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가 온다
2009년 7월 9일 당시만 하더라도 야당이었던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대표는 자신이 집권하면 Ofcom(영국정보통신청)을 비롯하여 납세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방만한 반관영 감독규제기구를 대폭 정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보다 열흘 전에 스카이TV, 선, 타임스 등을 소유한 루퍼트 머독의 아들이며 머독 제국의 2인자였던 제임스 머독은 한 강연에서 전방위적 경쟁이 벌어지는 언론 세계에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면서 공룡으로 큰 BBC와 Ofcom의 존재는 다양성과 자율성을 생명으로 하는 영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공영방송 BBC와 감독기구 Ofcom을 성토했다. 보수당 정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임스 머독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캐머런의 발언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캐머런의 Ofcom 성토는 헛되지 않았다. 두 달 뒤인 9월 10일 제임스 머독은 런던의 조지 클럽에서 캐머런을 만나 다음 총선에서 선은 보수당을 밀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선은 2012년 1월 현재 판매부수가 하루에 275만부가 넘으며 열독자는 800만명에 육박한다.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인구는 2007년 현재 5400만명인데 이 중 19세 이하는 약 1300만명이다. 그러니까 20세 이상의 성인 4100만명 중에서 5명의 1명꼴로 대중지 선을 매일 읽는다는 뜻이다. 선의 가공할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가 1997년 노동당 출신의 총리로 당선된 것도 선의 지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었다.
신문 선의 영향력은 그러나 머독 제국의 위성방송 스카이의 영향력과는 비교가 안 된다. 스카이TV 가입 가구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천만을 돌파했다. 무려 2500만명이 머독 제국의 TV를 매일 본다는 소리다. 30년 전 영국 텔레비전 시장에 처음 진출한 호주 출신의 머독이 의회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의 지도자를 누구로 앉힐 것인지를 좌지우지하는 밤의 황제로 성장한 원동력은 신문 시장과 방송 시장에서 쌓아올린 엄청난 지배력이었다.
스카이TV는 처음에는 적자였다. 그러다가 영국위성방송공사와 합병하여 BSkyB로 이름을 바꾸고 영국위성방송공사의 굵직한 광고를 등에 업고 흑자로 돌아섰다. 머독은 경쟁자를 악착같이 거꾸러뜨리는 전략으로 영국의 위성방송 시장을 독점화했다. 2006년 NTL이 ITV를 인수하여 위성방송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자 ITV 지분의 17.9%를 사들여 NTL의 진입을 봉쇄했다. NTL을 인수한 버진미디어가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르자 보유한 인기 프로그램들의 판권을 비싸게 부르는 수법으로 버진미디어를 곤경에 빠뜨렸고 결국 버진미디어는 텔레비전 사업을 스카이에 넘겨야 했다.
머독 제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현재 39.1%의 지분을 가진 BSkyB를 전부 사들일 작정으로 캐머런이 총리가 된 뒤로 정치권에 전방위 로비를 폈다. 머독에게 눈엣가시는 Ofcom과 보수당과 연정을 한 자유민주당 출신의 빈스 케이블 기업장관이었다. 케이블은 머독 제국이 스카이 지분을 백퍼센트 보유할 경우 영국 언론의 다양성이 침해될 소지가 없는지 Ofcom에 2011년 12월 31일까지 보고서를 내달라고 11월에 요청한 상태였고 그 보고서를 토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이 문제를 회부할 것인지 결정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12월 22일 케이블 장관이 머독 제국과 전쟁을 해서라도 스카이 장악을 막겠다고 사석에서 한 발언이 언론에 흘러나갔고 머독 제국은 스카이, 선 같은 산하 언론을 앞세워서 편견을 가지고 임하는 케이블 장관은 결정을 내릴 자격이 없다며 총공세를 펼쳤다. 노동당 정치인들도 맞장구를 쳤다. 결국 결정권은 케이블 장관으로부터 제러미 헌트 문화언로스포츠 장관한테로 넘어갔다.
눈엣가시였던 케이블 장관을 밀어내고 껄끄러운 Ofcom도 대폭 축소시켰으니 머독의 스카이 완전 장악은 시간 문제였다. 그러나 괴한에게 피살당한 밀리 다울러라는 한 여학생의 전화기를 머독 산하 뉴스오브더월드라는 주간지에 고용된 사람이 해킹하여 범죄의 중요한 단서를 없앤 사실이 들통나고 청문회가 열리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머독 부자는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주변인들의 증언이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결국 제임스 머독은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머독 제국은 스카이TV 인수를 접어야 했다.
