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다흥·음주망(飮茶興·飮酒亡)’이라 했던가.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정든 다산초당과 강진을 떠나면서 훈도를 남겼는데, 그게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가까이 하면 망한다’는 것이었다. 절간에 앉아 술잔에 술을 따르듯 찻잔에 차를 따르며 다담(茶談)을 나누다보니 밤이 깊었다. 그곳에선 다산을 비롯해 그와 우정을 나눈 아암 혜장선사, 초의선사 등 200년 전 인물들이 그리 멀지 않은 데 있었다. 강진 사람들, 백련사 스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다산과 아암의 이야기가 일상처럼 흘렀다. 이야기는 눈앞의 숲과 차밭과 누각, 시와 글로 현현해 있었고 차고 넘쳐 뚝뚝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전라남도 강진은 뒤로는 월출산이, 앞으로는 강진만이 펼쳐진 섬과 같은 곳이다. 땅끝 해남의 바로 옆. 다산이 이곳에 유배를 오게 된 것은 외따로 떨어진 지형의 ‘덕’이 크다. 그렇다. 탓이 아니라 ‘덕’이다. 철새가 날아들고 월출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고 동백숲과 야생차밭이 원시적으로 펼쳐진 이곳에서 다산은 수많은 시와 저술을 남겼다. 동시에 많은 ‘뒷이야기’를 남겼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건 자고로 무대 뒤편의 이야기인 법. 이 이야기들엔 마음에 무언가를 조금씩 차오르게 하는 구석이 있다.
거점은 백련사로 잡았다. 백련사에 머무르면서 주변의 숲과 다산초당까지의 산책길을 걷고, 다음날 백련사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월출산 자락의 월남사지까지 가서 다산이 쉬러 가곤 했던 백운동 원림과 강진다원을 거쳐 무위사까지 걸어 내려오는 일정이다.
다산초당 뒤쪽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들
백련사는 예부터 차 향기가 아름다운 곳이다. 강진 전체가 그렇지만 백련사를 품고 있는 만덕산에선 야생 차가 자란다. 보성 녹차밭과 같은 다원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야생 차는 그렇지 않다. 잡풀처럼 자라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스님들은 이곳에서 차를 따다 덖어 마신다. 주민들도 마찬가지. 강진 사람들은 오랫동안 야생에서 차를 채취해 집에서 덖어 마셨다고 한다. 생활로써의 차 문화가 살아있는 셈. 백련사부터 다산초당까지의 산책길에 백련사 총무 일담스님이 따라나섰다. 산을 타는 데 익숙한 스님의 발걸음을 따르기가 힘겹다. 발뒤꿈치에서 우아한 곡선이 그려진다. 본래 이 산책길은 다산초당에 적거했던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에 머물던 아암 혜장선사를 만나러 다니던 옛길이다. 천천히 걸어 20분이면 족하다. 이들의 우정은 어쩌면 동성애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애틋하다. 다산은 강진 유배 초기 4년간 거의 갇혀 살았다. 그러다 귀양살이가 조금 완화된 1805년 이후, 약간의 자유를 얻게 된다. 이때 다산은 처음으로 혜장선사를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난 이들은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만경루에서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불교에서 주역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학식과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 봇물이 터진 것. 이때 혜장은 다산에게 차를 권했다고 한다. 날이 저물고, 다산은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밤길을 걸어 다시 초당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늦은 밤까지 뜨거운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홀로 뒤척거린다. 그때 때아닌 인기척. 문을 여니 뜻밖에 문 앞에 혜장이 서 있다. 둘은 서로 끌어안고 반가워했다고 한다. 이때 나이 혜장이 서른넷, 정약용이 마흔넷이었다. 이후로도 둘은 왕왕 이 산책길을 오가며 학식과 마음을 나누었다. 역에 관심있던 혜장은 다산을 스승으로 여겼고, 다산은 혜장의 영향으로 차와 불교에 심취하게 된다.
