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 조회 수983 등록일 2015.10.22
유난히 최근 들어 제 블로그에 일본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오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렉서스의 얼굴이 점차 무섭게 변해가고 있는 이유! 라는 것인데요. 사실 렉서스는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갈 대변인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는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아!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어제 서울 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 방위산업 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아....기계 성애자를 비롯해 비행기 성애자, 밀리터리 마니아들은 꼭 다녀와야 하는 곳입니다. F-22 있습니다.
낙엽처럼 휘청휘청~ 마치 실속한 것처럼 떨어지다가 부아악!! 하고 다시 제 자세를 잡고 날아가는 걸 보면서 정말...지릴 뻔 했습니다. (좀 지렸을지도.ㅎㄷㄷ!) 그리고 육군에서 사용하는 각종 전차들의 시연도 관람했는데, 거참 볼거리더군요. 오늘은 기상이 좋질 않아서 (해는 떳으나 시계가 너무 좋지 않아서) 다채로운 에어쇼는 없었지만 거대한 4~5개 동의 부스에 전세계 방위산업 업체와 항공 업체들이 나와 있고, 그들의 가장 새로운 기술과 시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꼭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사진이 왜 이것 밖에 없냐구요?
(저 구역 안으로 들어가면 안되는지 모르고 들어갔다가 총 맞을 뻔 했...쿨럭 ㅠㅠ )
......ㅜㅜ 전 이상하게도 그런 행사장엘 가면 사진을 거의 안 찍는 편입니다.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귀로 듣기 바빠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은 아예 카메라 같은 걸 안 들고 다닙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저 대신 많이 찍어 오시기를!!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비단 렉서스 뿐만 아니라 최근 자동차 디자인들을 90년대와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시끄러워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끄럽다는 이야기는 청각적인 자극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굉장히 어지럽게 변했다.. 내지는 극도로 화려해졌다.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꽤 자주 쓰는 편이라..습관처럼 쓰기는 하는데, 설명은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가지 뚜렷한 공통점이라면 패밀리 룩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죠. 어디서부터 시작된 트렌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독일차들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약간씩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디자인으로 전 모델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여념이 없고, 이미 그 작업을 완성한 브랜드는 거기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원래 의도했던 디자인의 이미지는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아주 까다로운 작업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 나름대로 내려본 결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 볼까 합니다.
1. 더 이상 성능이 브랜드와 모델을 대변하지 않는다.
첫 번째 내려본 결론은 이겁니다. 말 그대로 더 이상 성능이 브랜드와 모델을 대변하지 않게 되었기에 디자인이 점점 더 시끄러워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장에 대해 제가 가진 생각을 해석하려면 자동차 회사가 아닌 소비자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만 합니다. 어쩌면 이건 기업의 논리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아주 단순한 논리로,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며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소비자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겁니다.
그게 철학과 정체성을 벗어나는 것만 아니라면 뭐든 말이죠. 광고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데, 90~2000년대 초반의 자동차 광고만 보더라도 대부분 출력이나 성능, 그리고 속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아우토반을 달린다거나 스키 점프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의 광고가 상당히 많았죠. 때로는 연비가 우수함을 강조하기도 하고, 험한 곳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달리는 강인함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는 듯한 승차감이라며, 승차감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자. 마지막 문구...어떠신가요?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요즘 자동차 광고들은 더 이상 성능이 어떻다는 것을 논하지 않죠. 대신 이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 어떠한 라이프 스타일에 자신이 포함될 수 있는지를 예시를 들어 보여주거나 혹은 특정 모델의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전체가 가진 이미지를 함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재규어 광고만 해도 그렇죠.
신형 재규어는 풀 알루미늄 샤시에 디젤 엔진까지 올려서 연비와 성능과 어쩌고 저쩌고... 뉘르부르크링에서 차를 테스트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같은 이야기가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는 영국 브랜드이며, 악당의 이미지이지만, 그게 아주 근사한 악당입니다..... 라는 메시지만 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뭐 브랜드 광고도 포함하는지라 그렇다고는 하나..)
새로운 드라이빙 기술이 어쩌고 저쩌고는 오직 유투브의 기업 채널에서나 간혹 살펴볼 수 있거나 아니면 미디어 배포용 자료에 아주 딱딱한 문체로 서술하는 것에 그치는 편이죠. 그걸 대대적으로 내세워서 알리지 않습니다. 이 말은 ...