그런데 최근 빈스 케이블 후임으로 결정권을 손에 쥔 제러미 헌트 장관의 언론보좌관이 머독측과 수시로 만나서 스카이 인수, 파일공유 정책, 지적재산권 문제 등 중요한 현안을 협의했고 루퍼트 머독이 원하는 쪽으로 정책이 충실하게 입안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언론보좌관이 옷을 벗었다. 헌트 장관은 자신은 보좌관이 머독측과 그렇게 깊은 교감을 나누는지 몰랐다고 오리발을 내밀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일개 보좌관이 상사의 재가 없이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청문회에서는 또 데이비드 캐머런이 보수당 당수가 된 뒤로 지금까지 머독 제국의 최고위 인사들과 모두 14번이나 만났고 지난 2010년 12월 루퍼트 머독의 총애를 받던 여성 편집인의 집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도 참석하여 편집인이 경찰한테서 빌린 말까지 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제임스 머독이 캐머런 총리에게 제러미 헌트 장관한테서는 빈스 케이블 장관과는 달리 객관적인 판단을 기대한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루퍼트 머독은 영국이 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내리고 민영화를 전방위적으로 도입하면서 공동체의 공익보다는 부자의 사익을 중시하는 나라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나마 머독의 무소불위 권력에 제동이 걸린 것은 양식 있는 소수의 기자들이 끈질기게 머독 제국의 비리를 추적했고 이들이 밝혀낸 사실을 BBC 같은 공영방송이 공정하게 보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머독이 스카이TV를 완전히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면 머독 제국은 압도적인 시장 장악력으로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BBC를 미국의 공영방송 PBS처럼 유명무실한 존재로 만들었을 것이고 머독 일가는 영국 왕실보다 몇천배 막강한 힘을 휘두르면서 대대손손 사익을 세습해도 안전한 나라로 영국을 철저히 망가뜨렸을 것이다.
한국에도 기득권자의 불법과 비리를 제보하고 고발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가 있을 경우 그런 고발을 BBC처럼 어느 정도 공정하게 다루어주는 언론이 없다. 암으로 죽은 동생의 부인을 강간하려 했다는 사실이 봉변을 당한 당사자의 진술로 밝혀졌고 본인이 조카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고 사죄하는 육성 녹음까지 공개되었는데도 포항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와 버젓이 당선된 김형태는 KBS 간부 출신이었고 2007년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지역언론특보단장이었다. 지역주의에 찌든 유권자가 워낙 많긴 하지만 밀리 다울러라는 여학생을 해킹했다는 BBC 보도의 만분의 일이라도 한국 공영방송이 죽은 아우의 아내를 강간하려고 한 천인공노할 범죄의 장본인이 새누리당 후보임을 제대로 알렸다면 그런 인간 말종을 자기 지역의 대표로 태연자약하게 뽑을 유권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정의를 옹호하고 불의를 응징하는 수준 높은 민주주의는 수준 높은 유권자에게서 나오지만 수준 높은 유권자는 수준 높은 언론에서 나온다. 유권자의 수준이 곧 언론의 수준이다. 한국에는 BBC는 없다. 그러나 대신 나꼼수가 있다. 부자와 기득권자만 섬기는 사영방송 KBS가 외면하는 이명박과 하수인들의 비리가 그나마 알려지면서 이번 총선에서 서울의 20대가 30대와 40대를 압도하고 50대와 60대에 육박하는 64.1%라는 경이적 투표율을 보인 것은 나꼼수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머독 제국 산하의 신문지 선은 250만명이 사 보고 스카이TV는 천만 가구의 가입자를 자랑하지만 나꼼수도 회당 천만명이 듣는다. 선의 구독자와 스카이TV 가입자는 시시껍절한 연예인 사생활이나 축구 시합을 읽고 보지만 나꼼수 청취자는 한국 사회의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도래를 갈구한다. 천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불의에 치를 떨고 정의를 목말랐다는 것, 이것이 한국의 희망이다.
나꼼수가 영국에 온다. 5월 26일(일) 오후 2시30분 런던대 킹스컬리지의 Guys Campus에 있는New Hunt’s House에서 열린다(입장권 구입 등 자세한 내용은 http://ddanzieu.site11.com 참조. / 나꼼수 영국 팬카페는 cafe.daum.net/NaGgomsu). 20대 유권자를 대거 투표장으로 끌어내 수도권 압승에 결정적 기여를 했는데도 자신들의 여론 주도권과 의제 설정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자들로부터 총선 패배의 주범으로 몰린 나꼼수의 영국 공연은 청취자 이천만명을 향한 나꼼수 2기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 그때 한국은 머독 제국보다 훨씬 막강한 정의의 언론을 등에 업고 정의로운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해서 나꼼수에게 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