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 무릎 꿇은 금륜법왕 ***
황용의 가슴은 놀라서 뛰었다. 그녀는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때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곰
곰이 생각했다.
(당황하지 말자. 내가 이막수와 숲을 나가 실력을 겨룬 것이 바로 조
금 전이니 누군가 양아를 안아 갔다고 해도 반드시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용은 숲속에서 제일 높은 나무에 기어올라가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양양성 밖은 평탄한 평원으로 족히 10여 리를 볼 수 있었는데, 의심이
나는 어떠한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는 몽고의 대군이 물러간 직후
라 길가에 행인도 자취를 감추어 만약 누가 말을 타고 달렸다면 비록
멀리 떨어졌어도 반드시 보일 것이었다. 황용은 다시 생각했다.
(멀리 가지 못했다면 반드시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그녀는 등나무 가시 울타리 부근에 무슨 발자국이 남아 있는지 유심
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무엇을 끌고 간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무슨
야수가 달려들어 아기를 물고 갔다고는 볼 수 없었다.
(이 등나무 가시 울타리는 구궁팔괘의 방위에 따라서 펼쳤다. 그것은
우리 아버님이 스스로 만드신 것으로, 세상에 도화도의 제자를 제외하고
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비록 금륜법왕이 뛰어난 재주가 있지만 이 가
시 울타리는 마음대로 들어오고 나갈 수 없다. 설마 아버님이 오셨을까?
......아아, 낭패구나!)
갑자기 그녀는 수개월 전에 금륜법왕과 만나서 황급한 가운데 난석진
을 펼쳐 저항했는데 그때 양과가 와서 구해 준 일이 생각났다. 일찌기
진법의 요체(要體)를 그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양과의 총명이 비할 데 없
어서 하나를 가르치면 세 개를 깨우치니 비록 이 기문지술(寄門之術)에
정통하지는 못해도 이 가시 울타리는 황망한 중에 펼친 것으로 그 약점
을 간파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황용은 생각이 양과에게 미치자 머
리가 어지러워지면서 더욱더 걱정이 되었다.
(부아가 그의 한 팔을 베었으니 그와 우리 곽씨 집안은 원한이 더욱
굳어졌다. 양아가 그놈의 손에 들어갔으니 그 목숨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놈이 비록 손을 써서 헤치지는 않는다고 해도 양아를 황야
에 버린다면 이 아이의 목숨을 어찌 보존하겠는가?)
황용은 아기가 태어난 지 며칠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처럼 많은 재난
을 겪는 것을 생각하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록 그녀가 여러 번 변고를 겪었고 재주가 뛰어나다고 하지만 자식
때문에 가슴을 태우는 평범한 여자가 어찌 아니겠는가? 잠시 침묵이 흐
른 뒤 그녀는 눈물을 닦고 양과의 길을 쫓아 나섰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부근에서는 한 발자국의 흔적도 찾을 길이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그가 비록 경공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어찌 이 진흙바
닥에 희미한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설마 그가 공중으
로 날아간 것은 아니겠지?)
그녀의 이러한 추측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곽양은 확실히 양과가 안
고 갔다. 그가 가시 울타리를 출입한 것은 분명히 공중에서 날아오고 날
아간 것이었다.
그날 저녁 양과는 창문 밖에서 황용이 곽정의 혈도를 누르고 딸을 내
보내는 것을 보고 그 길로 성을 나와 멀리서 그들을 따라가며 이런 생
각을 했다.
(곽백모, 당신의 딸이 내 팔을 잘랐는데 당신의 남편이 딸의 팔을 베
지 못했으면 내가 가서 베겠소. 영원히 당신의 딸의 두 팔을 보존하고
싶겠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오.)
황용과 곽부는 서로 이별해야 하는 슬픔 때문에 뒤에 누가 따라오는
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후 그녀가 조그만 마을에서 이막수와 만
나고 두 사람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 등을 양과는 숲 밖에서 지켜 보
았다. 그들이 숲을 나서자 양과는 높은 나무에 뛰어 올라가 긴 덩굴을
꺾어 함께 이어서는 한 끝은 나무에 붙잡아 매고 다른 한 끝을 잡고서
허공에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두 발로 곽양을 허리를 끼었다. 그리고
왼손에 힘을 주어 당기자 몸은 이미 울타리 밖으로 떨어졌다. 왕용과 이
막수가 계속해서 동작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양과는 나뭇가지를 타고서
숲을 빠져나갔다. 땅에 내려서는 더욱 빨리 달려서 순식간에 마을로 돌
아왔다. 곽부가 길거리에 서서는 소홍마를 끌고 사방을 쳐다보며 엄마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는 두 발을 모아 몸을 달려서 홍마의
등을 올라탔다.
곽부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자 말 위에 양과가 타고 있는 것
을 알고는 크게 당황해 <아!> 하는 소리를 지르며 급히 칼을 뽑아 들었
다. 소용녀의 숙녀검이 비록 매우 예리했지만 곽부가 손에 쥐고 있는 것
은 평소에 사용하던 검이었다.
양과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겁에 질린 눈빛을 보았다. 이때 만약 그
녀의 오른팔을 베려고 했다면 실로 손바닥을 뒤집기보다 쉬었지만 일이
워낙 다급해서 손을 쓰지 못했다. 양과는 흥, 하는 소리를 내며 오른쪽
팔 소매를 휘둘러 곽부의 장검을 감싸서 빼앗아 버렸다. 장검은 그녀의
손을 빠져나와서 벽에 부딪치고 땅에 떨어졌다. 양과는 왼손으로 말고삐
를 휘어잡고서 두 발로 말을 찼다. 소홍마는 앞으로 치달리며 먼지를 일
으켰다. 곽부는 놀라서 손발이 잠시 마비되었다. 잠시 후 천천히 벽 밑
에 가서 장검을 집어들었다.칼은 벽에 너무 심하게 부딪쳐서 이미 굽은
자처럼 휘어져 있었다.
부드러운 물건으로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원래 고묘파 무공의 정
수로 이막수가 사용하는 불진, 소용녀의 주대(綢帶) 등이 이러한 공부였
다. 양과는 이때 내력이 강하여 팔 소매를 한번 휘둘러도 실로 그 충격
은 굳센 칼이나 봉이 내리치는 것 같은 것이었다.
