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에 대하여 내가 알고있는 것은 부끄럽게도 어릴 때 교과서를 통해 배운 시인의 대표시 "별 헤는 밤", "일제식민강점기의 애국·민족시인", 시인의 "짧은 삶과 죽음"이 전부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도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거나 시(詩)를 사랑해서"가 아니고 학창시절 국어시험에서 한 두문제 더 맞추기 위해 열심히 외웠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늘 한양도성 숲길 걷기에 참여하려고 집결지인 창의문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뜻밖의 버스정류장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하차해야 할 버스정류장 이름은 "자하문 고개·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고나서, 둘러보고 시인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기로 마음 먹는다.('17.07.16)
윤동주 문학관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종로구 누상동에 살던 소설가 김송(金松)의집에서 문우(文友) 정병욱과 함께 하숙하며 이곳 인왕산과 북악산을 거닐면서 시정(詩情)을 다듬었다고 한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이 이 시기에 지은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시대에 태어나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윤동주의 민족정신, 저항정신을 기리고, 시 세계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러한 인연으로, 서울 종로구는 수압을 높여 청운동 일대에 물을 공급해왔던 용도폐기된 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하여 2012년 7월 25일 "윤동주 문학관"을 조성하였다.
●문학관 건물 입구 벽 : 윤동주의 얼굴과 시인의 시 "새로운 길"이 눈에 띈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一九三八. 五. 10.
가는길, 안내
★주 소 :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청운동 3-100)
★가 는 길 :
①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하차 ③번 출구 이용
②버스 1020, 7022, 7212 이용,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버스정류장 하차
★관람시간 : 10:00 ~ 18:00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명절 연휴(신정, 설날, 추석 연휴)
★예약문의 : 02-2148-4175(단체관람시 사전 예약 요함)
★관 람 료 : 무료 ※ 윤동주문학관 해설사 운영(무료 해설)
전시실에 들어가며 입구 벽에는 이런 글이
“...동(冬)섣달에도 꽃과 같은, 어름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시인...” -정지용 서문 中-
제 1 전시실(시인채) 》》》
시인의 순결한 시심(詩心)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으로 "인간 윤동주"를 느낄 수 있다. 9개의 전시대에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한 사진자료들과 함께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다.
※제 1 전시실에 들어가려다 보니 "사진촬영금지"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오네...
데스크 안내원의 "휴대폰 사진촬영은 가능하다"는 대답에 마음이 놓인다.
시인 윤동주
●1917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출생
●1936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 표시로 숭실중학교 자퇴,
용정 광명중학교 4학년 편입
●1938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1940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정병욱과 교류
●1941 정병욱과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1942 부친의 권유로 일본유학 결심. 히라누마(平沼)로 창씨
고국에서 마지막 작품 「침회록(懺悔錄)」을 씀
4월 릿교대 문학부 영문과 입학, 10월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 전입학
●1943 송몽규와 함께 교토 시모가모경찰서에 독립운동 협의로 검거
●1944 윤동주, 송몽규 독립운동죄로 징역 2년 언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
●1945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
북간도 용정 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
●1948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제목으로 시집 출간
윤동주 시인의 소장본(Yoon's Library Collection)
윤동주가 즐겨보던 책들의 표지이다.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던 시집으로는 "백석시집(사본), 정지용 시집, 영랑시집, 을해명시 선집" 이 있다.
일본어로만 읽고 쓸 수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윤동주는 한글로 마음을 다듬어 수 편의 시를 남겼다.
제 1 전시대 --출생, 소학교 시절
윤동주는1917.12.30 간도의 명동촌에서 출생하여 행복하고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인 외삼촌이 세운 민족학교인 명동소학교에 입학했으며, 여기에서 나라와 민족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독립의 열망을 키웠다.
시인이 일요일마다 예배를 다니던 명동교회는 독립운동가들의 비밀회합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제 2 전시대 --중학교 시절
윤동주는 용정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중학교에 편입했다. 그러나 신사참배 거부운동으로 숭실중학교를 자퇴하고, 일제가 세운 광명중학교로 전학하게 된다.
이 때 윤동주는 비애에 빠저 시 "이런 날"을 쓴다.
시 속의 "두 돌기둥"은 광명중학교의 교문을, "오색기"는 만주 국기를, "태양기"는 일본국기를 가리킨다.
자기나라 국기가 없는 땅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슬픈 초상을 그리고 있다.
제 3 전시대 --대학교 시절
1938년 윤동주는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합니다. 연희전문 시절은 그의 삶에서 가장 충실했던 시작(詩作)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존경하던 정지용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북악산과 인왕산을 거닐면서 시상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을 모아 시집을 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동주의 첫 시집은 죽은 지 3년 후에나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4 전시대 --연희전문학교 졸업
시 "별 헤는 밤"을 쓴 그는 자신의 첫 시집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출판비용 300원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해야 했지요.
