숙이 제공해
주었다. 그러므로 김용팔은 공현숙을 통해 서울시당 간부와 지도부 요원을
개별 접촉했던 것이다. 그가 서울시당 간부진과 지도부 연석 회의에 얼굴
을 나타내기는 스무 날 전 한차례 중앙당 5호실의 지시 전문에 따라 조민
세를 서울시당 조직부장 대리직에 임명한다는 공식 발언을 위해서였다.
"알았소." 조민세가 밀실 쪽에 힐금 눈을 준다. "제이병단 보급품은 급
하지 않게 됐소. 재고품은 내다 팔아도 상관없겠고."
"왜요?"
"지난번에 보낸 게 아직 대전에 쌓여 있어요. 그쪽 사정이 좋잖은 건 알
잖소."
"하지만 그걸 아직까지 재어두다니" 하더니, 공현숙이 목소리를 더욱 낮
춘다. "한양은 만났어요?"
"그저께. 특별한 정보는 없었소."
"요즘 북당(북로당) 남정위(남반부정치위원회)와 더 밀착된 것같잖아
요?"
"글쎄, 거기까진. 그러나 그럴 수도 있겠지요. 원래 우리 쪽 사람은 아
니니깐. 다른 정보는 없고요?"
"갈피를 잡을 수 없어요. 내정국(내무성 정치 보위국)은 내정국대로, 민
정국(민족보위성 정찰국)은 민정국대로... 도무지 어떻게 된 선들인지 알
수가 없어요. 물론 북에서두 단일 선만 믿다간 우리 같은 꼴을 당하겠지
만..."
북조선에서는 박헌영 세력의 남로당이 북로당과 합당함으로써 노동당으
로 발전 해체되었다지만, 남로당 세력이 제자리를 찾지못해 밀리고 있다는
불안한 직감은 남반부 지하당원 모두가 가졌고, 공현숙도 그런 말이 입에
돌지만 누워서 침 뱉기식이라 차마 뱉어낼 수 없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목표만 생각합시다. 지금으로선 그 길밖에 대안
이 없지 않소."
"알아 판단하시겠지만 한양한테 우리 쪽 불리한 정보는 팔지마시오. 보
고가 다른 쪽으로 올라갈 테니깐."
"이런 판국에 팔고 안 팔 게 뭐가 있소. 소리 동지도 그런 말 합디다.
한동지가 민정국 쪽 높은 선과 닿아 있다고. 소리 동지가 한을 우리 쪽에
소개했지만, 소리 동지도 한동지의 배후에 대해선 깊이 알지 못하고 있다
는 감을 받앗소. 그 여자는 나름대로 공작 임무가 따로 있겠지요. 그 문제
는 내가 알아 판단하겠소."
김용팔은 조민세에게 서울시당 조직부장 대리직을 임명하는 자리에 한정
화를 처음으로 동석시켜 소개했다. 한정화를 두고 "쏘련 당학교까지 수료
한, 주요 임무를 밝히지 않았고, 비밀을 묻는다는 건 지하 조직 수칙에 금
기 사항이다.
"쏘련 유학까지 갔다왔다는데, 갑자기 우리 쪽과 적극 선을 대는 게 어
쩐지..."
"의심하자면 누군들 믿겠어요. 그러나 한동지가 이쪽에 노출된건 우리
선으로 그칠 것 같으니 함구를."
"저도 그쯤은 알아요."
"그럼 없던 얘기로."
