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냉전의 상징물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독일이 탄생하던 1990년 10월3일 서독의 콜 수상과 동독의 디메제이로 수상은 역사적인 통일조약서에 서명했다. 그때 사용한 펜이 독일 함부르크 소재 「몽블랑(MONTBLANC)」社의 「마이스터스튁 149」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독의 슈미트 前 수상,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스페인의 소피아 여왕, 존 F 케네디 前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前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적인 유력 정치가들 중 다수가 중요한 국가 문서의 사인을 몽블랑 펜으로 했다.
이처럼 몽블랑 펜은 명사들의 필수품이 돼 버렸다. 몽블랑 펜은 영화에서 첨단무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1983년 로저 무어 주연의 「옥토퍼시」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비밀무기로 등장할 만큼 만년필의 대명사가 됐다.
언제부턴가 새까만 몸체, 육각형 모양의 하얀 별, 금빛 장식의 몽블랑 펜은 「성공」과 「명예」, 「남성성」의 상징이 됐다. 뚜껑에 새겨진 「하얀 별(White Star)」은 눈덮인 몽블랑 산봉우리를 표현하는 것으로 만년필 펜촉엔 몽블랑 봉우리의 높이 4810이란 숫자가 새겨 있다.
세계 대공황기인 1924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튁 만년필은 78년간 변하지 않는 디자인만으로도 기록적이다. 플라티늄으로 상감 처리하고 여러 차례 공정을 거쳐 手工(수공)으로 제작되는 18K 펜촉이야말로 몽블랑의 「경쟁력」이다. 만년필 뚜껑에 있는 3개의 금 도금된 링(Ring)은 마이스터스튁 제품의 상징이다.
몽블랑社는 작년 마이스터스튁에 이어 신제품 보헴(Boheme)을 출시했다. 보헴은 기존의 클래식한 마이스터스튁에 비해 디자인이 훨씬 우아하고 정교해졌다는 평. 몽블랑 펜의 主 타깃층이 「성공한 남성」들이라면 루비나 오닉스 같은 컬러 보석이 박힌 작은 사이즈의 보헴은 「성공한 여성」을 상징한다. 커리어 우먼들의 활약이 돋보이면서 개척할 시장이 새로 생긴 데 따른 시장전략인 셈이다.
몽블랑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5년 現 유로통상(회장 愼鏞克)의 모회사인 유로패션코리아를 통해 면세점에 공급되면서부터이다. 당시만 해도 수십만원대의 高價 만년필은 高價 사치품으로 분류돼 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1987년에 수입자유화 조치가 발표되면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名品은 神話를 만들어야 한다』
몽블랑은 1906년 문을 연 이래 全세계 70여 개국에 150여 개의 전문 매장을 운영하며 고급 필기구시장의 6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최근 펜 이외에 가방, 벨트, 시계, 안경 등 품목을 다양화했다.
독일 함부르크 외곽에 자리한 몽블랑 본사는 연구개발에 끊임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는 볼펜심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은 대여섯 명인 데 반해, 펜촉을 부드럽게 다듬고 잉크를 묻혀 써 보고 갈라짐을 정밀 분석하는 쪽에는 1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몽블랑社의 대표는 노버트 플라트(56)씨. 1987년 몽블랑 CEO가 된 그는 하버드대학 비즈니스스쿨(HBS)과 프랑스의 상업경영대학 인시아드(INCEAD) MBA 과정을 졸업한 경영 전문인이다. 그는 취임 당시 잘 나가던 20달러 이하짜리 제품을 즉시 시장서 철수시키고 철저히 高價ㆍ차별화 정책을 통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10% 이상 더 올린 경영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몽블랑 펜의 경쟁력에 대해 『名品이란 건 神話(myth)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필기구, 이런 식으로 기능 이상의 무엇을 내뿜을 수 있어야 한다. 제품은 영혼을 담아야 한다. 그냥 로봇 기계들이 부속품 하나씩 끼워가며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인터넷 세상이 오면 볼펜이나 만년필 사용자가 줄어들지 않는가」라는 우려에 대해 『방에 앉아 사이버 갤러리를 둘러보는 시대가 왔어도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 「모나리자」 진품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이메일 자료더미에 파묻힐수록 노트 한 권과 만년필 한 자루가 더 소중해질 것이다』고 名品 제작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몽블랑은 1990년대 초 세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문화사업 쪽으로 눈을 돌렸다. 몽블랑을 「문화적 브랜드」로 정착시키기 위해 1992년 몽블랑 문화상을 제정했다.
몽블랑 문화상은 예술활동과 문화발전에 헌신한 인사들에게 시상하며, 수상자는 부상으로 1만5000달러와 순금으로 된 한정 생산된 몽블랑 만년필을 받게 된다. 몽블랑社는 수상자 선정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1995년 프랑스 파리에 몽블랑 문화재단이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세계 40여 개국의 역량 있는 음악가로 구성된 「몽블랑 필하모니아 내이션즈」란 오케스트라도 운영하고 있다. 몽블랑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유스투스 프란츠(Justus Frantz)가 이끌고 있다.