결국에는 자신의 시집을 일일이 필사하여 가장 친한 친구 정병욱에게 주고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 훗 날 그가 옥사하자 정병욱은 이 필사본을 잘 간직했다가 해방 후 유족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별 헤는 밤
윤 동 주
1941.11.05 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
.
<하 략>
제 5 전시대 --고뇌의 시간
이 시 "참회록"을 쓴 닷새 후인 1942닌 1월 29일, 윤동주는 창씨를 합니다(학적부의 성명이 尹東柱→平沼東柱),
일본 유학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시인의 영혼과 생활인의 현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윤동주의 모습이 시 여백의 낙서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습니다.
자신의 조선 이름을 쓴 윤동주의 필체를 들여다보면 식민지 지식인의 슬픔, 민족시인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제 6 전시대 --일본유학
성(姓)을 바꾸면서까자 선택한 일본유학, 그러나 세상은 전쟁의 그림자로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시체제로 들어간 일본은 군인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대학생들에게 단발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사진 속 윤동주 역시 짧은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여름방학 때 고향으로 와 사촌 송몽규와 사진을 찍은 그는 고작 보름 만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제 7 전시대 --후쿠오카 감옥
사상범으로 몰린 윤동주는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됩니다.
독방에 감금된 그는 하루종일 고된 노역을 하고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성분 불명의 주사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스물일곱의 나이로 운명했습니다.
일본의 형무소 중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제 8 전시대 --시인의 죽음
윤동주가 절명한 지 이틀 후인 2월 18일, 용정의 고향집으로 사망통지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은 연희전문 문학지 「문우」에 실렸던 그의 시 《새로운 길》을 낭독했습니다.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발간했습니다.
1990년 8월, 대한민국정부는 윤동주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제 9 전시대 --시인, 별이 되다
모자에 진 작은 주름 하나도 견디지 못한 사람, 영혼의 구김도 참을 수 없었던 사람, 그는 섬세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마저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랐습니다.
우물--시인 생가의 우물을 복원하여 제 1 전시실 중앙에 설치해 놓았다
영화
《《《 제 2 전시실 Gallery 2(열린 우물)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중정(中庭)을 만들었고, "열린 우물"이라고 명명했다.
물탱크에 저장되었던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끼도록 해 준다.
《《《 제 3 전시실 Gallery 3(닫힌 우물)
또 하나의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든 닫힌 우물이다.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조성된 이곳에서는 시인의 일생과 시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볼 수 있다.
영상물 상영실
등받이가 없는 의자 6개가 놓여있다.
천장에 있는 물탱크 출입구가 닫히고 실내가 캄캄해지면 영상물이 상영된다.
1회 상영은 약 11분이 소요되며, 매 시 15분, 30분, 45분에 상영이 시작된다.
물탱크 출입구와 사다리가 걸렸던 흔적
우측 천정에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수도가압장 시절 물탱크에 출입하던 출입구다.
벽에는 사다리가 매달렸던 흔적도 보이고.
영상물을 상영하기 전후에는 이 출입구룰 개방하여 했빛이 들어오도록 한다.
천정에 출입구를 열기 전...실내가 컴컴하다
시인의 언덕(산책로)
문학관 뒤로 펼쳐진 "시인의 언덕"은 산길 굴곡을 타고 오르며 바람을 쐴 수 있는 산책로다.
한가로운 산책보다는 청년시인의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윤동주의 순결하고 꼿꼿한 시 정신을 반추할 수 있는 곳이다.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30
尹 東 柱
시인의 언덕에서 보이는 남산
시인의 언덕에서 보이는 북한산
시인의 언덕을 내려오며 보이는 문학관 제 3 전시실(물탱크)
※자료출처 : 윤동주 문학관
끝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첫댓글 그 유명한분이27세에갔어 오호통제라 잘보고갑니다
선배님의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문학관을 돌아보면서 일제식민통치하에서 시인의 애국.애족 정신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던 창씨, 생체실험 등 일제의 잔혹함도 확인했고요.
윤동주 시인 ~
그 천재적인 훌륭하신 시인께서
왜 하필 그 시대에 태어나서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가셨을까 ~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알아가다보니 일제강점기의
일본의 만행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네요.
그 시대에 태어나셔서 그토록 훌륭한 시상이
떠 올랐을까요? ~ 27세에 가셨다는 아까운 윤동주시인 ~
이렇게 훌륭한 거작을 만드시는데 몇날이 걸리셨을지 ~
오타가 나올까봐 검토해보고 또 해보기를 거듭하신다는 후배님 !!!
