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에 관한 시모음 27)
한해을 넘으며 /장인성
임진년의
한장 남은 달력
푸른 시절 다 뜯겨진 야윈 몸
다사다난했던 날들의
곤한 잠 깨워주던
새벽닭 울음 소리
근하신년
빌었던 소망을 앞세우고
황소처럼 걸어온 한해의 언덕
단풍 곱던 숲 저만치
붉게 타는 석양 노을 바라보며
소매 깃 여미고
버겁게 달려온 언덕 넘어
고난이 넌짓 웃어주는
한해의 고마운 세월 앞에
나의 허물 벗어 놓고
그간에 감사했던 사람
나로 하여금
가슴 아팠던 이들 앞에는
두 손 모으고
영원한 안녕을 빈다.
송년단상 (送年斷想) /이유미
노을빛 바다로 깃드는
묵은 해
여운이 긴 그림자 바라보며
촉촉해지는 눈가장자리
지천명의 세월도
어느 덧
고갯마루 넘어서
비탈길로 내닫습니다
가슴을 밟고 지나가는
육신의 질병
성큼 다가서는 죽음
하나 둘......
곁을 떠나는 벗님들
남겨진 우리들의 시간이
누군가의 삶에 불쏘시개가 되는
마지막 잎새이기를
소망합니다
송년의 노래 /藝香 도지현
이제 태양도 기울어 노을을 만들고
밤으로 향해가는 사람의 발길은
보금자리를 찾아 허덕거리며 가는데
무엇을 위해 지금껏 달려왔던가
쉼 없이 달려온 세월의 궤적은
깊은 웅덩이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힘줄이 불끈하게 움켜잡은 손은
무언가 많이 쥐고 있었던 것 같은데
펴서 보면 허허로운 공일뿐 보이지 않는다
참 별난 한 해를 숨 가쁘게 살았다
혼란을 틈타 스며든 생소한 바이러스가
곳곳을 타격해 삶의 의지를 잃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민족이었던가
그 정도에 위축될 우리가 결코 아니지
새해가 붉은 해와 함께 밝으면
희망이 용틀임하며 저 동해에서 솟으리
송년 즈음에 /이명희
옳고 그름의 경계는
마음 속에 있다고
남루[襤褸]한 새 한마리
어르고 구슬리며
바람의
사슬에 걸린
매듭을 풀고 있다
한해를 보내면서. /장수남
이천십팔 년 새해엔.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
한 세기 암울했던 비극의 역사
동해바다 푸른 숲. 피 먹구름
불태우고 둥근 해 힘차게
솟아올라라.
용광로처럼 시뻘겋게 활활. 새
희망이 솟아라.
어린 우리꿈나무들 아름다운세상
잘 자라는 큰 나무로 가꾸어
힘 있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
집집마다 대문열고
얼굴 마주보며 웃음꽃이 피는
세상 꿈이 있고 희망찬 한해를
맞이하자.
평창 올림픽 평화의 횃불
뜨겁도록 사랑하고 하늘 높이
치켜 올리자.
어둡고 그늘진 곳 촘촘히
찾아다니며. 횃불 환하게 내리어
슬프고 어렵고 암담했던 시간
모두 씻어버리고 행복하자.
연말연시 /靑山 손병흥
마치 일의 끝맺음이나 글의 끝맺음처럼
송년을 통해서 한해의 끝자락 마무리 하는
가정적이고 가족적인 연말 분위기에 빠져든
지난날 경건해진 마음자세로 돌이켜보는 시기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되는 기대와 설렘 소망
감출 수 없는 각오와 다짐 간직하고픈 새해설계
더불어 사람과 사람 간에 온정 나누는 연말모임
이어지는 첫사랑 같은 신년계획 세워서 맞이하고픈
희망찬 새해 행운 만복 듬뿍 넘치는 덕담으로 느껴볼
새 희망 활기찬 세상 새롭게 가슴 따뜻해지는 새해맞이
촛불 켜는 밤 /이해인
12월 밤에 조용히 커튼을 드리우고
촛불을 켠다.
촛불 속으로 흐르는 음악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
가고 있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이들의 수없는 얼굴들을 그려본다.