뉴욕필 명예 음악 감독인 레너드 번스타인을 기념하기 위해 「MST Leonard Bernstein」이란 몽블랑 펜을 제작, 펜이 하나씩 팔릴 때마다 만년필의 경우 32달러, 볼펜은 16달러를 몽블랑 오케스트라에 헌정해 오고 있다.●
>> 2002년 03월
[名品의 세계] 몽블랑 만년필
高價·차별화 전략으로 매출 10% 신장… 1979년 한국에 첫 수입
韓惠媛 자유기고가
하청생산을 하지 않는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나 국가의 首長(수장)들은 최종 서명을 할 때면 어김없이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뽑아든다. 속도를 다투는 디지털 시대에도 만년필은 여전히 성공한 남성의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 10월3일, 西獨의 헬무트 콜 수상과 東獨의 메지에르 수상은 全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통일 조약서에 서명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두 수상이 사용했던 펜이 바로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틱 149」라는 만년필이다.
1906년 독일 출신의 문구상 C.J. 휘스, 은행가 C.W. 라우젠, 기술자 W. 잔보아는 함부르크에 「심플로(Simplo)」라는 만년필 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1910년에 회사명을 「몽블랑(Montblanc)」으로 바꾸고 고급 만년필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全제품에 새겨진 몽블랑의 로고는 유럽 最高峰인 알프스의 몽블랑 정상의 萬年雪을 상징한다. 이는 펜촉에 새겨진 「4810」이라는 몽블랑의 高度(고도)와 더불어, 유럽인들이 몽블랑 산의 높이에 대해서 갖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만년필을 만들겠다는 몽블랑 브랜드의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多國籍 생산체제의 붐에도 불구하고, 몽블랑의 만년필은 오직 함부르크 한 곳에서만 생산될 뿐 일체 하청 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18K의 펜촉은 철저한 手作業을 통해서 이뤄진다. 만년필 한 자루가 거쳐야 하는 工程만 무려 150가지가 넘기 때문에 한 자루를 만드는 데만 6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같은 생산과정의 결정판이 바로 1924년 출시된 「마이스터스틱(Meisterstuck)」제품. 독일어로 「傑作(걸작)」을 뜻하는 이 제품은 인체공학적 설계, 정교한 펜촉으로 몽블랑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의 역할을 했다. 이 제품의 디자인은 1924년 出市(출시)된 이후 지난 78년 간 한 번도 변형된 적이 없었으며, 현재까지도 몽블랑 제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몽블랑의 만년필이 수백만 달러의 계약서에 사인하는 데 사용되는 名品으로 굳어지게 된 비법은 高價·差別化의 마케팅 전략에 있다. 1987년 몽블랑의 CEO로 부임한 노버트 플라트 사장은 취임 이후 20달러 이하의 제품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최고의 품질과 희소성을 가진 상품 개발에 주력했다. 「솔리테르 로얄라인」의 경우 11만 유로(한화 약 1250만원)로 全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로 기네스 협회에 기록되기도 했었다.
국내에 매장 열한 곳
1992년부터 특별 생산하고 있는 한정 상품(Limited Edition)은 몽블랑의 高價·차별화 정책을 잘 보여 주는 예이다. 몽블랑은 1992년부터 매년 문화와 예술 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인 인물을 한 명씩 선정, 몽블랑의 고도 4810m를 상징하는 의미로 4810개의 제품만을 한정적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다.
마이센 자기로 외관을 만든 2001년 한정판인 「마르퀴즈 드 퐁파두르」 한 자루의 가격은 250만원. 4810개의 상품 가운데 한국에서 배당받은 만년필은 총 50자루이다. 일반인에게는 조금 비싸다 싶은 금액이지만 한정상품의 경우 보통 한 달 안에 동이 난다. 현재까지 국내에 出市된 100가지가 넘는 몽블랑의 만년필을 전부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만 해도 전국에 약 10명 가량 있다는 것이 (주)유로통상 관계자의 귀띔이다.
노버트 플라트 사장의 高價·차별화 정책 이후 몽블랑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10% 이상 증가했다. 2002년 현재 全세계 70개국에 약 9000여 개의 몽블랑 상점이 문을 열었다.
한국에 몽블랑이 정식으로 수입된 것은 1979년에 (주)유로통상을 통해서다. 1990년 12월에야 신세계 백화점 본점 1층에 첫 매장을 열었다. 이는 백화점이라는 큰 상점 안에 다시 작은 상점으로 입점하는 「숍인숍(shop in shop)」형태로, 全세계 몽블랑 매장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개장 초기에는 브랜드 인식 부족, 高價 사치품에 대한 反感 등으로 苦戰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우리 사회에도 名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매출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1년 한국 시장의 성장률은 80%를 넘어섰다. 몽블랑 本社에서도 한국 시장의 성장과 발전 가능성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2001년 2월8일에 노버트 플라트 사장이 직접 내한한 바 있으며 하인리쉬도르프 부사장이 일곱 번에 걸쳐서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에는 서울에 9곳, 부산과 울산 등에 각각 1곳 등 총 11곳의 매장이 있으며 특히 롯데 소공동 본점의 매출액이 가장 높다. 초기에는 40代 이상의 남성 고객이 主를 이뤘었으나, 최근에는 20代 후반에서 30代로 고객의 연령층이 낮아졌다. 性別로도 남성과 여성 고객의 비율이 반반을 이루고 있다. 기업체 내부의 직원이나 고객, 거래처에게 선물하기 위한 기업 고객이 많은 것도 특징적이다.
현재 몽블랑은 던힐, 까르띠에, 피아제 등 18개 명품 브랜드의 집합체인 리치몬드 그룹에 속해 있다. 몽블랑은 만년필의 명성을 그대로 시계, 가방, 지갑 등의 액세서리로까지 이어가 토털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