윤동주시인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해주신 후배님 감사합니다.
국민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의 시집을 빌려 읽으셨다는 말씀에
선배님의 시 사랑에 놀랐었습니다!!!
이 기회에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 더 깊게 잘 이해하셨으라고 생각되고요.
제가 게시한 본문보다 더 긴 댓글? 을 달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올해가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신지 100주년 되는 해인데~~~
시인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젊은나이 27세에 가셨지만은
시인께서 남기신 많은 작품은 우리민족 대대로 이어지겠지요
선배님!!!
보기좋게 정리된 글과 사진
자~알보고 나갑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시고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
제 1 전시실(시인채)에 있는 9개의 전시대를 들여다 보며 잘보이지는 않았지만 한자 한자
자세히 읽어 보았습니다.
유년기부터 시인이 별이 될 때까지를 읽어보니 시인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겠더라고요.
이렇게 끝까지 다 읽고, 보아 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슴을 드려야 할지...
시인의글과 어우러진 선배님 글 자알 읽고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배님 글 읽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정말 학생이 됀듯 동심이랄까 암튼 마음 정신 정화가 돼는것 같아서 좋아요
이케 촬영에 설명에 긴시간 투자해주시고 맘 담아 여기에 내려 놓으시는거 감사합니다
일우님의 학창시절에도, 지금까지도 윤동주 시인에 대하여는 내가 서문에서 이야기한 정도만 알고 있었지요?
문학관을 가서 자세히 알고나니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듭디다.
일우님도 언제 시간이 나면 문학관도 들려보고, 인근의 인왕산과 북악산도 한번 다녀오세요.
이렇게 후배님께서 과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인왕산에서 북악산 갈때
밖에서만 봤는데
한번 들어가 봐야 겠네요
선배님 정보 감사합니다.
처음 문학관을 봤을 땐 건물 자체에 담겨있는 심오한 의미도 모르고 너무 초라하다 생각했지요.
여러기관으로부터 건축물에 관한 상을 수상했더라고요.
내부를 돌아보니 시인님의 애국, 애족정신에 바탕을 둔 詩作活動을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시인의 삶을 생각하고 머리 숙이며 문학관을 빠져 나왔습니다.
선배님께서 정성드려 만드신 작품을 보고 누구도 간단한 뎃글을 달지 못했네요~~ㅎㅎㅎ
시인을 위한 문화관의 규모와 정성드려 만들고 전시한 전시장의 규모도 크고 무게있어 보이네요~~
윤동주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 해 예술의 전당에서 윤형주가수가 주관하는 콘서트가 있다고
해서 친구들 여러명이서 내일 구경을 가기로 했는데 마침 선배님 작품을 보고 가니 기대도 되고
더 뜻 있을 듯 싶습니다~~
문학관에 전시된 사진을 많이 올리고 또 시인의 삶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옮겨보려 했습니다.
시인 탄생 100주년 콘서트에 친구분들과 함께 가신다고 하니,
차제에 제가 올린 게시글을 한번 쯤 더 읽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돌지도...
지난주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송구스러우며, 이런 뜻있는 기회 마련하신데 대해 감사..
선배님 여기서 공부 할게 너무 많은데 오늘은 일부만 공부하고 다음에 또 방문 하겠습니다..
좋은 자료와 자세한 설명을 올리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 하셨겠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차기 부임지가 정해지기까지는 시간여유가 좀 있겠네요.
이 기회에 좋아하시는 이 산 저 산 많이 다녀오시고.,..
공부할게 아직도 남았다구요?
그럼 숙제를 드렸으니 다시 한번 오셔서 나머지 공부를?ㅎㅎ
@19기 이충렬 네 선배님 21일까지 2주동안 교육을 마치고 24일부터 시흥 배곧 서울대 캠퍼스 부지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가끔 그곳을 지나쳤지만, 애써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눈길 주면 들어가 봐야 할것 같아서요. ㅎ)
이렇게 선배님을 통해서 보게 되네요....
말씀처럼 시 몇편으로 교과서 에서나 만나게 되던분을...
애써 외면했던 제 시선을 반성해 보며 선배님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 드립니다. 심혈을 기울였을 선배님의 견학기를
이렇게 순식간에 보고 가는것도 죄송 스럽구요~~~
시인의 문학관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하 돌아 보게되어 송구스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지녔던 시인의 애국애족 정신에 감탄했고요, 젊디절은 나이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시인의 삶이 안타까웠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잔학함도 느낄 수 있던 기회가 도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