공현숙은 머리를 끄덕인다. 그네는 앞서서 밀실로 들어간다. 조민세는
잠시 사이 생각을 간추린다. 김용팔의 돌연한 월북은 북의 어떤 긴급 명령
인지 모르나, 그가 서울에 계속 잠복할 입장이 아니므로 잘된 일로 여겨진
다. 아직까지 서울시당 사정을 깊이 모르는 조민세로서는 함부로 직언할
성질도 못 되지만, 안진부와 공현숙이 위기를 맞은 서울시당의 전후 사정
을 그에게 누누이 설명해주었고 김용팔 자신도 서울시당 간부와 지도부 요
원을 개별 접촉하며 현실정을 직접 파악했으니 하루라도 빨리 월북하는 편
이 이쪽에서 보자면 오히려 이점일 수도 있다. 김용팔의 월북 즉시 북에서
는 비상 대책을 마련할 ㄱ 틀림없고, 따라서 조만간 새 지령이 내려오겠거
니 싶다. 그 지령은, 중앙당에 의지하겠다는 의타심을 불식하고 자활의 기
을 도모하라는, 늘 듣던 훈령도 포함될 것인 만큼 목을 빼고 그쪽 눈치만
기다릴 게 아니라 여기는 여기대로 새 조직을 다져나가는 길밖에 대책이
없을 것이다.
조민세가 밀실로 들어서자 문 옆에 서 있던 이느티가 길을 내준다. 남포
등 불빛이 뿌연 가운데 여덟 개의 쏘아보는 눈동자가 그를 맞는다. 양쪽
창문은 두꺼운 천을 가리어 방안 불빛을 외부와 차단하고, 먼저 온 넷이
의자와 옷꾸러미에 제가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넷의 얼굴이 한결같이
엄숙하고 침울해서 조민세는 마치 심문실로 들어선 느낌이다. 밀실의 눅눅
한 공기는 그의 마음만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소?" 안경 낀 오십 줄의 까마른 사내가 옷꾸러미
에 앉는 조민세를 보고 묻는다. 서울시당 지도부 중앙위원으로 아직은 활
동이 자유로운 박태길이다.
"좋은 정보는 없습니다."
"보령 동지마저 검거됐다는 소식 들었소?" 박태길이 추궁하듯 묻는다.
조민세의 전력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어느 산에 굴러다니다
온 나무꾼이냔 듯 지방 유격대 출신의 조민세르 평소에는 깔보는 면이 없
지 않다. 이현사,김달삼 정도는 되어야 진정 혁명군 유격대라 칭할 수 있
지 뒷동산 정도의 산채를 차지하고 앉아 화전촌이나 노략지하는 유격 소조
대장이야말로 면책감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그가 어느 사석에서 했
고, 자기를 빗댄 그 조롱을 교양부 부책 주생진으로부터 조민세가 전해들
은 적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일로 걱정입니다."
"사월로 한 고비 넘기는가 했더니 충남이 무너지고 이제 보령동지마
저..." 조민세의 말을 받아 서울시당 이론진 요원 성주걸이 꺼칠한 턱수염
을 쓸며 머리를 떨군다.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인 그는 여러 대학 시간
상사로 뛰는데, 조민세가 보령 동지의 피검 소식을 접하기도 그로부터이
다. 보령 동지라 불리는 김정제는 성주걸의 경성제대 선배이다.
"서울시경의 모략 중상으로 처리된다문 쉽게 풀려나올 수두 있겠지유."
팔짱을 끼고 출입구 벽에 기대어 선 이느티가 마란다.
"벌써 세 번짼데, 이번이야말로 명백한 물증이 잡혔으니 아무래두 힘들
것 같아요." 성주걸의 목소리는 계속 침울하다.