백련사 뒤쪽 시누대 숲
많이 알려진 오솔길 대신 오른편 ‘입산금지’ 표지판이 붙은 산길로 돌아 가기로 한다. 스님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다. 중간에 스님들이 기거하는 선방이 있고, 묵언수행 중인 스님의 토굴도 있다. 동백나무와 야생 차나무가 지천이다. 일담 스님은 “숲을 정비하려고 대나무들을 베었더니 그제야 숨어있던 차나무들이 나왔다”고 했다. 곧 진달래가 만발한다는 진달래 능선길을 지나니 시누대가 우거진 숲이 나타난다. 여길 지나면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조성된’ 산책길과 만난다. 다산초당은 동백숲속에 고즈넉이 들어앉아 있다. 앞마당엔 밥상 같은 돌이 남아 있는데, 다산이 뒷담 밑 약수를 떠다 차를 달여 마셨다는 차 끓이는 부뚜막, ‘다조’다.
다음날은 월출산 자락으로 차를 몰았다. 월출산 일대는 혜장이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슬퍼하던 다산이 제자들과 함께 나들이 갔던 곳이다. 이때 다산은 옥판봉 아래 백운동 이씨의 집에서 묵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백운동 원림’이다. 우리 전통 정원이 보존된 몇 안되는 별서(別墅)다. 시냇물을 끌어와 뜰 안에 연못과 돌아가는 물길을 만들어놨다. 술잔을 띄워 시를 지으며
노니는 유상곡수. 백원동 원림은 17세기 이담로가 처음 조성했고, 지금도 그의 11대손 이효천 옹이 이곳에 살고 있다.
고려시대의 월남사지 삼층석탑
월남사지에서 무위사까지 걷는 길에는 곳곳에 다원이 펼쳐져 있다. 월남사지 주변은 월남리인데, 아직도 돌담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홍매화와 산수유가 만발하고 중앙에 우뚝한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민박집도 곳곳에 있어 이곳에만 수일 머물러도 좋을 것 같다.
차밭은 걷다보면 수시로 만난다. 특히 이곳은 보성이나 제주의 차밭과 달리 살아있는 마을과 차밭이 잘생긴 월출산을 배경으로 함께 어우러져 있어 더 아름답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근처엔 19세기 일제강점기 한국에선 처음으로 차를 상품화한 이한영의 생가가 있다. 백운동 옥판봉 아래서 난다고 백운옥판차(白雲玉板茶)인데, 이름도 참 예쁘다. 이한영이 차를 덖고 만들었다는 이곳은 지금 다 쓰러져가는 폐가다. 근처 다른 곳에 생가를 복원 중이다. 거기 앉아 드넓게 펼쳐진 차밭을 보며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 차를 마신다. 향이 그윽하다. 차밭을 거닐다 땅 속에서 차나무 씨앗 몇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수일 내로 창가 화분에서 차나무가 자라날 것이다.
다산초당
▲ 여행 길잡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천안분기점에서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논산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까지 간다. 동림IC를 조금 못 가서 나주로 나가는 길로 빠진다. 다음부터는 나주-영암-강진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면 된다.
버스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강진까지 버스가 있다. 강진터미널에서 백련사까지 가는 군내 버스는 하루 9번 있다.
● 강진터미널 근처 강진만
한정식(061-433-0234)은 한정식이 기본 1만원. 삼합, 게장, 회와 각종 나물 등이 나온다. 청자골 종가집(061-433-1100)은 고풍스러운 종갓집
한옥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수라상 4인 기준 10만원. 월출산 자락 성전면 예촌(061-432-9005)의 강진산 한우로 만든 곰탕 6000원.
● 백련사 템플스테이를 권한다. 다산과 아암의 이야기를 들으며 근처 숲 산책, 다도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기본 1인 5만원. 1년간 열두 주제와 열두 장소를 찾아 진행할 ‘남도기행 템플스테이’는 남도의 역사가 숨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프로그램. 매월 넷째주 금~일 2박3일간 진행되며 1인 15만원. 문의 (061)432-0837. 다산초당 입구의 다산명가(061-433-5555)도 괜찮다.
● ‘남도 가배울’
모임에서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위원 김정희 교수가 주축이 된 모임은 남도의 농촌을 살리고 문화를 일으키고자 만들어졌다. 그 시작이 강진.
생협을 지원하며 생태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생태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문의 (02)6014-7741 http://cafe.naver.com/gabaewul
● 문의 강진군청 (061)430-3174 문화관광해설사 강영석씨 010-6320-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