내가 사랑하는
미루나무, 민들레 씨를, 강, 호수, 바다, 구름, 별,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본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밤,
시를 쓰는 겨울밤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1) 평화로 가는 길은
이 둥근 세계에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하지만
가시에 찔려 피나는 아픔은
날로 더해 갑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먼 가요
얼마나 더 어둡게 부서져야
한줄기 빛을 볼 수 있는건가요
멀고도 가까운 나의 이웃에게
가깝고도 먼 내 안의 나에게
맑고 깊고 넓은 평화가 흘러
마침내 하나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울겠습니다
얼마나 더 낮아지고 선해져야
평화의 열매 하나 얻을지
오늘은 꼭 일러주시면 합니다
2)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내가 태어나 숨을 쉬는 땅
겨레와 가족이 있는 땅
부르면 정답게 어머니로 대답하는
나의 나라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마냥 설레고 기쁘지 않은가요
말 없는 겨울산을 보며
우리도 고요해지기로 해요
봄을 감추고 흐르는 강을 보며
기다림의 따뜻함을 배우기로 해요
좀체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습관처럼 나무라기만 한 죄를
산과 강이 내게 묻고 있네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며 고백하렵니다
나라가 있어 진정 고마운 마음
하루에 한 번씩 새롭히겠다고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겠다고--
3)가족을 생각하면
가족이 그립고
집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집이 있어도 가족은 없는 쓸쓸함
가까운 사람들이 만든 외로움의 추위를
사랑으로 녹여 할 계절입니다
놀러 오라 초대해 놓고도
막상 전화 하면
집에 없는 사람들이 많아 슬퍼요
무에 그리 바쁜지 어디로 나갔는지
대답 좀 해 보실래요
함께 웃고 함께 밥 먹는 기쁨으로
평범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되세요
눈 내리는 12월엔
손님이 머물 빈 방도 하나 준비하며
행복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세요
4) 좋은 이웃 되기
'하느님을 찾았으나 뵈올 길 없고
영혼을 찾았으나 만날 길 없어
형제를 찾았더니 셋 다 만났네'
라는 말이 적힌 쪽지를
벗에게 전해 받고 생각에 잠깁니다
나 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사랑으로 찾아 나서면
길이 열리리라 믿고 희망하면서--
어려운 이웃 찾아 멀리 갈 수 없으면
매일 만나는 이들에게라도
말과 행동으로 정성껏 인내하는
작은 사랑부터 실천해야합니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좋은 이웃으로
다가설 수 있을테니까요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5) 용서하기
용서해야만 평화를 얻고
행복이 오는걸 알고 있지만
이 일이 어려워 헤매는 날들입니다
지난 1년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한 시간들
무감동으로 대했던 만남들
무자비했던 언어들
무절제했던 욕심들
하나 하나 돌아보며
용서를 청합니다
진정 용서받고 용서해야만
서로가 웃게 되는 삶의 길에서
나도 이제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따지지 않고 남겨두지 않고
일단 용서부터 하는법을
산타에게 배우는 산타가 되겠습니다
6) 친구를 위하여
올 한해도
친구가 제 곁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잘 있지? 별일 없지?
평범하지만 진심어린
안부를 물어오는 오래 된 친구
그의 웃음과 눈물 속에
늘 함께 있음을 고마워합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 보다 깊은 신뢰로
침묵 속에 잘 익어
감칠 맛 나는 향기
그의 우정은 기도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음악입니다
친구의 건강을 지켜주십시오
친구의 가족들을 축복 해 주십시오
7)아픈 이들을 위하여
몸 마음이 아파서
외롭고 우울한 이들 위해
오늘은 무릎 끓고 기도합니다.
고통을 더는 일에
'필요한 힘과 도움 되지 못하는
미안함 부끄러움
면목없음 안타까움
그대로 안고 기도합니다.
정작 위로가 필요할 땐 곁에 없고
문병을 가서는 헛말만 많이 해
서운할 적도 많았지요?
'자비를 베푸소서!'외우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이 가난하지만 맑은 눈물
작은 위로의 기도로 받아주시면
제게도 작은 위로가 되겠습니다
8) 눈사람 부모님
날마다 자식들이 보고싶어
한숨 쉬는 어머니
그리움을 표현 못해
헛기침만 하는 아버지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하얀 눈사람으로 서계시네요
아무 조건없이 지순한 사랑
때로 자식들에게 상처 입어도
괜찮다 괜찮다
오히려 감싸안으며
하늘을 보시네요
우리의 첫사랑인 어머니
마지막 사랑인 아버지
늘 핑게 많고 비겁하고
잘못 많은 우리지만
녹지 않는 사랑의 눈사람으로
오래오래 우리곁에 계셔주세요!
9)어린이에게
잃었던 동심 그리워
어린이를 만납니다
맑은 눈
정직한 마음 찾고싶어
갓 태어난 아기를 안아봅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혼잣말의 기도로 부탁합니다
다시 시작하게 해 다오
다시 노래하게 해 다오
거짓 진실
거짓 평화
거짓 사랑은
처음부터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 다오
어른도 어린이처럼
꿈을 많이꾸어 행복한 나라에서
너처럼 웃으며 살게 해 다오
10)감사의 기쁨
감사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엔 해가 뜨고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하루 내내 한달 내내
그리고 일년 내내
감사하며 살았지만
아직도 감사는 끝나지 않은
기도의 시작일 뿐입니다
받은 은혜 받은 사랑
잊지않고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베푼 관심 베푼 사랑도
돌아보면 이기심 투성이라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다시 오는 새해에는
더 많이 감사해서 후회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감사의 기쁨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