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照吐紅掛碧山(낙조토홍괘벽산) : 지는 해 푸른 산에 걸려 붉은 빛을 토하고 寒鴉尺盡白雲間(한아척진백운간) : 찬 하늘에 까마귀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지네 問津行客鞭應急(문진행객편응급) : 나루터를 묻는 길손의 말 채찍이 급하고 尋寺歸僧杖不閒(심사귀승장불한) : 절로 돌아가는 스님 지팡이가 바쁘구나 放牧園中牛帶影(방목원중우대영) : 풀밭에 풀어놓은 소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望夫臺上妾低鬟(망부대상첩저환) : 망부대 위 여인의 쪽진 그림자 나지막하다 蒼煙古木溪南路(창연고목계남로) : 개울 남쪽길 고목엔 푸른 연기가 서려 있고 短髮樵童弄笛還(단발초동농적환) : 짧은 머리 초동은 피리를 불며 돌아오네
* 鴉:갈까미귀아, 閒:한가할 한, 鬟: 쪽진머리 환
어사(御史) 박문수(朴文秀)는 그 부모가 결혼을 한 후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선행과 스님들께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올린 후 낳은 아들이다.
부부는 1000일 기한을 정하여 선행을 베풀고 3년 동안 스님들께 음식공양을 올리기로 결심하고 장날마다 장터에 나온 스님을 집으로 모셔다가 극진하게 식사를 대접해 올렸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낳은 아이라 하여 '문수'라는 이름을 지었으나 성인(聖人)의 이름을 그대로 쓸 수가 없어 뒤 글자를 '빼어날 수(秀)'자로 하였다고 한다.
1723년(경종 3년) 33세의 늦은 나이에 박문수는 또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다. 박문수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한양으로 가는 과거길에 안성(安城) 칠장사(七長寺)에 들러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한양 과거 길을 재촉하며 고개길을 올라가다 숨이 차고 힘이 들어 잠시 나무그늘 밑에서 쉬어가기로 하고 자리를 잡는 순간 반대 방향에서 고개 길을 내려오던 한 선비를 만나 함께 쉬게 되었다.
두 선비는 자연스럽게 과거 이야기로 대화가 옮겨갔다. 아랫마을에 살고 있다는 그는 과거시험이 며칠 전에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던 박문수는 펄쩍 뛰며 무슨 소리냐고 따졌지만 그는 소상하게 설명을 했다.
이야긴 즉 시험당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시험을 치르지를 못 하고 있다가 저녁 무렵 일몰 직전 비가 그쳤는데 시험을 미룰 수가 없어 곧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시제는 "낙조(落照)"였다며,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한 시(詩) 까지 읊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여기 까지 이야기 하던 그 선비는 마지막의 한 구절을 잊어버려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며 무척 아쉬워 할 때 박문수가 잠을 깼다.
잠에서 깨어난 박문수는 이튿날 날이 밝는 대로 한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어찌되었던 한양으로 가 과거시험에 대한 자초지종을 알고 싶었다.
한양에 도착 한 후 확인을 해 보니 과거일은 아직 3일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고나니 과거시험날 인데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칠 줄 모르고 온 종일 내리던 비가 저녁 무렵에 뚝 그치니 예정대로 시험은 진행 되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시제가 꿈에서 본 것과 같은 '낙조(落照)'였다. 박문수(朴文秀)는 꿈에서 선비가 일러 준대로 막힘없이 시를 써내려 갔다. 그리고 꿈에 선비가 알려 주지 않았던 마지막 한 구절은 다음과 같이 채웠다.
短髮樵童弄笛還(단발초동농적환) 떡거머리 초동이 풀피리를 불며 돌아오네 라고 썼다.
시험관들은 이 시는 사람이 지은 시가 아닌 듯한데, 마지막 구절만 사람이 지은 것 같다며 앞 구절들은 모두가 비애가 깃들어 있는 시라면 마지막 종장에 환이 희망적이며 생동감을 주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이 시는 필유곡절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박문수의 시를 장원급제 시로 뽑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박문수가 과거볼 때 제출하여 장원급제를 한 시로서 안성 칠장사(七長寺)에서 꿈속에 부처님의 계시를 받은 시(詩)라는 뜻에서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라고도 한다.