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공무원 서윤식(49ㆍ가명) 씨는 농사가 취미다.
2009년 강원도 횡성에 밭 1000㎡를 매입해 두고서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내려가 농사 삼매경에 빠진다.
철마다 호박·고추·상추·들깨·고구마·감자 등의 유기농 채소를 길러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지난해 가을에는 자신이 직접 기른 배추로 김장까지 해결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농사도 짓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고생만 한다고 구박하던 아내도 이제는 은근히 주말을 기다리는 눈치다.
전기ㆍ수도 설치 불가해 불편
서씨는 대개 금요일 저녁 횡성에 내려가 일요일 저녁 서울로 올라온다. 탁 트인 자연에서 아내와 함께 보내는 2박 3일의 전원생활은 서씨에게 생활의 활력소이자 비타민이다.
물론 불편도 있다. 가장 큰 게 바로 샤워와 전기 문제다. 서씨는 2010년 자신의 밭 위에 조그만 농막을 하나 지었다. 농사를 짓는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고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농막은 식사ㆍ휴식ㆍ창고 등의 용도로 설치하는 연면적 20㎡(6평) 이하의 농업용 시설물을 말한다. 일반 주택과는 달리 건축법상 가설물 신고 만으로도 설치할 수 있다. 별도의 농지전용이나 건축 허가가 필요없다.
그런데 문제는 현행 규정상 농막에는 수도·전기 등의 기간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서 씨는 처음 주말농사를 지을 때 호롱불을 켜고 밤을 보냈다. 지하수를 팔 수 없어 밭 인근 옹달샘에서 간단한 세수만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적도 있다.
거의 야생에 가까운 생활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쌀쌀한 가을철이 문제였다.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에 난방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흔한 전기 장판마저 농막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군청에서 하소연도 해보았지만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주변 농가에 양해를 구하고 농업용 전기를 몰래 끌어다 쓰는 '도둑 전기'도 고려해봤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으로 법과 규정을 어긴다는 게 어딘지 찜찜해 이내 포기했다.
서 씨는 "공무원으로서 현실과 맞지 않은 규정이 얼마나 불편한지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 경기도 양주의 한 농막. 전기와 수도를 연결할 수 없어 불편하다. 사진제공=스마트하우스(031-932-4805)
방치된 주말농지 많아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서씨처럼 주말농장 용도로 1000㎡ 미만의 논과 밭(주말 영농·체험형 농지)을 구입한 도시인이 2010년 한해 동안에만 5만5450명에 달했다. 주말 영농·체험형 농지 제도가 도입된 2003년 이후 해마다 4만∼5만명의 도시인이 시골에 농지를 매입해 주말농사를 즐기고 있다.
주말 영농·체험형 농지는 농민이 아닌 도시민도 구입할 수 있는 1000㎡ 이하 땅을 말한다. 2003년 도시민의 여가활동을 돕기 위해 농지법을 개정해 처음 도입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121조는 오직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주말 영농·체험형 농지는 예외적으로 도시민의 소유를 인정하고 있다.
업계는 주말농장용으로 농지를 매입한 도시민이 지금까지 60만∼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실제로 취득 목적대로 농사를 짓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전기와 물을 끌어다 쓸 수 없는 '농막 살이'가 불편해서다.
이 때문에 잡초만 우거진 버려진 땅으로 방치된 주말농지가 전국에 한둘이 아니다. 국가적인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현실과 맞지 않은 규정 고쳐야
현실에 맞지 않는 법과 규정은 과감히 고쳐야 한다. 특히 법과 규정의 엇박자로 선의의 정책이 쓸모 없게 됐다면 더 그렇다.
물론 모든 농막에 전기와 수도를 허가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는 생활 오폐수가 그대로 주변 땅으로 흘러 들어 토양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다. 난개발 문제도 고려해봐야 한다.
법망을 교묘히 활용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분양업자도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 전기 사용에 따른 화재 등의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도시인이 취득한 주말 영농·체험용 농지에 설치하는 농막에 한해 전기와 수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신 관리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 땅 투기 등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최소화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