양과는 곽양을 안고서 한혈보마를 타고 북쪽으로 질주해 잠시 후 양
양을 지나 수십 리를 다시 달렸다. 이 때문에 황용이 비록 높은 나무 꼭
대기에 올라갔어도 결코 그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없었다.
양과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길 옆에 있는 나무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
나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 품안의 곽양을 보았다. 그녀는
귀여운 모습으로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곽백모의 이 계집애를 나는 결코 그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내 팔을
자른 보복으로 삼겠다. 그러면 그들의 고통과 후회가 나보다 더 심하겠
지.)
얼마를 더 달리자 양과는 생각이 바뀌었다.
(양과, 아 양과야, 너는 풍류 남아로서 곽부의 미모를 보고는 골수에
사무친 그 큰 원한을 포기했다는 말이냐? 만약 너의 팔을 자른 사람이
남자였다면 네가 오늘처럼 그를 용서했을 것인가?)
한참을 생각하고는 단지 고개를 끄덕이며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는 자기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자신도 조정할 수 없었으며 똑똑히 알
지도 못했다.
2백여 리를 달리자 길가에 차츰 인가가 나타났다. 양과는 농가에서 양
이나 말의 젖을 얻어먹이면서 고묘로 돌아가고 있었다. 며칠 만에 그는
결국 종남산 아래에 이르렀다.
먼지처럼 옛 일이 생각나자 감개가 무량했다. 어느덧 길을 따라서 고
묘 앞에 이르렀다. <활사인묘(活死人墓)라 씌어진 큰 비석이 예전과 다
름없이 우뚝 솟아 있었다. 묘의 문은 이막수가 공격해 왔을 때 닫혀서
만약 묘에 들어가려면 땅 속에 흐르는 지하수를 뚫고 밀도(密道)를 통해
서 들어가야만 했다. 이때 그의 내공에 의한다면 밀도를 뚫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으나 곽양을 그 동안 어디에다 놓을지 몰라서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이 아기를 데리고 들어간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소용녀가 묘
가운데 있을 텐데 곽양을 데리고 들어가서 그녀가 이 아기를 본다면 어
찌 가만히 두겠는가? 그래서 양과는 호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서는 잘
씹어 곽양에게 몇번을 먹였다. 그는 고묘 옆에서 동굴을 찾아 곽양을 동
굴 안에 뉘고는 가시나무를 뽑아서 동굴 앞에 쌓았다. 고묘에 들어가서
소용녀를 만나든 못 만나든 간에 즉시 다시 나와서 이 아기를 데리고
가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가시를 쌓아 놓고 고묘로 들어가려는데 돌연 먼 곳에서 은은하게 칼
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은 바로 중
양궁이 있는 것이었다. 잠시 주춤거리는 순간 돌연 은륜이 소리를 내면
서 하늘 나는 게 보였다. 이것은 바로 금륜법왕의 무기였다. 그는 호기
심이 생겨 소리를 쫓아서 중양궁 뒤편에 있는 옥허동에 이르렀다. 바로
이때 소용녀는 전진오자의 한 동작인 칠성취회(七星聚會)와 금륜법왕의
공격을 앞뒤로 받아서 몸에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양과가 만약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했다면 이러한 재앙에서 그녀를 능
히 구했을 것이다. 천도(天道)는 예측할 수 없고 세상만사는 말하기 어
려우니 어찌 모든 일이 사람의 뜻대로 되겠는가?온갖 길흉화복(吉凶禍
福)이 종종 순간에 달려 있으니!
전진오자는 양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서 일이 더 복잡하게 진행되리
라고 생각했다. 구처기가 큰소리로 외쳤다.
[ 우리 중양궁은 수도를 하는 곳인데 오는 여러분이 오셔서 소란을
피우니 도대체 무슨 까닭이오?]
왕처일은 얼굴 가득히 노기를 띠었다.
[용아가씨, 당신의 고묘파와 우리의 전진파가 비록 친분이 있었지만
이미 끊어진 지 오래인데 어찌 서역의 호인(胡人)과 사악한 무리들과 한
패가 되어 우리의 제자들을 해치려 하는가?]
소용녀는 이미 중상을 입어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려고 그들과
말다툼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전진교의 많은 제자들은 그녀가 칼로 윤지
평을 찌르고 다시 조지경에게 상처를 주자 윤파, 조파 가릴 것 없이 모
두 그녀를 적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소란 중에 지금까지의 진상을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양과는 왼손을 뻗어서 가볍게 소용녀의 허리를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용아가씨, 나와 함께 고묘로 돌아갑시다. 다른 사람들은 상대하지 마
세요!]
[팔은 아프지 않느냐?]
양과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좋아졌어요.]
[네 몸에 퍼져 있는 정화의 독이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어?]
[몇 번 발작을 했지만 두려울 게 없어요.]
조지경은 소용녀의 칼에 상처를 입고 난 후, 계속 뒤에 숨어서 감히
나서지 못했다. 전진오자가 나서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장(師長)들이 조
사를 하면 자신의 장교(掌敎)자리가 허공에 날아갈 뿐 아니라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본래 성질이 급하고 도량이 적었을 뿐 결
코 간사하고 사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3대 제자 가운데 자신의 무
공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는데 장교의 자리가 윤지평에게 돌아가자 분한
마음으로 이런 일을 저질러 마침내는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이때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결코 조용하게 끝날 것 같지
않자, 더욱 소란을 피워서 다섯 분의 사장들이 시비를 가리기 어렵게 만
들고, 이 기회를 이용해 금륜법왕과 몽고 무사의 힘을 빌어서 전진오자
를 제거하면 한 번 고생으로 평생 동안 편안함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양과가 오른팔을 잃고 왼팔로 소용녀를 부축하면
거의 속수무책인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여겨, 평생 가장 증오했던
사문을 배반한 이 제자를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
다. 그는 옆에 있던 녹청독에게 눈짓을 하고 크게 소리쳤다.
[스승을 배반한 양과 이놈아! 두 분 조사님께서 너에게 말씀하시는데
너는 어찌 무릎을 끓고 절을 하지 않고 오만하게 구느냐?]
고개를 돌린 양과의 두 눈에 원망의 기운이 가득했다.
(용아가씨가 너희들 전진교의 도사놈에게 상처를 입었지만 오늘은 잠
시 넘어가마. 그러나 뒤에 다시 와서 너희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
다.)
양과는 많은 도사들을 원망스럽게 한번 쳐다본 뒤, 소용녀를 부축해
자리를 옮겼다. 조지경이 말했다.