김정제는 현 치안국 경무과장으로 경찰 요직의 경무관이다. 그는 서울시
당 지도부 간부요 중앙위원이기도 하다. 충남 보령출신으로 광주고보를 거
쳐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와 일본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총독부 관ㄹ
리로 일정 말기 경기도 파주와 양주에서 군수를 지냈다. 해방 후 동대문경
찰서장에 취임햇으나 '신탁 통치 반대 사건'으로 미 군정청으로부터 권고
사직을 당했다. 정부가 수립되자 다시 발탁되어 치안국 보안과장으로 출
발, 다섯 달 뒤 경무과장으로 전임되었다. 그때 그는 동경제대 출신으로
남로당에 가담해 있던 한규학으로부터 '법학동명'과 '과학자동명'에 가입
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경성제대 동창이며 변호사인 이종갑의 권유로 남로
당에 비밀리 입당했다. 그가 처음 당국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 동기는 작
년 8월 '정치정보' 유출 건 때문이다. 정치정보는 치안국에서 날마다 행하
는 정치 동향에 관한 극비 서류로, 대통령,부통령, 각부 장,차관, 치안국
국,과장들에게만 배포되며 외부 유출을 금지하고, 언제나 반납할 수 있어
야 했다. 그런데 서울시경측이 개성 부근 삼팔선ㅇ서 월북하려는 첩자를
검거했는데, 그가 정치정보에 실렸던 내용을 그대로 베껴낸 보고서를 갖고
있었다. 결국 서울시경 의뢰로 정치정보 배부처를 모두 조사하고 반납토록
통보했으나 김정제 경무관만 몇 부를 반납하지 못해 추궁을 당하게 되었
다. 얼마 전 자기 집에서 승용차에 불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서류를
차에 놓고 내렸다고 그가 변명했다. 당시 그의 승용차는 실제 화재사고가
있었으므로 그 유실 건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즈음 충복 음성군의
한 중학교에 민주학생동맹 조직이 발각되어 그 학교 교장과 음성경찰서장
이 체포되었다. 음성군 현지 조사로는 치안국 김정제 아래 경무과에 근무
하는 전규철,김욱면 총경 둘이 음성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서울시경으로
보고되었다. 영등포경찰서는 곧 형사대를 급파하여 전,김 두 총경을 구금
했다. 사건이 치안국 간부와 연결된 중대성 때문에 서울시경 수사지도과장
이하영이 직접 그들을 심문한 결과 그 배후에 김정제 경무관이 있음을 밝
혀냈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과 행정부에 영향력이 큰 김정제를 함부로 다
룰 수 없으뿐더러 서울시경 대공 수사업무를 사사건건 못마땅해하던 치안
국인지라 서울시경측은, "김정제 경무관이 좌익인 것 같으니 치안국에서
자체 조사를 해보라"는 조사 의뢰서를 치안국에 보냈다. 치안국과 서울시
경은 김삼룡의 체포 과정에서 보여주었듯, 미 군정 시절부터 서로 알력이
심했으므로 서울시경은 치안국의 자체 조사 의뢰에 그치지 않고 김정제 경
무관의 내사를 별도로 진행하여 미행꾼을 붙였다. 그 결과 김정제가 각 도
에서 보고로 올라오는 공비 토벌 상황이 실린 '치안일보'와 국회에 관한
기록을 남로당 연락원에게 제공하는 현장을 급습했다. 김정제는 일주일 전
인 5월 2일 동대문경찰서에 수감되었다. 그 소식을 성주걸이 접한 게 그로
부터 사흘 뒤였고, 그날 밤 조민세가 성주걸을 만났던 것이다.
모두 입을 다물어 밀실 안 공기가 더욱 무겁자, 박태길이 담배를 피워
물더니 남포등을 보며 연기를 내뿜는다. 답답한 분위기를 이느티가 끼뜨린
다.
"오늘 재동소학교에서 열린 합동 선거 연설장에 갔었는디, 민심이 국민
당을 떠난 게 분명해유. 국민당 후보가 연설하니깐 사람들이 모두 우 하며
야유를 멕입디다. 그게 바로 이승만 엿 멕이는 거지 뭐여."
"윤 후보는 만났더랬소?" 성주걸이 묻는다. 윤 후보란 서대문 을구에서
출마한, 서울시당이 은밀히 지원하는 무소속 후보다.
"자금이 달려 힘드는 눈치가 역력해유. 운동원 점심 멕이는 것두 못 대
쩔쩔 매는디..."
