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영향을 끼치는 대표적 요소들
음악은 쉽게 주변의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변화를 겪는다.
여기에는 세속음악 뿐 아니라 교회음악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역사에 의해 잘 증명된다. 그러면 음악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 요소는 무엇일까. 아래에서는 음악의 본질적 성격과도 관련된 이러한 요소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음악은 그가 기초하는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음악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음표, 쉼표 등)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한 곡에 붙여지는 가사에 따라서 그 작품이 교회음악이 될 수도 또는 세속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멜로디 자체는 실제로 대체로 중립적이다). 즉 음악장르를 규정짓는 것은 음악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음악에 붙는 언어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세속곡이 가사를 성경적으로 바꾸어 교회음악이 된 예는 수없이 많다.
예, 하쓸러작곡, 바하편곡의 “오 거룩하신 주님 그 상하신 머리”나 루터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원래 세속적 민요에서
그 멜로디가 취해진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곡 중 상당수가 헨델 자신이 쓴 세속곡에서 인용되었다.
수많은 르네상스 시기의 미사곡은 샹송에서 가져온 이른바 “패로디 미사”이고, 바하의 교회칸타타 중 상당수가 영주의
생일이나 신년인사를 위해 쓰여진 세속 칸타타이었다. 세속 칸타타가 한번에 연주되고 마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해 바하에 의해 빈번하게 연주될 수 있는 교회칸타타로 가사가 바뀌어 교회칸타타가 된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 시에 붙인 “영문밖의 길”은 원래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일본 유학생(김신덕?)에 의해 쓰여진 “사(죽음)”의 찬미가이었다.
우리 찬송가 책에도 서양의 세속곡들(미국, 영국, 독일 국가 또는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서 취해진 찬송가가 수없이 많다.
2) 음악은 문화의 지배를 받는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찬송가는 북(드럼)에 맞추어 반주된다.
아메리카의 찬송가는 벤조나 기타아 또는 피아노에 의해 반주된다.
유럽의 찬송가는 거의 예외 없이 오르간에 의해 반주된다. 이에 반해 러시아의 찬송가는 전혀 반주되지 않는다.
한국의 찬송가는 피아노나 오르간에 의해 또는 유럽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피아노와 오르간 두 개의 악기에 의해
동시에 반주된다. 한국 예배에서 기타나 드럼에 의한 반주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아프리카인에게서 예배찬송 중 춤이 추어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음악은 불려지는 장소의 문화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것, 즉 문화적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3) 음악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유럽의 교회 예술음악은 15․16세기에는 무반주로 불려졌으나 17세기 이후에는 오페라의 영향으로 자주 오케스트라에 의해 반주되었다. 최초의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6세기 이후)는 우리에게 사찰에서의 염불처럼 낯설다.
이것을 대체한 16세기 독일의 코랄 또한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 거의 불리지 않을 정도로 이제 옛스럽다.
칼빈의 시편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 그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음악이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간의 변화에 굳세게 저항했던
카톨릭도 단성부의 그레고리안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다성부 음악을 오래 전에 허용했다.
4) 한국음악에서의 문화와 시간의 지배: 한국의 찬송가도 예외 없이 문화와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
민속적 기법에 의한 찬송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민속기법(예, 5음음계)에 의한 곡이 무속적인 것, 즉 무당과 굿(장단 이름도 하나는 심지어 굿거리장단이라 칭해짐),
귀신, 점쟁이 등을 많이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거부되어 왔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기껏해야 추수 감사절 때만 부른다.
이것은 전통적 기법이 무속을 대표하는 한국의 문화와 오랫동안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속곡이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이것들이 젊은 사람들에 의해서 점차 수용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은 옛날의 무당의 의미를 경험하지 못했다.
때문에 왜 민속 곡이 무속과 관련되어야 하는지를 잘 납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민속곡은 단지 전통적일 뿐이다.
즉 민속적 기법에 의한 찬송가는 시간이 더하여 감에 따라 원래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실하고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아마도 한 세대가 지나면 이런 곡들은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될 것이다. 이처럼 시간(역사)은 옛것을 새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부정적인 의미를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거꾸로의 현상도 있을 수 있다.
종합하면 음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저히 문화와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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