[받아라!]
하며 녹청독과 함께 칼을 뽑아 들고서 양과의 오른쪽 옆구리를 찌르려
했다. 조지경은 조금 전 칼에 찔렸으나 상처는 깊지 않았다. 양과의 끊
어진 팔을 공격해서 그가 반격할 수 없는 것을 노렸다. 칼은 그가 평생
수련한 힘을 써서 찔렀으므로 바람소리가 났다.
구처기는 양과가 제멋대로 굴고 스승도 모르는 체하자 몹시 불만스러
웠으나 곽정의 부탁과 그의 부친 양강과의 사도(師徒)의 정이 생각나서
말했다.
[지경아, 칼을 멈추어라!]
한편에 있던 마광좌가 큰소리로 지껄였다.
[이놈아! 부끄럽지도 않느냐? 부러진 팔을 공격하다니......!]
그는 원래 양과와 사이가 좋아 그가 위험에 직면함을 보고는 달려들
어 구해 주려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고함만 지를 뿐이었다.
돌연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녹청독의 커다란 몸집이 으악, 하는 소리
를 내면서 쿵, 하고 니마성의 몸에 부딪혔다. 니마성의 무공으로 보면
녹청독의 이 뜻밖의 충돌에 결코 몸을 부닥치지 않았겠지만 이미 그의
두 다리가 없는 관계로 그의 몸이 자기에게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손
을 내밀어 막지 못하고 또 피할 수도 없어서 하늘을 쳐다보며 땅에 쓰
러졌다. 니마성은 등이 땅에 닿기가 바쁘게 지팡이로 녹청독의 등을 후
려치자 그는 곧 기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한편 양과는 이미 오른발을 내밀어서 조지경의 장검을 밟았다. 조지경
은 힘을 다해서 칼을 빼려고 얼굴이 벌개졌지만 장검은 조금도 움직이
지 않았다.
원래 쌍검이 그에게 날아들자 양과는 오른쪽 빈 소매를 재빨리 휘둘
러 단번에 녹청독을 쓰러뜨렸다. 조지경은 빈 소매를 휘두르는 힘이 대
단함을 보고서 놀라 급히 천근추(千斤墜)를 사용해 자신의 몸을 굳건하
게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동작으로 장검이 자연스레 아래로 처지자 양
과는 발을 들어서 조지경의 칼을 발로 밟은 것이다. 그는 급류(急流)가
운데서 검술을 연마했는데, 물의 힘이 비록 강하다 해도 결코 그를 쓰러
뜨릴 수 없었다. 조지경은 이때 자신의 칼이 마치 바위틈에 끼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온힘을 다해 칼을 잡아당겼으나 꼼짝할 리가 없었
다. 양과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도장, 그때 대승관 곽대협의 면전에서 당신은 분명히 나의 사부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오늘 어찌 다시 사부 대접을 받으려고 하시오? 네,
좋습니다. 내가 과거에 당신을 사부라고 불렀던 인연으로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요.]
하는 말과 함께 오른발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발밑의 힘은 돌연 종
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조지경은 이때 온힘을 다해서 뒤로 당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이 허
전해지자 칼자루가 자기의 가슴에 강하게 충돌했다. 이때 만약 상대방이
힘을 가해서 쳤다면 어찌할 도리 없이 단지 내력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
었다. 조지경은 가슴에 통증이 심해지며 피고 치솟자 눈앞이 어두워져
하늘을 쳐다보며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왕처일과 유처현은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고 양과의 좌우를 공격했다.
돌연 한 사람의 그림자가 비스듬히 날아오더니 탕, 하며 두 자루의 검을
막았다. 이 사람은 바로 니마성이었다. 그는 녹청독에게 당해 넘어져 그
를 쓰러뜨렸지만 아직 분함이 풀리지 않았다. 원인을 살펴보면 모두 다
양과 때문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뛰어들어 왼손의 지팡이로 왕
과 유, 두 도사의 장검을 막고 오른손 지팡이로 양과와 소용녀의 정수리
를 내리쳤다.
양과는 니마성의 무공이 대단해서 단지 빈 소매를 휘둘러서는 그의
강함과 부드러움이 섞여 있는 이 일격을 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이때 소용녀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양과에게 몸을 의지하고 비
스듬히 서 있었다. 양과는 오른쪽 빈 소매를 휘둘러 소용녀의 가는 허리
를 감아 자기의 앞가슴 오른쪽에 기대게 하고 왼손으로 등뒤에 있는 현
철중검(玄鐵重劍)을 뽑아들었다.
찡, 하는 둔탁한 소리에 칼을 쥐었던 니마성의 손이 풀어지며 무엇인
가 허공 중에 떴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지팡이였다. 이 10여근이나 되
는 쇠지팡이가 하늘 높이 10여 장을 날았다가는 옥허동산 아래로 떨어
졌다.
양과는 중검이 처음으로 적을 맞이해서 이처럼 위력을 발휘하자 속으
로 매우 놀랐다.
니마성은 몸의 반쪽이 마비되었고 오른쪽 팔은 떨려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비할 데 없이 용맹해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왼손의
쇠지팡이를 짚고서 몇장 뛰어올라서 양과를 내리쳤다. 양과는 자기의 칼
의 강력(剛力)은 이미 시험해 보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유력(柔力)을 시
험해 보고자 했다. 중검의 칼끝이 떨리더니 쇠지팡이에 달라붙었다. 이
때 내력을 토해 내기만 하면 능히 니마성을 수장 밖으로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만약 암벽을 향해서 그를 날려 버린다면 반드시 그의 뼈와 근육
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는 소용녀가 이처럼 중상을 입은 것을 보고
는 화가 치밀어 이번 동작은 결코 사정을 봐 주리 않으려고 했다. 막 팔
에다 내력을 토하려고 할 때 공중에 있는 니마성의 두 다리가 끊어진
것을 보고는 자기의 없어진 오른팔이 불현듯 생각나서 오히려 아래로
눌렀다. 쇠자팡이는 아래로 떨어져서 먼지를 일으키며 땅 속에 깊이 꽂
혔다.
니마성은 쇠지팡이를 잡고 경공을 써서 땅에서 뽑으려 했지만 양과의
중검이 계속 누르자 마치 혈도를 눌린 것처럼 조금도 힘을 쓸 수가 없
었다.