소비자들이 반응하는 영역이 바뀌었다는 뜻일 겁니다. 예전에는 강한 성능! 우수한 내구성! 폭발적인 스피드! 이런 것에 반응했다면 이제는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 그리고 자신을 그 브랜드의 이미지에 투영할 수 있는 소스만 전달할 뿐이죠.
이 시대 절대 다수의 소비자들은 이미 성능보다는 그 차를 타는 사람의 이미지가 어떨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차를 탈지에 대해 머리 속으로 그리는 것에 익숙해져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같은 자동차 마니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리고 절대 다수의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성능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동차 회사들도 성능을 가지고 브랜드와 모델을 특징지으려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보면 조금 더 쉬울 것 같은데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수많은 전설을 만든 두 차가 있습니다. 미쯔비시 렌서 에볼루션과 스바루 임프레자 STi가 있죠. 이 두 차는 철저히 20세기형 스포츠카였습니다. 솔직히 그 디자인을 두고 보편적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예쁘다고 말하긴 어려웠죠. 하지만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식으로, 성능이 워낙 좋다보니 스포츠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못생긴 그 차체 조차! 예뻐보였던 거겠죠.
그러니까 그 당시를 기억하는 소비자들의 뇌리에
란에보, 임프레자 = 강력한 성능의 4WD 스포츠카이면서 튜닝빨이 기가 막힌 스포츠카!
라고 박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단종의 수순으로 걸어간 란에보의 마지막 세대와 최신형 임프레자 STi를 두고 마음 설레어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남아 있을까요? 그 가격이면 그보다 훨씬 더 근사한 스포츠카들을 살 수 있음에도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제 기계적인 성능이 다수의 소비자를 설레게 만들지 못한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대신 소비자들은 조금 더 자신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결국 가장 먼저 자극 받게 될 디자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와 동시에 성능이나 과거 자동차들이 주었던 묘미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봐도 좋겠죠. 자동차의 기계적인 측면을 완벽히 이해하고 점령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고민과 투자는 이 시대 절대다수의 소비자들에게는 의미없는 일이 되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스포츠카들이 패들 시프트를 기본으로 달고 나오고, 각종 전자장비들로 무장해 실제 운전을 그 정도로 잘하진 못함에도 마치 잘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오직 재미만을 느끼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단물만 빨아 먹고 싶어한다는 것도 아니구요. 운전 스킬을 늘이는 시간에 스마트폰과 같은 IT기기들로 노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세대들에게는 적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 자동차 회사들은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모델의 특성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려봤습니다. 소비자들의 변화를 지켜보고, 그들이 자극을 받을 만한 부분을 찾다가 내린 결론이겠지요. 점차 수동 기어가 사라지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2. 특정 모델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는 시대
최근 자동차 디자인의 커다란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패밀리 룩입니다. 외장부터 내장까지, 특정 브랜드에서 나오는 디자인은 모두 다 비슷 비슷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자동차 디자인의 특징이죠.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BMW가 아닌가 싶은데, 아우디라고 다를 것은 없고 메르세데스라고 해도 마찬가지...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비슷한 외관에 비슷한 내장.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어떤 차를 사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으로 인해 구매 당시의 디자인에 대한 만족도나 감동은 크게 줄어든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i시리즈같은 아주 극적으로 다른 디자인이 아니라면 더 이상 신기해 할 일이 없어졌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추세가 좀 아쉽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이 사진을 보고 이 차가 5er인지 6er인지 구분하기란 무척 어렵다. 관찰력이 좋지 않다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새로운 모델만이 가지고 있는 설렘이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런 설렘도 20세기적인 설렘이 되고 만 듯 합니다. 한때 전 모델 전용 부품을 내세웠던 혼다의 과거를 회상하며 말도 안되는 짓을 한 것이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이렇게 된 이유로는 우선 기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원가 절감이라는 논리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요즘은 아예 동일한 샤시에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내장 부품을 사용하면서 개발 비용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으니까요.