"객쩍은 소리들 마 치우소." 박태길 옆 의자에 다리 포개어 앉은 밀실에
서 가장 연장자인 중늙은이가 이느티의 말을 막는다. 현 내무부 이재국에
촉탁으로 위장 취업해 있는 특수부 요원 한봉우다. 경제통인 그는 정부 예
산 관계 주요 기밀을 빼내는 데 수완을 보여 서울시당 지도부에서 발언권
이 센 편이다. 날카로운 눈매에 걸맞게 성질이 급하지만 일에는 치밀하다.
"닷새 만에 얼굴 맞대도 그저 죽는 소리뿐이니 답답구려. 벌써 열흘 아닌
교. 안죽까지 북의 대책 지령이 없다니 우리를 참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
로 내삐리둘 참인가. 이런 판국에 조선(조국전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으
며, 우린 어떻게 살아남으라 카는지 모르겠소. 내 이런 사기 꺾이는 말은
하고 싶지 않소만 현 실정이 그렇잖나 말이오." 한봉우리가 여러 사람을
둘러본다.
"에그, 저 입. 제발 고정하세요." 이느티 옆에 선 공현숙이 한봉우의 말
버릇을 알아 핀잔을 놓는다.
"자력 갱생밖에 없어요. 왜놈 세상 때는 어디 쉬웠습니까. 그래도 끝내
새벽은 찾아왔어요. 이 혁명 사업이란 게 언제나 가장 난관 많은 사업이니
합심해서 견뎌내야지." 성주걸의 신중한 말이다.
"그래유, 모두들 세포루 살아남기두 힘든 마당이구보니 조직 활성화에
당장은 난관이 많겠지만서두 돌다리두 두드려가며 건너다보면 볕들 날이
올 것이유." 참견하기 좋아 하는 이느티의 말이다.
"그쪽은 잘되고 있지요?" 옷보따리에 팔짱 끼고 앉은 채 한마디도 말이
없는 곽종결을 보고 조민세가 묻는다.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곽종결은 지도부 요원이 아닌, 서울시당 교양과 지도원으로 영등포 공장
지대에서 야간 노동학교 교무를 맡고 있다.
"조동지, 서울시당은 그렇다 치고 지도부는 어떻게 수습하면 좋겠소? 오
늘 그 소견이나 한 번 들어봅시다." 박태길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조민세
를 갈마본다.
"현 사태에 저라고 묘책이 있겠습니까. 서울시당부터 정상 궤도에 올리
는 일이 시급합니다."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르며 조민세가 대답한다.
"그럼 지도부 쪽은 난파 상태로 그냥 흘러가게 버려둬도 괜찮다는 말씀
이구려?" 박태길이 다잡아 따진다.
조민세는 입을 다물고 있다. 마치 선생을 곤경에 빠뜨리겠다고 난처한
질문만 골라 던지는 문제 학생의 심통을 보는 듯해서 그는 대답할 필오가
없다고 생각한다. 질문의 의도가 뻔한 만큼 누구도 그 대안을 내놓기 힘들
다.
"박선생 그만두소. 그쪽은 어쨋든지 지도부 쪽과 구속자 가족들 입막음
이나 다독거려놓고 봐야지." 한봉우가 말한다.
성주걸과 곽종결이 못마땅해하는 눈으로 발태길을 보고 있음을 조민세가
알아본다. 둘은 김용팔로부터 조민세를 적극 도우라는 개별 지시를 받았
고, 조민세 또한 둘을 지도부 재건에 따른 구수회의 상대로서 점찍고 있
따. 오늘밤 영등포에서 노동부 간사 민영만과 연락부책 홍락을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다.
