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을 ㅈ으로 바꿔 말하면
고영서
시간은 진주가 되고
술은 장난이 됩니다
밥으로 빵을 빚던 몽상가는
이상한 세계에 갇힌 채
피부를 이식받았습니다
변두리 구석을 비추던 몹쓸 그림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발걸음을 되돌려
우리가 필요없는 날개들을 모아
달빛 어른거리는 창가에 둡니다
아침이면 잠에서 깰 듯 말 듯
추억이 기지개를 켭니다
추억은 새로운 양식이 됩니다
ㅅ을 ㅈ으로 바꿔 말하면
순결은 정이 되고
순수는 짐이 됩니다
오늘이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처럼
입술을 굳게 닫고 뒤에서 서성입니다
반짝이던 혀는 방황하며
끝내 길을 잃고 맙니다
바꿔도 바뀌지 않는 건
당신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린 민들레를 위하여
고영서
민들레에게도 영토가 있다*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려운 게 없어서 저리 쉬웠을까
하늘 끝까지 밀어 올리려다
터진 틈 사이로 빼꼼히 내민 얼굴이
힘들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찬란하다
쉬웠을 리 없다
숨이 차올라 울음이 치솟았을 것이고
피는 쏠려 붉은 산을 불렀을 것이다
해를 향하던 눈동자가 놀라 터졌을 때
애타는 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은 것처럼
그리워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다가가 그 노란 빛을 안고서
머리칼 만져주고 등 토닥여주고
입에서 나오는 숨 즐기고 있을 때
바람이 아기의 손등 핥아 주고
아기는 잠에서 깨어났다
마른 땅 갈라진 틈 사이에서
눈부심이 일렁거렸다
아기의 영토가 확장되고 있었다
* 이해인 시집 <민들레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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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서 시 두 편
고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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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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