[오늘 당신의 목숨만은 구해 줄 것이니 빨리 천축으로 돌아가시오.]
니마성은 사색이 된 얼굴로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상자와 윤극서는 이 뜻밖의 일을 보고서 1개월 만에 양과의 공력이
크게 진보한 것을 알았다. 또 니마성이 두 다리를 잃은 후 아무런 쓸모
가 없게 되었음을 보았다. 윤극서는 몇걸음 다가서서 쇠지팡이를 땅에서
뽑아 니마성의 손에 넘겨 주었다. 니마성은 이것을 건네 받아 땅을 짚고
서 멀리 뛰려고 하였으나 마비된 팔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쿠당탕, 하며
쓰러졌다.
소상자는 원래 다른 사람이 나쁘게 되는 것을 보면 적이건 친구이건
모두 기뻐하는 성미였다.
(저 천축의 난장이가 잘난 체하며 나에게 불복하더니 이것으로 끝장
이구나. 지금 천하 고수가 모두 모였으니 함께 달려들어 양과를 잡는다
면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양과, 이놈아! 넌 여러 번 왕자님의 큰일을 망쳐 놓았겠다! 빨리 덤
벼라.]
양과는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용아가씨의 중상을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눈앞에 강적이
많으니 다 죽일 수도 없고 빠져나가기도 곤란하구나.)
낮은 소리고 소용녀에게 물었다.
[상처는 어떠세요?]
[나를 안아 줘. 나......, 나는 오직......]
양과는 고개를 들어서 소상자를 쳐다보았다.
[덤벼라!]
현철검은 그의 몸에서 약 2척 정도 떨어져서 허리를 겨냥한 체 조용
히 있었다. 소상자는 이 검이 투박하고 검으며 칼날이 매우 무딘 것을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의 검법은 본래 신속하고 변화가 무쌍해 대단하다. 그러나 이러
한 보잘것없는 칼을 들고는 검법에 반드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어디서 이 같은 통화봉(通火棒)을 주워 왔느냐?]
하며 굳센 곡상봉으로 중검을 향하여 공격해들어왔다. 양과는 검을 쥐
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는 내력을 칼에 집중시켰다. 둔탁한 소리와 함
께 칼과 봉이 교차하더니 곡상봉은 즉시 7,8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
졌다. 소상자는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양과는 현철검을 뻗어서 왼쪽
으로 오른쪽으로 한 번씩 휘두르자 소상자의 두팔이 끊어졌다.
양과는 계속해서 녹청독, 조지경, 니마성 세 사람을 물리치자 옥허동
앞에 있던 뭇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번에 또한 그가 몸을 조금도 움직
이지 않고 단지 내력으로 소상자의 무기를 박살내자 사람들은 그 이유
를 자세히 몰라 서로 쳐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의 무공은 정말로 사문(邪門)이구나!)
윤극서는 서장의 대상인으로 보물의 감별에 능했는데 양과가 니마성
의 쇠지팡이를 날려 버리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이같이 위력이 있는 검은 보통의 것이 아니다. 새까만 칼날 가운데서
은은히 붉은 빛이 나오니 현철로 만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현철은 천하의 귀한 것으로 한 냥도 구하기가 힘들어서 보통 칼이나 창
가운데 단지 반 냥만 섞어도 천하에 다시 없는 무기가 된다. 그가 어디
서 이같이 많은 현철로 된 검을 찾았을까?만약 이 칼 전체가 모두 현철
로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사오십 근은 될텐데 어찌 이처럼 민첩하단 말
인가?)
사실 이 검의 무게는 64근으로, 만약 이처럼 무겁지 않으면 양과의 내
력이 비록 강하다고 해도 결코 이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소
상자의 곡상봉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본 윤극서는 이 검이 신품(神品)임
을 알았다. 그는 사람됨이 원래 크게 악하지는 않았으나 어려서부터 보
석 장사를 해서 기이하고 값진 물건을 보기만 하면 호기심이 발동해서
동으로 사거나 빼앗거나 속이거나해서 그것을 얻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이때 양과의 중검을 보고 크게 욕심이 생겨 즉시 앞으로 나
서서 금룡편을 휘둘러 칼을 감았다.
양과는 윤극서와 절정곡에 같이 갔다 왔고, 또한 그가 항상 웃으면서
겸손해 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전혀 적대감을 품고 있지 않았었다. 자기
의 중검을 감은 금룡편의 손잡이에 진주, 금강석, 백옥 등 귀한 보석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서도 가만히 있었다.
[윤형, 당신과 나는 원래 아무런 감정도 없으니 빨리 금룡편을 풀어서
많은 보석들이 상하지 않게 하시지요.]
윤극서는 웃고 있었다.
[뭐라고?]
윤극서는 힘을 주어 뺏으려 했으나 양과는 꼿꼿이 서서 조금도 움직
이지 않았다.
이때 윤극서는 가까이 서서 이 검이 과연 현철로 만들었음을 똑똑히
보았다. 금강석은 천하에 가장 단단한 물건으로, 어떠한 단단한 물건과
부딪쳐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 것
이다 .그러나 금룡편의 손잡이에 박혀 있는 금강석이 현철검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조그만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이것을 본 윤극서는 오기도
생겼으나 상대방의 무공이 대단해서 만약 꾀로 그를 제압하지 못하면
그것을 뺏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양형의 공부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읍니다.]
공손하게 말하면서 왼쪽 손목을 뒤집자 돌연 싸늘한 빛이 번쩍 하면
서 왼손에 있던 비수가 소용녀의 앞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그는 이 동작으로 소용녀를 해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양과가
소용녀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위험에 빠지
면 반드시 그녀를 구하려 할 것이라 믿고, 이 틈을 이용해그의 보검을
뺏으려 했다. 양과가 이 광경을 보고는 과연 크게 놀랐다.
[검을 놓아라!]
하고 소리 지르며 윤극서는 온몸의 힘을 오른팔에 모아서 금룡편을 잡
아당겼다.
<검을 놓아라!> 하는 소리에 양과는 검을 놓고 말았다. 검은 길고 비
수는 짧아 중검은 세 사람의 가운데 위치해 비수가 소용녀에게 미치지
못하게 했다. 윤극서는 이 검이 매우 무거운 것을 알고 조심했지만 이처
럼 맹렬하게 자기를 향해서 날아와 피하지 못하기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즉시 내력을 써서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자 펑, 하는소리와
함께 몇걸음 뒤로 밀려나 동백나무에 기대서야 멈추었다. 입가에는 비록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얼굴이 노랗게 되어 기쁨보다 슬픔이 앞섰다.