"박선생이 말씀하셨으니 저도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조민세가 좌중을
둘러본다. "지도부의 현재 상황은 제가 보기에도 성동지와 한선생 견해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마저 언제 체포될는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니
깐요. 그러나 사태가 생각만큼 절망적이진 않습니다. 절망적 사태란, 안
된다 어렵다는 회의론의 청산 시점에서 다시 재기할 도약 단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뒤에는 인민 대중이 이ㅆㅂ니다. 인민 대중을 보다
진보적으로 각성시켜 혁명 대열에 앞세울 전략꾼의 보다 힘찬 투쟁이 필요
합니다. 내일 반동의 총살형을 당할망정 오늘 내 뒤를 이을 전사 둘을 양
성하고, 그 전사가 죽더라도 뒤를이을 전사 넷을 남겨야 한다. 이런 세포
확장 내지 생명체 계승 논리에 지도원이 앞장서서 충성해야 한다는 겁니
다. 십년 안에 민족 해방이 되지 않더라도, 아니, 백년동안 어떤 핍박이
따르더라도 우리는 그 깅에 순명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고 지금까
지는 그렇게 실천해왔습니다." 조민세는 말을 끊는다. 자기 말을 비웃는
외침이 박태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 마음 한 귀퉁이에서 터져 나
온다. 그렇다면 너는 왜 가족을 서울로 불러올렸느냐, 너야말로 소브르주
아적 가족주의 작태를 스스로 연출하고 있지 않느냐는 빈정거림이다. 그의
눈앞에 가족의 모습이 스치고 그들은 눈물 글썽이며, 우리를 버려서 이룰
일이 그렇게 중차대하다면 왜 우리르 서울까지 불러올렸느냐고 힐책한다.
"생각은 가상하오. 조동지 달성을 두고 보리다." 박태길도 그쯤에서 입
을 닫는다.
"박선생이 협조해주신다면 지도부 재조직은 보다 빨리 본궤도에 오를 수
있습니다." 눈앞을 가리는 가족 얼굴 탓인지 조민세는 마음과 반대되는 말
을 뱉는다.
그때, 창밖 낙숫물 소리를 가르고 대문 쪽 창문에 달려 있는 요령이 울
린다.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 밀실 입구를 본다. 박태길은 피우던 담배를
구둣발로 뭉갠다.
"괜찮아요. 모두 시장하실 것 같아 뭘 좀 준비하라 일렀는데 그게 다된
모양이에요." 공현숙이 말하곤 밖으로 나간다. 잠시 뒤 그네가 음식과 술
주전자 얹힌 큰 소반을 들고 밀실로 들어온다. 빈대떡, 부치개, 술국, 두
되들이 낮주 주전자다.
"그 참 먹음직스럽순. 공여사가 아니면 우리 앉아서 굶어 죽겠어." 한봉
우가 조금 전 투정을 잊은 듯 앉은 의자를 실탁으로 내놓고 소반 앞에 엉
덩이 들고 쪼그려앉는다. "한잔씩 들고 이야기하지 뭘. 금강산도 식후경이
라." 한봉우가 젓가락을 집더니 빈대떡 한 점을 뜯어 종지 간장에 적셔 먹
는다. 그는 입 안의 것을 우물거리며 박태길을 보고 말한다. "박동지, 오
시오. 배 든든해야 묘책도 떠오르지러."
"좀 드세요. 그렇게 앉아 계시지 말구." 공현숙이 조민세에게 말한다.
"그러문 저두 좀 거들게요." 이느티가 한봉우 옆에 다가가 빈 잔에 술을
친다.
저녁밥은 모두 굶었고 개중에는 점심을 굶은 사람도 있기에 하나둘 소반
주위로 모인다. 술을 못하는 곽종결을 제외하고 모두 탁주를 한 잔씩 돌리
고 안주를 먹는다. 입구에 서 있는 공현숙과 옷꾸러미에 앉은 조민세만이
동지들의 먹성을 지켜본다.
"조선생도 지시지유. 빈대떡을 여러장 부쳐왔구먼유." 이느티가 돌아보
며 조민세에게 말한다.
"식욕이 없어요."
"게릴라 출신은 원래 위장 훈련이 잘 되어 있으니깐. 이삼일 굶어도 배
낭 오륙시비킬로를 지고 하루 이백 리 길 걷는다잖아." 박태길이 소반에
머리박아 술국을 퍼먹으며 말한다.
