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김 명 화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을 잡으러 다닌다. 아직은 가을이 저 멀리 있어 잡힌 잠자리들이 어리다. 꼭 쥐면 찢어질 것만 같아 살포시 잡고 손녀의 손가락사이에 날개를 나란히 끼워줬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아이는 또박또박 수를 센다. 재미있으니 아픈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잡은 여린 손이 뜨겁다. 얼른 집으로 올라왔다. 욕실에 물을 받았다. 함께 물장난을 친다. 이 방법이 가장 열이 빨리 내린다.
“외할머니 잠자리는 어디서 자?” 잠 오는 눈을 비비며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집에 가서 자지. 아기잠자리 엄마한테 보내줄까?” 끄덕이는 아이의 손가락에 다시 잠자리를 끼워줬다. 베란다 문을 열고 손녀는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벌렸다. 날개를 잡혀있던 잠자리들은 뛰어내리는 놈, 위로 날아가는 놈, 각자방향으로 날았다. 아이는 딸기가 그려져 있는 잠자리 위에 곤히 잠이 들었다. 체온계를 살며시 귀에 대고 열을 재어본다. 어제처럼 깨지 말고 푹 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곁에 누웠다. 며칠 전 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 서럽게 울었다. 수족구병이 걸린 어린 딸을 나에게 맡기고 돌아서는 딸이 안쓰러워, 알리지 않으려 하였으나, 결국은 늦은 밤에 영상통화를 걸고 말았다. 화면 속 모녀상봉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겨우 울음을 멈추고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드려다 보았다. 이렇게 좋아하는 할머니가 옆에 있는데도 잠들지 못하다니….
갑자기 옛날 생각에 목젖이 울컥하고 나의 숨길을 막았다. 어린 동생이 많이 아파 지금의 손녀만 한 딸을 자주 보지도 못한 고모 집에 마겼었다. 그저 현실에 내 생각만 하고 낯선 곳에 맡겨졌을 아이는 조금도 배려하지 못한 결과,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이들 고모와 딸이 모두 엄청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시집가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이 순간에도 딸아이는 그때의 기억을 힘들어하고 아파했다. 하루 종일 통곡을 하였을 어린 딸을 생각하며, 사죄하는 마음으로 손녀를 돌보고 있다.
오늘도 남아있는 날 중 가장 젊었던 하루를 보내고 누워서 불을 끈다. 멀리서 아련하게 들리던 소쩍새소리가 산을 열어놓은 것처럼 가깝다. 숲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개구리들이 합창하고 실개천이 탬버린을 잘잘 흔든다. 눕는 것이 이렇게 편하다니…. 산속 무덤 속의 나를 느낀다. 나를 영원히 쉬게 해 줄 안식처인 잠자리는 어디일까. 환경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로 최근 들어 화장률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다. 나도 죽으면 가루가 되어 납골당 항아리 속에서 웅크리고 새우잠 잘 것 같다.
내 유골함의 끝은 어떨까. ‘세 평의 땅도 봉분도 필요 없다 항아리에 넣지 말고 뼛가루라도 숲에 길게 뿌려다오.’ 육신 그대로 스며들고 싶다. 선잠 자다 일어나는 지금처럼. 영혼이 간혹 눈떠 숲 속 움직이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싶다. 허리가 아파 앉는 것보다 눕는 것이 편한 요즘 부쩍 이렇게 눕고 나면 이 자리가 산자의 무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손녀의 규칙적인 숨소리에 잠시 나를 일으킨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 책상에 앉아 하릴없는 낙서를 하고 있다.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난다. 나를 매화야 국화야 부르시며 아껴주신 분, 그분은 아픈 곳 없이 일주일정도 누웠다가 하늘나라 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을 안아 문을 보게 하라 하시고는 방문을 열고 곱게 눈을 감으셨다. 사흘 뒤 흩어지는 벚꽃을 상여 위에 얹고 춤추듯 흔들리며 산으로 가셨다. 지금 그 자리가 편하신지 할머니에게 묻고 싶다.
채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아 허리에 무리가 오고 있다. 누워야겠다. 산자들이 눕는 무덤인 잠자리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해야겠다. 부디 내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무기인 건강이, 녹슬고 이빨이 나가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온열로 달구어놓은 침대에 몸을 눕힌다. 저녁때 날려 보낸 잠자리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까? 오늘 우리들의 놀이에 다쳐 잠을 뒤척이지는 않을까 잠시 마음을 주어 본다. 나도 늙어 죽으면 자연이 부르는 산으로 들어가 영원한 잠자리에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