잠시 만에 오장육부가 마치 뒤집힌 것 같아, 감히 기를 운행해 움직이지
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선 채 굳어 버린 것 같았다.
양과는 그에게 다가가서 현철검을 잡고 가볍게 떨치자 가벼운 소리가
나고 찬란한 빛이 번쩍이며 금은 보석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보석이 박
힌 금룡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것이었다.
[금륜법왕, 오늘 승부를 낼까요? 아니면 뒤로 미룰까요?]
금륜법왕은 그가 계속해서 니마성, 소상자, 윤극서 등 3대 고수를 모
두 한 동작으로 물리치자 이 소년이 어찌 이 같은 무공의 진보를 이루
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기가 앞으로 나선다면 결코 그들 세 사람처럼
되지는 앝겠지만 승리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때 각지의 영웅들이 모였는데 그에게 겁을 먹고 도망친다면 그 어찌 창
피하지 않겠는가?
(그의 한 팔이 없고 비록 왼팔이 매섭다고 해도 오른쪽에 반드시 약
점이 있을 것이니 내가 계속 그쪽을 공격해서 시간을 끄는 거다. 그는
소용녀의 상처를 염려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다급해질것이다.)
그는 옷을 단정하게 하고 금은동철연과 바퀴를 손에 들었다. 오늘의
일전은 목숨을 건 중요한 싸움이니 결코 실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
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양형제, 당신이 이같이 무서운 위력을 가진 신검을 구했으니 축하드
리오! 당신의 이 신기하고 무서운 무기를 제가 당하지 못할까 두렵구만
요.]
그는 이미 자기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고는 변명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자, 현철중검을 극구 칭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소년이 재수 좋게 이
러한 신품을 얻어서 자기를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소용녀는 양과의 품에 기대어 어렴풋이 금륜법왕이 무기를 들고 나오
는 것을 보고는 양과 혼자서 그를 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과아야, 내게 칼 한 자루만 쥐어 줘! 우리......, 우리......, 함께
......, 함께 옥녀소심검법으로 그를 제압하자.]
양과는 가슴이 찡해지며 속삭였다.
[아가씨, 안심하세요. 과아 혼자서 상대할 수가 있어요.]
소용녀는 몸을 왼쪽으로 옮겨서 양과를 대신해 앞으로 오는 공격을
가로막으려 했다. 양과는 다시 감격해서 기쁜 마음으로 소리 질렀다.
[아가씨, 우리 둘이 오늘 힘을 합쳐서 사악한 무리를 막으니 인생이
여기서 끝난다 해도 결코 여한이 없읍니다.]
현철검이 앞으로 향했다. 법왕은 감히 양과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몇 걸음 물러섰다. 곧 윙윙, 하는 소리에 연륜이 날아왔다. 양과는 칼을
들고 베려고 했으나 연륜은 그의 뒤를 돌아서 법왕에게 돌아가니 벨 수
가 없었다. 돌연 윙윙 슝슝,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금빛이 번쩍번
쩍 은빛이 반짝반짝 하면서 5개의 바퀴가 다른 방향에서 일제히 날아왔
다.
양과는 소용녀의 상처가 악화될까 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법왕이
5개의 바퀴를 한꺼번에 던져서 거짓 공격을 한 것이다. 이것은 양과를
시험해 보려 한 것이므로 오륜은 두 사람의 몸을 돌아 원을 그리며 돌
아갔다. 그는 양과가 결코 칼을 들고 추격하지 않음을 보고서 그 이유를
알고 매우 기뻐했다.
(네놈이 감히 몸을 움직여서 소용녀의 상처를 악화시키지 못하는구나.
내가 멀리서 공격해도 이미 승리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방은 이미 팔도 하나 없고 또 부상자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어
서 원래 법왕의 신분으로는 싸움을 걸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는 오늘 같은 좋은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소용녀가 만약
상처를 치료해 두 사람이 함께 연합한다면 대적할 수 없고, 설사 소용녀
가 중상을 입고 죽는다고 해도 양과를 견제하기 힘드니 오늘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을 죽여서 후환을 없애리라 생각했다. 불공평한 것을 생각할
여유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을 뭇 사람들은 잘 알고서 법왕이 매우 비겁하다고 느꼈
다. 이때 마광좌가 소리쳤다.
[스님 당신은 영웅이오, 아니면 깡패요?]
법왕은 못 들은 척 계속해서 오륜을 날리자 여전히 양과와 소용녀의
머리에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오륜은 높게 낮게 똑바로 비스듬히 소리
도 다르게 날아가자, 옆에서 구경하면 사람들은 눈앞이 어지러워 정신이
없었다. 돌연 마광좌가 <이크!> 하는 소리를 질렀다. 동륜이 비스듬히
날아가서 급히 원을 그리며 그의 정수리를 스쳤다. 머리의 피부가 찢겨
서 피가 땅에 뚝뚝 떨어졌다. 마광좌는 고개를 들고서 큰소리고 욕하면
서도 감히 앞으로 나서서 그와 맞서지는 못했다.
양과는 소용녀의 상처가 매우 깊어서 시간을 지체하면 치료의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 계속 초조해 했다. 법왕이 돌연 소리 질렀다.
[조심해라!]
돌연 5개의 바위가 한곳에 모여서 두 사람에게 날아왔는데 이 진세는
마치 5마리의 소가 진을 펼친 것 같았다. 양과의 온몸의 힘은 왼팔에 모
여서 칼끝이 가볍게 떨렸다. 딩딩딩,하며 금.동.철의 2륜에 검을 휘둘러
아래로 내리쳤다. 돌연 땅에서 먼지가 일어났다. 은륜과 연륜이 이미 칼
에 맞아서 땅에 떨어졌다.
법왕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왼손으로 동륜을 쟉슛기고 금.철, 양륜을 들
고서 양과의 정수리를 치려고 했다. 양과는 저항하지 못하고 현철검으로
그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검은 길고 바퀴는 짧아 바퀴가 양과의 머리에
채 닿기도 전에 검은 이미 법왕의 가슴 앞 반 척까지 이르렀다. 법왕은
즉시 물러났다. 양과에게 달려올 때 신속한 것처럼 물러날 때도 이를 데
없이 빨랐다. 이러한 동작은 확실히 무림 가운데 보기 드문 공부였다.