"그래요, 박선생 말 맞습니다. 물과 소금만 있으면 열흘 굶어도 죽지 않
아요." 조민세는 박태길을 내려다본다. 저런 기회주의자가 중앙위원이란
직함을 갖고 있으니 서울시당 지도부가 이꼴이 아니냐는 분개심으로 그의
눈이 세모지낟.
"내 말이 너무 심했나. 나도 뭐 빨치산 공과를 낮게 보는 사람은 아니
오. 사심 품지 말고 조동지도 드시오." 박태길이 조민세를 돌아본다.
"보자 하니 박선생도 너무합니다. 조부장도 갑자기 무거운 짐을 맡아 고
심이 많은데 핀잔만 주면 어떡해요. 범새끼 벼랑에 떨어뜨리는 훈련도 아
니구."공현숙이 참견한다.
"나도 생각이 있어 한 말이오." 박태길은, 감히 서울 바닥이 어디라고
신차 ㅁ주제에 너무 휘젓지 않냐는 말은 입안으로 삼킨다.
조민세는 걸신스러운 식욕을 보고도 위장에 아무런 감각이 없다. 서울로
돌아온 뒤부터 위가 무력증에 빠져 하루를 굶어 공복일 때도 속이 쓰리지
않다. 눈에 띄는 것이 흔하게 널린 음식점이라 돈만 있으면 아무때나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끼니때를 자주 놓치고, 한두 끼니 걸러도 냉수 한
사발만 마시면 배가 그득해지곤 해ㅆ. 그는 지금, 서울시당 조직을 정상궤
도에 올려놓겠다고 밝힌 자기 말이 열기로 가슴 채워옴을 식욕같은 포만ㄴ
감으로 느낀다. 사실 그렇다. 그는 애당초 성루시당의 운명이 북의 중앙당
입김 이하에 달렸다고 믿지 않았고, 그 후원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어
차피 그쪽은 삼팔선 북쪽에 있다. 전면 전쟁이 붙거나 남북 왕래가 자유로
운 평화 협정 조인 전까지 남로당이 남반부에서 자력으로 버티어나갈 수밖
에 없는 숙명을 지닌 셈이다. 가시밭길을 뚫고 나가는 데 무수한 장애요인
이 있게 마련이다. 남반부 군경, 우익 단체들 거기에 민간인까지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자체 조직 안에도 첩자와 변절자가 있다. 설령 당 간부로
박태길과 같은 비협조자가 있더라도 그는 첩첩한 장애 요인종에 하나일 뿐
이다. 그러므로 크고 넓은 시야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지, 투쟁 역
량과 시간을 작은 일에 소모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서울시당으로 뛰어든
지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안진부를 비롯하여 성주걸, 곽종결, 민영
만, 홍락, 공현숙, 그외 여러 세포의 지지와 협조를 받고 있으며, 무엇보
다 김용팔의 지령으로 인계받은 이느티 조 호위대가 뒤를 받쳐주고 있다.
작은 일로 성깔을 세운다면 자신도 자중지란에 말려들 소지가 있어 분기를
삼가야겠지만, 박태길이 앞으로도 자기 사업을 비방하며 해당 행위를 부채
질한다면 호위대 힘을 빌려 그를 지도부에서 축출하는 일도 아주 어렵지는
않다.
그날 밤, 조민세는 성주걸, 곽종결, 공현숙과 함께 한강 다리를 넘어 당
산동의 노동부 간사 민영만을 찾는다. 민영만 판자집에는 연락과 부책 홍
락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민영만은 조선전업 노동조합 실행위원이므
로 그 조직의 전향적 동향을 여럿에게 설명한다. 간단한 토론을 마치자,
다섯 명은 밤새워 남로당 서울시당 소속 당원과 비당원의 성분을 낱낱이
점검하며 새로이 선 연결 조직부터 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