특히 점차 빨라지는 모델 교체 주기로 인해 특정 모델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부품의 구성이 점차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한 대를 개발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적어도 4~5년. 이 말은 어떤 자동차를 발표함과 동시에 혹은 이미 그 이전에 신규 모델의 개발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니까 여유를 갖고 새로운 부품과 디자인을 완성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비슷 비슷한 느낌의 디자인에 부품들을 공유하면서 시간과 투자 비용을 줄여나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한편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소비의 성향 자체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는 것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
여러분들은 과연 무엇을 소비하고 계신지요?
애플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과연 아이폰이 정말 좋아서, 혹은 맥북이 너무 환상적인 품질을 지니고 있어서 그들의 '제품'을 이용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애플'이기 때문에 이용하고 계신 건가요? 그러니까 제품의 품질이나 기능, 그리고 성능에 매료되어 그것에 가치를 지불하고 소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들도 다 좋은데, 결국 브랜드가 만들어 낸 어떠한 이미지에 매료되어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 (때로는 오직 후자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것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관점에서 보면 이 시대는 철저히 이미지와 브랜드를 소비하는 시대이지, 제품의 성능이나 품질, 그리고 가격을 소비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자동차의 관점으로 돌아와서, 요즘 자동차 중, 정말 성능이 형편없어서 혹은 조립 품질이 너무 떨어져서, 내구성이 형편없어서 구매가 꺼려지는 자동차가 있을까요? 약간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있겠지만, 적어도 세계 자동차 생산 순위 10위권 내에 들어오는 브랜드들의 자동차는 위 몇 가지 나열된 항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아예 어떤 브랜드는 전통적인 소비 가치 중 일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브랜드 가치로 다 덮어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소비자 스스로가 용인해주는 경우도 있음. 프리미엄 브랜드가 가지는 혜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아주 약간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으며, 조금 아쉬운 점들은 있지만, 그게 형편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분명히 아니라는 거죠. 결국 아주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점으로 다가오는 소비 시대란 이야기도 될 터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분명히 어딘가에 소비의 가치를 두고 비용을 지불해야 할 터. 결국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하나, 자신만의 이미지가 확실히 있는 무형의 무언가에 가치를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브랜드를 소비하는 현재의 소비 실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20만원짜리 유니클로의 캐시미어 코트와 500만원짜리 톰 브라운의 캐시미어 코트를 두고 품질을 논하기 보다는 브랜드 자체의 가치를 논하며 누군가는 500만원짜리 톰 브라운이 더 좋다. 라고 평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 사람들은 코트 자체의 품질도 중요했겠지만, 거기에 브랜드에 대한 자기 스스로가 부여하는 가치가 분명히 있었기에 코트와 함께 그 브랜드를 구매 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러니까 소비의 순서가 개별 제품의 품질 - 브랜드 가 아니라 브랜드 - 개별 제품의 품질 순서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자동차같이 더욱 고가의 소비재에서는 이런 성향이 더욱 더 짙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를 필두로 최근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브랜드 자체의 슬로건을 보다 알기 쉽게 혹은 아예 모호하게 만들어서 소비자들의 인식을 자극하려 하는 것도 이런 풍조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Sheer Driving Pleasure, L Finess,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 Volvo Life...
뭐 이런 슬로건들도 모두 다 기업에서 내린 브랜드의 정체성을 소비자들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거기에 기업의 철학과 역사와 나아가야 할 비전과 더불어서 제품의 성능 특성까지 모두 다 포함되겠죠. 여기에 디자인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디자인이 개별 모델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브랜드의 정체성의 일부를 표현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독립적일 수 없고, 어떤 큰 맥락에 종속되어야 하며, 따라서 패밀리 룩은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3. 렉서스의 얼굴이 무섭게 변하는 이유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의견을 종합해보면, 렉서스의 얼굴이 무섭게 변한 이유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나옵니다. 과거 토요타 자동차들 그리고 10년 전 렉서스의 디자인을 보면 대체로 좀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무난하다는 것이 맞겠죠. 특별히 튀지도 않지만, 특별히 모자라지도 않게... 뚜렷한 맛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토요타나 렉서스의 디자인을 보면 아주 강렬한 맛이 생겨났죠.