사람들은 이 같은 놀라운 기술에 함성을 질렀다.
[대단하구나!]
양과는 현철검을 곧 거두어들이며 이미 등뒤에서 기습해 온 동륜을
두 토막 냈다. 동륜의 두 조각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검을 휘
둘러 두 조각의 동륜을 다시 네 조각으로 만들었다. 현철검을 비로 칼날
이 무디었지만 그가 내력을 사용하면 끊지 못하는 물건이 없었다. 사람
들은 법왕의 뛰어난 경공을 보고 갈채를 보냈는데, 다시 이 신검의 놀라
운 위세를 보고는 더욱 놀라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법왕의 오륜 가운데 2개가 망가졌는데 그는 전혀 기가 꺾이
지 않고, 금.철 2개의 바퀴를 무수히 움직이며 용감하게 덤볐다. 양과가
칼을 세워서 찌르자 법왕은 몸을 숙이고 발을 움직여 피했으나 다시 금
륜을 던지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양과와 소용녀 두 사람의 주위를 돌면
서 좌우로 공격을 했다. 양과의 현철검이 점점 느려졌지만 법왕이 아무
리 동작을 바꾸어도 결코 그들 두 사람의 세 걸음 이내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4,50여 동작을 펼치고 난 후 법왕의 쌍륜이 한곳에 모여서 소용
녀를 치려고 했다. 양과의 현철검이 앞으로 나가며 금륜을 막았다. 두
사람의 내력이 두 가지의 무기에이미 토해져 있어 서로 부딪치자 순식
간에 두 사람은 꼿꼿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양과는 상대방과 부딪쳐 전해 오는 힘이 면면히 끊이지 않으면서 점
차로 강해지자 매우 놀랐다.
(이 사람의 내력이 과연 심오하구나... 이미 서로 내력으로 상대하니
현철검의 위력을 전개할 방법이 없구나. 이 중대가리는 오래 단련해서
공력이 대단하니, 시간이 흐르면 내가 불리하다. 그를 가까이 끌어들여
서 소매로 얼굴을 쳐야겠구나.)
그래서 그는 왼팔을 천천히 접었다. 두 사람은 원래 5척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점점 가까와져 5척에서 4척 반, 4척 반에서 4척으로 되었다.
법왕의 제차 달이파와 곽도는 계속 사부의 옆에 있다가 사부가 점점
우세해지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서 앞으로 몇걸음 나섰다. 달이파는 사
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곽도도 양과에게 암기를 사용하고자 했다. 그
는 부채를 펴 들고 더위를 식히는 체했으나 사실은 때를 기다려 부채
속의 암기를 양과에게 발사하려 했다.
구처기와 왕처일은 그가 눈빛을 반짝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가 손을 써서 사부를 도와 주려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 두 사
람은 서로 마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양과가 우리 교와 비록 적이지만 대장부로 정정당당하게 이기든지든
단지 자기의 무공에 의해야 한다. 종남산이 어찌 이러한 사악한 무리가
날뛰도록 가만 놔 두겠는가!)
두 사람은 각자 장검을 들고 한 걸음씩 나아가 일제히 곽도를 노려보
았다. 구와 왕, 두 도인은 이때 백발을 휘날리며 오랫동안 현공을 연습
해, 온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또한 두 검에서는 무지개처럼 푸
른색이 발하여 자못 위엄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곽도는 이에 놀라서
꼼짝도 못 했다.
(이 중대가리가 다시 반 척만 가까이 온다면 이 오른쪽 소매를 휘둘
러야겠다. 비록 그를 죽이지는 못해도 기절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법왕은 그의 오른쪽 어깨가 돌연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고 양과의
계획을 간파했다.
(네놈의 팔이 없어졌지만 옷소매는 남아 있어 여기에 힘을 주어 휘두
르면 마치 부드러운 채찍과 같은 무기가 되겠지. 나는 네가 소매를 휘두
를 때 왼팔의 힘이 적어지는 기회를 이용해서 공격을 하마. 너는 반드시
중상을 입게 될 것이다.)
소용녀는 양과의 몸에 기대어 계속 멍청하게 있었다. 양과가 내력을
발휘해, 피가 빨리 돌며 온몸에 점차로 열이 나는 것을 알았다. 소용녀
는 그의 얼굴에서 열기가 나는 것을 알고는 두 눈을 떴다. 그의 이마에
땀이 배어 있자 소매를 뻗어서 가볍게 몇번 닦아 주었다. 그의 태도가
신중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의 눈길이 가는 곳을 쳐다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법왕의
왕방울만한 두 눈이 매우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두눈에 흉악한
기운이 감돌도 있음을 보고는 급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으나 법왕의
두 눈은 더욱 가까와졌다. 소용녀는 양과와 서로 의지하고 있는데 이처
럼 흉악한 눈이 옆에서 노려보자 몹시 불쾌했다. 그녀는 이때 법왕이 양
과와 싸우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고는 단지 이 중놈이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그가 다가와서 이 달콤한 순간을 망쳐 놓을까 봐 품속에
손을 넣고 1개의 옥봉침을 꺼내서 천천히 법왕의 눈을 찌르려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금침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다. 보통 바늘로 눈을 찌
르기만 해도 장님이 된다. 소용녀는 이때 다만 이 보기 싫은 커다란 두
눈을 없앨 생각이었지 결코 암기를 발사할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
나 중상을 입은 나머지, 손을 뻗을 때 아무런 힘이 없어서 매우 천천히
다가섰다.
그러나 법왕과 양과는 서로 꼿꼿하게 서서 이미 매우 긴박한 상황에
이르러 누구라도 조금만 움직여도 크게 불리하게 되었다. 소용녀가 금침
으로 그를 찌르려 천천히 다가섰지만 법왕은 조금도 저항할 수가 없었
다. 금침이 점차로 가까와져 2척에서 1척, 1척에서 반척에 이르자 법왕
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쌍륜을 앞으로 내던졌는데 1개가 돌연 뒤로
뒤집혔다. 그러나 현철검의 강력한 힘은 마침내 모두 막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막 다리를 옮기자 몸이 흔들거리면서 무릎을 꿇고 결국 땅에 주저
앉았다. 달이파와 곽도는 소리를 질렀다.
[사부님!]
양과는 계속해서 두 번 칼을 휘두르자 금륜과 철륜이 두 동강이 났다.
다시 두 걸음 나서며 법왕의 정수리를 향해서 칼을 내리쳤다. 법왕은 내
식이 혼란해져 답답함을 느끼고 죽을 것같이 땅에 엎드려 저항할 힘이
없었다. 달이파는 황금저를 들고, 곽도는 부채를 펴서 일제히 현철검에
저항했다. 그러나 내리치는 칼의 힘이 맹렬해 달이파와 곽도 두 사람은
동시에 두 무릎에 힘이 빠지며 서 있지 못하고 땅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무기를 들고 필사적으로 맞섰다.
현철검의 힘이 점차로 강해지며 달이파와 곽도는 허리가 끊어지는 듯,
온몸의 근육이 소리를 내는 것을 느꼈다. 곽도가 외쳤다.
[사형, 당신 혼자서 잠시만 견디세요. 제가 우선 사부님을 구하고 다
시 와 도와 드리지요.]
원래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견디기 어려운데 달이파 혼자 남아서 어
찌 중검의 위력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목숨을 버리며 사부
를 지키려 했다.
[좋다!]
달이파는 있는 힘을 다해서 황금저를 뒤로 쳐들어 올렸다. 그들 두 사
람은 대화를 티벳말로 해서 양과는 그 뜻을 잘 알 수 없었지만 황금저
에 힘이 격중하는 것을 알고 다시 힘을 가해 눌렀으나 곽도는 이미 몸
을 피해 나갔다.
곽도가 사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꾀를 썼다는 것을 그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사형, 제가 서장에 돌아가 열심히 무공을 연마해 십 년 후 이 양과란
놈을 찾아서 사부님과 당신의 원수를 갚아 드리지요!]
하고 말한 뒤 몸을 돌려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달이파는 사제에게 기만을 당하자 몹시 화가 났다. 그러면서 양과가
대사형의 전신으로 어찌 사부에게 이처럼 무정하고 의리가 없는지 생각
하고 있었다.
[양형! 저의 목숨을 살려 주신다면 사부를 구하고 저 비열한 사제놈을
잡아서 처리한 후 다시 돌아와 양형의 분부를 받들겠읍니다. 그때는 저
를 죽이든 살리든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겠읍니다.]
양과는 그가 중얼거리며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곽도가 위험
에 처해 도망치는 것을 보고 이 달이파라는 사람이 사부에게 충의(忠義)
가 있음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비분 강개한 모습을보고 고개를
돌리자 애정이 가득한 소용녀의 눈이 자기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잠시
만에 모든 살기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세상의 은혜와 원한이 도대체 무
엇인가 생각되어 현철검을 들었다.
[자, 가시오!]
달이파는 몸을 일으켰으나 힘을 너무 과도하게 사용해 온몸에 힘이
빠져 황금저를 잡지도 못하고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땅에 엎드려서 양
과에게 몇 번 절을 하고서 생명을 구해 준 데 대해서 감사했다. 이때 법
왕은 땅에 앉아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달이파는 사부를 등에다 메
고 큰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양과는 한 팔로 몽고의 6대 고수를 크게 물리친 것이었다. 많은 무사
들은 우두머리인 여섯 사람이 패하거나 다치는 것을 보고서 감히 대항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부상을 입은 소상자, 윤극서 등을 부축하고 잠
시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광좌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양과 앞으로 다가와 엄지를 폈다.
[소형제, 당신 정말 대단합니다!]
[마대형, 당신과 함께 다니는 이 무리들이 좋지 않으니 그들과 섞여서
함께 다닌다면 반드시 욕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쿠빌라이와 이별
하고 고양으로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소형제의 말이 맞습니다.]
그는 소용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는 비록 중상을 입었어도 여전
히 우아한 자태가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왔다.
[당신은 새색시와 언제 결혼합니까? 내가 남아서 축하술을 먹을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읍니다.]
그는 절정곡에서 처음으로 소용녀를 보았을 때 그녀가 <새색시> 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녀를 <새색시>로 불렀다.
양과는 쓴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수백
명의 도사를 살펴보았다.
[아, 아직 이 많은 도사놈들을 보내지않았지요. 제가 도와 드리지요]
양과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1대 1로 싸운다면 이 도사놈들은 결코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 번에 덤벼들면 상황이 매우 흉악해지니 쓸데없이 목
숨을 버릴 필요가 없지.)
[당신은 빨리 가시오. 나 혼자서 처리하겠소.]
마광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뜻을 알고는 박수를 쳤다.
[좋아요. 그 중놈이나 소상자 나부랑이들이 당신을 당해 내지 못했는
데 이 도사놈들 가운데 무슨 쓸 만한 놈이 있겠읍니까? 소형제, 새색시.
저는 그만 갑니다.!]
그는 숙동곤을끌고 하하, 웃으며 사라졌다. 동곤이 땅에 끌리며 돌과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다가 점차로 멀어져 갔다.
양과는 중검으로 땅을 가리키며 방금 법왕과의 대결에서 너무 많은
힘을 썼다고 생각했다.
(금륜법왕, 소상자 등은 서로 마음에 병이 있어서 나와 싸울 때 하나
씩 덤비며 모두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하려 했다. 만약 그들 여섯이
한꺼번에 덤볐다면 나는 결코 그들을 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금륜법와과 내력을 겨루어 지게 되었는데 다행히 용아가씨의 금침
공격에 도움을 입어 생각지도 않게 이기게 되었지. 전진의 뭇 도사들이
몸과 마음을 합쳐서 전진오자의 명령에 따르니 그들의 무공이 비록 법
왕 등에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나 굳게 힘을 합치게 되니 그 위력이
실로 아까 그들보다 훨씬 강해지게 되었다. 어쨌던 나는 이미 용아가씨
와 함께 있게 되었으니 힘이 다할 때까지 싸우다가 같이 죽으면 그만이
다.)
구처기가 낭랑하게 외쳤다.