강한 맛은 호불호를 보다 명확하게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지독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지독히 싫어하게 되죠. 보편적일 수 없습니다. 지금 렉서스 그리고 토요타의 디자인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죠. 그리고 보편성을 포기하는 회사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매운 짬뽕이 전국을 강타했던 것처럼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우리 집 짬뽕 맛이 더 매워요!!!'라고 기를 쓰고 광고하고 있는 형국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강한 맛이지만, 그 나름의 매력들은 다 있습니다. 어떤 브랜드의 디자인은 첫 맛은 대단히 강하지만 뒤로 가면서 순해지는 반면, 어떤 브랜드는 부드러운 듯 하지만 점점 더 짙어지고 오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또 강한 맛의 수위를 잘 조절해 이전에는 아주 독특한 맛이었으나 업그레이드를 통해 한번 순화시키고 세련되게 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맛, 그리고 브랜드 전체가 가진 맛을 잘 설명하느라 애쓰고 있지요. 렉서스의 디자인이 왜 나날이 괴상해지는가? 라는 질문에 고속도로에서 앞 차에게 보다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라는 답을 주기도 했는데... 아무튼 이것도 디자인을 가지고 브랜드가 가져야 할 인상을 결정짓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라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굉장히 과격해 보이는 디자인이었지만, 최근의 디자인과 비교하면 오히려 차분해보일 정도...
물론 그 디자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강한 인상을 보면 '렉서스'라는 이미지는 정확히 뇌리에 각인 될테니까요. 이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특히 브랜드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품질이나 성능에서 오는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라면, 좋건 나쁘건 이미지 자체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된다는 건 브랜드에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죠. 차라리 나쁘게 인식되는 게 아무런 인식을 남기지 못하는 것보다 나을 정도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 인식을 기반으로 철학이나 역사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 호감도를 전환할 수 있으니 말이죠. 적어도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인식되는 쪽이 더 좋습니다.
어떻게보면 정치가나 연예인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보는데, 차라리 잡음이 들려 올지언정, 아예 무관심 한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이 시대는 정치, 연예, 스포츠, 그리고 소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미지를 먹고 사는 시대라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몇 몇 디자인 관련 칼럼을 읽어보니,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입지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커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엔지니어들의 입지가 확실히 컸던 탓에 그들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다면 현재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소비자들에게 더 큰 인상을 심어주는 시대가 되었고, 그래서 디자이너들의 발언권이나 행동 범위가 보다 깊고 넓어 졌다는군요. 각 회사별로 디자인 센터를 크게 건립하고 디자인을 연구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도가 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도 그렇죠.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밤을 낮 삼아 연구하고 있지만, 그렇게 연구된 성과물들이 점점 더 비슷한 모양이 되어간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어지간한 자동차들에게서는 누가 누구를 닮았다....와 같은 이야기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게 들리죠. 형태가 그만큼 비슷비슷해지니, 거기서 끄집어낼 수 있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고 결국 디테일의 승부를 펼치다보니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도로 교통법규의 강화와 더불어 특히 보행자 안전에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서 자동차 디자인은 점점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결국 기술적 문제와 법률적 문제를 모두 다 아우르면서 자동차 회사의 브랜드까지 포괄해야 하니까 디자인은 더욱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 무인 자동차가 본격화되면 이러한 추세는 더욱 더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예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운전석에 앉는 시대가 된다면, 자동차가 가진 본연의 성능과 운전자 사이에 연결 고리는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시트와 스티어링 휠, 그리고 페달을 밟고 있는 발 끝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의 변화들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완전히 사라지면, 운전자가 아닌 운전자들은 자동차의 성능에 더욱 더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들을 하려하겠죠. 그런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는 동역학이나 에어로다이나믹을 내세우기 보다는 명품처럼 이미지와 정체성을 내세우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할 것입니다. 자동차가 아닌 브랜드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 말이죠.
이런 건 앞으로 점점 더 기대할 수 없는 디자인이 아닐지...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과 철학, 그리고 비전과 라이프 스타일을 소비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주입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되겠죠. 그리고 더 깊은 곳에서부터 고름을 쥐어짜는 듯한 고뇌를 해야 할 겁니다. 대동소이해져만 가는 물리적인 형태와 점점 더 성능에 대한 관심이나 인지에서 멀어져가는 소비 환경에서 사람들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그 시대가 되면....과연 그 때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