[양과, 네 무공이 이 정도 경지까지 숙련되었으니 우리들은 한참 그에
미치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이곳에는 수백 명의 도사가 있는데 네가 능
히 이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양과가 눈을 들어 쳐다보니 사방에는 검광이 번뜩이는데 매 7명의 도
사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자신과 소용녀를 가운데에 두고 겹겹으로 에
워싸고 있었다. 7명 중에 가장 뛰어난 무공을 지난 도사가 검을 모아 힘
을 합치니 곧 1명의 일류 고수와 상대하는 격이 되었다. 이때 이미 양과
의 전후좌우에는 수십 명에 상당하는 고수들이 검을 치켜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양과는 이때 이미 생사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지라 <흥!> 하면서
한 걸음 나서자 즉시 7명의 도사들이 검을 세우고 가로막았다. 양과가
검을 세워 찔러 들어가니 7개의 검이 동시에 뻗쳐와서 가로막았다. 쨍,
하는 소리가 나면서 7개의 검이 모두 끊어져, 일곱 도사의 수중에는 칼
자루만 남게 되었다.
이렇게 대단한 검의 위력은 구처기 같은 사람들도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이었다. 왕처일이 외쳤다.
[선기, 요광! 뒤를 공격해라!]
양과는 그들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든 간에 상대하지 않으면서 다만
자신이 갖고 있는 신검의 위력에 의지해 밖으로 뚫고 나가리라 생각했
다. 즉시 소용녀를 데리고 두 걸음 앞으로 전진하는데7명의 도사들이
되돌아서 가로막는 게 보였다. 그는 즉시 검을 휘둘러 비스듬히 쓸어서
공격해 들어갔다. 이 7명의 도사들은 검을 세워 가로막지 않고 신형(身
形)을 재빨리 움직여 위치를 서로 바꾸면서 그의 몸 앞으로 스쳐 지나
갔다. 7명 도사들이 설혹 진법에 익숙하여 그 신법이 민첩하다고는 해도
비명소리를 내며 그 중 2명의 도사는 이미 검에 이끌려, 1명은 허리를
다치고 1명은 다리가 부러져 땅에 나뒹굴었다.
이때 14자루의 장검은 이미 양과와 소용녀의 배후에서 7자루는 양과
를, 7자루는 소용녀를 겨냥하고 있었다. 양과가 만약 검을 되돌려 뒤를
공격하면 비록 14자루의 검을 거의 물리칠 수 있었겠지만 그 중에 하나
라도 빗나가면 소용녀는 부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데 다시 7자루의 검이 소용녀의 오른편으로 찔러 들어왔다. 이렇게 되자
그는 자신의 생명을 내던져도 소용녀를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구처기가
손을 치켜들고 외쳤다.
[멈추어라!]
21자루의 장검이 검광을 번득이면서 양과와 소용녀의 몸으로부터 각
각 몇 촌 되는 거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용아가씨, 양과! 당신 두 사람과 나의 선배 사존과는 원래 서로 매우
깊은 인연이 있소. 우리 전진교가 오늘 다수에 기대어 이겨도 별로 훌륭
한 일이 못 되오. 더군다나 용아가씨는 몸에 부상까지 입었으니 말이오.
자고로, 원수는 맺지 말고 풀라고 하였소. 두 분께서는 돌아가 주시오.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지 이제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어떻겠소?]
양과와 전진교와는 본래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왕년에 학대통의 잘못
으로 손노파가 부상을 입고 죽게 되자 학대통을 깊이 후회하며 자신의
목숨으로써 보상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일이다. 이번에 양과가
종남산에 오른 것은 단지 소용녀를 찾기 위해서 일 뿐 결코 전진교와
적이 되고자 함이 아닌지라 구처기가 이렇게 말하자 속으로 생각했다.
(용아가씨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급하기 이 도사들과 싸워서 승패를
다투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막 대답을 하려는데 소용녀의 눈빛이 천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쏠
리면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윤지평은?]
윤지평은 등에는 바퀴를 얻어맞고 가슴에는 칼로 두 군데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지만, 즉시 죽지는 않고 동문 사제들에게 구출되어 한 구석
에 뉘어져 있었다. 끊어질 듯 말 듯 가늘게 숨을 쉬면서 정신을 못 차리
고 있는데,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지평은?> 하고 묻는 소리가 들
렸다. 이 네 마디 말은 매우 가볍게 말한 것이지만 그의 귀에는 마치 천
둥이 치는 것처럼 들렸다. 어디서 힘이 치솟았는지 돌연 몸을 뒤집어 일
으키고는 칼 숲 사이로 뛰어들며 외쳤다.
[용아가씨, 나 여기 있읍니다!]
소용녀가 잠시 그를 쳐다보니 도포에 선혈이 낭자하고 얼굴에는 혈색
이 전혀 없는지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
했다.
[과아야, 내 이 사람으로 인해서 몸을 더럽혔으니 설령 상처가 다 낫
는다고 해도 오랫동안 너를 보살펴 줄 수가 없구나. 다만......, 다만
그는 목숨을 내걸고 나를 구해 주었으니 너는 더 이상 저 사람을 괴롭
히지 말아라. 이 모두는 내 팔자가 사납기 때문이다.]
윤지평은 소용녀가 <다만 그는 목숨을 내걸고 나를 구해 주었으니,
너는 더 이상 저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라. 이 모두는 내 팔자가 사납기
때문이다> 하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칼로 도려 내는 듯이 아팠다. 일시
의 욕망으로 인해 사리 판단이 흐려져 큰 일을 저질러 놓았으니, 자신은
소용녀를 하늘과 같이 받든다고 해도 그녀의 일생을 불행해져서 1백 번
죽어도 그 잘못을 속죄할 수 없었다. 윤지평이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네 분 사백 사숙, 제자가 큰 죄를 지었으니 여러분께서는 절
대로 용아가씨와 양과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라고 말하면서 여러 도사들이 앞을 향해 세워 들고 있는 8,9자루의 장검
을 향해 몸을 날리니, 몇자루의 검이 그의 몸을 꿰뚫어 그는 곧 죽고 말
았다.
여러 사람들은 이러한 변고를 예측하지 못했던 까닭에 모두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여러 도사들은 소용녀가 하는 말을 듣고 또한 윤지평이 죄를 인정하
며 자살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로 그가 전진의 대계율을 어기고 비겁한
수단을 이용해 소용녀를 욕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진오자는 모
두 계율을 엄하게 지키는 고사(高士)들인 까닭에 이번일의 잘못이 자신
들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는 크게 부끄러웠으나 어떤 말로 이러한 감
정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구처기는 네 사형제를 한번 쳐다보고는 소리쳤다.
[검진(劍陣)을 풀어라!]
창창, 하는 소리가 계속 나면서 여러 도사들은 검을 거둬들여서 칼집
에 꽂고는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려 했다.
첫댓글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